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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229)화 (23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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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화 오늘은 좋은 날

비빈들은 당황스러웠다.

그녀들은 시선을 방금 대전에서 나온 야홍릉에게 돌렸다.

초숙비가 먼저 물었다.

“7공주, 폐하의 옥체는 어떻던가요? 심각한가요?”

“큰 문제가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태의가 며칠 푹 쉬면 좋아진댔어요.”

야홍릉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말을 마친 그녀는 비빈 무리를 지나 고개도 돌리지 않고 떠나갔다.

그녀는 한마디 말도 더하고 싶지 않았다.

초숙비는 그녀가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서 뭔가 떠올랐는지 옆에 있는 시녀에게 귓속말로 뭐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시녀는 고개를 끄덕인 뒤, 급히 야홍릉에게로 뛰어갔다.

“7공주 전하!”

야홍릉의 앞까지 뛰어온 시녀는 예를 올린 뒤, 공손하게 말했다.

“숙비 마마께서 공주 전하와 긴히 상의할 일이 있다고 오늘 저녁 연희궁에 다과를 드시러 오시랍니다.”

야홍릉은 미간을 찌푸린 채,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시녀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야홍릉이 떠나기를 기다렸다. 초숙비가 시킨 대로 잘 전달하기만 하면 되었다.

시녀는 몸을 돌리는 순간, 야홍릉의 뒤에 조용히 서 있는 준수한 청년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멀어져가는 청년을 바라보았다.

“숙비는 7공주에게 잘 보이고 싶나 봐? 하지만 7공주가 받아줄까?”

사현비가 웃으며 말했다.

초숙비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대꾸했다.

“받아줄지 말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제가 여식을 아끼는데 뭐가 잘못됐나요?”

‘여식을 아껴?’

사현비는 웃음을 터뜨렸다.

“숙비 동생은 못 하는 말이 없네.”

초숙비는 그녀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시녀를 데리고 돌아서서 떠났다.

그러자 그녀와 사이가 좋은 몇몇 비빈들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황제를 볼 수 없는데 여기에 있어 뭐 하겠는가?

울면서 불쌍한 척해도 알아줄 사람도 없었다.

다들 어린 소녀가 아니었기에 바로 상황 파악을 했다.

사현비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던 그는 이를 악물었다.

아들 야정연이 했던 말을 떠올린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호랑이와 편을 먹으려고? 호랑이가 정말 네 편이라도 들 것 같아? 나중에 호랑이에게 남김없이 잡아먹힐 줄도 모르고. 멍청이.”

실컷 욕을 했지만 사현비는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다.

아들의 지금 상황을 떠올리자 그녀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고개를 돌려 굳게 닫힌 대전 문을 본 그녀는 더욱 우울해졌다.

황제가 지금 병으로 쓰러진 것은 그녀와 야정연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니었다.

* * *

사부의 일이 점점 손에 익자 야홍릉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젊고 능력 있는 사부 참정 두 명을 기주로 파견해 추위 성적 조작에 대해 알아보게 했다.

사부 참정은 정육품 관직이었다. 두 관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저희가 관직이 낮아서 수사할 때 문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두 명을 더 붙여 주겠다. 수사를 방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죄다 역모죄로 다스리거라.”

말을 마친 야홍릉은 밖을 보며 불렀다.

“영일, 영이.”

검은색 옷을 입은 두 무인이 들어와서 무릎을 꿇었다.

야홍릉은 그들에게 영패를 던져주고 차분하게 말했다.

“이 두 참정은 기주로 가서 추위의 조작 사건을 조사한다. 너희 둘은 이들을 보호하고 업무에 협조하여라.”

둘은 고개를 숙였다.

“네, 알겠습니다.”

“추위 성적 조작에 대해 상세히 알아야겠다. 누가 연루되든 모조리 보고하여라.”

두 참정은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긴장한 동시에 열정이 샘솟았다.

지방으로 가서 수사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니었다.

황제의 신임을 받는 신하들에게만 기회가 주어졌다. 일을 잘 해결하면 진급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잘 해결하지 못한다면……

두 참정은 공주가 그들에게 붙여 준 사람을 보자 조금 안심이 되었다.

‘이 둘이 있으면 위험한 일은 없겠군. 아무리 기주 관리가 대단하다고 해도…… 어? 잠깐. 기주?’

두 참정은 거의 동시에 무언가를 떠올리고 서로 눈치를 살피다 야홍릉에게 시선을 돌렸다.

“공주 전하.”

야홍릉은 그들을 바라보았다.

“기주의 포정사는 정왕 전하의 장인어른 되십니다.”

그들은 관직이 작아 각 지방의 관리들을 자세히 꿰뚫고 있지 못했다.

하지만 정왕의 장인에 대해서는 모를 수가 없었다.

야홍릉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

‘알고 계신다고?’

두 참정은 안색이 변했다.

“왜? 겁이 나느냐?

야홍릉이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둘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너희에게 특권을 주며 사건을 조사하라고 했으니 당연히 너희의 안전도 책임질 것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사실대로만 보고하면 된다. 너희들은 무사할 테니 다른 것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이 말을 들은 둘은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중요한 일을 맡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야홍릉은 사부를 떠나 호부로 갔다.

야홍릉은 이날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아침에 능묵을 데리고 공주부에서 나온 뒤로 궁에 들어가다 선왕과 마주치고.

건양궁으로 들어가고.

떠날 때 건양궁 밖에서 후궁 비빈들과 마주치고.

또 사부에 가서 일을 본 뒤, 호부로 가서 둘러보고.

점심때 궁에서 나가 근처 주루에서 식사를 하고.

이날 수많은 사람이 야홍릉의 뒤를 따르고 있는 젊고 잘생긴 시위를 보았다.

능묵은 그림 속 인물처럼 지나치게 잘생겨서 수많은 사람의 시선을 받았다.

일부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보았고 일부 사람들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다들 속으로 그의 신분에 대해 짐작했다.

‘공주 전하가 새로운 남첩을 들인 게 아닐까?’

하루라는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지만 소문이 퍼지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야홍릉과 능묵은 이것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날이 저물어서야 공주부로 돌아왔다. 그들은 마차가 공주부 밖에서 멈추자 능묵이 먼저 마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돌아서서 문발을 젖히고는 야홍릉에게 손을 내밀었다.

야홍릉은 그를 힐끗 보더니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렸다.

발이 땅에 닿자마자 능묵은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소곤거렸다.

“오늘이 좋은 날입니까?”

야홍릉은 담담하게 되물었다.

“네 생각은?”

“저는 오늘이 좋은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궁 안팎을 모두 다녔으니 사람들이 제 신분에 대해 궁금하겠지요. 이미 다들 제가 남첩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능묵은 옅게 웃으며 눈을 반짝였다.

야홍릉은 침묵을 지키다 그의 귀티 나는 얼굴을 가볍게 두드렸다.

“깨끗이 씻고 거사를 치를 준비를 하거라.”

말을 마친 그녀는 저택으로 들어갔다.

능묵은 한참 뒤에야 그녀의 말을 이해하고 기뻐 어쩔 줄 몰랐다.

그러나 그녀의 손길이 남아있는 얼굴을 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나 지금 희롱당한 건가?’

‘평소에 엄숙하기만 한 호국 공주는 정인을 희롱할 때도 이렇다니…….’

능묵은 야홍릉을 따라 저택으로 들어가면서 한참이나 머리를 굴렸지만 야홍릉의 방금 행동을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정려는 이번에도 매현근에게 불려가더니 꽃구경을 하러 갔다.

홍릉원에 돌아오니 정란과 첨향이 저녁 식사를 준비하러 가고 있었는데, 능묵은 야홍릉 몰래 그들에게 뭐라고 지시를 내렸다.

곧 풍성한 식탁이 차려졌다.

야홍릉은 식탁 앞에 앉아 음식을 바라보았다.

폭초요화(爆炒腰花), 노루고기찜, 홍소사자두, 팔보야압(八寶野鴨), 비파대하(琵琶大蝦), 전복탕, 궁보계정(宮保鷄丁), 표고버섯볶음, 초류배추, 양고기 화과탕(羊肉火鍋湯)……

수많은 음식이 차려졌다.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야홍릉이 입을 열었다.

“오늘 밤 거사를 치르는 것을 축하하느라 이렇게 차린 것이냐?

공주부는 부유했지만 야홍릉은 사치를 부리는 습관이 없었다.

평소 요리가 서너 개만 오르면 만족했다.

“아니요.”

능묵은 그녀의 귓가에 다가가 새하얀 목덜미에 입을 맞춘 뒤, 말했다.

“많이 먹어야 밤에 기운이 나지 않겠습니까.”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은 식탁에 마주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정란과 첨향의 시선은 저도 모르게 능묵에게 향했다. 그의 잘생긴 외모에 놀란 것은 아니었다.

자주 보다 보니 이미 그의 얼굴에 익숙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능묵의 분위기 변화에 놀란 것이다.

어젯밤에 능묵이 나타났을 때, 외모는 육 개월 전 처음 공주부에 들어왔을 때와 똑같았으나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아예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예전의 그는 과묵하고 공손하기만 했다. 지금도 공손한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예전처럼 굽신거리지는 않았다.

지금의 온화함은 고귀하고 당당한 분위기와 함께 공존했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순순히 따르며 다정하게 굴었다. 시녀들은 그가 종종 주인님의 총애를 다투는 노리개처럼 굴어도 그를 남첩처럼 하찮은 신분으로 볼 수 없었다.

“모두 물러가거라.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목욕하러 가겠다.”

야홍릉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정란은 눈치 빠르게 바로 예를 올렸다.

“네,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뒤, 그녀는 침전의 다른 궁녀들을 모두 데리고 나갔다.

첨향은 시녀들과 함께 욕전(浴殿)으로 가서 청소를 하고 뜨거운 물을 준비했다. 신선한 매화 꽃잎을 따고 향을 피우기도 했다.

“너무 거한 거 아니야? 공주 전하께서 정말…….”

정란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말했다.

저택에 측부가 여섯 명이나 되었지만 공주는 그 누구와도 친밀한 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다. 시녀들은 그 측부들이 그저 보여주기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공주가 스스로 맞이한 한 측부도 그저 쓸만한 부하로 여길 뿐이었다.

하지만 유독 신분을 알 수 없는 능묵을 대할 때만 공주는 좀 남달랐다.

공주의 측근 시녀인 그녀는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앞으로 연모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이미 첫날밤을 남에게 준 공주 전하께서…… 후회하지 않으실까?”

정란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후회는 무슨.”

첨향이 낮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이 사람이 전하의 마음속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어? 공주 전하가 그를 두고 다른 사람을 좋아할 리 있겠어?”

정란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의 신분은…….”

‘그냥 시위잖아.’

“그의 신분이 뭔지 우리는 다 몰라. 전하만 아시지. 넌 왜 그의 진짜 신분이 일반 시위라고 장담하는 거야?”

첨향이 말했다.

‘그건 그래. 그 능묵 공자는 보기에도 일반적인 영위는 아니었어.’

정란은 침묵에 잠겼다.

‘그리고…….’

사실 공주가 정말로 영위를 좋아하더라도 시녀인 그녀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정란은 괜한 걱정을 접어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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