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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202)화 (20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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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화 누구 사람이냐?

어산서원의 산장은 학생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어야 했다.

품행이 단정하지 못하다면 어찌 어산서원의 산장이 될 수 있겠는가?

만약 그가 관직에서 물러난다면 선왕에게 큰 타격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정왕 쪽 사람이 그 자리를 이어받는다면……

매현령은 믿을 수도 없었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감진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사실도 아닌 것을 함부로 말한 거라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소관 따위가 감히 조정 대신을 능멸하다니!”

말을 마친 그는 화를 내며 자리를 뜨려고 했다.

“현령!”

초운하가 그를 쫓아가려고 했으나 감진이 그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초 공자, 가지 마십시오.”

초운하는 눈빛이 차가워졌다.

“감진 공자, 도대체 원하는 게 뭡니까?”

“원하는 건 없습니다.”

감진은 가까이 다가오더니 목소리를 깔고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매 대인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으면 더 이상 어산서원의 산장이 될 자격이 없지요. 그렇다면 더 적합한 사람이 그 자리를 대체해야지 않겠습니까?”

초운하의 안색이 확 변했다.

“오늘은 제 생일입니다. 제가 공주 전하께 한사코 졸라서 이번 생일 연회를 마련한 것입니다.”

옅게 웃는 감진의 얼굴은 매혹적이었으나 초운하는 그가 독사처럼 섬뜩하게 느껴졌다.

“당신 도대체 누구의 사람이요?”

감진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초 공자의 생각은요?”

국화원에는 정적이 한참이나 지속되었다.

초운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감진을 노려보며 그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려고 했다.

하지만 감진은 고개를 돌리더니 우아하게 술잔을 들며 말했다.

“이 일로 여러분들이 기분이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술을 권할 테니 한 잔 마십시다. 모두 제 생일을 축하해 주러 오셔서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표정이 구겨졌지만 민망하고 당황한 얼굴로 술잔을 들었다.

그리고 서로서로 눈치를 살폈다.

감진이 말했다.

“여러분, 마음껏 먹고 마시며 즐기십시오. 공주 전하는 지금 좀 바쁘셔서, 곧 시간이 나면 오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또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공주부의 초대장을 받았을 때만 해도 그들은 남첩이 아닌, 호국 공주 때문에 가는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결국은 이런 상황이 된 것이다.

초운하는 말없이 감진을 노려보았다.

그의 표정이 점점 불안으로 바뀌었다.

감진은 오늘 작정한 게 분명했다. 이번 생일 연회도 음모일 것이다.

만약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초운하는 매씨 가문에 어떤 풍파가 닥쳐올지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매현령의 충동적인 성격으로는…….’

숨을 깊게 들이쉰 초운하는 일어나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정원 밖에는 호원이 가득했다. 정원 안에서는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으나 정원을 떠나려고 하자 호원이 그의 앞을 막으며 물었다.

“공자, 지시하실 일이라도 있습니까?”

“잠시 나가 있겠다.”

호원은 고개를 숙이고 예의 바르나 강경한 말투로 말했다.

“감진 공자께서 저희더러 손님 대접을 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공주 전하는 성격이 좋지 않으니 감진 공자는 공주 전하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 없이 손님들이 정원 안에서만 움직이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초운하는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그렇다면 날 공주 전하에게로 데려가거라.”

“공주 전하께서는 쉬고 계십니다. 누구도 방해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초운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는 불안한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

먼 곳에 서 있던 초하는 이 과정을 보고 고개를 돌려 오라버니를 바라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리고 옆에 있는 당정주와 연청의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 일을 어떻게 보세요?”

“어떻게 보기는요?”

당정주가 담담하게 말했다.

“일부러 저러는 거죠. 이제 곧 매씨 가문에 큰 화가 닥치겠네요.”

초하는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감진 공자가 누구의 사람인 것 같아요?”

기루의 소관인 감진이 아무 이유 없이 조정 대신을 도발할 리가 없었다.

또 그럴 용기도 없을 것이다. 그가 아무리 호국 공주의 측부라고 해도 그렇게 멍청한 잘못을 저지를 이유가 없지 않은가?

누군가의 지시를 받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태자 자리를 두고 싸우고 있는 이 시점에서 3황자가 사고를 쳤으니 태자가 되기에는 글렀죠. 매씨 가문은 선왕의 세력인데 매 대인이 무너진다면 이득을 보는 사람이 누구겠어요?”

초하와 연청의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들은 대충 짐작이 갔다.

지금 태자가 될 가능성이 큰 사람은 대황자와 2황자, 4황자밖에 없었다.

‘2황자를 상대할 사람은 4황자일 확률이 커. 그렇다면 감진 공자는 정왕이 공주부에 꽂은 사람인가?’

“정주, 아버님이 움직이실 때예요. 어사는 관리들을 감독해야 하는데 일이 커지기 전에 뭔가를 해야죠. 안 그러면 폐하께서는 어사대인이 일을 잘 못한다고 할 거예요.”

당정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집으로 돌아가면 아버지께 말씀드려야겠어요.”

초하는 고개를 끄덕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럼 저쪽으로 가서 둘러봐요. 공주 전하는 오늘 나타나지 않으실 것 같네요.”

생일 연회는 감진이 둘러댄 핑계에 불과했다.

당정주는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다.

“우리가 오해한 게 아닐까요? 기루 출신인 것은 가짜이고 사실은 4황자 정왕의 첩자가 아닐까요?”

“저도 그가 다른 신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초하는 한숨을 내쉬고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신분이 초씨 가문이나 당씨 가문보다 낮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가문이 깨끗하다면 저에게도 기회가 있는 거니까요.”

연청의는 미간을 찌푸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말 반한 건 아니지요?”

“어쩔 수 없어요. 인연이라는 것은 원래도 이렇게 이상한 일이니까요.”

초하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제가 오랫동안 깨끗한 몸을 유지한 건 제 운명이 될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

연청의와 당정주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국화원의 분위기는 어색했다.

꽃구경하는 사람들도 기분이 좋지 않은 듯했다.

그러나 기분이 좋은 사람들도 있었다. 고귀한 귀족 세가 출신의 적자 적녀들이 어디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겠는가?

매씨 가문에 일이 터졌으니 불안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소해하는 사람도 있었고 남몰래 기뻐하는 사람도 있었다.

국화원 남쪽의 각루에는 하얀색 장삼을 입은 봉서오가 조용히 서서 정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우리 폐하가 꽂은 사람답게 멋진 일격을 가했군.”

다들 자신의 몸가짐을 정갈히 하고 가정을 평화롭게 다스린 다음에야 나라와 천하를 다스리라고 한다.

문관은 품행을 중히 여긴다. 지식인들은 예로부터 도덕과 예법을 그 무엇보다 중히 여겼다.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은 최대한 하지 않고 겉으로는 항상 예의 바른 모습을 유지했다. 그래서 지식인들이 위선자라는 말도 나온 것이다.

매 대인이 예법을 어기고 세상 사람을 속인 것은 큰일이었다.

게다가 오늘 수많은 사람이 듣지 않았는가?

매현령이 돌아가 조금만 알아봐도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게 될 것이다.

감진이 여기서 자신 있게 말했다는 것은 이것이 사실이라는 말이었다.

봉서오는 부채로 턱을 가리며 말했다.

“어산서원의 산장은 실권을 움켜쥔 인물인데 공주 전하께서는 그를 대체할 후보를 이미 찾으셨습니까?”

야홍릉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커지면 어사가 조정에서 이 얘기를 꺼내겠지요.”

매 대인은 초 숙비의 친척이자 2황자 야모침의 배후 세력이었다. 그의 날개를 꺾는다면 그의 입장도 좀 난처해질 것이다.

“조용히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야정연과 야모침이 싸우다 다치면 공주 전하는 그때 다시 상황을 수습하면 됩니다.”

봉서오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야홍릉은 말없이 창가에 서 있었다.

그녀는 정원의 감진을 한참 바라보더니 물었다.

“감진의 출신에 대해 알고 있나요?”

봉서오는 고개를 돌리고 야홍릉을 바라보며 말했다.

“공주 전하, 모르십니까?”

야홍릉이 대답했다.

“전 그저 저자가 동제의 황제와 아는 사이라는 것밖에 모릅니다.”

“동제의 황제요? 어떻게 그럴 수가?”

봉서오는 경악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야홍릉도 그의 반응을 보고 좀 놀랐다.

‘아닌가?’

감진은 영린이 그리워하는 사람이었다.

그와 영린은 특별한 사이가 맞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전생의 일이었다.

야홍릉은 그제야 봉서오가 둘 사이에 대해 모르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봉서오는 전생의 일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린은 전생의 일을 기억하고 있기에 감진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둘이 무슨 사이인지 야홍릉도 알지 못했다. 심지어 이번 생에 영린과 감진이 만난 적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아니면…… 일부러 피한 건가?’

미간을 찌푸린 그녀는 감진의 신분에 대한 생각을 그만하기로 했다.

“감진은 어렸을 때부터 빙란각에서 자란 건가요?”

“전 모릅니다.”

봉서오는 고개를 저었다.

“폐하에게 첩자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신하인 저는 잘 모릅니다. 공주 전하도 아시다시피 폐하는 일찍 남성국을 떠나셔서 십 년 동안 돌아오지 않으셨지요. 그동안 폐하께서 뭘 하셨는지 묵백 대제사를 제외하고 아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야홍릉은 침묵했다.

“용수가 십 년이나 남성국을 떠나 있다가 돌아간 지 얼마 되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리 쉽게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까?”

“십 년 전에 육 개월 넘게 함께한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말로 명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일도 있더라고요. 폐하와 함께할 때 그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때 저와 폐하는 모두 어린아이였는데 어린아이는 쉽게 존경심을 품지 않습니까? 폐하의 무예와 학식에 저는 흠뻑 빠졌지요. 또 성격도 저와 맞았습니다. 그분은 태자이시고 저는 승상의 아들이라 평생 그분의 신하로 살아야 하는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그분께 충성을 다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참 현명한 분이시네요.”

봉서오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폐하가 떠난 십 년 동안 저는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다시 만난 뒤에 제 능력이 부족하여 폐하께 버림받을까 두려웠으니까요.”

야홍릉은 고개를 돌리고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조금 놀랍네요.”

‘뭐가?’

봉서오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

“뭐가 놀랍다는 거죠?”

“전 봉 공자가 십 년 동안 기루나 전전할 줄 알았거든요. 여인들이 하나같이 봉 공자에게 목을 맨다면서요.”

야홍릉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봉서오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그는 부채를 흔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미인들이 저처럼 멋진 남자를 좋아하는데 저라고 별수 있겠습니까?”

야홍릉은 입을 다물었다.

“공주 전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봉서오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남장했을 때는 수많은 소녀가 마음을 전해왔고 여인 차림을 하니 또 이렇게 여러 명의 측부가 졸졸 따라다니지 않습니까. 공주 전하도 제 마음을 잘 아시겠군요.”

야홍릉은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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