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합심해서 음모를 꾸미다
영린의 말에 용성은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억지로 웃기만 했다.
즉위 대전 전날까지 각 나라의 사신들이 모두 도착했으나 오직 목국에서만 별다른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다.
용수가 담담하게 물었다.
“목국의 사신은 아직이냐?”
“이미 풍성(楓城)에 도착했습니다. 곧 황성에 도착할 것입니다.”
봉매가 공손하게 보고했다.
“목국의 대황자 야천란입니다.”
목국은 남성국과 제일 멀리 떨어져 있기에 목국의 사신이 가장 마지막으로 도착했다.
야홍릉 일행은 밤낮없이 목국으로 가고 있을 때, 목국의 대황자 야천란은 친위병을 데리고 빠른 속도로 남성국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야홍릉은 일부러 다른 길을 선택해서 야천란과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야천란의 측근 첩자는 정보를 알아볼 때, 이상한 점을 감지했다.
“남성국의 병사들이 북쪽으로 급히 가고 있었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목적과 방향은 알 수 없습니다.”
곧 남성국의 황성에 도착하는 풍성의 교외였기에 아무리 대단한 첩자라고 해도 병사들이 가는 목적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남성국에 신임 황제가 등극하는 중요한 시점이었다.
‘내란을 다스리는 건가? 아니면 변방으로 가나?’
야천란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는 이번 남성국 행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남성국과 목국은 왕래도 없었고 남성국은 다른 나라와 사이가 나쁘지도 않았다.
신임 황제가 등극하는 좋은 일에 각 나라의 황족과 귀족을 초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신중한 성격의 야천란도 멀리 보이는 번화한 황성을 바라보며 불안한 느낌을 지우려고 애썼다. 그는 부하들에게 빨리 가자고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그가 모르는 게 있었다.
남성국은 우아한 나라이고 남성국의 신임 황제 역시 품위가 넘치는 사람이었지만, 그가 이번에 등극 대전을 핑계로 각 나라의 황족과 귀족을 초대한 주요 목적은 바로 목국의 황장자인 그를 부르기 위해서였다.
야천란이 남성국으로 오기는 쉬우나 짧은 시간 안에 무사히 돌아가기는 그른 듯했다.
* * *
가을이 되자 날씨가 한결 시원해졌다.
귀족 가문 출신의 공자와 소저들은 평소에도 한적한 나날을 보냈었다. 심심하면 친구를 초대하여 꽃구경을 하거나 시를 읊었다. 향이 좋은 차를 마시면서 꽃구경을 하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오락 시간이었다.
봄에는 복숭아꽃, 여름에는 연꽃, 가을에는 국화, 겨울에는 매화.
근래 가을에 들어서니 국화가 활짝 피어났다.
오랫동안 잠자코 있던 장양후 숭준은 최근 들어 꽃구경을 자주 다녔다.
호국 공주에게 흠씬 혼쭐이 난 뒤로, 그는 저택에서 한동안 요양했어야 했다.
시간이 지나자 제경 귀공자와 소저들이 자신을 잊었을까 걱정된 건지, 아니면 호국 공주에게 맞아서 겁먹었다는 오해를 받을까 두려운 것이지 초대장을 나눠주며 제경의 수많은 귀공자와 소저들을 꽃구경 연회에 초대했다.
태후의 남첩인 그는 준수한 외모로 태후의 비위를 잘 맞춰 주어 장양후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고귀한 귀족들은 그를 낮잡아 보고 있었다.
숭준이 호국 공주에게 호되게 당한 뒤, 태후는 그에게 보상이라도 하듯이 더욱 총애했다. 각종 비싼 약재를 하사한 것은 물론, 자주 그를 궁으로 불러들여 달래 주었다. 그 과정에서 귀한 옥과 골동품을 얼마나 주었는지 모른다.
숭준은 태후의 총애를 등에 업고 제멋대로 궁을 드나들었기에 평소 그를 무시하던 귀공자와 소저들도 그의 초대를 무시할 수 없었다.
구월 십팔 일, 장양후의 저택은 또 떠들썩해졌다.
이번은 숭준이 구월에 들어서서 귀족 공자와 소저들을 저택으로 부른 두 번째 연회였다. 중양절(重陽節) 전에 이미 연회를 한 번 치렀었다.
그때 왔던 사람들과 이번에 온 사람들은 다 달랐는데 오직 2황자 야모침만이 두 번의 연회에 모두 참석한 사람이었다.
국화원은 떠들썩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이 진심으로 왔든, 초대를 거절할 수 없어 왔든, 정원에서는 공자와 소저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시를 읊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들은 제경에서 요즘 일어난 일들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국화원에서 좀 멀리 떨어진 조용한 정자에는 야모침과 숭준이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비단 장포에 옥패를 차고 있어 귀티가 흘렀다.
황족 출신인 야모침에게는 황자의 귀티가 흘렀고 숭준의 준수한 얼굴에는 풍류스러움이 흐르고 있었다. 확 핀 얼굴이 그동안 얼마나 잘 지냈는지를 보여주었다.
둘은 각자 찻잔을 들고 얘기를 나누었다. 그 광경은 아주 온화하고 따뜻해 좋은 친구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사실은 그저 같은 이익을 둔 동맹 관계일 뿐이었다.
“대인, 이번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야모침이 담담하게 말했다.
“안 그러면 야소숙을 단죄하기 어려웠을 텐데 말입니다.”
사람들은 장양후 숭준이 태후의 남첩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숭준이 그저 준수한 얼굴로 태후의 총애를 산 것만 알지 그에게 다른 능력이 있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숭준은 다른 사람의 필체를 완벽할 만치 따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야모침은 서신을 황제에게 바칠 때, 황제가 야소숙을 바로 잡아 와 죄를 물을 거라고 생각했다. 적국과 왕래한 일이 밝혀지면 야소숙은 틀림없이 죽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무백관의 만류로 황제는 결정을 바꾸었다.
야모침은 시간을 끌면 일이 틀어질까 겁났다. 이 일을 황후나 한씨 가문에서 알게 된다면 그는 야소숙을 음해했다고 몰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야소숙은 죽는다고 해도 그를 끌어내려 함께 지옥으로 갈 것이다.
황후와 한씨 가문의 세력으로 야모침을 죽이지 못해도 그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었다.
숭준이 그를 찾아왔을 때만 해도 야모침은 망설이고 있었다.
숭준은 태후의 사람이고 태후는 여태까지 야소숙을 지지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야모침은 숭준의 의도를 의심했다. 하지만 숭준이 직설적으로 야홍릉의 네 장군을 죽이고 싶다고 말하며 야모침을 설득했다.
“전 이번 일이 선왕 전하가 꾸민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태후마마께는 조금도 티를 내지 않았습니다. 이걸로 제 성의가 부족합니까?”
이건 성의기도 하지만 협박이기도 했다.
만약 야모침이 그와 손잡지 않는다면 그는 야모침이 야소숙을 고발한 일을 태후와 황후에게 알릴 것이다. 황후와 한씨 가문은 지금 황제의 감시를 엄격하게 받고 있지만 태후는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고 야모침은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숭준은 적국과 내통한 비밀 서신을 가짜로 작성했다.
거기에 연루된 사람은 야소숙을 제외하고도 나심과 봉양이 있었다.
두 번째 서신이 궁에 들어가자 황제는 그걸 보고 크게 화를 냈다. 그는 즉석에서 나신과 봉우를 같이 천뢰에 잡아넣으라고 명했다.
그리고 신은전에 지시를 내려 봉양과 나심더러 빨리 돌아오게 하라고 했다.
황제는 원래부터 적과 내통하는 것과 역모를 꾀하는 것을 가장 큰 죄로 여겼다.
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진짜 범인 한 명을 놓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황제는 조사도 해보지 않고 야홍릉의 장군들을 천뢰에 넣은 것이다.
증거도 없이 그럴 기미만 살짝 보였더라도 황제는 절대 참지 않았을 것이다.
나심, 봉양은 지금 변방에서 야소숙과 함께 있었다.
그곳은 제경과 멀리 떨어져 있기에 셋이서 정말 손을 잡고 뭔가를 벌인다면 황제는 그 결말을 생각하기도 겁났다.
숭준과 야모침은 황제의 이런 심리를 이용해 음해한 것이었다.
때마침 야홍릉이 제경에 없기에 누구도 그들을 위해 나서주지 않을 것이니 좋은 기회였다.
“봉양과 나심은 이미 돌아오는 길입니다.”
숭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의 미소는 음산하기만 했다.
“이 두 장군의 협조가 없으면 야소숙은 곧 전쟁에서 질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다시 불을 지핀다면 야소숙은 분명 죽게 될 것입니다. 전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야모침은 술을 마시고 담담하게 말했다.
“대인은 그 네 장군에게 무슨 원한이라도 있습니까?”
“원한은 없지요. 전하를 도와드리는 이유는 야홍릉의 양 날개를 꺾어버리려는 것입니다. 그렇게라도 제 억울함을 풀어야겠습니다.”
숭준이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모침은 침묵에 잠겼다.
옛 사람들은 군자에게는 밉보이는 한이 있더라도 소인배를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
숭준이 바로 그 말을 증명하는 산 증인이었다.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
“이번 일이 들통나면 대인과 저는 모두 죽습니다.”
2황자에게 ‘대인’이라고 불리자 숭준은 기분이 좋았다.
그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황자면 뭐해? 이익 앞에서 똑같이 나에게 굽신거리는 것을.’
“전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하만 저를 배신하지 않는 한, 전 이 일을 무덤까지 가지고 가겠습니다.”
숭준이 웃으며 말했다.
야모침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숭준은 언제든지 사람을 물 수 있는 독사 같은 존재였다.
그가 지금 다른 사람을 무는 것처럼 나중에 언젠가 그를 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전하께서 파견한 사람들이 정보를 가지고 왔습니까? 호국 공주의 소식이 있던가요?”
숭준이 시선을 들고 물었다.
야모침은 고개를 젓고 술잔을 가볍게 흔들었다.
“누군가 첩자들 옆을 맴돌며 소식을 알아보지 못하게 막고 있습니다. 그래서 알아내기 쉽지 않습니다.”
이 사실이 떠오를 때마다 야모침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야홍릉은 측근 시위 한 명만 데리고 제경을 떠났다.
그러나 그녀는 제경을 떠나자마자 실종되었다. 야모침 뿐만 아니라 야정연도 지금 그녀의 행적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녀가 어디에서 뭘 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숭준이 침묵을 지키다 말했다.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 7공주가 이걸 알고 돌아오기 전에 그 네 명을 해치워야 합니다. 안 그러면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될 것입니다.”
그는 또 음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한씨 가문의 서자도 빨리 해치웁시다. 너무 거슬립니다.”
한경백.
야모침은 한경백에게 크게 관심이 없었다.
‘서자가 무슨 일을 한다고 그래? 그저 공주의 측부라는 명의뿐이지. 숭준도 마찬가지지. 다 여자를 등에 업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남첩일 뿐이야.’
야모침은 숭준이 어떻게 자신이 한 짓인지 알게 되었는지가 더 궁금했다.
그는 침묵을 지키다 담담하게 물었다.
“대인, 어떻게 이번 일을 알게 되신 건지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야모침은 이번 일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의 저택의 심복들도 잘 알지 못했다. 황제가 직접 대신들에게 말하지 않은 이상, 알고 있는 사람이 없어야 했다. 다른 사람의 감시를 받는 듯한 기분은 사람을 불안에 떨게 했다.
그래서 야모침은 한시라도 빨리 그 답을 알고 싶었다.
그가 숭준에게 약점이 잡히지 않았다면 2황자인 그가 어찌 굴욕스럽게 노리개와 손을 잡겠는가?
숭준이 웃으며 말했다.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