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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241)화 (24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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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화 출생의 비밀

“정왕이 마음이 급했나 보군.”

공주부에서 능묵은 야홍릉의 머리를 빗겨 주며 말했다.

“감진이 어젯밤 정왕부에 끌려갔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빙란각의 사람들은 무슨 독에 당한 것입니까?”

“천진(千塵)에 당했다.”

능묵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천진은 강한 독이 아니었다.

그러나 감진의 실력을 보면 이것 때문에 정왕부에 끌려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침묵을 지키다 말했다.

“주인님, 오늘 계획은 무엇입니까?”

“계획은 없다. 수사할 건 그대로 진행해야지. 이미 일도 익숙해졌으니, 오늘은 나가지 않고 저택에서 누구를 좀 만나야겠다.”

야홍릉이 대답했다.

‘저택에서 누구를 만난다고?’

능묵이 물었다.

“누굴 말입니까?”

야홍릉은 그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

“왜? 내가 누구를 만나면 안 되나?”

“……그냥 물어본 것입니다. 사내입니까?”

능묵은 고개를 숙이고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세상에는 여인이 아니면 전부 사내지.”

야홍릉이 평온한 말투로 대답했다.

밖에서 지키고 있던 정란과 정려는 둘의 대화를 듣고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정란과 첨향은 능묵의 진짜 신분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처음 공주부에 왔을 때, 얼마나 과묵하고 공손했는지, 무공은 또 얼마나 강했으며 공주에게 어떻게 손바닥을 맞아가며 글을 익혔는지 지켜본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 앞에 있는 능묵은 질투와 애교로 똘똘 뭉쳐 있었다.

그는 여전히 공손했지만, 예전과 달리 사랑하는 여인을 존중하는 듯한 느낌이 더 강했다. 사랑해서 아끼는 것이지 예전처럼 비굴하게 공손한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변화가 정란은 놀랍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려는 능묵의 진짜 신분을 알고 있었다.

능묵은 야홍릉 옆에 있을 때 사랑을 구걸하는 소년과 같아 평소 패기 넘치는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화장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야홍릉은 능묵과 아침 식사를 했다.

그리고 홍릉원을 나서서 매화원으로 걸어갔다.

겨울철 매화는 아주 예쁘게 피어 있었다.

취할 것 같이 향긋한 매화향이 코끝을 맴돌았다.

능묵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고즈넉한 오솔길을 걷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오자 야홍릉의 머리카락이 그의 얼굴을 간지럽혔다.

능묵은 고개를 돌리고 야홍릉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맞추었다.

야홍릉은 시도 때도 없이 시작되는 능묵의 애정행각에 익숙해져 입맞춤을 거절하지 않았다. 게다가 정인 사이에 이런 친밀한 행동을 하는 게 뭐 어떤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능묵이 입을 맞춘 뒤, 멈추지 않고 그녀의 옷을 찢으려 하자 그녀는 손을 뻗어 능묵의 뒤통수를 움켜쥐고 잡아당겼다.

좀 거칠기는 했지만 그를 통제하는데는 이 방법이 최고였다.

그가 선을 넘는 행동을 하려고 할 때 제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애비?”

능묵의 눈에 불꽃이 일었다. 그는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여기서 한 번…….”

“야외에서 관계하자는 것이냐?”

능묵은 사레가 들리더니 기침을 크게 하기 시작했다.

‘애비, 대단하십니다. 그런 말을 직설적으로 하시다니?’

“오늘은 안된다. 이따 사람을 만나기로 했으니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꾸나.”

야홍릉은 평온한 얼굴로 진지하게 말했다.

능묵은 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저 농을 친 것뿐이었다.

‘야외에서 관계라니, 그게 말이 돼? 내가 짐승도 아니고.’

물론 저택의 하인을 모조리 내보낼 수 있고 밖에서 하는 것이 아주 짜릿하겠지만. 그의 실력이라면 훔쳐보는 사람도 바로 잡아낼 수 있다고 자부하지만…….

그는 한 번도 진지하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장난이었습니다, 애비.”

능묵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야홍릉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찮다, 난 가리지 않는다.”

“애비…….”

능묵은 실소를 터뜨리고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전하.”

저택의 호원이 멀리서 보고했다.

“심 공자가 왔습니다.”

‘심 공자?’

능묵은 호원을 보더니 고개를 돌리고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심한의?”

야홍릉은 고개를 끄덕이고 담담하게 말했다.

“들라 하라.”

“네.”

호원은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

야홍릉은 오솔길을 따라 앞으로 걸어가 정자 앞에서 멈춰 섰다.

멀리서 둘을 따르던 정려와 정란은 다급히 탁자와 의자를 닦고 찻주전자와 찻잔을 올려놓았다.

매화원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 체형이 비슷한 두 남자가 오솔길에 나타났다.

하얀색 비단 장포를 입은 한경백과 열예닐곱 살 되어 보이는 소년이었다.

청색 장포를 입은 그는 발걸음도 차분했는데 아주 점잖은 인상을 풍겼다.

한경백과 함께 앞까지 나타난 둘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분이 호국 공주이시고 옆에 계시는 분이 능묵 공자이다.”

심한의는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다.

“심한의가 공주 전하를 뵙습니다.”

야홍릉은 미간을 찌푸리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능묵과 시선을 교환했다.

둘의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 서로의 눈에서 같은 뜻을 읽었다.

“심한의.”

야홍릉은 평온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고개를 들거라.”

심한의는 고개를 들고 준수한 얼굴을 드러냈다.

그는 무례하게 공주를 바라볼 수 없어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다.

야홍릉은 익숙한 그의 얼굴을 훑어보며 능묵을 힐끔 바라보았다.

능묵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심씨 가문의 양자인가?”

야홍릉이 물었다.

“공주 전하께 아룁니다. 저는 심씨 가문의 양자가 맞습니다.”

심한의는 공손한 말투로 대답한 뒤,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전 심씨 가문의 동양부(童養夫, 장래 사위로 삼으려고 어릴 때 데려다 기르는 사내아이)입니다.”

‘뭐라고?’

한경백은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심씨 가문의 동양부라고? 허무준은 심한의가 심씨 가문의 아들이라고 그랬는데? 양자는 아들이라 쳐도……. 추위 성적 조작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성적을 조작했는지 아닌지인데, 심한의가 양자인지 아닌지는 허무준도 잘 몰랐던 거겠지. 하지만 동양부는 다른 의미잖아? 심씨 가문에서 심한의를 미래 사위로 기른다는 얘기야?’

“일어나거라. 네 시험지를 폐하께 드렸다. 폐하께서도 사람을 보내 알아보라고 하셨다. 너를 해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 한동안은 공주부에 머무르거라.”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고 생각을 해보다 말을 이었다.

“네가 동양부든 아니든 난 너한테 관심이 없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라.”

그러자 한경백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심한의는 이게 걱정되어 자신이 동양부라고 미리 말한 건가?’

심한의는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제가 어찌 감히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한경백, 거처를 마련해 주어라. 너와 함께 지내도 되고.”

야홍릉이 말했다.

한경백은 지시를 받았다.

“네.”

둘은 곧 자리를 떠났다.

능묵은 심한의의 뒷모습을 보면서 말했다.

“이번 일은 저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사청의를 불러서 직접 보게 하는 게 확실할 것 같습니다.”

심한의의 얼굴은 사청의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심한의에게 출생의 비밀이 있는 것 같군.’

야홍릉은 침묵에 잠겼다.

그녀는 남성국에서 사청의를 만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심한의를 보자마자 그와 사청의가 아주 닮았다고 생각했다.

얼굴이 닮았으나 나이만 사청의보다 좀 어릴 뿐이었다.

심지어 둘의 이름에는 같은 ‘의’자가 있었다.

‘우연일까?’

야홍릉은 찻잔을 들고 마시며 담담하게 말했다.

“사청의는 네 심복이지.”

능묵은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성국에 있을 때, 능묵은 사청의의 신분을 그녀에게 말해준 적이 있었다.

헌원용수의 심복 중에서 사청의의 지위와 권력은 세 번째에 들어갔다.

“그에 대해 얘기를 좀 해보아라. 오늘은 할 일도 없어서 무료하니.”

야홍릉이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

사실 능묵은 시간을 심심하게 보낼 생각이 없었다.

그는 침전으로 돌아가 책에서 배운 자세를 모두 한 번씩 시도해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사청의의 신분은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야홍릉은 찻잔을 든 채, 말없이 듣고 있었다.

“사청의의 생모는 서릉의 황후입니다.”

능묵은 입꼬리를 올리고 신비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황후가 궁에 들어가기 전에 아이를 낳았습니다. 궁에 들어간 그녀는 아이의 신분이 들통날까 봐 두 살 된 아이를 강에 버렸습니다. 그러다 사씨 가문 사람이 아이를 발견해 집으로 데려다 키운 거지요. 이십여 년 전, 사씨 가문의 가주는 서릉의 승상이었습니다. 문관의 우두머리로 권력이 컸지요.”

야홍릉은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잘 생각해 보니 별로 놀라울 것도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청의는 일반 가문에서 자란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서릉의 소문에 대해 들은 것이 많지 않습니다. 제가 그다지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사청의의 출생의 비밀에 대해 조사해 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정보는 전부 사청의가 스스로 말해 준 것입니다. 서릉의 황후가 어떻게 아이를 낳은 몸임에도 불구하고 황후가 될 수 있었는지 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무슨 수단을 사용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야홍릉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서릉의 황후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

“황후는 황자를 낳은 뒤 승상을 자신의 편으로 영입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승상을 영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잘못된 수단을 사용하면 다 소용없는 일이 되기 때문이었다. 서릉의 황후는 야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승상을 영입하기 위해 시녀인 백상을 미끼로 사청의를 유혹했다.

젊은 사청의는 멋진 사내였다. 자신감이 넘치고 학식이 뛰어난 그는 소녀들의 이상형이었다. 백상은 아름다운 얼굴에 아련한 눈빛을 가진 소녀였기에 소년들 또한 그녀에게 연모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귀공자와 궁녀라는 신분 차이 때문에 둘의 사이는 더더욱 애틋해졌다.

바로 이런 신분의 장벽 때문에 간절해진 사청의는 백상을 더욱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황후는 둘의 사이가 깊어진 것을 보고 기분이 좋았기에 백상을 군주로 책봉했다. 군주의 신분이라면 사씨 가문에 시집갈 수 있었다. 그러나 둘이 혼인하기 전, 황후는 우연히 사청의가 자신이 버린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불안해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자신이 아이를 낳았었다는 비밀이 황제에게 들킬까 두려웠고, 사씨 가문이 다른 꿍꿍이로 사청의를 입양한 것일까 걱정했으며, 사씨 가문이 그녀의 비밀을 알고 있을까 무서웠다.

생각을 거듭하던 황후는 백상을 이용해 음모를 꾸몄다. 그는 사청의를 궁으로 끌어들인 뒤, 그와 후궁의 젊은 비빈이 같은 자리에 있게 만들어 황제가 둘의 ‘불륜 현장’을 발견하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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