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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190)화 (19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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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화 실수했구나

황제는 신은전에 야홍릉의 행적을 알아보라고 지시를 내리기는 했으나 야홍릉이 돌아온 시간이 너무 교묘하게 일치해서 황제는 의심을 금할 수 없었다.

“좋지 않은 소식을 받은 것은 맞습니다.”

야홍릉은 담담하게 말하며 품에서 서신 몇 통을 꺼내 책상에 올려놓았다.

“증거를 찾게 되어 부황께 드립니다.”

황제와 야정연의 시선이 모두 서신과 명부에 쏠렸다.

황제가 실눈을 뜨고 물었다.

“이게 뭐냐?”

“보시면 알게 됩니다.”

야홍릉이 대답했다.

“누군가 일부러 유언비어를 퍼뜨려서 변방에 혼란을 야기하려 벌인 짓인 줄 알았는데, 제가 몰래 알아보니 셋째 오라버니가 제경을 떠난 사이에 동제의 황제와 왕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제 황제의 도움을 받아 황위를 빼앗으려고 했고요. 그 대가로 그는 동제의 황제가 직접 정무를 보는 시기가 되면 동제에 병사를 보내 섭정왕을 내쫓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어린 황제가 무사히 대권을 쥘 수 있게요.”

야모침이 바친 비밀 서신이나 장양후가 조작한 서신보다 야홍릉의 증거가 더욱 명확하고 설득력이 있었다.

야홍릉은 싸늘한 목소리로 야소숙과 동제 황제의 계획과 목적을 낱낱이 말했다.

황제는 야소숙이 야심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야홍릉의 말까지 듣자 순간 화가 치밀어 책상을 마구 내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고얀 자식! 고얀 자식!”

“폐하, 진정하십시오!”

손평이 다급히 황제의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화를 내시면 옥체가 다치십니다.”

그는 또 찻잔에 차를 따라 건네주었다.

“폐하, 차를 드시고 진정하십시오.”

야정연도 시선을 내리깔고 말했다.

“부황, 화를 푸십시오.”

황제는 숨을 헐떡이다 심호흡을 몇 번 한 뒤에야 차를 마셨다. 그제야 치밀어 오르던 화가 서서히 가라앉는 것 같았다.

피곤한 얼굴로 의자에 기대자 손평이 관자놀이를 문질러 주었다. 책상 앞에 말없이 서 있던 야홍릉은 손평의 행동을 보며 누군가를 떠올렸다.

황제는 심호흡을 한참 한 뒤에야 안색이 좋아졌다.

그는 시선을 들어 야홍릉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나심과 봉양 장군도 엮인 것 같더구나.”

야홍릉은 미간을 찌푸린 채,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뭐라고요?”

황제는 다시 한번 말을 반복했다.

“나심과 봉양도 야소숙과 손을 잡은 것 같더구나.”

“나심과 봉양이요?”

야홍릉이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그럴 리 없어요.”

야정연은 말없이 그녀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그녀가 연기하는 것 같지 않자 그는 의심이 들었다.

‘홍릉이가 정말 나심과 봉양의 얘기를 듣고 온 게 아니라고?’

황제도 침묵을 지키다 다른 서신을 꺼내 그녀에게 주었다.

“이것 보아라. 나도 믿어지지 않는다만 증거가 있지 않느냐? 그들은 이미 너를 배신하고 3황자의 사람이 되었더구나.”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말없이 서신을 열어 보았다. 처음에 그녀는 깜짝 놀라다가 곧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의아한 표정으로 황제를 바라보았다.

“이 서신은 가짜예요.”

‘뭐라고?’

황제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뭐라고 했느냐?”

야정연은 표정이 굳어지며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이 서신에는 필체를 따라 쓴 흔적이 있어요.”

야홍릉은 말을 하며 서신을 황제 앞에 펼쳐 두었다.

“부황, 이것 좀 보세요. 필체가 비슷하기는 하지만 이 서신에는 도장이 없어요. 그러나 제가 보여드린 서신에는 셋째 오라버니와 동제 황제의 도장이 찍혀 있어요.”

이 말을 들은 야정연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실수했구나.’

“저는 셋째 오라버니가 몰래 동제의 황제와 왕래했다는 것을 알게 된 뒤, 나심과 봉양도 연루될까 걱정해 자세히 알아본 거예요.”

야홍릉의 말은 허점이 없이 완벽했다.

“제가 드린 증거에는 셋째 오라버니가 동제의 황제에게 쓴 서신도 있고 동제의 황제가 셋째 오라버니가 준 답신도 있어요. 서신에는 모두 그들의 신분을 대표할 수 있는 도장이 찍혀 있어 그들이 직접 썼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들은 서신에서 한 번도 봉양과 나심을 언급한 적이 없어요.”

야홍릉이 시선을 들고 물었다.

“부황께 있는 서신에만 나심과 봉양이 언급된 게 이상하지 않으세요?”

‘이상하긴 해.’

황제의 표정이 차분하게 변했다.

“그래서 네 말은 누군가 나심과 봉양을 음해하려고 했다?”

“제가 제경에 없는 틈을 타 제 날개를 꺾어버릴 생각이었나 보죠.”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전 이제는 병사들을 이끌지 않아요. 현갑군이 네 장군까지 잃는다면 수장이 없는 병사로 되어버릴 거예요. 부황께서 새로운 장군을 임명한다면 그때 가서 이 수를 쓴 범인이 자연스럽게 십만 병권을 움켜쥔 장군이 되겠지요.”

“꼭 그렇지만은 않아.”

야정연이 기회를 봐서 입을 열었다.

그는 감정을 가라앉혔기에 말투가 차분했다.

“현갑군이 수장을 바꾼다고 해도 당분간은 적합한 후보가 없는데 부황이 누구를 임명할지 어떻게 알아?”

야홍릉이 대답했다.

“부황이 누구를 임명할지는 모르나 전혀 연관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나심과 봉양을 음해할 계획을 짜지 않았겠죠. 모든 일에는 인과관계가 있을 게 아니에요? 안 그러면 누가 그저 심심해서 이런 일을 저지르겠어요?”

황제의 시선이 야정연에게 쏠렸다.

첫 번째 서신은 야모침이 바친 것이었으나 두 번째 서신은 장양후가 보낸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야소숙이 적과 내통한 일을 모르고 있었다. 물론, 가장 먼저 알게 된 사람은 야정연일 것이다.

게다가 야모침은 야정연의 저택에서 첫 번째 서신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그래서 황제는 이 일을 야정연이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다.

야홍릉이 담담하게 물었다.

“부황께서는 이 위조한 서신을 어디에서 받으신 것입니까?”

황제는 침묵을 지키다 솔직하게 대답했다.

“장양후 숭준.”

“장양후 말입니까?”

야정연은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이럴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장양후는 홍릉이가 전에 그를 다치게 한 것 때문에 앙심을 품고 홍릉이가 제경에 없는 틈을 타 나심, 봉양 장군에게 누명을 씌운 경우 말입니다.”

야홍릉은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입꼬리를 올린 채, 코웃음을 쳤다.

황제는 미간을 문지르며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홍릉아, 넌 정말 나심과 봉양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것이냐?”

“네, 전 그들을 믿습니다.”

야홍릉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알아본 소식에 의하면 나심과 봉양은 셋째 오라버니의 움직임을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부황께서 정 의심이 된다면 제게 시간을 주세요. 제가 이 일을 완벽하게 알아볼게요.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나심과 봉양을 변방에 가둬두고 감시만 하고요.”

야홍릉은 또 한참 침묵을 지키다 말했다.

“제가 궁에 들어오기 전에 나신과 봉우가 이미 천뢰에 갇혔다는 말을 들었어요. 이번 일은 그들과 연관이 없으나 만약 봉양과 나심이 정말 적국과 내통했다면 그 둘도 연루되는 게 당연하니 부황의 행동을 이해합니다.”

황제는 야홍릉의 말을 듣자 괜히 부끄럽고 죄책감이 들었다.

야홍릉은 호국 공주였다. 그녀는 여인의 몸으로 전쟁터에 나가 몇 년 동안이나 금국과 싸우며 몇 달 전에는 한옥금에게 암살까지 당할 뻔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야자릉에게서 모함을 당해 현갑군의 병권을 내놓는 것으로 충성심을 입증했다. 괴로운 일이 자꾸만 일어나자 그녀는 기분전환을 하러 제경을 떠났다.

그런데 그녀가 떠난 지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또 누군가 그녀 휘하의 네 장군을 음해한 것이다.

황제도 다른 사람의 속임수에 놀아나 나신과 봉우를 천뢰에 넣은 것이지만 늘 싸늘한 표정으로 일관하는 딸을 보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야홍릉은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어려서부터 홀로 지내는 것에 익숙해져 성미가 차갑고 애교도 부리지 않았다. 황후의 적녀인 야자릉과 비교하면 야홍릉이 받은 사랑은 너무 적었다.

그녀의 호국공주부는 그녀가 전쟁터에서 피땀으로 바꾼 영예였다. 목국 전체에서 이런 영예를 받아 안을 사람은 그녀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여인이라도 큰 영예를 따내자 똑같이 다른 사람의 시기 어린 질투와 경계를 받았다. 그로 인해 그녀를 향한 음모의 칼날도 늘어났다.

황제는 3황자, 한옥금, 그리고 태후의 노리개를 떠올렸다. 심지어 지금 그의 앞에 서 있는 야정연도 모두 야홍릉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자 그는 화가 치밀었다.

“넷째야.”

황제는 시선을 들고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가 있거라. 내 홍릉이와 단둘이 할 말이 있다.”

야정연은 그 말을 듣더니 표정이 변하며 저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나 그는 곧 눈을 내리깔고 공손하게 대답했다.

“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대전 밖으로 걸어갔다.

황제는 찻잔을 들고 가볍게 마셨다.

“홍릉아, 앉거라.”

“감사합니다, 부황.”

야홍릉은 무릎을 살짝 굽힌 뒤,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손평이 걸어와 그녀에게 찻잔을 건넸다.

“공주 전하, 많이 피곤해 보입니다. 먼 길 오시느라 힘드셨죠?”

그 말을 들은 황제는 고개를 들어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전보다 핼쑥해진 것을 보고 황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피곤하면 저택에서 하루 쉬고 내일 아침에 오지 그랬느냐? 내가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고.”

‘하루 쉬고 내일에 오라고? 오늘 밤에 오는 것과 내일 오는 게 어디 같아?’

야홍릉은 평온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부황께 얼굴을 보여드려 걱정을 덜려고 했을 따름이에요.”

황제는 그녀의 말을 듣자 표정이 살짝 풀어졌다.

“속이 깊구나.”

그는 요즘 제정신이 아니었다. 3황자의 야심에 화가 났고 변방에 전쟁을 이끌 장군이 없을까 걱정되어 며칠 동안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야홍릉을 본 그는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

야홍릉이 제경을 떠나자 황제는 그제야 커다란 목국에 야홍릉을 제외하고 쓸만한 무장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현갑군의 병권을 계속해서 네게 맡길 생각인데 네 생각은 어떠하냐?”

야홍릉이 침묵을 지키다가 담담하게 물었다.

“변방의 전쟁 때문인 건가요?”

“그 이유도 있지. 또 병권이 너에게 있어야 내가 안심할 것 같구나.”

야소숙은 변방에 도착하자마자 전쟁을 치르기도 전에 어떻게 황위를 빼앗을 계획이나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런데 제경에 있는 다른 황자들은 오죽하겠는가?

‘둘째와 넷째는 꿍꿍이가 많아. 내가 그걸 모를 줄 알아?’

그는 그저 모르는 척, 눈감아줄 뿐이었다.

그런다고 진짜로 모르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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