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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231)화 (23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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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화 으스대다

능묵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주인님, 제가 잘했나요?”

야홍릉은 말없이 있다가 담담하게 말했다.

“나쁘지 않아.”

능묵은 낮은 목소리로 웃더니 일어나서 앉았다. 그리고 그녀의 허리와 다리를 끌어안고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애비, 체력이 참 좋으십니다.”

‘저녁에 고기 요리를 먹인 게 맞았어. 체력 보충에 아주 좋거든.’

야홍릉은 그를 침대로 눕히며 말했다.

“주무르지 말고 이리 누워라.”

능묵은 그녀를 품에 안고 머리를 그녀의 목에 비볐다.

“앞으로 매일 주인님과 함께 잠이 들고 싶습니다.”

야홍릉이 말했다.

“며칠만 있다 얼른 남성국으로 돌아가거라. 고집부리지 말고.”

“길이 너무 멀어 가면 또 몇 달 머물러야 할 것입니다. 목국에 있다가 주인님께서 등극하시면 다시 돌아갈 것입니다.”

능묵은 돌아갈 생각이 없는지 투덜거리며 말했다.

‘애비가 아직 목적을 이루지 못했는데 내가 어떻게 돌아갈 수 있겠어? 결정적인 순간에 누군가 앙심을 품고 애비를 해치면 어떡할 거야?’

“애비, 걱정하지 마십시오. 남성국에는 대제사와 봉서오가 있으니 괜찮을 것입니다.”

능묵의 목소리는 밤에 들으니 다정하기만 하여 제왕의 위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애교 부리는 강아지처럼 야홍릉의 어깨에 얼굴을 문지르며 말했다.

“주인님께서 등극하시는 날에 저에게 명분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야홍릉이 물었다.

“어떤 명분을 원하는 것이냐?”

“다 됩니다. 황부, 측부, 남첩…… 다 됩니다.”

그는 다 괜찮았다.

“다 된다면 지금 이미 가지고 있지 않느냐?”

능묵은 생각을 해보고 대답했다.

“하지만 황족 족보에는 오르지 않았잖습니까?”

그는 세상 사람들이 다 알기를 바랐다.

‘애비와 나란히 오르고 싶어…….’

그는 생각한 뒤, 진지하게 말했다.

“정실 부군이 좋을 듯합니다. 다른 신분은 모두 장난일 수 있지만 진짜 부부여야 백 년 해로할 수 있으니까요.”

그는 그녀와 나란히 서기를 바랐다.

목국에서나 남성국에서나 그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가 야홍릉의 남편이고 야홍릉은 헌원용수의 아내라는 것을 알기 바랐다.

그들 부부는 백년해로할 것이다.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이 문제에 대해 생각했다.

‘부부?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

* * *

고요한 밤이 흘렀다. 둘은 지나치게 체력을 소모한 탓에 다음날 한낮이 되어서야 잠에서 깰 수 있었다.

능묵은 일찍 일어나 야홍릉을 안고 애틋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행복에 젖어 꿀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야홍릉은 눈을 뜨고 시녀를 불렀다. 그러자 정란과 첨향이 다른 시녀들을 데리고 들어와 보고했다.

“측부들이 밖에서 한참 기다렸어요.”

야홍릉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왜 왔다고 하더냐?”

“어젯밤 능묵 공자가 측부들더러 아침에 문안 인사를 하러 오라고 지시했어요. 공주 전하가 그렇게 말씀하셨다면서…….”

야홍릉은 고개를 돌리고 능묵을 바라보았다.

어젯밤 그가 이제부터는 으스대겠다는 말이 떠올랐다.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것이냐?”

“아닙니다. 그저 자랑하고 싶을 뿐입니다.”

말을 하는 능묵의 얼굴은 그의 기분처럼 의기양양했다.

물론 그가 진심으로 다른 측부들과 야홍릉의 총애를 다투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측부들의 존재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자랑하겠다고 한 것도 말뿐이었다.

야홍릉과 능묵은 옷을 갈아입은 뒤, 함께 밖으로 나갔다. 정원에 여섯 명의 측부가 나란히 서 있자 궁중 간택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전하를 뵙습니다.”

여섯 명은 하나같이 용모가 아름답고 우아한 사람들이었다.

“전하, 만수무강 하십시오.”

검은색 장포를 입고 야홍릉의 옆에 서 있는 능묵은 평범한 옷차림에도 군자의 패기가 넘쳤다.

야홍릉은 고개를 끄덕이고 담담하게 말했다.

“한경백은 먼저 서재로 가 있거라.”

한경백은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떠나기 전에 그는 야홍릉의 옆에 선 남자를 보더니 살짝 놀란 듯했다.

그러나 그는 바로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와서는 홍릉원으로 걸어갔다.

“이자는 내가 새로 들인 남첩이다.”

야홍릉은 담담한 말투로 능묵의 신분을 소개했다.

“신분은 너희들과 같으나 다른 점이라면 이자는 어젯밤 내 침대에서 잤다는 것이다. 너희들은 아직 그럴 기회가 없다.”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황당한 말을 쏟아냈다.

그녀가 스스로를 풍류스럽고 호색한 공주로 얘기했지만 듣고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남색을 밝히는 황당한 공주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말을 들은 감진과 단씨 형제는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공주 전하는 저 남첩의 진짜 신분을 아실까? 아시면서 이런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시는 것일까?’

그녀의 옆에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헌원용수를 보자 그들은 더욱 당황스러웠다.

‘이건 무슨 악취미지?’

“저자는 누굽니까?”

능묵은 미간을 찌푸리고 측부들 사이에서 나이가 제일 많아 보이는 사람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렇게 늙은 사람도 들인 것입니까? 전하, 너무 가리지 않는 것 아닙니까?”

늙었다고 지적당한 매현근은 고개를 쳐들고 말했다.

“내가 나이가 많든 말든 너와 무슨 상관이냐?”

능묵이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

“감히 어디서 말대꾸 질이냐?”

야홍릉은 입가를 실룩거리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능묵이 ‘으스대는 남첩 행위’를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말대꾸라고?”

매현근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공주 전하께서 우리의 신분이 모두 같다고 하지 않았느냐? 너만 다른 사람을 모욕할 수 있고 내가 반박하는 것은 안 되나?”

“무엄하구나!”

능묵은 서리가 낀 것처럼 차가운 얼굴로 매현근을 노려보았다.

“지금 바로 사과하지 않는다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가만두지 않는다고?’

매현근은 코웃음을 쳤다.

그는 야홍릉을 믿고 잘난 척하는 능묵이 하찮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그의 신분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호국 공주의 옆에 언제부터 저런 사내가 있었지? 원래 성격이 저런가? 아니면 공주 전하의 총애를 믿고 저러는 건가?’

호국 공주는 측부들을 한 번도 잠자리로 부른 적이 없었다.

매현근은 측부들이 모두 보여주기식인 줄 알았는데 야홍릉이 정말로 남첩과 잠자리를 가진 것이다.

야홍릉은 쓸데없는 말을 하는데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모두 돌아가 보아라.”

감진과 단씨 형제는 고개를 숙인 채, 물러났다.

매현근은 떠나기 전에 능묵을 힐끗 본 게 다였지만 영정은 능묵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는 능묵의 얼굴이 어딘가 낯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려.”

다섯 명이 멀어지자 능묵은 고개를 돌리고 옆에 있는 정려를 바라보았다.

“매현근이 널 불러서 뭘 하더냐?”

정려가 대답했다.

“바둑을 두고 꽃구경을 했습니다. 그리고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가끔씩 남성적 매력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공주 전하의 움직임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손을 쳐들고 맹세했다.

“저는 그냥 그의 말에 장단을 맞춰 주는 연기를 했을 뿐입니다. 그의 우아한 매력에 넘어간 적 없습니다.”

“우아한 매력? 겉만 번지르르할 뿐이지.”

능묵은 미간을 찌푸렸다.

정려도 고개를 끄덕였다.

‘겉만 번지르르하긴 하지…… 하지만 외모로만 봐도 우리 폐하보다는 못하신걸.’

정려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실 매현근은 능묵 앞에서는 잘생겼다고 할 수도 없는 얼굴이었다.

정려는 능묵과 묵백 같은 미남 앞에서도 꿈쩍하지 않았는데 어찌 매씨 가문 서자에게 넘어가겠는가?

그러나 매현근은 정려가 일반 시녀인 줄 알고 조금만 정성을 들이면 꼬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듯했다.

사실 멍청하기 그지없는 생각이었음에도 말이다.

“다음 약속도 잡았느냐?”

정려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저녁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애비, 매씨 가문 서자가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를 없애버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애비 생각은 어떠십니까?”

그가 야홍릉을 바라보며 물었다.

야홍릉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렇게 하여라.”

정려는 깜짝 놀란 얼굴로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공주 전하…… 우리 폐하를 너무 아끼시잖아? 나까지 설레게.’

정려는 입이 귀에 걸린 채, 활짝 웃고 있는 능묵에게 시선을 돌렸다.

‘폐하는 여인에게 사랑받는 기분이 아주 좋으신가 봐. 저런 표정까지 짓고.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폐하가 여인에게 얹혀사는 사람인 줄 알겠어. 왜 이렇게 체면과 위엄을 신경 쓰지 않는 걸까?’

정려는 한숨을 내쉬었다.

“애비.”

능묵은 손을 뻗어 야홍릉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곧 점심인데 오늘 또 나갈 건가요?”

‘어젯밤에 힘을 과하게 썼으니 오늘은 저택에서 쉬고 싶은데.’

야홍릉도 그의 이런 속마음을 알아챈 것인지 담담하게 말했다.

“나가지 않는다.”

능묵이 활짝 웃었다.

정려는 둘의 이런 모습을 더는 볼 수 없었다. 용수는 남성국에서 모두가 우러러보는 고귀한 황제였지만 야홍릉의 앞에만 서면 순한 양으로 변했다.

“전하와 공자께 올릴 음식을 준비하러 갈게요. 두 분 먼저 방으로 들어가 쉬고 계세요. 바로 음식을 올릴게요.”

정려는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늦은 아침 식사를 준비하러 갔다.

능묵은 시녀의 마음에 신경 쓸 생각이 없었다.

어젯밤 거사를 치른 그는 오늘 기분이 너무 좋아 야홍릉을 옥패처럼 몸에 지니고 싶었다.

“애비.”

야홍릉은 그를 힐끗 보더니 침전 안으로 걸어갔다.

“소원을 이루었으니 호칭을 바꾼다 이거냐?”

능묵은 망설이지 않고 바로 호칭을 바꾸었다.

그의 태도는 아주 고분고분했다.

“주인님.”

창문 앞의 비단 탑에 앉은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름을 직접 불러도 된다니까.”

“홍릉.”

능묵도 거절하지 않고 신난 얼굴로 불렀다.

“능아야, 능능아, 홍아야, 홍이…….”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상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왜 전에는 얘가 이렇게 수다스러운 줄 몰랐지?”

능묵은 입꼬리를 올리고 그녀의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

“애비, 연모합니다. 이번 생에는 당신만 사랑하겠습니다.”

야홍릉은 갑작스러운 고백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침묵을 지키다 담담하게 대답했다.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준다면 네 다리를 분질러버릴 것이다.”

능묵은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네, 만약 제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준다면 애비가 주는 벌을 달갑게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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