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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237)화 (238/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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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화 가죽을 벗기겠습니다

야모침은 분노에 차서 씩씩거렸다.

그러자 야홍릉은 시선을 들고 차분하게 말했다.

“둘째 오라버니가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저도 묻고 싶네요. 매현근은 제 측부인데도 야밤에 제 측근 시녀를 불러내 밀회를 즐겼습니다. 그리고 제 시녀를 꼬드겨 제 움직임을 알아보려고 했고요. 이게 무슨 행위인가요? 가법으로 따지면 바람을 피운 죄가 아닌가요? 아니면 제 움직임을 알아보려 했으니 그 의도가 수상쩍으니 형부에 보내 심문이라도 받게 해야 했나요?”

‘바람을 피웠다고?’

이 말에 조정 대신들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호국 공주의 표정이 침착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야홍릉이 장난을 치는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들은 황자와 공주가 대전에서 다투는 것을 처음 보았다.

관리들은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누구도 이 상황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시녀와 밀회를 즐겼다고? 넌 증거도 없으면서 왜 매현근을 모함하는 것이냐?”

야모침이 냉소를 하며 물었다.

“제가 직접 본 것인데 누명이라도 씌웠다는 건가요? 그리고 매현근은 제 저택의 사람인데 제 사람이니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는 것 아닌가요? 오라버니의 오지랖이 너무 넓다는 생각은 안 드나요?”

야홍릉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러자 야모침은 화가 나 눈을 부릅뜨며 소리를 질렀다.

“야홍릉, 너 선 넘지 마!”

야홍릉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힐끗 볼 뿐 대꾸하지 않았다.

황제는 말없이 용의에 앉아서 미간을 찌푸렸다.

한참 뒤, 그는 화난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강산이고 조정이고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구나. 짐은 그저 며칠 쉬었을 뿐인데 너희들은 하나같이…….”

그러자 대신들은 안색이 변하며 무릎을 꿇었다.

“폐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황제는 용의에서 일어나며 신하들을 내려다보았다.

“경들 모두 할 말이 많은 것 같은데 상주서로 올리게. 짐이 천천히 보고 알아볼 것이네. 아직 짐이 모르는 게 얼마나 더 있는지 봐야겠군.”

말을 마친 그는 대전을 나갔다.

손평은 ‘폐하께서 나가신다’는 말만 남긴 채, 재빨리 황제의 뒤를 따랐다.

대신들은 황제가 가는 모습을 공손한 자세로 배웅했다.

야정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야홍릉을 돌아보며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이젠 나와 아예 틀어지자는 거구나?”

‘틀어져?’

“넷째 오라버니, 자신을 너무 대단하게 여기네요.”

야홍릉은 야정연을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그에게 가까이 다가서서 그만 들을 수 있는 크기의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 오라버니의 가죽을 벗기지 못한다면 전 야홍릉이 아니에요.”

말을 마친 그녀는 대전 밖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자신의 마지막 말로 인해서 야정연의 표정이 어떻게 변했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야모침은 야정연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진 것을 보고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

“넷째야, 방금 홍릉이가 뭐라고 했느냐?”

야정연은 어두운 얼굴로 멀어져가는 야홍릉의 뒷모습을 사라질 때까지 뚫어지게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야모침을 바라보며 물었다.

“형님은 요즘 도는 소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야모침이 물었다.

“새 남첩의 소문 말이냐?”

그가 퍼뜨린 소문인데 어떻게 생각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아니요.”

야정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섬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호국 공주의 야심에 대한 소문 말입니다.”

야모침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치 머릿속에서 무언가 펑 하고 터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찜찜하고 이해가 가지 않았던 문제들이 순식간에 풀린 느낌이었다.

* * *

황제는 어서방에 들어가자마자 신은전의 대교습을 불렀다.

“제경에서 떠들썩하게 퍼지고 있는 유언비어는 어떻게 된 것이냐? 짐이 아파서 며칠 쉬었을 뿐인데 밖은 왜 이리 시끄러운 것이냐?”

“폐하, 노여움을 푸십시오.”

손평은 다급히 황제의 가슴을 쓸어내리며 찻잔을 건넸다.

“화를 내시면 옥체가 상합니다. 폐하께서 절대 화를 내시면 안 된다고 태의가 당부했습니다.”

황제는 장부책을 책상에 내팽개치며 말했다.

“이것들 좀 보아라. 내가 어찌 화를 내지 않을 수 있겠느냐? 겉으로는 공손한 척 굴지만 뒤로는 나 몰래 무슨 일을 저지르는 것이냐? 내가 눈이 먼 줄 아는 것이냐?”

신은전의 대교습은 말없이 책상 앞에 서 있었다.

황제는 의자에 앉으며 화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이제는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호국 공주가 드린 증거는 모두 사실입니다.”

대교습이 천천히 말했다.

“기주의 포정사 계 대인이 뇌물로 받은 돈은 심씨 가문의 것만 아닙니다. 병부에 소속되고 계씨 가문과 연관된 많은 벼슬자리를 팔아서 얻은 수입도 있습니다. 정왕이 병부를 관리할 때, 계씨 가문의 직계와 방계는 정왕이 사위라는 점을 이용해 많은 곳에서 이득을 취했습니다.”

황제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다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전에는 왜 얘기한 적이 없느냐?”

“전에는 폐하께서 묻지 않으셨습니다. 황자들은 모두 지지자가 있고 혼인하는 방식으로 동맹 관계를 맺는 일 또한 자주 있기에 굳이 말씀드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고?’

황제는 또 화가 치밀었다.

“짐은 아직 살아 있거늘! 그런데 다들 짐의 자리를 노리는 것이냐? 이렇게 급히?”

“폐하, 노여움을 푸십시오.”

손평은 황제의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독였다.

“폐하께서 지금 한창 나이신데 어찌 다른 사람이 감히 넘보겠습니까?”

황제는 가까스로 화를 가라앉히고 대교습에게 물었다.

“넷째는 기주의 일에 대해 아느냐?”

“추위 성적을 조작한 것은 모릅니다. 정왕이 알았다면 공주가 조사를 이처럼 순조롭게 마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왕은 계씨 가문이 뇌물을 받는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대한 편의를 봐주었고요.”

황제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말 그대로였다.

정왕이 뒤를 봐주지 않았다면 기주의 포정사가 어찌 이렇게 간 큰 행동을 벌일 수 있었겠는가?

그동안 심씨 가문에서 받은 돈은 다른 관리라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액수였다. 하지만 계 대인은 만족을 몰랐다.

그는 심씨 가문 전체를 꿀꺽 삼켜버릴 생각이었다. 물론 그럴 만한 이유도 있었다.

“계씨 가문은 그동안 수많은 재산을 끌어들였습니다. 외부인이 본다면 계 대인의 생활은 사치스럽지 않습니다. 집에 정실 한 명과 첩실 한 명을 둔 게 다이고 다른 것도 평범하니까요.”

대교습은 평온한 말투로 놀라운 얘기를 했다.

“계씨 가문은 모은 돈을 모두 무기와 방패를 사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러자 황제의 안색이 확 바뀌었다.

“뭐라고?”

대교습이 대답했다.

“기주의 병영 지하에는 병기 창고가 있는데 그동안 계한우가 사들인 무기와 갑옷이 들어 있습니다.”

황제의 얼굴에 그늘이 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에게서 짙은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있느냐? 전쟁용 말은?”

황제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고 차갑게 물었다.

“말은 없었습니다. 말을 산다면 조정의 시선을 끌 수도 있고 소모하는 금액도 엄청났을 테니까요. 그래서 그는 가장 필요한 것만 사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지하에 병기 창고가 있으나 그는 항상 조금씩 사들였습니다. 한 번도 대량으로 사들인 적이 없고 그마저도 그럴듯한 이유를 대서…….”

대교습은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덧붙였다.

“그래서 그동안 정왕은 해마다 정왕비와 함께 친정에 돌아갈 때를 제외하고 다른 때에는 기주에 발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정왕 부부는 금슬이 좋기로 소문난 부부였다.

정왕은 아내를 아끼고 존중하여 해마다 시간을 내 아내와 함께 장인어른 집으로 다녀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사나흘 정도만 머물렀다 돌아왔다.

혼인한 지 오 년이 접어들었지만 정왕비는 아버지가 남편을 도와 뭘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평소에 기주로 가지 않는 것은 괜한 말이 나올까 두렵고 다른 사람의 오해를 살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극도로 조심했기에 더욱 수상해 보였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황제는 도리어 침착해졌다.

그러나 이것이 폭풍우가 휘몰아치기 전의 고요함이라는 것을 아는 손평은 심장이 떨렸다.

“이것들을 왜 미리 말해주지 않은 것이냐? 왜? 넌 누구 편을 드는 것이냐?”

황제는 대교습을 노려보며 물었다.

대교습은 눈을 내리깔고 당황한 기색 없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신은전에는 규정이 있습니다. 영위는 각 곳의 움직임을 주시해야 하나 폐하께서 묻지 않으신다면 절대 먼저 고자질을 할 수 없습니다. 안 그러면 영위들이 사사로이 동맹을 이루고 폐하가 아닌 사람의 편을 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주는 제경과 거리가 아주 가까웠다.

만약 기주에서 병사들을 모은다면 이틀도 되지 않아 제경에 도착할 것이다.

그러면 이틀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제경은 발칵 뒤집힐 것이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누군가 역모를 꿈꾸고 있었는데 그는 전혀 몰랐던 것이다.

황제는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실망하고 불안했다.

그는 자신이 황제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일이 그의 손을 벗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그의 통제를 받지 않고 있었다.

그의 아들은 하나같이 그의 뒤에서 황위를 노리고 계획을 짜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은 황제를 황위에서 내쫓고 싶은지도 모른다.

‘내가 아직 죽지 않았는데. 내가 아직 아무것도 못 할 정도로 늙지 않았는데 이렇게 급하게?’

그는 너무나 불안했다.

“폐하.”

이때, 밖에서 시위의 목소리가 들렸다.

“중서성(中書省)에서 대신들의 상주서를 가져왔습니다.”

황제는 눈을 감고 있다가 한참 뒤에야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손평.”

“네.”

손평은 나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상주서를 한 아름 안고 들어와 조심스럽게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황제는 이 상주서를 보자 눈빛이 흔들렸다.

“읽어라.”

손평은 고개를 끄덕인 뒤, 상주서 하나를 펼쳐 들었다.

그는 조금 망설이다가 읽기 시작했다.

“호국 공주는 제멋대로 행동하고 사생활이 난잡하며…… 제경에는 호국 공주의 올바르지 못한 언행 때문에 좋지 않은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이렇게 내버려 둔다면 목국은 필히…… 필히…… 큰 화를 입을 것입니다.”

손평은 조심스럽게 상주서를 접어서 옆에 두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를 꺼내 읽었다.

“호국 공주는 성미가 차갑고 수단이 지독하며…… 남첩이 세가 공자를 때리게 내버려 두었고…… 행위가 단정하지 못하니 엄벌에 처할 것을 바랍니다…….”

황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손평은 고개를 숙이고 또 다른 상주서를 집어 들었다.

“호국 공주는 대권을 움켜쥐고 있어…… 다른 마음을 품었을까 걱정이 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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