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진짜 목적이 무엇일까
야모침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일이 야홍릉과 연관이 있다고 치자고. 아니, 야홍릉이 지시한 일이라고 치더라도. 그건 나와 장양후가 그녀의 사람을 건드렸으니 걔가 복수를 하는 것뿐이지.”
‘복수 말고 다른 게 뭐가 있다고?’
초운하가 말했다.
“전하,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호국 공주가 제경에 돌아온 뒤, 짧은 며칠 안에 얼마나 많은 일을 했습니까? 3황자가 적국과 내통한 일은 전하와 장양후가 먼저 고발한 것이긴 하지만 호국 공주는 이 일을 공개적으로 들추어냈습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증거는 전하와 정왕이 가지고 있는 증거보다 훨씬 많았고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리고 호국 공주가 제경을 떠난 육 개월 동안, 전하와 정왕의 첩자들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호국 공주가 어디로 갔는지, 뭘 했는지 알고 계시는 게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나심과 봉양에게 일이 생기자 호국 공주가 바로 돌아왔다? 너무 빠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야모침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초운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호국 공주가 그저 한옥금과 틀어진 것 때문이라면 4황자를 사지로 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둘은 그래도 형제이지 않습니까?”
초운하의 목소리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호국 공주가 장양후와 전하 때문에 화난 거라면 매씨 가문을 건드릴 리 없습니다. 호국 공주의 성격으로는 무력으로 해결할 게 뻔하니까요.”
야모침은 미간을 찌푸린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걔가 날 죽여야 했다는 말이냐?”
초운하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아니지요. 공주가 아무렴 제경에서 오라버니를 죽이기야 하겠습니까? 그저 호국 공주의 원래 처사 방식이 그렇다는 말이었습니다. 매씨 가문과 장양후에게 일이 생기고 정왕이 범인으로 몰린 것을 보십시오. 딱딱 들어맞지 않습니까? 호국 공주의 계획은 허술해 보이나 증거가 없고 그저 단순한 복수인 것 같지 않습니다.”
그녀의 계획은 완벽했다.
우선은 야소숙을 사지로 몰고 그다음 야모침과 야정연의 세력을 약화시켰다.
야모침은 실눈을 떴다.
“진짜 목적이 야천란을 태자의 자리에 앉히는 것인가?”
초운하는 침묵을 지켰다. 그는 이럴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가능성을 입 밖에 낼 수 없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8공주가 전에 입을 함부로 놀린 대가로 황제에게 크게 혼난 적이 있었다.
지금까지 그녀는 궁 밖을 나올 수 없었다.
제왕을 화나게 하는 대가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호국 공주가 누구를 돕고 있는지 당분간은 알 수 없지만 전하도, 정왕도 아니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어떡할지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야모침은 고개를 돌리고 물결이 일렁이는 호수를 바라보며 오래도록 침묵을 지켰다.
* * *
저녁이 되자 야홍릉의 심복인 장군들은 약속한 대로 호국 공주부에 왔다. 그들은 야홍릉에게 제경을 떠난 뒤 뭘 했는지 물었다.
야홍릉은 장군들에게 그간 무엇을 하였는지 간략하게 설명했다.
모든 걸 이야기 하진 않았지만, 특히 전생에 관한 얘기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현갑군의 병부를 내가 다시 돌려받았으니 앞으로 공주부를 자유롭게 드나들어도 된다.”
나신이 말했다.
“병부는 원래 전하의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전쟁터에서 삼 년간 고생하며 변방의 상황을 안정시켰지 않습니까? 이건 모두 전하와 현갑군의 공로입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현갑군을 욕심내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야홍릉은 나심과 봉양이 음해당한 건 누군가 현갑군을 손에 넣으려고 그런 게 아니라 그녀의 기를 꺾기 위해서라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았다.
“전하, 또 떠나실 것입니까? 저와 봉양도 다시 변방으로 가야 하나요?”
나심이 야홍릉을 바라보며 물었다.
“당분간은 떠나지 않을 것이다. 너희도 변방으로 돌아갈 필요 없다. 야소숙은 곧 잡혀와 벌을 받을 것이다. 지금부터 변방의 수령은 육연지이고 다른 기예병도 도울 테니 금국을 무너뜨리는 건 시간문제구나.”
육연지가 병사들을 이끌고 전쟁터로 나갈 때, 헌원창은 기예병들과 함께 금국의 방향으로 떠났다.
“3황자는 진작 끌려왔어야 했습니다. 그 전술로 전쟁터에 있어 봤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저와 봉양은 그가 멍청한 짓을 하지 않도록 항상 주시해야 하고 또 그가 체면을 잃지 않게 말을 돌려서 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변방의 병사들은 수도 없이 많이 죽었을 것입니다.”
나심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야홍릉은 눈을 내리깔고 차를 홀짝 마셨다.
“전하.”
봉양은 시선을 들고 야홍릉을 힐끗 보더니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장양후의 죽음에…… 전하께서 연관되어 있습니까?
그 말에 다른 세 명도 모두 야홍릉에게 시선을 돌렸다.
장양후는 태후의 남첩이었다. 그들은 평소 이런 사람들을 아주 무시하였으나, 그가 태후의 총애를 듬뿍 받고 있으니 누구도 그를 어찌할 수 없었다.
그런 사람이 죽었으니 제경을 더럽히는 해충이 제거된 셈이었다.
“전하가 하신 건 아니죠?”
나신이 추측했다.
“숭준은 무공이 강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저택의 수비도 완벽한데 전하가 아무리 실력이 강하다고 해도 조용히 장양후부로 들어가 사람을 죽이는 것은 힘드셨을 텐데요.”
“장양후는 정왕이 죽인 거잖아? 모든 증거가 정왕을 가리키고 있긴 하나 난 이번 일에 다른 사정이 있는 것 같던데.”
봉우가 미간을 찌푸린 채로 말했다.
야홍릉은 찻잔을 들고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다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장양후는 내가 죽인 게 맞다.”
그 말에 넷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네 명의 시선이 야홍릉의 싸늘한 얼굴에 내려앉았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내가 다 생각이 있어서 한 일이니 괜한 생각을 하지 말거라.”
넷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천뢰에서 고생했을 테니 며칠은 푹 쉬어라. 다른 건 내버려 두고 현갑군의 훈련만 신경 쓰면 된다.”
봉양이 입을 열었다.
“전하, 혹 장양후가 저희를 음해했기에 그를 죽인 것입니까?”
야홍릉은 시선을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숭준의 목적이 너희를 해치는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전하를 겨냥한 행동이었겠지만 저희를 음해한 것도 사실입니다. 사실 성질은 다 같은 것이지요. 무장인 저희는 다른 전하를 모셨어도 권력 다툼에 엮였다면 음해 당했을 수는 있죠. 하지만 그들이 전하처럼 저희를 지켜줬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넷 중 봉양은 가장 과묵한 자였다.
그렇기에 그의 말은 다른 사람들의 말보다 더욱 설득력이 있었다. 그의 말을 들은 봉우와 나심, 나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장들은 평소 감성적인 말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부하를 대하는 야홍릉의 진심을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한없이 매정하게 보이는 호국 공주지만, 그녀는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들에겐 그녀도 항상 진심으로 대해 주었다.
권력이나 이익 때문에, 또는 자신의 무능함 때문에 부하들을 희생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다. 야홍릉은 이렇게 낯간지러운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도 속으로만 생각할 뿐,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야홍릉은 차를 마시고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내 사람이니 내가 지켜야지. 남들이 괴롭히는 걸 두고 보기만 하라고?”
넷은 그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
“당연히 그러면 안 되지요. 우리가 만만한 줄 알고 괴롭히는 것은 명을 재촉하는 거지요. 그러니 장양후가 그 꼴이 난 것 아니겠습니까?”
나신이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
야홍릉은 태후가 아끼는 노리개도 죽일 수 있는데 다른 사람을 두려워할 리 있겠는가?
다른 세 명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장양후는 죽으려고 발악을 해서 그리 당한 거잖아?’
결국 병부는 다시 그들에게 돌아왔고 호국 공주도 무사했다. 야홍릉은 남들이 괴롭히도록 내버려 두는 성격이 아니었다. 야홍릉을 건드린 결말은 죽음 밖에 없었다.
모두 그들이 자초한 것이었다.
그들은 야홍릉이 숭준을 죽일 능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그녀가 숭준을 죽이고 정왕을 범인으로 몬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야홍릉이 이 일에 연루되지 않은 것만 해도 만족스러웠다. 물론 정왕이 자신의 결백을 입증할 수 있을지는 그의 능력과 운에 달린 일이었다.
지금의 상황을 보면 이미 황제의 눈 밖에 난 황후와 야소숙과 야자릉을 제외하고 야천란과 야모침, 야정연과 야홍릉은 모두 권력 싸움에 엮인 상태였다. 서로가 모두 적대적인 관계기에 누구도 이 판에서 발을 빼기 어려웠다.
야홍릉의 뜻이 어떻든, 그들은 야홍릉의 부하기에 그녀의 지시를 따라 그녀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도록 최대한 도울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앞길에 놓인 장애물을 남김없이 제거할 것이었다.
* * *
저녁시간은 아주 빠르게 흘러갔다.
육 개월 만에 다시 야홍릉을 본 네 장군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야홍릉에게도 미세한 변화가 생겼다. 그녀는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것 같았다. 그것 때문에 넷은 열정이 차오르고 피가 끓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넷은 저녁 무렵 서재로 들어가서 밤이 되어서야 공주부를 떠났다.
야홍릉은 홀로 침전으로 돌아갔다. 정려는 시녀들과 함께 그녀의 시중을 들었다. 목욕을 마친 뒤에야 야홍릉은 조용히 침대에 기대 책을 읽었다.
이때, 정려가 서신을 들고 들어왔다.
“전하, 폐하가 보내온 서신입니다.”
‘음?’
야홍릉은 고개를 돌리고 놀란 표정으로 정려가 들고 있는 서신을 바라보았다.
“언제 보내온 것이냐?”
“저녁입니다. 전하께서 장군들과 서재에 계실 때, 봉 공자가 이 서신을 가져와 전하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야홍릉은 서신을 받은 뒤, 펼치며 물었다.
“봉 공자는 어디에 있느냐?”
“봉 공자는 서신을 제게 준 뒤, 폐하와 의논할 일이 있다고 궁에 들어갔습니다. 나 장군과 봉 장군이 떠나기 전에 돌아왔으나 시간이 너무 늦은 것을 보고 전하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야홍릉은 고개를 끄덕이고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편지에는 특별한 내용이 없었다.
등극 대전 기간에 벌어진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동제의 황제는 남성국의 새 황제와 아주 즐겁게 얘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또한 묵백 대제사와도 사이가 좋아 보이자 남제의 태자는 불안해서 어쩔 줄 모른다고 했다. 서릉과 금국은 최대한 남성국 새 황제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쓴다는 말도 적혀 있었다. 하지만 갓 등극한 용수는 너무 바빠 두 나라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