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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236)화 (237/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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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화 드러난 갈등

황제는 시선을 장부책에 고정했다.

순간 그의 시선이 서서히 차가워졌다. 장부책 중간에 끼어 있는 서신을 뜯어본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불렀다.

“홍릉아.”

대전 안은 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했다.

사람들은 왕 어사의 말에 황제가 불만을 느낀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는 손에 든 장부책과 서신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이건 무슨 일이냐?”

야홍릉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부황께서 보셨다시피 제가 조사한 증거입니다.”

대전의 분위기는 눈에 띄게 차가워졌다.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었다.

지금 황제는 왕 어사의 말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대전에 서 있는 야홍릉은 여인임에도 불구하고 날카로운 기세를 내뿜었다.

그녀의 강렬한 기세에 사람들은 압박감을 느꼈다.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이 온기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사부의 참정 두 명을 기주로 보내 알아본 것들입니다. 증거를 모두 확보했으니 부황께서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황제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야정연은 기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저도 모르게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기주? 추위 성적 조작?’

그는 믿을 수 없는 얼굴로 고개를 돌리고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소리소문없이 그에게 함정을 파놓았을 거라고 예상도 하지 못했다.

대신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몰랐다.

호국 공주가 조사한 추위 사건에 누가 연루되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기주가 정왕의 장인이 관할하는 지역이라는 것은 다들 알고 있었다.

순간, 대전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폭풍우가 오기 전의 정적이었다.

호국 공주를 까내리기 바빴던 대신들도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었다.

“사건의 발단은 간단합니다.”

야홍릉이 평소와 다름없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심씨 가문은 기주의 상인이지요. 재산이 많아 기주의 절반 산업을 관리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기주 포정사 계 대인은 심씨 가문의 재산이 탐나 여러 번이나 심복을 시켜 심씨 가문에 서신을 보내며 재산을 바치라고 눈치를 주었습니다.”

각 지역의 상인들은 상업계에서 사업을 벌일 때 그곳의 관리들에게 돈을 얼마간 바쳤다. 이건 암묵적인 규칙 같은 것이었다.

사업을 크게 벌이되 가족들이 안전하게 지내려면 뒤에 든든한 뒷배를 두어야 했다.

대신들은 이런 것들을 다 알고 있었다. 관리가 상인에게 먼저 얘기를 꺼냈다는 것은 그렇게 바친 돈의 액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야정연은 굳은 얼굴로 반박했다.

“지금 엄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는 거야?”

“누명을 씌우는 게 맞는지 아닌지는 부황께서 알아서 하시겠죠. 오라버니가 왜 화를 내는 거죠?”

야홍릉은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야정연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위조한 증거로…….”

“증거가 명확한데 위조라니요. 한 글자도 위조하지 않았습니다. 제 목숨으로 장담하지요.”

야홍릉이 말했다.

야정연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심씨 가문이 계 대인에게 바친 액수는 저 장부책에 있습니다. 몇 년 동안 그들이 바친 액수는 아주 엄청나지요.”

야홍릉은 한담을 하듯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입니다. 올해 여름, 계 대인은 심씨 가문에 사람을 보내 심씨 가문의 여식을 아들의 첩으로 들이기를 바랐지요. 하지만 심씨 가문에서 거절하자 계 대인이 앙심을 품고 추위에서 심씨 가문의 양자인 심한의를 탈락시킨 것입니다.”

사실 큰일은 아니었다.

상인이라면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가문에 벼슬을 하는 사람이 없으면 쉽게 다른 사람에게 찍히는 법이다.

특히 사업을 크게 할수록 뒤를 봐주는 사람이 더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무너질지 알 수 없었다.

심씨 가문은 이 이치를 모르는 게 아니어서 최대한 돈을 많이 지불하며 능력이 닿는 데까지 계 대인의 요구를 만족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계 대인은 심씨 가문에서 해마다 바치는 돈에 만족하지 않고 심씨 가문의 모든 재산을 삼켜버릴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나 당당하게 빼앗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되면 망나니로 불릴 게 아닌가?

그래서 생각한 것이 사돈을 맺는 것이었다. 이것은 가장 그럴듯한 핑계였다.

하지만 계 대인은 이미 혼인한 몸이라 집에 정실이 있었다.

그리고 상인의 여식은 관리들에게 비천한 신분이어서 첩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심씨 가문에서 이 혼사를 거절한 것이다.

계 대인, 계한우도 생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이 때문에 심한의가 추위에서 낙방한 것이다.

“부황, 심한의의 학식이 어떤지는 지금 부황께서도 보셔서 아실 것입니다. 제가 걱정되는 건 계 대인이 그동안 직권으로 계주의 상인들에게서 돈을 얼마나 받았으며 그 돈을 어디에 썼냐는 것입니다. 혹시 다른 마음을 품고 뭔가를 꾸미지 않았는지…….”

“야홍릉!”

야정연은 버럭 화를 내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너 그게 무슨 말이냐? 날 음해하여 네 그 야심을 채우려는 것이냐? 호국 공주라는 작자가 야심이 큰 것을 누가 모르겠냐? 날 제거한 뒤, 큰형님과 둘째 형님도 순서대로 제거할 생각이지? 정말 황당하기 그지없는 생각이구나!”

대전은 조용하기만 했다.

사람들은 정왕의 갑작스러운 분노에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죽은 듯이 고요한 정적이 찾아왔다.

황제는 시선을 들고 야홍릉을 스쳐보았다.

그리고 화가 나서 씩씩거리는 야정연을 바라보며 천천히 물었다.

“넷째야, 방금 뭐라고 했느냐?”

야정연은 무릎을 털썩 꿇었다.

“제가 충동적으로 굴었습니다. 부황, 벌을 내려 주십시오.”

“방금 그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야정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폐하께 아룁니다.”

아까 무시당했던 왕 어사가 공손한 얼굴로 했던 말을 다시 반복했다.

“요즘 제경에 호국 공주가 남첩을 들인 일에 대해 떠들고 있습니다. 호국 공주가 사내들을 마구 들이는 게 다른 야심이 있다고 말입니다. 신도 이 소문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나 호국 공주가 여인의 몸으로 사부, 호부의 대권과 병권까지 가지고 있는 것은 경우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폐하, 통촉하여 주십시오.”

황제는 어두워진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경들 모두 호국 공주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나?”

대신들은 고개만 숙일 뿐, 야홍릉의 편을 들지 않았다.

이 광경을 본 황제는 드디어 신하들이 야홍릉을 겨냥하고 찾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쩐지 들어올 때부터 분위기가 이상하다 했어. 남첩을 마구 들였다고? 공주부의 남첩과 측부는 모두 내가 보낸 자들인데, 이들은 지금 나한테 불만이 있다고 얘기하는 건가? 그러나 야홍릉의 권력이 지나치게 크긴 하지.’

이 문제를 의식한 황제는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는 야홍릉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물었다.

“어사들의 말에 할 얘기가 있느냐?”

“할 얘기는 없습니다. 최근 공주부에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으나 제가 잘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경에서 떠들썩하게 돌고 있는 소문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선동한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선동했다고?’

황제는 실눈을 뜨고 물었다.

“그게 누구란 말이냐?”

야홍릉이 대답했다.

“제가 요즘 추위의 일로 바빠서 배후의 인물을 잡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유언비어가 이상하게 빠른 속도로 퍼진 것도 그렇고 백성들이 황족의 일을 함부로 입에 올리는 것도 그렇고 누군가 의도적으로 선동한 게 분명합니다.”

호국 공주는 큰일이 일어나도 당황하지 않고 차분한 얼굴로 말을 또박또박 이어갔다. 그녀는 냉정하고 침착하게 현재 상황을 파악했다.

자신에게 아무리 불리한 상황이 닥쳐도 그녀는 이성을 잃지 않았다.

조정의 젊은 대신들은 호국 공주의 행동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대전에서 절대 호국 공주의 편을 들지 말라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그들은 두 어사의 말을 따박따박 반박했을 것이다.

‘여인이면 뭐? 황자 공주들 중에서 7공주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있나?’

‘7공주보다 무공이 강해? 아니면 7공주보다 실력이 뛰어나? 7공주가 병권을 가지고 있는 게 뭐 어떻다고?’

‘무장이 병권 없이 어떻게 전쟁을 이끌라는 말이야? 조정에서 입만 놀리면 적군이 알아서 도망가나? 이들은 호국 공주가 지금 권력이 크다는 것만 알고 그녀가 삼 년간 전쟁터에서 세운 공로는 다 잊은 거야?’

‘공주 전하의 남첩 역시 폐하가 하사하신 거잖아? 그리고 공주 전하의 성미가 사내와 비슷한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왜 호들갑이래?’

‘괜히 트집을 잡고 싶으면서 쓸데없는 핑계를 대고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다니. 비겁하게 숨어서 무슨 짓이래? 이렇게 한다고 호국 공주가 눈 하나 깜짝하겠어?’

몇몇 젊은 대신들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이때, 문관들의 우두머리인 승상이 입을 열었다.

“폐하께 아룁니다. 공주 전하께서 계 대인이 뇌물을 받은 증거를 찾으셨으니 심씨 가문의 일과 함께 완벽하게 조사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야 조정 대신과 서생들에게 할 말이 있지 않겠습니까?”

황제는 손에 들고 있는 장부책을 한참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려 야정연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늘이 낀 얼굴로 말했다.

“승상의 말이 맞네. 그러나 이 일은 누가 맡지?”

야정연의 얼굴이 점차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옷에 감춰진 두 손도 주먹을 꽉 움켜쥔 상태였다.

조정 대신들은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누가 감히 정왕의 장인어른 사건을 조사하겠어?’

“정창.”

형부상서 정창은 온몸이 흠칫 떨렸다.

그는 앞으로 나서며 고개를 숙였다.

“예, 폐하.”

“기주 포정사의 뇌물수수 사건은 형부가 맡도록 하라.”

황제가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름 안에 결과를 가져오너라.”

정창은 지시를 받들 수밖에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외부에 퍼진 유언비어 말입니다…… 공주 전하께서 누군가 의도적으로 선동한 거라고 했으니 마찬가지로 조사를 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승상이 말했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은 한묵에게 넘기게.”

“부황께 아룁니다.”

이때, 야모침이 나섰다.

“유언비어의 일은 천천히 알아보셔도 되지만 홍릉이의 남첩이 세가 공자를 때린 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직접 보았습니다. 부황, 현명한 선택을 내려주십시오.”

황제는 고개를 돌려 야모침을 보았다가, 다시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기분을 알 수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홍릉아, 사실이냐?”

“매현령이 제 앞에서 무례를 범하며 막말을 퍼부었습니다. 그래서 그저 적당히 혼낸 것입니다.”

“왜 없는 말을 하는 것이냐? 네가 먼저 매현근에게 제멋대로 형벌을 내려 형을 걱정한 매현령이 나와 함께 공주부로 찾아간 거잖느냐? 그런데 넌 어찌했더냐? 그 둘을 만나지도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네 노리개가 매현령을 때리는 것을 내버려 두지 않았느냐? 그게 호국 공주로서 할 행동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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