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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207)화 (208/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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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화 사라진 옥패

태후의 총애를 등에 업고 몇 년간 장양후로 부귀영화를 누린 숭준은 오늘 밤 자시 이후로 깊은 잠에 빠지게 되었다.

다시는 깨어날 수 없는 잠이었다.

같은 날, 4황자 야정연도 잠이 오지 않았다. 저녁 식사를 마친 그는 심복과 자시가 될 때까지 서재에서 정무를 의논했다. 심복 대신들이 물러간 뒤, 그는 홀로 서재에 반 시진 동안 앉아 있었다. 이틀 동안 그의 마음을 괴롭히는 불안감의 이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야홍릉이 제경에 돌아온 뒤의 반응을 떠올렸다. 야홍릉은 한결같이 싸늘했지만 네 장군이 천뢰에 갇힌 일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덤덤했다. 너무 덤덤해서 이상할 정도였다.

‘혹 뭔가를 꾸미고 있어서 화를 내지 않은 게 아닐까?’

야정연은 불안한 마음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태자 자리를 다투는 도중에도 그는 야천란이나 야모침보다 야홍릉이 더욱 신경 쓰였다.

야홍릉은 그의 동생이었지만 그는 새삼 십칠 년 동안 봐온 동생에 대해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나긴 밤 동안 그의 옆을 지키는 것은 창문으로 불어 들어오는 찬바람과 마음속에서 자리 잡은 채, 흩어질 줄 모르는 불길한 느낌뿐이었다.

자시가 반 넘게 지나자 모피 외투를 걸친 여인이 서재의 문을 두드렸다.

그녀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야정연에 대한 걱정을 드러냈다.

“대인, 밤이 깊었는데 얼른 쉬세요.”

야정연은 고개를 들고 아리따운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평소에 딱딱하기만 한 그의 말투는 지금 온화하게 누그러졌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난 뒤, 책상을 지나 아내의 어깨를 감쌌다.

그러나 아내의 시선이 자신의 허리춤에 닿는 것을 보고 그는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왜 그러오?”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숙인 야정연은 표정이 변했다.

계완월이 물었다.

“대인, 목욕을 한 것도 아닌데 허리춤의 옥패가 왜 안 보이죠? 풀어 두셨나요?”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었지만 계완월은 그렇게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야정연은 칠칠 맞게 물건을 흘리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옥패가 아무 이유 없이 사라질 리도 없었다.

그러나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해 보였다.

야정연의 안색이 변한 것을 보고 계완월도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챈 것이다.

“대인?”

야정연은 입술을 꾹 다물고 책상에 되돌아가 물건을 뒤지기 시작했다.

바닥, 의자, 책상 위, 병풍 뒤, 탑 앞……

서재 전체를 샅샅이 뒤졌지만 옥패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야정연은 왜 불안한 기분이 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음울한 얼굴로 주먹을 움켜쥔 채, 옥패를 언제 잃어버린 것인지 떠올리려고 애를 썼다.

“대인?”

계완월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왜 그러시나요?”

야정연은 그녀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머릿속으로 궁에서 나온 뒤, 갔던 곳과 만났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방금, 서재에서 얘기를 나눴던 심복 몇 명을 제외하고 가까이한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그는 다른 곳을 들르지도 않고 궁에서 나오자마자 왕부로 돌아왔었다.

‘그렇다면 옥패를 언제 어디에서 잃어버린 거지? 궁에서? 허리춤에 묶은 옥패가 왜 사라진 거지?’

야정연은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계완월은 그의 표정을 보고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이 갔다.

그녀는 가볍게 걸어와 낮은 목소리로 야정연을 다독였다.

“단순히 잃어버린 것일 수도 있으니 먼저 쉬세요. 내일 아침 호원들더러 찾으라고 하면 되잖아요? 곧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내일 아침?’

야정연은 고개를 저었다.

“안돼.”

옥패를 찾지 못한 이상 그는 무사하게 잠들 수 없을 것이다.

“여봐라.”

검은 그림자가 서재에 나타났다. 그는 무릎을 꿇고 입을 열었다.

“전하.”

“내 옥패를 본 적이 없느냐?”

“없습니다.”

“당장 찾아보아라. 저택에서 찾다가 못 찾으면 오후에 내가 만났던 사람들을 일일이 조사하거라. 절대 티 나지 않게 조용히 움직여야 한다.”

“네.”

야정연은 눈을 감았다. 순간, 아주 피곤한 느낌이 들었다.

“대인.”

계완월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도 상황의 심각성을 눈치채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혹시 궁에서 떨어뜨린 것 아닐까요?”

야정연은 고개를 저었다.

“저녁에 궁에서 나왔으니, 누군가 옥패를 주웠다면 진작 가져왔어야지.”

계완월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대인의 옥패는 주워도 달고 다닐 수가 없잖아요.”

옥패는 비싼 물건이었지만 정왕의 신분이 표기되어 있는데 누가 감히 황자의 옥패를 훔치겠는가?

‘달고 다닌다고?’

야정연은 표정이 구겨졌다.

“내 옥패를 주워서 달고 다닐 정도로 멍청한 사람이 어디 있겠소?”

다만 그는 누군가 그의 옥패로 다른 짓을 할까 두려웠다.

계완월도 이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옥패는 주인의 신물이었다.

황자의 옥패는 더욱 진귀한 존재였다. 황족 표시가 표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름이 새겨져 있어 분별하기 쉬웠다. 일반인들은 옥패를 주워도 절대 달고 다니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정왕의 옥패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계완월의 마음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옥패를 찾지 못한 야정연은 잠들지 못했고 계완월도 그의 옆에서 함께 소식을 기다렸다.

긴 밤은 만물이 잠들어야 하는 시간이지만 정왕부는 옥패 때문에 발칵 뒤집힌 상태였다.

“전하!”

서재 밖에서 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왕부의 시위 수령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큰일 났습니다! 장양후가 그만…….”

‘뭐?’

야정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무슨 일이냐?”

“방금 장양후부의 사람이 대리시로 찾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장양후가 살해되었다고 합니다.”

시위는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밤에 누군가 장양후부로 잠입하여 암살한 것으로 보입니다.”

야정연은 깜짝 놀라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불길한 예감이 더욱 강해졌다.

계완월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장양후는 태후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었다.

‘태후가 아시게 된다면…….’

“지금 밖의 상황은 어떠하냐?”

시위 수령이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그들은 이미 궁으로 들어갔습니다. 장양후가 살해당한 것은 큰일이기에 폐하께 보고를 올릴 예정입니다.”

야정연은 어슴푸레 날이 밝기 시작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날이 완전히 밝은 것은 아니나 조례 시간이 곧 다가오고 있었다. 그건 궁 문이 이미 열렸다는 말과 같았다.

“옥패는 아직이냐?”

시위 수령은 고개를 더욱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왕부를 다 뒤졌지만…….”

야정연은 음울한 표정을 지었다.

사라진 옥패 때문에 그는 서재에서 하룻밤 꼬박 샜다.

지금은 단장하고 궁에 들어가야 하는 시간이었다.

야정연은 손을 들고 미간을 문지르며 밖으로 나갔다.

계완월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숭준은 태후의 남첩이라 사람들이 무시했지만 장양후로 책봉된 다음부터 큰 권력을 가지게 된 것도 사실이었다. 대리시에서 조사를 한 뒤, 결정을 내릴 수 없어 황제에게 알렸다. 이렇게 되면 형부가 직접적으로 사건을 맡을 수 있었다.

이번 일로 조정과 세간은 발칵 뒤집혔다.

조정 대신들은 처음에는 깜짝 놀랐으나 곧 저마다 다른 생각을 했다. 어떤 이들은 고소해했고 어떤 이들은 무관심했으며 어떤 이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장양후는 내정 제일의 고수이고 장양후부에는 수비가 완벽한데 누가 이토록 쉽게 장양후부로 들어가 그를 죽였다는 말인가?

사람들의 반응이 어떻든 이번 일은 절대 간과할 수 없는 큰일이었다.

대리시경이 현장을 조사할 때, 유력한 증거를 손에 넣었던 것이다.

“폐하, 이건 죽은 장양후가 손에 쥐고 있던 옥패입니다.”

고항이 두 손으로 뭔가를 바쳤다.

“장양후를 죽인 흉기는 채찍이었습니다. 장양후는 채찍에 목이 졸려 죽은 것입니다.”

‘옥패’라는 말에 야정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고항의 손에 든 것을 보더니 갈라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건 제 옥패입니다.”

말을 마친 그는 고항의 손에서 옥패를 빼앗으려고 했다.

그런데 고항이 손을 치우며 말했다.

“전하, 이건 사건의 증거입니다.”

‘증거라고?’

야정연은 이를 악물었다.

“어젯밤에 옥패를 잃어버리는 걸 발견하고 한참 찾았는데…….”

“가져오너라.”

황제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화를 애써 참는 표정으로 야정연을 노려보았다.

야정연은 표정이 굳은 채, 부황을 돌아보았다.

손평은 계단에서 내려와 고항의 손에서 옥패를 받아 들고 다시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옥패를 황제에게 바쳤다.

황제는 옥패를 보더니 고항에게 시선을 돌렸다.

“다른 증거는 없더냐?”

“이건 장양후를 죽인 채찍입니다.”

고항은 옆에 두었던 채찍을 허리 굽혀 줍고는 두 손으로 내밀었다.

황제는 그의 손에 있는 채찍을 바라보았다. 검고 긴 채찍은 반들반들했지만 특별할 점이 보이지 않았다. 제경 귀족 대다수가 하인을 벌하거나 겁줄 때 이런 채찍을 사용했기에 집마다 이런 채찍은 흔하게 지니고 있었다.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황제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채찍에 표기된 게 없더냐?”

“폐하께 아룁니다. 이 채찍은 장양후가 자주 사용하던 물품입니다.”

황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장양후의 것이라고?”

고항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야정연의 표정이 볼품없이 구겨졌다. 그는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았다.

‘이건 음모야. 날 겨냥한 음모…… 어설프기 짝이 없다만…….’

“넷째야.”

황제는 옥패를 들고서 시선을 돌렸다.

“이건 네 것이냐?”

옥패에는 정왕의 ‘정’자가 새겨져 있어 황제는 이 옥패가 야정연의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저 앞으로 할 질문에 밑밥을 까는 것이었다.

야정연은 앞으로 나서더니 무릎을 꿇었다.

“부황께 아룁니다. 제 것이 맞습니다.”

“네 옥패가 왜 장양후부에 있느냐?”

“모릅니다.”

야정연은 고개를 숙였다.

“어젯밤에 옥패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저택의 시위를 시켜 찾게 했으나 찾지 못했습니다.”

황제가 덤덤하게 말했다.

“어제 낮에 궁에서 얘기를 나눌 때까지만 해도 난 네 옥패가 너에게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장양후부가 밤에 살해당했고 네 옥패가 그의 손에서 발견되었구나.”

황제의 말에 담긴 뜻을 알아들은 그는 심장이 철렁했다.

그러나 그는 눈을 감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부황께 아룁니다. 저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줄곧 옥패를 몸에 지니고 있으며 일반인이 제 몸에 손댈 일도 없습니다. 저는 무공 실력도 뛰어나 다른 사람이 제 옥패를 뜯어 갔다면 모를 리도 없고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넌 옥패를 잃어버리고도 모르지 않느냐?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할지 잘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거다.”

“부황께 아룁니다.”

이때, 야모침이 나섰다.

“넷째는 장양후와 사이가 아주 좋다고 들었는데 넷째가 장양후를 죽일 이유는 없을 듯합니다.”

‘사이가 아주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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