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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195)화 (196/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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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화 술수가 뛰어난 자

‘어떻게 만족시킨다는 거지? 빈의 자리는 생각도 해볼 필요가 없고…… 그러나 비 정도는 고민해볼 만하지. 하지만 공주 전하가 어떻게 생각할까? 황후의 자리도 최대한 내어준다는데…… 이제 막 황후로 된 동제의 공주를 끌어내리기라도 한다는 건가? 애들 장난도 아니고…… 남성국 황제는 너무 무정하군.’

황제는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이렇게 믿음직스럽지 못한 사신을 본 적이 없었다.

멀쩡하게 생겨서는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는 말인가?

‘후궁의 자리를 마음대로 골라? 애들 장난이냐고?’

“홍릉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황제는 결국 입을 열고 야홍릉에게 시선을 돌렸다.

“남성국 황제가 널 맞아들이겠다고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떠하냐?”

야홍릉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별생각이 없습니다.”

‘별생각이 없다고?’

사람들의 시선은 저도 모르게 그녀의 얼굴에 쏠렸다.

‘별생각이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이지? 좋다는 건가? 싫다는 건가? 호국 공주의 성격으로 다른 사람의 첩실 자리가 눈에 들어오기나 할까?’

비록 재인, 미인과 빈, 비는 모두 직급이 다르지만 황후를 제외하고 다른 자리는 모두 첩실이었다. 신분이 높고 낮은 차이점이 있을 뿐이었다.

‘도도한 공주 전하가 정말 다른 사람의 첩실이 되려고 할까?’

생각도 해볼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사신이 방금 ‘금국의 강산을 예물로 주겠다’는 말을 떠올리자 마음이 흔들렸다.

‘정말 금국을 손에 넣는다면 앞으로 목국에는 전쟁이 없을 텐데…….’

“이분이 호국 공주 전하이신가요?”

봉서오는 시선을 돌리고 야홍릉을 바라보더니 눈을 빛내며 말했다.

“공주 전하, 역시 듣던 대로 멋지십니다. 종종 꽃밭을 누빈 저도 공주 전하를 뵙자 마음이 흔들리네요. 저희 폐하께서 간절하게 맞아들이고 싶어 하실 만합니다. 공주 전하께서 저희 폐하의 진심을 알아주시고 이 혼사를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대신들의 시선이 야홍릉에게 쏠렸다.

야정연은 눈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겼다.

“저를 맞아들이겠다면 먼저 성의를 보여주시오.”

야홍릉이 싸늘하게 말했다.

“간절하게 맞아들이고 싶다는 말은 입으로만 하는 게 아니지요. 전 말뿐이 아닌 예물을 직접 봐야겠습니다.”

봉서오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공주 전하의 뜻은…….”

“목국을 도와 금국을 무너뜨린 뒤에 다시 얘기하자는 것입니다.”

야홍릉은 평온하게 시선을 돌려 육연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육 장군은 곧 금국과 전쟁하러 나갑니다. 봉 공자가 그럴 생각이 있다면 당신네 폐하께 말씀드려 병사를 지원해달라고 하세요. 그렇게 되면 금국이 멸망하는 날이 제가 시집가는 날이 될 것입니다.”

그녀의 말에 대전 안은 정적에 잠겼다.

대신들은 역시 호국 공주다운 발언이라고 감탄했다.

‘호국 공주는 감언이설에 넘어가지 않고 항상 이렇게 똑똑하고 이성적이군. 그런데 만약 남성국이 진짜로 금국을 무너뜨린다면 공주 전하가 정말 첩실로 시집갈 생각인 건가?’

사람들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야정연이 입을 열었다.

“남성국의 황제는 저번에 동제의 공주와 혼인하더니 지금은 또 목국의 공주를 맞이하겠다고 하고. 새로 등극한 폐하가 혹시 세상 모든 공주를 아내로 들이고 싶은 것은 아닙니까?”

이 말에 공기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대신들은 흠칫 놀랐다가 동시에 침묵에 잠겼다.

준수한 얼굴의 공자를 보는 그들의 시선에 경계가 담겼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아까까지는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하지 못했는데 정왕의 말을 듣자 그제야 남성국 황제의 야심을 파악할 수 있었다.

각국의 공주를 들이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남성국에도 귀족 세가의 여인이 많을 게 아니야? 후궁을 들이고 싶다면 간택을 하면 될 것인데 왜 굳이 다른 나라와 통혼하려 하지? 다른 나라의 공주가 남성국의 여인보다 아름답다는 법이라도 있나? 그러니 남성국 황제의 진짜 목적은 통혼의 방식으로 세상 각 곳의 강산을 통일시키려는 게 아닐까? 그의 진짜 목적은 미인을 얻는 게 아니라 천하 패자가 되는 거야. 그래서 후궁의 자리를 마음껏 고르라고 한 것이고. 그리고…….’

사람들은 호국 공주가 병사들을 이끌고 전쟁터에 나갔던 것을 떠올렸다.

‘남성국 황제는 정말 천하를 통일시키려는 생각인 건가? 그래서 호국 공주를 맞이하려고 하는 것이고?’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대신들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황제는 침묵을 지키다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통혼의 일은 먼저 생각해 보겠소. 사신이 먼 곳에서 오셨을 테니 먼저 궁에서 쉬시오. 짐이 사람을 시켜 사신을 모시고 둘러보게 하겠소. 있는 동안 푹 쉬면서 목국을 구경하시오.”

그런데 이때, 봉서오가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전 호국 공주부로 들어가 공주 전하와 무예와 용병법에 대해 토론을 했으면 합니다. 폐하, 허락해 주십시오.”

황제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그건…….’

그는 고개를 돌리고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문득 호국 공주부에 있는 여섯 명의 측부가 떠올랐던 것이다.

‘이 사신이 공주에게 이미 측부가 여섯 명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리고 남녀칠세부동석이잖아. 멀리서 온 사신이 공주부에 묵는 건 경우가 아니지.’

황제가 말했다.

“그건 안될 것 같소.”

“부황.”

야모침이 입을 열었다.

“이 사신만 괜찮으시다면 제가 대신 접대하고 싶습니다. 이 사신들을 제 왕부에 묵게 해주십시오.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봉서오는 야모침을 힐끗 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제가 온 건 호국 공주와 전쟁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입니다. 황자 전하는 변방에 나가본 적이 있으십니까? 금국 수장의 전쟁술에 대해 아십니까? 금군 병사들의 실력과 약점에 대해 아십니까? 병법을 어떻게 사용해서 전쟁 중 사상자 수를 최소화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최대의 승리를 이끌 수 있는지 아십니까?”

야모침은 연속된 ‘아십니까’라는 말에 말문이 막혔다.

그는 벌게진 얼굴로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으나 봉서오의 느긋한 목소리가 들렸다.

“공주 전하께서 육 장군이 곧 변방의 전쟁터로 가신다고 하셨지요?”

야홍릉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전 육 장군의 저택에 며칠 묵지요. 이러면 육 장군과 전쟁에 대해 얘기할 수도 있고 남녀가 유별하다는 이유로 공주 전하의 명예에도 누를 끼치지 않을 것이니 말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봉서오가 말했다.

그의 행동은 우아하고 여유로웠다. 그는 예의 바르게 말하면서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중점을 집어냈다.

듣는 사람을 몰아붙이지도 않으면서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게 했다.

먼저는 거절할 수 없는 조건으로 유혹했다.

금국은 국고가 부유하지는 않으나 병사들이 강했다. 그래서 변방은 줄곧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는 목국의 큰 골칫거리였다. 그러나 남성국이 나서서 도와준다면 금국을 멸망시킬 수 있었다. 금국이 무너진다면 전쟁도 없을 것이고 변방의 백성들도 마음 편히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신임 황제가 호국 공주를 맞이하는 일은 생각해 보아야 했다. 쉽사리 허락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바로 거절할 수도 없었다. 그랬다가 남성국의 황제를 화나게 해서 적이 늘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목국은 현재 상황에서 더욱 나빠질 게 아닌가?

사신이 호국 공주부에 묵든, 육연지의 저택에 묵든, 이유는 모두 전쟁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했다. 이 이유는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남성국에서 목국을 도와주려면 당연히 수장 장군과 변방의 상황에 대해 알아보아야 할 게 아닌가?

야홍릉은 그제야 용수가 왜 봉서오를 보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영특하고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봉서오는 겉보기에 우아하고 풍류스러워 보이는 귀공자였지만 미소 띤 얼굴로 전체적인 상황을 손쉽게 통제했다.

그는 상대방에서 숨돌릴 기회를 주지 않고 몰아붙였다.

앞으로 그가 있는 한, 남성국 조정에서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을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용수에게 강하고 조용한 뒷배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황제인 용수는 후환을 걱정하지 않고 일을 행할 수 있었다.

야홍릉은 감탄의 눈빛을 보냈다.

‘헌원용수는 편안하게 황제 노릇을 할 수 있겠어. 주변에 이런 인재가 있으니 말이야. 강한 나라, 강한 병사, 충성스럽고 능력 있는 신하, 그리고 그를 단단히 믿어 주는 헌원 황제까지. 다 갖추었잖아.’

용수는 권모술수나 권력 다툼을 겪을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대단한 자가 전생에 그녀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했다.

야홍릉은 감성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헌원용수에 대해 아는 게 많아질수록 그녀는 자꾸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한참 침묵을 지킨 황제가 입을 열었다.

“홍릉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야홍릉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육 장군이 곧 병사들을 이끌고 변방으로 가게 되는데 부황께서 남성국의 도움을 받으실 거라면 봉 공자가 군왕부에 들어가는 게 더 적합한 것 같습니다. 전 이의가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황제는 눈빛이 어두워졌다. 망설이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여라.”

황제는 육연지에게 시선을 돌리고 말했다.

“반드시 봉 공자를 잘 모셔야 한다.”

육연지는 허리를 굽히고 대답했다.

“그리하겠습니다.”

황제는 고개를 돌리고 야정연과 야모침, 그리고 승상과 국공 두 명, 내각 대신 몇 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를 따라 어서방으로 가서 얘기를 나눕세. 다른 사람들은 이만 물러가고.”

사람들은 황제가 떠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봉서오는 야홍릉에게 시선을 보낸 뒤, 고개를 돌리고 육연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목국에는 정말 인재가 많군요. 호국 공주도 그렇고 육 장군도 그렇고요. 성별이 다르지만 두 분 다 이렇게 능력이 있으시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육연지도 예의 바르게 미소를 지었다.

“봉 공자야말로 인재이지요. 빈말도 이렇게 우아하게 하니 제가 다 부끄럽습니다.”

대전의 대신들은 날 선 둘의 대화를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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