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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179)화 (18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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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화 미인의 눈물

사청의는 장부를 보면서 주판을 움직이고 있었다.

가게에는 주판알이 튕기는 소리가 듣기 좋게 울려 퍼졌다.

비단 장포 남자는 화가 났으나 곧바로 화를 가라앉히며 말했다.

“사 사장, 굳이 내가 험하게 나와야겠소?”

“험하게 나오든, 부드럽게 나오든 안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오.”

사청의의 점잖은 목소리가 잔잔하게 들렸다.

“객잔은 작은 가게이니 망가진 탁자와 의자의 값을 배상해 주고 가시오.”

장포 남자가 말했다.

“열 배로 배상해 드리지.”

“그럴 것은 없소. 나는 손님에게서 돈을 떼먹지 않소.”

사청의가 담담하게 말했다.

비단 장포도 평범한 사람이 아닌 듯했다. 객잔을 깨부순 기세를 보니 절대 일반인이 아니었다. 그는 화를 가라앉히고 잘 얘기해 보려고 하는 듯했다.

어쩌면 차분한 사청의 앞에서 화를 낼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은 참지 못하겠는지 비단 장포 남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음산한 말투로 말했다.

“사청의, 내가 정말 아무 짓도 못 할 것 같아?”

사청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개를 들지도, 시선을 주지도 않았다.

심지어 주판알을 튕기는 속도도 느려지지 않았다.

“나는 서릉과 거래를 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소. 그러니 원(袁) 공자, 이만 돌아가 주시오.”

그러자 비단 장포 남자는 안색이 변했다.

“내 신분을 알고 있소?”

‘서릉이라고?’

야홍릉은 용수를 돌아보았다. 용수는 그녀의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

“애비.”

야홍릉은 싸늘한 표정으로 경고의 눈빛을 보냈다.

용수는 더 이상 함부로 하지 못하고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분은 서릉의 황자입니다. 사청의의 마장이 개인 소유인 줄 알고 전쟁용 말을 사려는 것입니다.”

그는 한결같이 평온한 어조로 말했지만 야홍릉은 그의 말에서 섬뜩한 한기를 느꼈다.

‘서릉이 왜 이 시점에 전쟁용 말을 사는 거지?’

야홍릉은 고개를 돌려 용수를 바라보았다.

저도 모르게 그 꿈이 떠올랐다.

‘전생의 이때에는…… 아니지, 이보다 더 전에 금국은 나한테 패배한 뒤, 남성국의 도움을 받지 못하자 서릉에 협력을 권했지. 조건으로 내 초상화를 주었고.’

서릉의 황제는 난폭하고 잔인한 사람이었다.

그는 미인을 학대하고 무너트리는 것을 좋아했다.

심지어 그는 남녀를 가리지 않았다.

이 소식을 들은 헌원용수는 크게 화를 내며 서릉을 공격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전쟁터에 있는 그녀를 놀라게 할까 두려워 다른 방법으로 서릉을 상대했다.

‘그래서…… 서릉이 지금 전쟁용 말을 사는 건 금국과 협력하기로 결정한 건가?’

야홍릉은 고개를 저었다. 초상화 일은 헌원용수에게는 서릉을 멸망시키고 싶을 정도로 큰일이었지만 서릉의 황제는 여인 한 명 때문에 큰 대가를 치르면서 도움을 줄 이유가 없었다. 그가 원하는 이득은 절대 야홍릉 한 명뿐이 아닐 것이다.

“사 사장, 주제 파악을 못하는군.”

원 공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나도 오늘 빈손으로 온 것은 아니오. 사 사장에게 선물을 준비했지. 사 사장이 그걸 보고도 지금처럼 침착할지 궁금하오.”

말을 마친 그는 손뼉을 쳤다.

그러자 밖에서 여인 한 명이 걸어왔다.

여인은 아주 어여쁘고 가냘팠다.

작은 얼굴에 투명하도록 하얀 피부를 가진 그녀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더욱 하얗게 보였다.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인은 아주 불쌍해 보였다.

스무 살이 되어 보이지 않는 그녀는 바람이 불면 쓰러질 것 같이 연약해 보였다.

“낭군님…….”

야홍릉은 미간을 찌푸린 채, 사청의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주판을 튕기던 손이 드디어 멈추면서 사청의는 느긋하게 시선을 들었다.

평온하게 여인의 얼굴을 본 그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난 오랫동안 여색을 멀리했소. 원 공자, 선물은 고마우나 마음만 받겠소.”

이 말에 원 공자의 안색이 변하며 표정이 어두워졌다.

여인의 얼굴에 남아 있던 핏기가 사라지며 눈가로 눈물이 떨어졌다.

그녀는 큰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입술을 깨물었다.

미인의 눈물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기 딱이었다.

용수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그는 전음하는 방식으로 은밀하게 지시를 내렸다.

[청의, 저자의 요구에 응해라.]

장부를 펼치던 사청의의 손끝이 멈추더니 시선이 장부에 닿았다. 그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원 공자가 정말 이 거래를 하고 싶다면 안되는 것도 아니오. 다만 요구 조건이 있소.”

비단 장포 남자는 그 말을 듣더니 가능성이 보이는 것 같아 얼른 말했다.

“말하시오.”

사청의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옆에 있는 여인을 죽인다면 전쟁용 말 삼만 필을 팔겠소.”

‘뭐라고?’

원 공자는 안색이 변하며 믿을 수 없는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여인도 사청의가 이런 조건을 내걸 줄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듯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

“낭군님…….”

당황함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창백한 얼굴에 슬픈 표정이 드러났다.

그러나 그녀는 부르기만 할 뿐, 다른 말 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 모습이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옥죄었다.

객잔 안은 정적에 잠겼다.

사청의는 눈을 내리깔고 여유롭게 주판을 튕겼다. 여인의 부름에도 전혀 당황하거나 속상한 눈치를 보이지 않고 볼일을 열심히 보았다.

심지어 원 공자가 그의 조건을 받아들일지도 전혀 관심이 없는 듯했다.

“진심이오?”

비단 장포 남자는 침착함을 되찾은 뒤,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이 여인은…….”

“받아들일 거라면 그대로 하시고.”

사청의는 그의 말을 잘랐다.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면 그 여인과 함께 나가주시오.”

그 말을 들은 여인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낭군님, 정녕 저를 이렇게 모질게 대하실 것인가요?”

원 공자도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는 사청의를 협박하려고 이 여인을 데려온 것이었다.

그런데 일이 그의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게 아닌가?

그는 사청의가 이 백(白) 낭자를 풀어달라고 말할 줄 알았다.

그런데 죽이라고 한다고?

‘이, 이럴 수가?’

“사 사장.”

원 공자는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다.

“사 사장이 내건 조건이 백 낭자를 죽이는 게 맞소?”

사청의는 고개를 들고 싸늘한 시선으로 말했다.

“원 공자, 나이도 젊은 분이 귀가 멀었소? 내 조건은 이것 하나요. 원 공자가 직접 이 여인을 죽인다면 나는 바로 원 공자에게 말을 팔 것이오. 그러지 못하겠다면 영업을 방해하지 말고 이만 나가 주시오.”

그는 아주 명확하게 말했다.

원 공자와 백 낭자, 그리고 다른 시위들도 똑똑히 들었다.

그 순간, 야홍릉은 눈물을 흘리던 여인이 불안하고 겁먹은 표정을 지은 채, 뒷걸음질 치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이곳을 아주 떠나고 싶은 듯했다.

원 공자는 사청의를 한참이나 뚫어지게 보더니 그가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놀리는 것도 아님을 확신했다.

여전히 사청의가 왜 이러는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는 고개를 돌려 백 낭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백 낭자, 상황이 이러하니…….”

“안돼요. 절 죽이면 안 돼요.”

백 낭자는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끊임없이 뒤로 물러갔다.

그러나 뒤에서 시위가 길을 막고 있어 그녀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의 표정이 더욱 겁에 질렸다.

“낭군님, 절 죽이지 말아요. 안 돼요…… 원소(袁昭), 날 죽이면 황후마마가 가만둘 것 같아? 나, 나는 공…… 억!”

극심한 고통과 함께 눈물을 머금은 눈이 커다래지며 초점이 점점 흐릿해졌다.

그녀의 가냘픈 몸이 털썩 바닥에 쓰러졌다.

새하얀 목덜미에 무시무시한 칼자국이 났다.

유약한 미인은 이렇게 주검이 되고 말았다.

가게 안에 정적이 감돌았다. 원소는 비수를 거두고 말없이 비수의 핏기를 닦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사청의의 방향을 바라보았다.

“사 사장, 지금 거래를 시작해도 되겠소?”

서릉에 꼭 필요한 전쟁용 말을 살 수 있는데 여인 한 명이 죽는 게 뭐가 대수겠는가?

‘사청의가 신경 쓰지 않는데 내가 신경 쓸 필요는 더욱 없겠지.’

사청의는 마지막 수입을 계산하고 주판을 옆으로 밀어 놓은 뒤, 장부를 덮었다.

그리고 찻주전자를 들어 자신의 찻잔에 부어 느긋하게 마셨다.

그러고 난 뒤에야 시선을 들고 물었다.

“원 공자, 당신이 방금 죽인 여인이 누구인지 아시오?”

원소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저 궁녀일 뿐이지 않소?”

백 낭자는 사청의가 오래전에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자세한 상황에 대해서 원소는 그때 어렸기에 잘 모르고 있었다.

그저 사청의와 백상(白霜) 낭자와 사귄 적 있다는 것만 알았다.

‘백상은 황후마마가 아끼고 신임하는 궁녀이지. 하지만 그래도 그저 궁녀일 뿐이야.’

방금 그는 그저 사청의의 갑작스러운 조건에 당황하여 망설인 것뿐이지 궁녀 한 명을 죽이는 것은 그에게 아무 일도 아니었다.

돌아가서 황후에게 상황을 설명하면 그만이었다.

전쟁용 말과 연관된 일이니 황후도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사청의는 고개를 젓고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

“참 안타깝게 되었소. 이 여인은 황후의 친딸이오. 진짜 이름은 원상(袁霜)이지.”

사청의는 눈썹을 치켜세우고 담담하게 말했다.

“원소, 당신은 큰 사고를 친 거요.”

그 말에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원소는 표정이 굳은 채, 딱딱하게 말했다.

“그럴 리 없어.”

사청의는 한숨을 내쉬고 동정 어린 말투로 말했다.

“그럴 리 있는지, 없는지는 돌아가서 황후에게 물어보시오. 거래야 이삼일 늦게 해도 상관은 없으니.”

거래에 성공하면 또 어떻겠는가?

적공주를 살해한 죄명은 그 어떤 공으로도 지울 수 없었다.

“사청의.”

원소는 이를 악물고 어두운 얼굴로 물었다.

“감히 날 놀려?”

‘놀린다고?’

놀린다는 말은 사실 너무 약한 표현이었다.

정확히는 음해했다는 게 맞는 말이었다.

지켜보던 야홍릉은 사청의의 수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사청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평온한 표정으로 말 몇 마디를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원소가 서릉의 적공주 원상을 죽이게 하는 데 성공했다.

‘잠깐, 원상? 원소?’

야홍릉은 놀란 표정으로 용수를 돌아보았다.

용수는 싱긋 웃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야홍릉의 손을 잡고 1층으로 내려가 정원에 들어갔다.

“저 사람은 서릉의 황자 원소입니다. 가장 총애받는 막내 황자이지요.”

용수가 말했다.

“가장 총애받는 황자? 그런데 제 여동생도 모른다고?”

야홍릉은 미간을 찌푸렸다.

“원상의 신분은 서릉 황후의 비밀과 연관되어 있어 서릉의 황족 중에서도 황후의 몇몇 심복만 알 뿐입니다. 사청의는 예전에 원상과 사귄 적이 있지만 그건 다 원상이 꾸민 계략에 걸려든 것입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원상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거지요.”

야홍릉은 침묵에 잠겼다.

“원소가 가장 총애받는 황자라면 실수로 공주를 죽인 것쯤은…….”

“서릉의 황제는 난폭하고 정무를 잘 보지 않아 조정은 황후의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손에 있습니다. 그래서 원소가 황제의 총애를 받아도 소용이 없지요. 황후가 그를 죽이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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