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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211)화 (21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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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화 남매끼리 고맙긴

‘나와 야모침의 손길을 거부하더니 결국 스스로 황위에 오르려고 그런 거였구나.’

“참 완벽한 계획이야. 여인이 황제가 된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데 정말 네가 그 첫 번째 여황제가 될 거라고 생각한 게냐?”

야홍릉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건 오라버니가 걱정할 일이 아니지요.”

“오늘 네가 한 얘기를 내가 부황께 일러바칠까 두렵지 않아?”

“그건 오라버니 마음대로 하세요. 제가 신경 쓸 일이 아니죠.”

야홍릉이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야정연은 찻잔을 움켜쥔 채,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다 입을 열었다.

“역시 너답군. 아주 놀라워.”

이 말을 끝으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얘기를 해줘서 고맙구나.”

야홍릉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

“남매끼리 고맙긴요.”

봉서오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남매끼리 고맙긴요? 참 대단한 남매구나!’

야정연은 안색이 붉으락푸르락 변했지만 끝내 화를 내지 않고 공주부를 떠났다.

봉서오는 그의 뒷모습을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직 상황이 끝난 것도 아닌데 이렇게 다 얘기하면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뭐가 걱정인데요? 전 참고 기다릴 수 있으나 그는 그럴 사람이 아니에요.”

야홍릉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전까지는 야홍릉을 의심만 하다가 오늘 직접 그녀에게서 얘기를 들은 야정연은 이제야 명확하게 알았을 것이다. 이 모든 게 다 야홍릉이 꾸민 일이라는 것을. 앞으로 야정연은 야홍릉에 대한 경계와 적대심을 숨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도 달라질 게 없었다.

야홍릉은 병권을 움켜쥐고 있었고 야정연은 지금 직무가 파면된 상황이었다. 그는 이제부터 잠도 이루지 못하고 불안에 떨 것이다. 그리고 얼른 뭔가를 해서 상황을 돌리기에 급할 게 뻔했다.

그러나 조급할수록 문제가 생길 뿐이었다.

“공주 전하, 야정연이 당신 부황에게 오늘 들은 얘기를 다 하면 어떡할 것입니까?”

“상관없어요.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죠.”

야홍릉은 고개를 돌려 봉서오를 보더니 차분하게 설명해 주었다.

“부황께서 믿든 말든 중요하지 않아요. 믿으면 또 어떻겠어요? 저에게는 병권이 있고 헌원용수와 통혼할 기회도 있으며 변방에는 육연지, 신은전에는 대교습의 조력이 있으니…… 야모침과 야정연은 제 상대가 아니죠.”

봉서오가 말했다.

“목국 황제가 마음에 둔 태자 후보는 누구입니까?”

“야천란입니다. 하지만 남성국에 갔으니 당분간 돌아오지 못할 거예요.”

봉서오는 깜짝 놀랐다.

목국의 조정은 이렇게 이미 야홍릉의 통제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야홍릉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멋대로 일을 저지른 것이었다.

봉서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참 대단하십니다.”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과찬이세요.”

* * *

“형부와 대리시더러 장양후의 죽음을 조사하라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신은전이 형부나 대리시보다 더 나을 것 같구나. 안 그러냐?”

황제는 의자에 앉은 채, 어두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검은색 옷을 입은 중년 남자는 황제와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는데 마른 몸에서 날카로운 기색이 흘렀다.

평범한 그의 얼굴에는 흔한 감정의 변화가 전혀 없었다.

황제의 말을 들은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현명하신 선택입니다.”

‘현명하다고?’

조정이 혼란스럽고 제경에 자꾸만 시끄러운 일이 일어나 황제는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현명하다니?

“나도 예전에는 내가 현명한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들들이 하나같이 멍청한데 내가 현명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중년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황제는 화가 나서 혼잣말을 하는 것이기에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공주부의 중독 사건과 장양후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것이야말로 중요한 질문이었다.

“장양후도 공주부 측부의 생일 연회에 참석했습니다. 공주 전하가 독을 탄 범인을 밝히겠다고 손님들더러 저택에서 잠깐 기다리라고 하자 장양후가 집으로 돌아가겠다면서 화를 냈고 하마터면 싸움으로 이어질 뻔했습니다.”

황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자네 말은 독을 탄 사람이 장양후였기에 지레 찔려서 그랬다는 건가?”

“전 그저 사실만 말씀드릴 뿐입니다.”

황제가 냉소를 하며 말했다.

“신은전 영위는 공주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면서 왜 누가 독을 탄 건지 모른다는 말이냐?”

“폐하께 아룁니다. 폐하께서 호국 공주부를 지켜볼 필요가 없다고 하셔서 신은전에서는 공주부에 영위를 심어두지 않았습니다. 어제 호국 공주부에서 생긴 일은 제가 손을 써 공주부의 시녀에게서 알아낸 것입니다.”

장양후와 호국 공주가 다투는 것을 수많은 사람이 보았기에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그리고 이건 중요한 일도 아니었다.

황제는 그의 말을 듣자 당황했다.

순간 자신이 그런 지시를 내린 적이 있다는 것이 떠오른 것이다.

“그러면 홍릉이 옆에 있던 측근 시위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신은전에 특별한 소식이 들어온 적은 없느냐?”

황제가 물었다.

대교습은 고개를 숙여 표정을 가린 뒤, 말했다.

“있기는 하나 죄다 공주 전하의 사적인 일입니다.”

“사적인 일?”

대교습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주 전하께서는 잠을 잘 못 주무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몇몇 측부들이 공주 전하의 총애를 심하게 다툰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감진 공자의 생일 연회에 다른 측부들은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는데 그중 세 명은 밤에 공주 전하와 함께 잠자리에 들기 위해 비무를 겨루러 갔답니다.”

그 말을 들은 황제는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홍릉이는 뭐라고 하더냐?”

“공주 전하는 죽은 자는 개 먹이로 버리고 산 자는 공주의 침실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황제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홍릉이다운 말이군.’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되었느냐?”

대교습은 고개를 들고 황제를 힐끗 보았다. 평온한 시선이었지만 황제는 순식간에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그는 입가를 실룩거렸다.

‘어제 그렇게 큰일이 일어났는데 결과는 무슨. 내가 정신이 어떻게 되었나 보군.’

그는 찻잔을 들고 마신 뒤, 평소의 위엄 어린 모습으로 돌아왔다.

“장양후의 죽음을 어찌 보느냐?”

“장양후는 무공이 뛰어납니다. 누군가 그를 죽이러 갔다면 그는 절대 모를 리 없습니다. 또 가만히 죽기를 기다릴 리도 없기에 현장에 격투 흔적이 있는 게 당연합니다.”

황제는 그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자네 뜻은 면식범일 가능성이 크다?”

대교습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서로 잘 알고 믿는 사이여야 무방비 상태에 놓일 것이고 그 틈에 공격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

황제가 말했다.

“정왕은 어젯밤에 뭘 했더냐? 장양후부에 간 적이 있더냐?”

“잘 모르겠습니다. 어젯밤 정왕은 심복 몇 명을 불러 서재에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자시가 되어서야 심복들은 왕부를 떠났고요.”

‘얘기를 나눴다고?’

황제는 코웃음을 쳤다.

“어떻게 하면 빨리 황위에 오를 수 있을지 의논한 거겠지.’

대교습은 침묵을 지키다 천천히 덧붙였다.

“그러나 정왕의 서재에는 장양후부에 이를 수 있는 비밀 통로가 있었습니다.”

그 말에 황제는 깜짝 놀라며 눈을 부릅떴다.

“뭐라고?”

“정왕의 서재에는 장양후부에 이를 수 있는 비밀 통로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대교습은 했던 말을 반복했다.

“정왕이 얘기를 나눈다고 한 뒤, 몰래 장양후부로 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걸 본 영위도 없고요.”

신은전의 영위는 인원수가 많지 않았다. 그들은 각 왕부와 조정 대신들이 과한 행동을 하지 않는지 지켜보기는 하나 일거수일투족을 상세하게 보고하지는 않았다.

인원수도 부족하고 그럴 시간도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조사는 형부와 대리시가 할 일이었다.

영위는 특별한 상황이거나 형부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에서만 나섰다.

황제는 침울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증거로 옥패가 나온 것을 보았지만 야정연이 장양후를 죽였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야정연이 사람을 죽이고 증거까지 남길 정도로 멍청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밤까지 얘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서재에 비밀 통로가 있다.

밤까지 얘기를 나누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지. 황위를 노리고 있는 자가 심복을 부르는 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야. 그런데 어젯밤에 서재에서 얘기를 나누었다는 건 그저 눈속임이라면? 넷째가 얘기를 나눈다는 핑계로 심복들을 서재로 불러들인 뒤, 몰래 비밀 통로로 장양후부에 가서 숭준과 밀담을 나누었고, 또 그를 죽인 거라면?’

‘숭준은 위기의 순간에 그의 옥패를 잡아당겼고 이를 모르는 야정연은 급히 떠난 거야. 그래서 옥패를 잃어버린 것도 몰랐던 거지. 옥패가 사라졌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숭준의 죽음이 대리시까지 전해진 상황이라 다시 가지러 갈 수도 없었을 거야.’

황제는 머릿속으로 가장 가능성이 큰 사건의 전말을 생각했다.

그는 이제는 화를 낼 기운조차 없었다. 연속 며칠 동안이나 화를 냈더니 이제는 화도 나지 않았다. 실망감만이 그의 텅 빈 가슴을 채울 뿐이었다.

황제가 물었다.

“정왕의 서재에 비밀 통로가 있다는 사실을 왜 말한 적이 없느냐?”

대교습은 고개를 숙였다.

“폐하께서 묻지 않으셔서…….”

황제는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손을 저었다.

“알겠으니 이만 물러나거라.”

대교습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황제는 홀로 어서방에서 한참 앉아 있었다. 산처럼 쌓인 상주서를 본 그는 갑자기 늙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요 며칠간 몸이 생각처럼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 * *

야정연은 저택으로 돌아온 뒤, 서재로 들어가 한참이나 서 있었다. 결국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한 그는 책상을 뒤엎었다. 그러자 책상 위의 찻잔과 찻주전자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그래도 부족한 것 같아 그는 벽에 걸린 장검을 뽑아 들고 서재를 나섰다. 경공을 사용해 뒷마당에 도착한 그는 몸을 날려서 정원에 화풀이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원은 엉망이 되었다.

정왕비가 정성껏 가꾼 정원이 금세 난장판판이 되었다.

곳곳에 나뭇잎과 꽃잎이 흩날리고 나뭇가지가 떨어져 있었다.

계완월은 시녀에게서 소식을 듣고서 급히 뛰어왔다. 엉망이 된 정원을 보자 그녀는 야정연의 기분을 눈치챘다.

“대인, 왜 그러세요?”

야정연은 검을 든 채로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평소 침착하던 얼굴에는 분노와 침울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계완월이 세 번째로 그를 부른 뒤에야 그는 고개를 돌려 아내를 바라보았다. 검은 눈동자는 먹구름이 잔뜩 낀 듯했다.

계완월은 불안한 마음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말했다.

“대인, 무슨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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