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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242)화 (24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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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화 난잡한 황실

누명을 쓴 사청의는 감옥에 들어가 갖은 고문을 당했다.

결국 그의 형이 궁의 사람들에게 돈을 주어 그를 감옥에서 빼내야 했다.

하지만 사청의가 감옥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황후의 음모로 사씨 가문이 멸문된 뒤였다.

황후가 파견한 사람은 사청의까지 죽이려고 쫓아왔다.

사청의의 형은 그를 데리고 제경에서 천여 리나 멀리 도망쳤다.

그러나 결국 자객에게 잡혔고 형은 화살에 심장이 관통되어 죽었다. 사청의도 중상을 입은 채 마차에 쓰러져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객이 그를 죽이려고 하는 그 순간, 봉매를 데리고 길을 지나던 헌원용수를 마주친 것이다.

“제가 그를 처음 보았을 때, 그는 겨우 숨만 붙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인데다 몸도 차가워지고 있었는데 원통함 때문인지 오기인지 죽지 않고 버티고 있더군요.”

야홍릉은 침묵을 지키다 입을 열었다.

“내가 사청의를 처음 봤을 때 그는 곱게 자란 귀공자처럼 점잖았지. 전혀 철천지원수를 가슴에 새긴 사람처럼 날카롭지 않았다.”

능묵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그때 그를 구하면서 걸었던 유일한 조건이 제 말을 잘 듣고 제 허락 없이 사적으로 복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슴에 사무친 원한도 참을 줄 알아야 한다.

큰 자제력으로 참다 보면 기분을 숨기는 법도 터득하게 되는 법이다.

그렇게 그는 가면을 쓰는 법을 익혔다.

“사청의를 구했을 때라면, 네가 남성국에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냐?”

능묵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전 그때 나이가 어렸지만 기억이 돌아왔을 때이니 정신 연령만큼은 서른 살 가까이 된 셈이지요.”

야홍릉은 침묵했다.

그때의 헌원용수는 사청의와 비슷했다.

운명은 달랐지만 그들은 모두 최선을 다해 참아야 했다. 마음이 못 견디게 초조하고 절박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티를 낼 수 없었다.

“사청의는 그때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봉왕부로 데려가 육 개월 넘게 보살폈죠. 수많은 귀중한 약재를 쓴 뒤에야 그의 몸이 점차 나아지는 게 보였습니다. 제가 남성국을 떠난 뒤에도 믿을 만한 의원에게 사청의가 계속해서 약을 사용할 수 있도록 당부해 두었습니다. 지금이야 멀쩡해 보이지만 그때 자칫하면 죽을 뻔했지요.”

야홍릉은 찻잔의 차를 다 마시고 물었다.

“사청의의 출신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 것은, 그의 생부가 누군지 모른다는 것이냐?”

“네.”

능묵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사청의도 알아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그의 생모가 서릉의 황후라는 것뿐이지요. 그래서 심한의가 사청의의 부친과 연관되어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야홍릉은 침묵을 지키다 담담하게 말했다.

“서릉의 황실은 참 난잡한 듯하구나.”

“그뿐이겠습니까? 아주 그냥 콩가루 집안이지요. 황제가 무능하고 황후가 대권을 독점하면서 갖은 권력 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물론 추문도 끊이지 않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황후는 그나마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고 있었지만 이삼 년이 지난 뒤로 당당하게 남첩을 들였습니다. 황제와 황후는 저마다 각자의 후궁을 거느린 셈이지요. 그래서 황실 전체는 난잡하기 그지없습니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야홍릉의 차가운 눈과 마주친 능묵은 당황한 얼굴로 변명하기 시작했다.

“그 여인은 애비와 다릅니다. 애비가 남첩을 들인 건 진짜가 아니지만 그 황후는 정말 그런 것이니…….”

“만일 거짓이 아니면 어떡할 것이냐?”

야홍릉이 물었고, 능묵은 말문이 막혔다.

곧이어 그는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애비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제 잘못입니다. 제가 더 노력해서 애비가 매일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애비도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물론 야홍릉의 눈에 드는 사람은 능묵의 손에 죽을 테지만.

야홍릉은 침묵에 잠겼다.

야홍릉은 그녀에게 다가가 입을 맞추려고 하는 능묵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오늘은 대들보에서 자거라.”

말을 마친 그녀는 정자를 떠났다.

능묵은 멍하니 서 있다 야홍릉을 쫓아가며 말했다.

“대들보라니요?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데 애비의 잠자리를 따뜻하게 덥혀 주어야지요.”

“저택에 측부가 둘 있지 않느냐? 나도 공평하게 대해야지. 그들에게도 잠자리 시중을 들 기회를 주는 게 맞는 것 같구나.”

능묵은 그 말을 듣더니 야홍릉을 잡아당겨 품에 와락 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허하지 않을 것입니다.”

야홍릉은 뭐라고 말을 하고 싶었으나 그의 강렬한 입맞춤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능묵은 입을 맞춘 뒤에도 부족하다고 여긴 것인지 야홍릉을 안고 홍릉원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뜨거운 오후가 지났다.

능묵은 욕지에서 침전으로 장소를 바꾸어 야홍릉과 잠을 청했다.

낮임에도 불구하고 둘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애비, 아직 기운이 남아 있습니까?”

“당연한 소리.”

야홍릉이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그렇게 허약한 사람이더냐?”

그러자 능묵은 그녀의 위를 타고 오르며 말했다.

“그렇다면 계속하지요.”

“…….”

그렇게 다시 뜨거운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반 시진 뒤, 같은 질문이 들려왔다.

“애비, 아직 기운이 남아 있습니까?”

야홍릉은 침묵하더니 물었다.

“넌 안될 것 같으냐?”

그녀는 이렇게 묻는 능묵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항상 고분고분하기만 한 능묵인데 정사를 벌일 때만큼은 그녀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난폭한 맹수로 변했다. 그녀에게 모든 힘을 쏟아붓는 그는 평소 애교를 부리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능묵은 실제 행동으로 자신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몇 번 반복하고 나자 둘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공기 중에도 정욕의 냄새가 진동했다.

날이 어두워지니 대전도 점점 어두워졌지만 누구도 들어와서 등불을 밝히지 않았다. 감히 공주부에서 공주 전하가 벌이는 정사를 방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애비, 배고프지는 않습니까?”

능묵은 엎드려서 숨을 헐떡이는 여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뭐 좀 드셔서 체력을 보충하지 않겠습니까?”

야홍릉은 말할 기력이 없었다.

그녀는 경고하는 눈빛으로 능묵을 노려보았다.

“물 좀 가져오겠습니다.”

능묵은 침대에서 내려가며 말했다. 훤칠한 키에 잔근육이 붙은 그의 몸은 완벽한 예술품 같았다. 다리를 곧게 펴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니 전혀 격렬한 운동을 한 사람 같지 않았다.

물을 따라 가져온 그는 직접 야홍릉에게 먹여 준 다음에야 물을 마셨다.

그리고 찻잔을 옆의 탁자에 두고는 다시 침대에 올랐다.

“애비, 배고프지 않으시다면 계속할까요?”

야홍릉은 침묵했다.

몸은 더 이상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피곤했다. 하지만 먼저 실컷 그를 도발했던 그녀는 약한 소리를 할 수 없었다.

“애비, 이래도 다른 측부들을 공평하게 대하실 것입니까?”

야홍릉은 그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빛이 어두운데다 지친 몸 때문에 그녀의 눈빛은 강렬하지 않았지만 주인의 위엄을 부리기에는 충분했다.

“오늘 밤에도 무릎을 꿇고 싶은 것이냐?”

“아니요.”

능묵은 웃으며 애교를 부렸다.

“저는 애비를 끌어안고 자고 싶습니다.”

야홍릉은 콧방귀를 뀌었다.

능묵은 그녀를 옷으로 감싼 뒤, 끌어안으며 말했다.

“제가 애비의 목욕 시중을 들겠습니다.”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기력한 목소리로 ‘응’이라고만 했다.

능묵은 시녀를 불러 침대보를 바꾸게 한 뒤, 야홍릉을 안고 욕지로 들어갔다.

어영위인 그에게는 큰 강점이 있었다.

바로 인체의 혈자리를 다 꿰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쳐서 축 늘어진 야홍릉에게 능묵의 손길은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였다.

그녀는 곧 원기를 회복할 수 있었다. 욕지를 나설 무렵에는 스스로 설 수 있는 것은 물론 걸을 수도 있게 되었다.

목욕을 마치고 침의를 입은 채, 내전으로 돌아오자 정란이 이미 침대보를 바꾸고 등불을 밝힌 뒤였다.

“전하, 배고프시지요? 제가 바로 두 분께 저녁 식사를 올리겠습니다.”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묵인한다는 의미였다.

격렬한 운동 때문에 둘은 진작 뱃가죽이 등에 붙어 있었다.

정란은 시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애비, 아직 기운이 남아 있습니까?”

능묵은 고개를 돌리고 야홍릉을 바라보며 걱정 어린 얼굴로 물었다.

진심으로 야홍릉을 걱정하는 말이었지만 야홍릉은 그 말이 도발과 경고의 의미로 들렸다.

“오늘 밤은 무릎을 꿇어라.”

야홍릉은 평온한 어조로 말했지만 거역할 수 없는 냉정함이 담겨 있었다.

“체력이 그렇게 좋다면 밤새 꼬박 꿇고 있어도 괜찮을 게 아니냐?”

능묵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애비?”

방금까지의 달콤한 분위기는 어쩌고 갑자기 무릎을 꿇는단 말인가?

야홍릉은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침대에 기댔다.

체력이 조금 회복되었지만 몸은 여전히 욱신거렸다. 그녀는 능묵에게 패배했다는 좌절감과 분노를 느꼈다.

능묵이 애원하려고 하자 그녀는 싸늘하게 말했다.

“네 어영위의 직책과 남첩이라는 신분을 잊지 말거라.”

어영위의 직책은 주인을 보호하고 명령에 따르는 것이다.

만약 거절한다면 신은전으로 돌려보내어 다시 교육받아야 했다.

능묵은 한참이나 생각을 해보다 사정하는 말투로 말했다.

“제가 지금 몸이 힘드니 주인님께서 좀 봐주십시오.”

생존 욕구가 강한 능묵은 결국 특유의 수단인 사정과 애원으로 야홍릉의 마음을 녹이고서야 겨우 무릎 꿇는 벌을 면할 수 있었다.

결국 그는 야홍릉을 꼭 안고 행복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영영이 감진의 소식을 전했다.

“감 공자는 정왕부의 밀실에 갇혔습니다. 손발이 쇠사슬로 묶인 상태라 자유롭지 못합니다.”

능묵은 미간을 찌푸렸다.

“정왕이 감진을 의심하나 봅니다.”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잘 지켜보아라.”

능묵이 말했다.

“감진에게 위험한 일이 생긴다면 언제든지 보고하여라.”

영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능묵의 말이 곧 아홍릉의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바로 지시를 따르러 갔다.

능묵은 야홍릉의 세수를 도왔다.

그가 야홍릉의 침전에 머무르기 시작한 뒤로 야홍릉의 세수와 목욕 시중을 들던 정란과 첨향은 할 일이 줄어들었다.

그들은 외전에서 음식을 준비하거나 밤에 침대보를 펴는 등 잡일만 했다.

정려는 종종 속으로 투덜거렸다. 남의 시중을 받아야 하는 황제가 다른 사람의 시중을 든다니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취미였다.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야홍릉은 심한의를 불러 질문을 했다.

기주의 상황을 파악한 뒤, 그녀는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개인적인 것을 물어보고 싶구나.”

심한의가 대답했다.

“말씀하십시오.”

“넌 정말로 심씨 가문의 동양부냐?”

심한의는 고개를 숙이고 침묵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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