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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199)화 (2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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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화 여인에게 복종할 수 있습니까

“상생상극이요?”

봉서오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그는 야홍릉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렇긴 하나 누가 누구에게 잡혀 살지는 아직 모르는 게 아니겠습니까?”

말을 마친 그는 또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용수가 멋지고 현명한 것은 사실이나 야홍릉은 그의 상극이었다.

상극 앞에서 용수는 멋지거나 현명함을 뽐낼 기회가 없었다.

봉서오도 직접 보지 않았다면 그의 폐하를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해지게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지 못했을 것이다.

육연지는 야홍릉과 봉서오를 서재로 불렀다. 진양왕비는 시녀들더러 차를 타서 서재에 가져가라고 한 뒤, 직접 아침 식사를 준비하러 주방으로 갔다.

한참 뒤, 시녀는 아침 식사와 차를 서재로 가져갔다.

“공주 전하는 참 신기한 여인입니다.”

봉서오는 의자에 기대앉으며 느릿하게 말했다.

“저택에 측부를 여섯 명이나 들인 것도 모자라 측부의 생일 연회를 이렇게 떠들썩하게 열다니요. 이건 좀 경우가 아니지 않습니까?”

야홍릉은 시선을 들고 평온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뭐가 경우가 아니라는 말인가요?”

봉서오가 말했다.

“여인으로서 따라야 하는 삼종 사덕에 어긋나지요. 여인은 그러면 안 되지 않습니까?”

그의 말에 야홍릉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으나 육연지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저희 공주 전하는 원래 이렇게 사내의 일을 합니다. 규정에 어긋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예로부터 전쟁터에 나가서 그렇게 싸움을 잘한 여인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이름 하나만으로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여인이 목국에서 호국 공주 말고 없습니다.”

‘사내의 일을 한다고? 이 말은 좀 의미심장한데.’

봉서오는 잠깐 생각을 하다가 흥미진진한 얼굴로 야홍릉에게 물었다.

“공주 전하께서는 저택의 측부를 몇 명이나 내보낼 생각입니까?”

야홍릉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직 그럴 계획은 없어요.”

봉서오는 예상과 다른 대답에 당황했다.

‘이 공주에게 측부가 여섯 명 있는데 내보낼 생각이 없다고? 우리 폐하는 이제 막 등극했고 후궁도 텅 비어 있잖아. 그리고 이 공주에게 일편단심인 것 같던데… 혹시 나중에 폐하가 목국에 데릴사위로 들어와 호국 공주부의 일곱 번째 측부가 되려는 거 아니야? 그리고 다른 여섯 명의 남자와 공주의 총애를 다투는 결말로 끝날 것은 아니겠지?’

‘운이 좋다면 호국 공주의 부마로 되려나? 하지만 부마도 결국 데릴사위잖아.’

봉서오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키지 않았다. 목국 제경에 들어서기 전에 그는 야홍릉에 대해 좀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저택에 측부가 여섯 명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해 이쪽으로 알아보지도 못했다.

다른 것은 대략 아는 편이었다. 야홍릉이 얼마나 도도하고 차가운 사람인지, 그녀가 얼마나 세속에 얽매여 있지 않고 제멋대로 움직이는 사람인지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젯밤.

그녀의 저택에 측부가 여섯이나 있고, 그 여섯 명의 출신을 알게 된 그는 표현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다름 아닌 폐하의 취향이 참 독특하다는 것이었다.

‘역시 신이 선택한 남성국의 주인답군. 폐하처럼 대단한 사람이 이렇게 특이하고 도도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다니. 감당하실 수나 있을까?’

야홍릉은 열심히 내조하는 세가 규수가 아니었다. 또 우아하고 너그러워 세상 여인들의 모범이 될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만약 남성국의 여인들이 그녀를 모범으로 삼는다면 남성국은 엉망이 될 것이다.

물론, 그는 이 생각을 하자마자 바로 고개를 저어 생각을 지웠다.

그는 야홍릉에 대한 용수의 반응과 아직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은 야홍릉의 야심을 떠올리자 그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의문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만약 이 여인이 정말 목국의 여 황제로 된다면 앞으로 우리 폐하가 목국에 오실까? 아니면 이 공주가 남성국에 시집을 올까?

그것도 아니면 둘 다 멀리 떨어져서 견우나 직녀처럼 특정된 날에만 만날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봉서오는 다른 생각을 하기 귀찮았다.

이런 고민은 용수와 야홍릉이 하는 게 맞았다.

신하인 그는 제왕을 도와 조정 업무를 잘 돌보면 될 뿐이지, 제왕의 사랑까지 간섭할 필요는 없었다.

봉서오는 한결 느긋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육 군왕은 내일 출발하실 것입니까?”

육연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께서 어제 어서방에서 남성국 통혼에 관해 대신들과 얘기를 나누셨습니다. 변방의 전쟁은 빨리 끝나는 게 좋기에 빨리 떠날 생각입니다.”

“통혼에 관한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육연지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폐하는 생각이 깊으신 분이라 생각하실 게 많은 듯합니다. 그러나 거절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입니다. 공주 전하의 생각이 더 중요하지요.”

야홍릉은 눈을 내리깔고 무표정한 얼굴로 차를 마셨다.

“공주 전하.”

봉서오는 고개를 돌리고 야홍릉을 바라보며 말했다.

“공주 전하의 뜻은 어떻습니까?”

야홍릉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별다른 생각이 없어요.”

그녀는 통혼이 어찌 된 일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대신들처럼 그녀가 정실이 될지, 첩실이 될지 고민하지 않았다. 또 용수가 천하를 통일시키려고 각 나라의 공주들을 모두 맞아들이는 게 아닌가 걱정하지도 않았다.

정말 그렇다고 해도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저택에도 측부가 여섯 명이나 있지 않은가?

그녀는 남자들을 저택에 가득 들였으면서 용수더러 그러지 말라고 할 수 없었다.

변방의 전쟁터에는 육연지와 남성국의 정예 기예병이 나가니 그녀는 마음 편히 제경에 있으면 되었다. 그저 승리의 희소식을 들을 준비만 하면 될 것이다.

금국이 멸망하기 전까지 그녀는 다른 일에 집중할 수도 있었다.

“서릉도 야심이 작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서릉이 금국을 돕지 않는지 잘 봐야 할 것입니다.”

야홍릉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서릉이라고?’

육연지는 조금 놀란 듯했다.

“두 나라가 동맹을 맺었다는 말입니까?”

야홍릉은 눈을 내리깔고 대답했다.

“그럴 생각이었던 것 같던데 얼마 전에 서릉에 내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니 당분간은 다른 나라와 동맹을 맺을 겨를이 없을 듯합니다. 그저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육연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변화가 일어나려나 보군.’

각 나라에서 서서히 야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누구의 실력이 더 강한지 봐야 할 때였다.

‘이 세상에 제왕이 한 명밖에 없다고 한다면 천하의 주인은 어떤 사람이 될까? 누가 세상을 복종시키는 사람이 될까?’

육연지는 시선을 야홍릉에게 돌렸다.

그는 야홍릉이 다른 사람에게 복종할 사람 같지 않았다.

야홍릉은 진양왕부의 서재에서 한참 머물렀다.

그녀는 전생에 변방의 전쟁터에서 칠 년이나 있었다. 그동안 그녀는 잔인하고 혹독한 전쟁술로 금국의 장군들을 무찔렀고 금국의 강점과 약점을 완벽하게 파악했다.

그래서 그녀가 육연지에게 한 제안은 모두 아주 유용한 전술이었다.

그녀가 진양왕부에 온 목적도 오직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었다.

두 시진 동안 이어진 야홍릉의 얘기를 들은 육연지와 봉서오는 야홍릉이 차가운 겉모습과 달리 병사들을 아주 아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어떻게 이기는지보다 어떻게 병사들이 피해 보는 것을 최대한 막을 수 있는지 더욱 신경 썼다.

그녀는 병사들의 안위를 뒤로한 채, 무턱대고 적을 무찌르는 방식을 싫어했다. 그래서 전생에 그녀는 강한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칠 년이라는 시간을 들여서야 금국을 무너뜨린 것이었다. 야홍릉은 전쟁터에서 아주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

‘이런 사람이 황제가 된다면 백성들에게는 복이지.’

* * *

어느덧 점심 식사 시간이 되었다.

진양왕비가 서재의 문을 두드리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점심 식사가 준비되었어요. 먼저 식사하시고 다시 얘기하시죠.”

마침 얘기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던 참이었다.

육연지는 일어나면서 진지한 얼굴로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제가 내일 제경을 떠나게 되는데 공주 전하께서 특별히 지시하실 일이 있습니까? 제가 최대한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특별히 지시할 일?’

야홍릉은 침묵을 지키다 곧 그의 뜻을 알아차렸다.

육연지는 그녀에게 충성을 표시하고 있었다.

변방의 전쟁터에 싸움하러 가는 것 말고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묻는 것이었다.

변방을 완벽하게 통제하여 일부 사람에게 압박감을 준다는지 하는 것이었다.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야홍릉은 고개를 젓고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

“육 개월 전에 야소숙이 변방에 갈 때, 전 나심과 봉양을 함께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들더러 야소숙을 변방에 적어도 이 년 묶어두라고 했지요. 그러나 이제 고작 육 개월이 지났는데 야소숙은 곧 죽게 될 상황입니다. 변수는 언제 일어날지 몰라요.”

그 말을 들은 육연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변수는 항상 계획보다 먼저 일어나는 셈이지요. 육 개월 전까지 누가 한씨 가문이 지금처럼 몰락할 줄 알았겠습니까? 그리고 또 누가 유력한 태자 후보이던 3황자가 적국과 내통했다는 죄로 죽을 줄 알았겠습니까?”

봉서오는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돌려 입구를 바라보았다. 문 밖에는 진양왕비를 제외한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육 군왕은 여인에게 복종할 수 있으십니까?”

이 말에 서재 안이 정적에 휩싸였다.

누구도 그가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육연지는 한참 침묵을 지킨 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 남자 황제든, 여 황제든 신경 쓰지 않습니다. 누가 가장 그 자리에 어울리는지, 그리고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이 제 인정을 받을 수 있는지가 중요하지요.”

그는 황위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을 결정할 수 없었지만 사람을 선택하여 지지할 수는 있었다.

그 사람이 남자든, 여인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목국 백성에게 도움이 될 수 있고 그의 육씨 가문을 빛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병권을 움켜쥐고 있으면서도 황제에게 살해당할까 전전긍긍하지 않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바람이었다.

야정연과 야모침, 야소숙은 서로 모두 성격이 달랐지만, 그들 모두가 현 황제와 마찬가지로 의심이 많았다. 그들 중 누구라도 차기 황제가 된다고 한들 지금의 황제보다 더 뛰어날 수는 없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 큰 결함은 없겠지만 뛰어난 점 또한 없을 터였다.

그런 그들이 백성을 최우선으로 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황제란, 세가 신하들에게 더욱 이점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 황자들이 몰래 제위를 노릴 동안에도 육연지는 몇 년째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황제가 육씨 가문을 대하는 태도가 그렇게 뚜렷하니 그 또한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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