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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187)화 (188/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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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화 다시 돌아오다

야모침의 안색이 변했다. 술잔을 잡은 손에도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그러면 왜 저와 손을 잡은 것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태후마마는 항상 야소숙을 마음에 들어 하셨는데 왜 태후마마의 뜻을 어긴 것입니까?”

“왜 어기면 안되는지요?”

숭준이 옅게 웃으며 말했다.

“새는 먹이 때문에 죽고 사람은 이익 때문에 죽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야소숙은 태자에 오를 가능성이 없어졌습니다. 목숨을 건질 수 있을 지도 알 수 없는데 저도 제 생각을 해야지요.”

태후가 그를 총애하는 것은 맞으나 나이가 많은 태후가 그를 얼마나 더 지킬 수 있겠는가?

그래서 숭준은 미리 준비를 해야 했다.

“전하께서 절 도와 뭔가를 해주시면 제가 좀 더 말씀드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숭준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야모침은 살기가 담긴 눈을 내리깔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어떤 일입니까?”

“호국 공주부에 감진이라는 측부가 있는데 좀 관심이 갑니다.”

‘뭐라고?’

야모침은 당황했다. 그는 놀란 표정을 숨기지 않고 되물었다.

“감진이요?”

숭준은 술잔을 들고 마시며 말했다.

“네, 그 감진 공자가 얼마나 많은 제경 관리들의 애간장을 녹였는지 아십니까? 소년인데 예쁘게 생겨 아주 사람의 혼을…….”

야모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속으로 숭준이 추잡스럽다고 욕했다.

그는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

“대인의 취향이 이쪽인 줄은 몰랐군요.”

숭준이 담담하게 말했다.

“저에게 남들이 모르는 취향이 많이 있습니다.”

야모침은 미간을 찌푸렸다.

숭준은 찻잔의 무늬를 바라보며 실눈을 떴다.

머릿속에 싸늘한 얼굴이 나타나자 그는 배에 힘이 들어가며 손목이 은은히 아픈 것 같았다.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

야모침이 말을 이었다.

“감진은 그저 기루의…….”

“대인!”

이때, 장양후부의 시위가 급히 뛰어오더니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대인과 선왕께 아룁니다. 호국 공주가 제경에 돌아오셨습니다.”

‘뭐라고?’

야모침은 하던 말을 멈추고 벌떡 일어섰다.

“그게 언제 일이냐?”

“방금 전 일입니다. 일다경 전에 호국 공주가 말을 타고 오셨습니다. 지금쯤이면 공주부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챙그랑.

숭준은 손에 든 술잔을 탁자에 떨어뜨렸다. 술잔이 깨지는 요란한 소리가 그의 복잡한 마음을 대신 보여주었다.

호국 공주가 제경에 도착할 때까지 그들은 아무 소식도 들은 게 없었다.

“왜 이렇게 빨리 온 거지?”

“당황하실 것 없습니다.”

야모침이 바로 진정하며 말했다.

“증거는 사실이니 홍릉이가 돌아온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부황께서는 절대 역모나 적국과 내통한 것을 봐주지 않을 것입니다. 홍릉이가 두 장군이 적국과 내통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기 전까지 이 판을 뒤집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증거가 확실하고 봉양과 나심이 야소숙과 함께 변방에 나간 것도 사실인데 둘이 이번 사건과 연관이 없다고 주장한다고 해도 누가 믿겠는가?

숭준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지난번에 호되게 혼나서 그런지 그는 야홍릉이 밉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야홍릉이 돌아왔다는 말을 들은 그는 불안한 얼굴로 횡설수설 말을 늘어놓았다.

“아니면 증거를 더 조작할까요? 네 장군이 그녀를 배신하고 3황자에게 빌붙었다는 것을 야홍릉도 믿게 하는 것입니다.”

야소숙은 미간을 찌푸렸다.

겁을 먹고 불안에 떠는 숭준의 표정을 보자 그는 코웃음이 나왔다.

말투도 덩달아 퉁명스럽게 변했다.

“홍릉이가 아직 그 일이 우리와 연관된 지도 모르는데 왜 이렇게 당황하시는 것입니까? 게다가 홍릉이는 휘하의 장군을 아주 믿기에 증거를 조작해도 그 네 장군이 자신을 배신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역효과를 보게 될 거란 말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야모침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당연히 아무 말도 없었던 것처럼 해야지요.”

* * *

숭준과 야모침이 야홍릉의 소식을 듣기 일다경 전.

마침 한경백이 서원에서 공주부로 돌아오는 시간이었다.

호국 공주의 측부인 한경백은 점심마다 공주부로 가서 점심 식사를 함께했다. 그는 호국 공주와 선을 그을 생각이 없었고, 호국 공주의 측부 신분이 수치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솔직한 그의 모습에 제자들은 오히려 감탄하며 존경했다.

호국 공주의 측부인 그는 야홍릉이 떠난 육 개월 동안 선을 넘은 적도 없고 아주 조용히 지냈다. 가끔씩 여인들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먼저 다가오기는 했지만 그도 지혜롭게 대처하며 의심스러워 보이는 여인들을 멀리했다.

특히 지난번, 누군가 그를 음해하려고 한 뒤로 그는 모든 이성과 거리를 유지했다.

그의 옆에는 감진이 붙여준 고수가 지키고 있었다. 고수는 일부 여인들이 속셈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경백의 측근 시위 역할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고가 생긴 것이다.

마차가 공주부의 대문 앞에서 막혔다.

한경백은 문발을 젖히고 말없이 길을 막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위 공자, 무슨 일이시오?”

파란색 비단 장포를 입은 위걸이 마차 앞에 서서 부채를 흔들며 말했다.

“오랜만에 한 공자와 얘기나 나눌까 하고 찾아왔소.”

한경백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 나빠서 위 공자와 얘기를 나눌 시간이 없을 듯하오.”

바로 앞이 호국 공주부였다.

그는 위걸이 이곳에서 무슨 짓을 저지를 정도로 멍청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공주는 저택에 없지만 공주부의 고수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바쁘다고?”

위걸이 비웃으며 말했다.

“3공자는 지금 바빠서 어머니의 생신도 잊었나 보오. 아들이 되어서 이렇게 불효하다니. 어찌 제자들의 모범이 되겠소? 만약 누군가 이 일을 폐하께 아뢴다면 3공자는 사보 직을 지키지 못할 것이오.”

어산서원의 사보인 한경백은 지금 제경 젊은이들 사이에서 점점 인정받으며 입지를 다져가고 있었다.

수많은 세가의 열예닐곱 살 된 공자들은 그를 ‘스승님’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세가의 적자들은 이것을 좋게 보지 않았다.

그 상대가 그들이 가장 무시했던 한경백이었기 때문이었다.

한씨 가문의 세력은 약해지고 심씨 가문은 유배당했다.

위걸도 겁을 먹고 한동안 조용히 지냈다. 그러다 오늘 한 부인의 생일이라서 한씨 가문에 갔다가 한경백을 보지 못하자 별생각 없이 물어보았다.

그러자 한옥금이 웃으며 대답했다.

“동생은 이젠 호국 공주부의 사람이고, 하는 일도 있으니 올 시간이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

한옥금은 웃는 얼굴로 말했으나 말투에는 씁쓸함이 묻어났다. 몰락한 한씨 가문의 처지 때문에 씁쓸한 듯했다. 그의 말에는 ‘한경백이 출세하더니 부모도 모르는 체한다’는 뜻도 담겨 있었다. 위걸은 그 말을 듣고 차갑게 웃더니 말했다.

“아무리 하는 일이 있어도 그렇지, 어머니의 생신인데 아들이 당연히 와야지 않습니까.”

그렇게 한옥금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위걸은 스스로 호국 공주부를 찾아와 한경백의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어차피 지금 호국 공주도 없으니 그가 한경백에게 손만 대지 않으면 공주부의 고수들도 그를 어찌하지 못하겠거니 생각한 것이다.

그는 한경백이 명성을 아주 중요시할 거라 생각했다. 어산서원은 조정의 서원으로 인재를 육성하는 곳이었다. 사보는 학식이 뛰어나야 할 뿐만 아니라 품행에서도 흠이 보이면 안 되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명성에 누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위걸은 한경백이 그의 말을 들으면 당연히 한씨 저택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은 한경백은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위 공자,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소. 한 부인은 한령과 한옥금의 어머니지, 내 어머니가 아니오. 내 어머니는 오래전에 이미 돌아가셨소.”

위걸은 멈칫하더니 표정이 더욱 구겨졌다.

“서자인 3공자에게는 정실인 한 부인이 바로 어머니요. 다른 어머니가 또 어디 있다고 그러시오? 첩실 따위가 어머니로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시오? 아니면 공주의 측부가 되더니 어머니도 버리는 것이오?”

한경백은 그의 말을 듣자 화가 치밀었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위 공자, 길을 비키시오.”

위걸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한경백, 호국 공주에게 빌붙었다고 뭐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인데 본분을 잊지…….”

다그닥! 다그닥!

힘찬 말발굽 소리를 듣자 위걸은 순간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위걸과 한경백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순간, 둘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말발굽 소리가 가까워지면서 말을 타고 있는 여인의 마른 몸매도 점점 또렷하게 드러났다.

싸늘한 얼굴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둘은 모두 깜짝 놀랐다.

갈색 말이 그들의 앞에서 멈추었다. 야홍릉은 말 위에 앉은 채, 위걸을 내려다보며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위걸.”

위걸은 몸을 흠칫 떨었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무릎을 꿇은 뒤, 예를 올렸다.

“위걸이 호국 공주를 뵙습니다.”

너무 놀란 나머지 그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는 야홍릉이 이 순간 갑자기 나타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야홍릉은 그를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보더니 말을 타고 그의 옆을 지났다.

“한경백, 나와 함께 저택으로 들어가자.”

한경백은 마차에서 내려 예를 올리려다가 그녀의 말을 듣고 마부에게 지시를 내렸다. 곧 마부는 마차를 끌고 위걸을 지나 앞으로 걸어가서 호국 공주부 대문 앞에서 멈춰 섰다.

위걸은 식은땀을 흘렸다.

‘내가 한경백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아니면…… 그런데 호국 공주는 왜 갑자기 이 시간에 온 거지? 두 장군이 천뢰에 들어간 일 때문에 온 건가? 그런데 이번 일은 은밀하게 진행한 건데. 조정 대신들도 모르는 일을 오랫동안 제경을 떠나 있은 호국 공주가 어떻게 안 거지?’

이렇게 생각하자 위걸은 야홍릉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그는 더 지체하지 않고 다급히 한씨 가문으로 향하더니 이 사실을 한옥금에게 전했다.

“야홍릉이 돌아왔소!”

그러자 한옥금의 안색이 확 변했다. 너른 소매에 가려진 두 손이 저도 모르게 꽉 움켜쥐었다.

‘야홍릉이 돌아왔다고?’

“그게 언제 일이오?”

“방금 전이오.”

한옥금은 표정이 변한 채, 입술을 꽉 깨물었다. 순간, 저도 모르게 몇 달 전에 공주부에 있었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녀는 차가운 얼굴로 비웃음을 흘리며 자신의 심장에 비수를 꽂아 넣었다.

완벽한 음해였다. 그 음해에 한옥금은 천뢰에 갇혔고 한씨 가문도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지금까지도 한옥금은 야홍릉이 왜 갑자기 그렇게 돌변하여 그를 사지로 몬 것인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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