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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193)화 (194/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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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화 연회를 열자

야홍릉은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전 신분이 비천하고 기루 출신이긴 하나 한옥금과 총애를 다투기는 싫습니다. 너무 창피하거든요.”

정란과 첨향이 물을 들고 옆에 서서 시중을 들 준비를 했다.

“전하, 안색을 보니 어제보다 좋아 보이네요.”

감진은 야홍릉의 안색을 살펴보더니 말했다.

“어제는 너무 피곤한 탓에 안색이 좋지 않았나 봅니다. 하루 쉬었더니 바로 미모가 사는군요. 다만 눈가에 아직 수심이 남아 있는 것을 보니 네 장군의 안위가 걱정되시는지 저 한 공자가 걱정되시는지 모르겠네요.”

야홍릉은 고개를 돌리고 싸늘하게 말했다.

“너도 나가서 같이 꿇어앉아 있고 싶으냐?”

그 말을 들은 감진은 씨익 웃었다.

“무릎을 꿇는다고 해도 저는 공주 전하의 침대 앞에서 꿇겠습니다. 누가 저런 가식덩어리와 함께 꿇기를 원하겠습니까?”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세수를 마친 뒤, 화장대 앞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정란이 머리를 빗겨주는 것을 잠자코 기다렸다.

감진은 창밖을 바라보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재미있군.”

정려는 그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바라보았다. 한경백이 다리를 지나 이쪽으로 오는 게 보였다. 공주의 침전에 오는 듯했다. 달빛 장포를 입은 한경백은 옷차림이 한옥금과 신기할 정도로 똑같았다.

두 공자는 한씨 가문에서 적자와 서자로 하늘과 땅 차이겠지만 이렇게 나란히 있으니 신분과 분위기가 확 갈렸다.

서 있는 한경백은 귀티가 나고 무릎을 꿇고 있는 한옥금은 볼품없이 초라했다.

“쯧쯧.”

감진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권세에 빌붙으려고 해도 안목이 중요하다니까. 잘못 빌붙으면 아무리 고귀한 사람도 초라해지는 법이지.”

한경백은 다리에서 잠깐 서 있다 바로 공주의 침전으로 들어왔다.

그는 저택에 들어선 뒤, 야홍릉의 방향을 바라보며 큰절을 올렸다.

“전하께 인사를 올립니다. 전하, 만수무강하십시오.”

감진은 진지한 한경백을 보더니 킥킥 웃으며 말했다.

“한 공자, 밖에 둘째 형님이 계시네요.”

‘둘째 형님’이라는 호칭이 그의 입에서 나오자 괜히 오글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한경백이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감 공자가 둘째 형님이라고 부르고 싶어 하는 듯한데 나가서 형님으로 모시지 그럽니까?”

“저런 형님은 감히 모실 수 없습니다.”

감진이 코웃음을 치더니 화장대 앞으로 다가가 정란에게서 빗을 건네받았다.

“제가 공주 전하의 머리를 다듬고 눈썹을 그려드리겠습니다.”

그의 솜씨는 일품이기에 야홍릉은 반대하지 않았다.

야홍릉은 그를 정란 같은 시녀로 대했다.

일다경이 지나자 야홍릉은 침전을 나섰다. 온화한 인상의 한경백과 고혹적인 매력을 풍기는 감진이 그녀의 양옆에서 함께 다리를 지났다.

한옥금은 고개를 들었다. 순간 그는 눈앞에 나타난 광경에 그는 할 말을 잃었다.

공주의 암홍색 장포는 고귀하고 싸늘한 인상을 풍겼고 그녀의 양옆에 서 있는 두 측부는 하나같이 잘생긴 얼굴을 자랑했다. 셋이 함께 서 있으니 더없이 아름다운 화면이 완성되었다.

한옥금이 입을 열었다.

“전하…….”

갈라진 목소리에는 기운이 하나도 담겨 있지 않았다.

“전하.”

옆에 있던 감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야홍릉의 팔짱을 꼈다.

그리고 고혹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제가 잠자리 시중을 들어도 되겠습니까?”

야홍릉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그를 때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돌린 야홍릉이 싸늘한 말투로 말했다.

“내가 너더러 빙란각에 가서 손님을 받으라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

한옥금이 입을 열려고 했다.

“전하…….”

“전하, 제게 겁을 주지 마십시오.”

감진은 안색이 변하더니 아름다운 얼굴에 겁먹은 표정이 떠올랐다.

“제가 그런 곳에 있으면서도 몸을 지킨 건 전하의 시중을 들려고 한 겁니다. 정말 저를 다시 그렇게 무시무시한 곳에 보낸다면 제가 살 수나 있을까요?”

한경백은 감진의 그럴듯한 말을 듣자 소름이 돋았다.

그는 감진이 연극배우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야홍릉은 다리를 지나며 싸늘한 말투로 말했다.

“무시무시하다고? 그건 너 같은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냐?”

그 말을 들은 감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씨익 웃으며 고혹적인 눈동자로 말했다.

“전하는 지혜로우시니 저도 아니라고 말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기다란 손가락으로 말을 하려고 머뭇거리는 한옥금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사람은 전하의 옛 정인이지요? 저는 이 자가 싫습니다.”

야홍릉이 싸늘하게 말했다.

“좋아하고 말고는 네 일이지, 나와는 상관이 없다.”

“하지만 전 이자를 보면 마음이 불편한걸요.”

감진은 입을 삐죽이며 서운한 얼굴로 말했다.

“저는 지금 질투하고 있습니다. 정녕 몰라보시는 겁니까?”

야홍릉은 표정이 굳더니 싸늘하게 말했다.

“여봐라.”

그러자 홍릉원 문 밖에 서 있던 호원이 다가와 허리를 굽히고 예를 올렸다.

“전하.”

“저택의 쓸데없는 인간들을 내보내거라. 집사더러 앞으로 쓸데없는 인간을 들이지 말라고 하여라.”

호원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네.”

간신이 무릎을 꿇은 채로 하룻밤을 버틴 한옥금은 그 말에 안색이 확 변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야홍릉!”

밤새 꿇고 있었더니 그의 두 다리는 이런 갑작스러운 움직임을 감당하지 못했다. 일어나자마자 한옥금은 머리가 어지러워서 다급히 다리의 손잡이를 잡았다.

다리에서 극심한 고통이 전해지자 한옥금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그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진정한 다음 고개를 들고 벌게진 눈시울로 야홍릉을 바라보며 물었다.

“절 죽이더라도 이유를 알려주셔야 할 것이 아닙니까? 제가 뭘 그리 잘못했습니까?”

야홍릉은 돌아서서 싸늘한 시선으로 그의 얼굴을 보더니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여봐라.”

호원이 대답했다.

“한옥금이 내게 무례를 범했다. 저택에서 내쫓아라!”

말을 마친 그녀는 홱 돌아섰다.

“네!”

한옥금은 야홍릉이 멀어져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주먹을 움켜쥐고 있는 그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감진과 한경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주부의 정원은 상쾌한 아침 공기로 가득했다.

여러 가지 꽃의 향기까지 더해지자 정원에서는 좋은 냄새가 났다.

둘은 야홍릉의 양옆을 따르고 있었고 정려와 시녀들은 멀리서 뒤따르고 있었다. 공주와 측부들의 대화를 들을 수 없으나 공주가 지시를 내리면 들리는 거리였다.

“공주부는 너무 오랫동안 조용했어. 난 저택에서 다과회를 열 생각이다. 감진, 이 일은 네가 고 집사와 함께 계획하거라. 황자와 왕비, 제경의 젊은 귀족 자제와 가족들, 세가의 여인들까지 모두 부르거라. 사람은 많을수록 좋다. 부를 만한 사람이면 다 부르거라.”

‘다과회?’

한경백과 감진은 조금 놀란 듯했다.

그들은 야홍릉의 성격상 떠들썩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특히 세가 공자와 소저들은 겉으로는 우아한 척, 고상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갖은 더러운 짓은 다 하고 다녔다.

그들이 알기로는 야홍릉이 일찍부터 독립했지만 한 번도 먼저 저택에서 연회를 연 적이 없었다. 그녀는 줄곧 홀로 움직이며 사람들과 가까이하지 않았다.

한참 침묵을 지킨 뒤, 감진이 입을 열었다.

“전하, 무슨 계획을 하고 계신 겁니까?”

야홍릉은 정원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난 떠들썩한 것을 좋아하지 않으나 가만히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짤막한 말 한마디였다.

감진과 한경백은 그 말을 듣고 순식간에 그녀의 뜻을 알아차렸다.

제경을 떠난 육 개월 동안, 2황자와 4황자, 그리고 장양후는 그녀를 해치려고 여러 가지 꿍꿍이를 꾸몄다. 다른 것은 다 참아도 그들이 야홍릉의 네 장군을 죽이려고 한 것은 아주 괘씸한 행위였다. 신은전의 대교습이 몰래 소식을 보내지 않았다면 의심이 많은 황제는 그녀가 오기도 전에 나심과 봉양을 죽였을 것이다.

나신과 봉우도 전쟁터에 나가지는 않았으나 그 네 명은 의가 깊은 형제이니 반드시 연루될 것이다. 나심과 봉양이 돌아오기도 전에 나신과 봉우가 천뢰에 잡힌 것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지 않은가?

지금 넷은 무사해졌지만 야홍릉은 선왕, 정왕과 장양후의 행동을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다과회를 연다는 것은 야홍릉이 반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전하, 다과회를 언제 여실 생각입니까?”

감진이 물었다.

야홍릉이 대답했다.

“너희들 중 이번 달에 생일인 자가 있느냐?”

감진은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제 생일이 구월 이십육 일입니다.”

‘구월 이십육?’

야홍릉은 날짜를 계산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생일을 핑계로 날짜를 구월 이십육 일로 정하자꾸나.”

그 말을 들은 감진은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전하, 그렇게 하시면 전하께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것 같습니다.”

“안 좋은 영향?”

“신은 전하의 측부이나 기루 출신입니다. 전하께서 동시에 측부를 다섯 명이나 들인 일로 제경은 이미 한 번 뒤집혔습니다. 또 떠들썩하게 세가 공자들과 소저들을 생일 연회에 초대한다면 제경에 유언비어가 돌 것입니다.”

감진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세가 공자와 소저들은 마음속으로 기루 출신의 공자를 아주 하찮게 여길 것이다.

그러나 속으로만 그럴 뿐, 절대 호국 공주의 체면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호국 공주가 사람들을 불러모아 기루 출신의 측부 생일 연회를 연다고 하면 고결하다고 자부하는 명문가 대신들은 이것을 얼마나 황당한 시선으로 보겠는가?

야홍릉은 한참 침묵을 지키다가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언제 유언비어를 두려워하더냐?”

감진은 그 말에 입을 다물고 온화하게 미소를 지었다.

“전하의 은총에 영광스러울 뿐입니다.”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뒷짐을 진 채, 먼 곳을 바라보았다.

최근 들어 변방에 전쟁이 일어나자 황제는 이 일로 고민이 많았다.

황제의 여식이자 무장인 야홍릉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난 뒤, 또 궁으로 들어가 황제와 전쟁에 대해 한 시진 가까이 얘기를 나누었다.

점심때, 황제는 태의를 진양왕부로 보내 육연지의 상황을 알아보게 했다.

황제의 명령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조정에 다른 바람이 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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