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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230)화 (23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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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화 존재감을 드러내도 될까요?

정란은 쓸데없는 생각을 접고 열심히 목욕 준비를 했다.

같은 시간, 홍릉원은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준수한 용모의 청년은 야홍릉의 옆에 앉아 그녀가 밥을 먹는 걸 살뜰하게 챙겼다.

입가에 지어진 환한 미소가 그의 좋은 기분을 대변하고 있었다.

야홍릉은 느긋하게 탕을 마시며 가끔씩 그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녀는 간절한 그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평온하게 물었다.

“준비되었느냐?”

능묵은 흠칫하더니 껍질을 깐 새우를 그녀의 입가로 가져갔다.

“준비할 것이 따로 있습니까?”

“난 네가 후회할까 그러지.”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나한테 몸을 바치고 나면 앞으로는 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 나한테 미안한 짓을 한다면 네 다리를 분질러버릴 것이다.”

능묵은 침묵을 지키다 자신의 허리를 더듬어 보았다.

“뭘 하는 것이냐?”

“계편을 찾았습니다.”

능묵은 노루고기 한 점을 그녀에게 집어주었다.

“오늘 밤, 저를 마음대로 하십시오. 주인님이 짓밟고 싶으신 대로 짓밟으셔도 됩니다. 제가 주인님께 미안한 짓을 할까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건 평생 가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그는 또 한마디 덧붙였다.

“열남은 두 아내를 섬기지 않는 법입니다.”

야홍릉은 입을 실룩거렸다.

“난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는 말밖에 들어본 적이 없다만.”

“같은 의미입니다.”

“내가 네 아내냐?”

능묵은 침묵을 지키다 입을 삐죽거렸다.

“그저 그렇다는 말입니다…… 아니면 ‘열남은 두 주인을 섬기지 않는다’로 바꿀까요?”

야홍릉은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능묵은 싱긋 웃으며 그녀의 싸늘한 얼굴을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주인님, 배가 부르시다면 지금 목욕하러 갈까요?”

야홍릉은 시선을 들고 그의 기대 어린 눈빛을 바라보았다.

“넌 배가 불렀느냐?”

‘방금은 배불리 먹어야 기운이 난다면서?’

그러나 그는 그녀의 옆에서 시중을 든 게 다였다.

“네, 전 배가 고프지 않습니다. 주인님만 배부르게 드시면 됩니다.”

능묵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달콤하기만 했다.

야홍릉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능묵의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남녀가 거사를 치를 때, 누가 힘을 더 쓰지?’

깊게 생각해 볼만 한 문제였다.

식사를 마친 뒤, 둘은 차 한 잔을 마시고 욕전으로 향했다.

욕전 안은 뜨거운 물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가득했다.

정란과 첨향은 둘이 갈아입을 옷을 마련한 뒤, 욕전을 나갔다.

야홍릉은 욕지의 옆에 서 있었다. 능묵은 그녀의 뒤로 걸어가 두 팔로 그녀의 가는 허리를 와락 끌어안고 그녀의 귀에 입을 맞추었다.

“애비…….”

낮고 고혹적인 목소리가 진득하게 느껴졌다.

야홍릉은 고개를 돌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밝은 등불에 비친 남자의 얼굴은 유난히 잘생겼다. 그는 고요한 호수 같은 눈을 깜박이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곧 일어날 일에 대한 기대와 흥분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야홍릉은 미소를 짓고 돌아서서 그의 턱을 살짝 쳐들었다.

“목욕을 시켜다오. 그리고…… 너도 씻거라.”

능묵은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고 달콤하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공주 전하.”

사랑하는 여인의 옷을 벗기는 건 여러 번 해보았기에 능묵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그녀의 옷을 벗겼다.

그러나 이번은 예전과 달랐다. 오늘 밤 그는 옷을 벗기면서 야홍릉의 얼굴과, 어깨, 목덜미, 등에 입을 맞추었다.

오랫동안 무공을 익힌 탓인지 그녀는 피부가 하얗고 마른 것은 물론, 다른 여인들에게서 볼 수 없는 탄탄함도 갖추었다.

야홍릉은 욕지 아래로 걸어갔다.

두 발이 곧 따뜻한 물에 잠겼다.

능묵은 미련 가득한 눈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돌아서서 욕지에 기대어 앉은 뒤, 자신을 바라보자 그제야 옷을 벗고 걸어갔다.

훤칠하고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몸매였다.

허리가 잘록하고 엉덩이가 탄탄한 그의 몸은 군살 없이 잔근육으로 뒤덮여 있었다.

야홍릉은 기분 좋은 얼굴로 그의 몸을 바라보다 미소를 지었다.

“몸이 좋구나.”

능묵은 그녀의 칭찬을 듣자 기분이 좋아졌다.

“애비의 마음에만 들면 됩니다.”

그녀의 목 아래쪽에 시선이 닿은 능묵은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야홍릉은 그의 눈빛 변화를 못 본 척했다.

능묵이 욕지로 내려오는 것을 본 그녀는 자리를 비켜주며 말했다.

“좀 주물러다오.”

능묵은 그녀에게 걸어가 새하얀 목덜미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야홍릉은 눈을 감고 그의 다정한 손놀림을 즐겼다.

“애비.”

“왜 ‘주인님’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이냐?”

능묵은 바로 고분고분하게 대답했다.

“주인님.”

야홍릉은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능묵이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한 나라의 황제가 되어 이렇게 구는 것은 참 드문 경우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능묵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엎드려라.”

능묵은 그녀의 손길에 욕지에 엎드리고 말았다. 그녀의 가는 손가락이 그의 뒷목을 꾹꾹 누르며 진기를 주입했다.

능묵은 피곤이 풀리는 것을 느끼다가 조금 당혹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애비가 지금 날 주물러 주고 있는 건가?’

야홍릉은 다른 사람의 시중을 받기만 했지, 다른 사람의 시중을 든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애비가 언제 이런 것을 배운 거지? 이상한데.’

야홍릉이 다른 사람에게서 어깨를 주무르는 법을 배웠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길에 능묵은 온몸이 찌릿찌릿했다.

능묵은 저도 모르게 낮은 신음을 흘렸다.

야홍릉은 입가를 실룩이며 물었다.

“좋으냐?”

“네, 좋습니다. 애비에게 이처럼 신기한 손이 있다는 것을 오늘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능묵은 실눈을 뜨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아부를 떨기는.’

야홍릉은 콧방귀를 뀌었지만 그가 좋아하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주물러주었다. 능묵은 따뜻한 욕지 안에서 몸까지 주물러지자 편한 나머지 잠이 들려고 했다.

이때, 야홍릉의 손이 능묵의 척추를 살살 쓸어내렸다.

마치 무언가를 암시하는 것 같았다.

능묵은 온몸에 긴장이 들어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야홍릉의 손은 그의 등에서 원을 그리고 조금씩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의 허리에 멈춘 뒤, 슬그머니 원을 그렸다.

능묵은 그녀의 손길이 지나는 곳마다 짜릿한 전율이 흐르는 것 같았다.

능묵은 그녀의 손길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바로 그때, 야홍릉은 허리를 숙이더니 그의 목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능묵은 온몸을 굳혔다가 부르르 떨었다.

“자제력이 부족하구나.”

야홍릉의 차가운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야홍릉은 차분하고 느긋하게 말했다.

“이러면 맞아야지.”

이런 유혹을 견딜 수 있는 능묵이 아니었다. 그는 돌아서서 야홍릉의 손을 잡고 그녀를 욕지 벽에 가두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뒤, 그녀의 입술을 머금었다.

그의 호흡은 완전히 흩어진 상태였다.

욕지의 온도는 좀 높았다. 물 위에는 꽃잎이 떠 있었고 공기 중에는 향이 가득했다. 서로의 몸에서 풍기는 냄새에 둘은 이미 취해버렸다.

“애비…….”

능묵은 시선을 들고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이곳에서 해도 됩니까?”

야홍릉은 눈을 떴다.

그녀는 욕정에 사로잡혀 흐릿해진 능묵의 눈을 보며 대답했다.

“응.”

짧은 한 글자에 그의 마지막 이성의 끈이 툭 하고 끊어졌다.

그녀는 형식도, 장소도 신경 쓰지 않았다.

능묵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녀의 기분에 대해서는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허락을 받는 것과 제멋대로 하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이성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갑작스러운 고통에 야홍릉은 몸을 흠칫 떨었다.

낯선 느낌에 그녀의 몸은 뻣뻣하게 굳어졌다.

통증은 작지 않았지만 그녀가 참을 수 있는 정도였다.

능묵은 움직임을 멈추고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애비?”

“……괜찮다.”

야홍릉은 숨을 토해내더니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계속하거라.”

평소처럼 싸늘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지만 야릇한 지금의 분위기와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능묵은 옅게 미소를 지으며 ‘네’라고 대답하고는 이성의 끈을 놓았다. 그는 몸에게 지배당한 채, 야홍릉을 끌고 강렬한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긴 밤이 이어졌다.

욕지에는 물보라가 한 층, 또 한 층 일며 노곤한 분위기를 풍겼다.

처음으로 금단의 열매를 맛본 둘은 욕구를 자제할 수 없었다. 야홍릉의 몸에 무리가 갈까 걱정한 능묵이 자제를 하려고 하자 야홍릉이 나지막하게 도발했다.

“저녁에 밥을 먹지 않아서 이렇게 기운이 없는 것이냐?”

그러자 그는 걱정을 버려두고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다.

둘은 욕지에서 미끌거리는 바닥으로, 또 바닥에서 욕지로 옮겨가며 정사를 벌였다.

그는 밥을 먹지 않아도 기운이 넘친다는 것을 강철 같은 체력으로 입증했다.

자시가 지나서야 숨을 돌린 능묵은 야홍릉의 몸을 닦아준 뒤, 그녀를 안고 침전의 침대로 돌아왔다. 새하얀 피부에 남은 울긋불긋한 흔적을 보자 그는 미안한 마음이 드는 한편, 불쑥 충동이 들었다.

호국 공주는 다른 여인들과 달랐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능묵의 시선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그녀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계속할 거냐?”

그녀의 유혹을 견뎌낼 수 있는 능묵이 아니었다.

다시 뜨거운 정사가 시작되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맛을 안다고, 한 번 맛을 들이자 둘은 멈출 수 없었다.

그들은 축시(丑時, 새벽 1시~3시)가 되어서야 온몸이 땀투성이인 채로 겨우 멈출 수 있었다.

“애비.”

능묵은 고개를 돌리고 갈라진 목소리로 야홍릉을 불렀다. 땀으로 젖은 등에 머리카락이 들러붙은 그의 얼굴은 유난히 고혹적인 매력을 풍겼다.

“느낌이 어떠하십니까?”

야홍릉은 피곤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무공을 익힌 그녀의 체력은 수많은 남자보다도 훨씬 강했다.

그러나 이날 밤, 그녀는 온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 게 어떤 느낌인지 처음으로 맛보았다.

“나쁘지 않구나.”

그녀가 담담하게 말했다.

능묵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는 억지스러운 이 대답을 신경 쓰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제는 제가 저택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도 되겠지요?”

‘저택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고?’

야홍릉은 고개를 돌렸다.

“무슨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것이냐?”

“전 지금 주인님의 총애를 가장 받는 사람이 아닙니까?”

능묵은 그녀의 얼굴에 입을 맞춘 뒤,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지금부터 으스대고 잘난 척하며 경쟁자들을 제거해야죠. 안 그러면 남첩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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