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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171)화 (17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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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화 황제도 건드리지 못한다고?

이 말에 사람들은 다른 화제를 접어 두고 깜짝 놀란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제서야 다들 동제의 공주가 능씨일 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게, 동제는 영씨의 것이 아닙니까? 언제 성이 다른 공주가 나타난 것입니까?”

“봉왕 전하, 저희를 속인 것은 아닙니까?”

“남성국 귀족에는 가문이 청렴하고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여인들이 많습니다. 봉왕비는 남성국 황성의 세가에서 고르셔야지, 타국에서 고르시면 안 됩니다. 봉왕 전하, 잘 생각해 보시고 현명한 판단을 내려 주십시오.”

남첩이라는 유언비어와 공주, 군주의 따귀를 때린 일은 끝난 셈이었다.

사람들은 초점은 야홍릉의 신분에 맞추어졌다.

용수는 의자에 앉은 채,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대나무 꼬치로 신선한 복숭아를 찍어 야홍릉의 입가로 가져갔다.

“애비, 아 하세요.”

야홍릉은 그를 흘겨보더니 말없이 입을 벌리고 과일을 받아먹었다.

그리고 꼬치로 또 복숭아를 찍어 용수의 입가에 가져갔다.

“먹거라.”

용수는 미소를 지으며 받아먹고는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애비, 감사합니다.”

다 먹은 그는 시녀더러 물을 떠 오라고 했다.

손을 씻은 그는 접시에서 탐스러운 포도를 집고 껍질을 발라 야홍릉의 입가로 가져갔다.

“애비.”

야홍릉은 순순히 받아먹고는 또 그에게 발라주었다.

“먹거라.”

대전 안은 서서히 조용해졌다.

모두들 이상한 눈빛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괴물이라도 보는 듯한 눈치였다.

여인들도 서로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헌원 황제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황후.”

그는 의자 손잡이를 잡고 일어났다.

“여인들을 데리고 편전으로 가서 앉게. 시간도 늦었으니 얘기는 내일 하자고. 먼저 식사를 시작하지.”

황후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궁녀들은 눈치 빠르게 술과 음식을 올렸다.

타원형 모양의 커다란 연회 식탁에 갖은 산해진미가 올랐다.

여인들은 하던 생각을 멈추고 황후와 함께 편전으로 가려고 일어섰다.

떠나기 전, 황후가 웃으며 말했다.

“용수, 이 낭자도 내가 접대하마.”

“황후마마, 감사합니다.”

말을 마친 용수는 고개를 돌려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편전에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저와 함께 앉아 있겠습니까?”

표정이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남자처럼 부드러워 듣는 사람들은 낯이 간지러운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 말이 봉왕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봉왕의 차가운 표정을 십 년 전에도 본 적이 있었고 남성국으로 돌아온 뒤, 보름 동안에도 줄곧 사람들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그들이 언제 봉왕의 온화한 모습을 보았겠는가?

그래서 갑작스러운 부드러운 모습에 소름이 돋은 것이다.

야홍릉은 잠깐 침묵을 지키다 담담하게 말했다.

“황후마마와 함께 앉으마.”

용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온화하게 말했다.

“누가 애비를 괴롭힌다면 마음껏 혼내주십시오. 뒷수습은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야홍릉이 대답하기도 전에 황후가 웃음을 터뜨렸다.

“용수 너도 참. 누구도 능 낭자를 괴롭히지 못하게 내가 지켜주마.”

용수는 사람들 앞에서 담담하게 말했다.

“저는 묵백 대제사의 제안대로 동제와 통혼을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동제의 황제가 새로 책봉한 평양 공주는 제가 맞아들인 아내입니다.”

말을 마친 그는 헌원 황제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할아버지, 동제에 서신을 보내셔서 이 일을 동제 황제 영린에게 알리십시오.”

‘남성국과 동제가 통혼한다고?’

사람들은 의아했다.

남성국은 다른 나라와 통혼한 선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남성국은 강하기 때문에 굳이 다른 나라와 손을 통혼할 필요도 없었다.

‘봉왕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것이지?’

황제는 이번 일이 용수가 천하를 통일시키려는 계획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이미 결정을 했고 묵백도 네 결정을 지지하니 짐도 허락한다.”

용수는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이 화제는 두어 마디로 끝이 나고 말았다.

사람들은 이 혼사에 대한 불만과 야홍릉 신분에 대한 의심을 접었다.

남자들은 주전으로 자리를 옮겨 식탁 앞에 앉았고 황후는 비빈과 여인들을 데리고 편전으로 걸어갔다.

황후와 비빈들의 나이는 모두 적지 않았다. 가장 젊은 사람이라고 해도 마흔 살 정도였다. 관리를 잘한 덕에 나이보다 젊어 보이나 점잖고 우아했다. 소녀들처럼 충동적이고 조급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야홍릉을 보는 눈빛도 노골적이지 않았다.

“능 낭자, 앉게.”

황후가 웃으며 온화하게 말했다. 말을 마친 그녀는 상석에 앉았다.

“오늘은 가족 연회이니 다들 편히 앉게.”

비빈과 종친의 귀부인들은 ‘네’라고 대답한 뒤, 각자 신분에 따라 양옆에 순서대로 착석했다. 그리고 나이가 어린 소저들도 자리에 앉았다.

야홍릉은 아무 자리나 찾아 앉았다.

그녀는 이렇게 떠들썩한 자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목국의 황궁에서도 이런 연회에서는 홀로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녀의 성격을 아는 사람들은 누구도 그녀를 방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헌원용수의 집에 온 것이었다. 야홍릉은 그를 따라 궁에 들어오기로 마음먹었기에 이런 장소에서 그의 체면을 깎을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황후의 말대로 고분고분 자리에 앉은 것이었다. 그러나 싸늘한 표정에 나이가 어린 종친 소녀들은 저도 모르게 그녀를 힐끔힐끔 훔쳐보았다.

진녕 공주는 신분이 높아 야홍릉과 좀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았다.

그녀는 가끔씩 야홍릉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내며 언짢은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능 공자…… 아니, 능 낭자.”

야홍릉의 옆에 앉은 소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말 동제의 공주세요?”

야홍릉은 그녀를 힐끗 보더니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동제의 황족은 영씨잖아요?”

“동제의 황제가 절 누님으로 모시겠다고 했어요.”

소녀는 깜짝 놀랐다.

‘황제가 누님으로 모시겠다고 했다고?’

다른 여인들도 소리 없이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봉왕이 저택에 보름 동안 꽁꽁 감춰둔 남첩이 여인일 거라고 예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봉왕이 직접 정실이라고 인정하다니.

방금 대전에서 그들은 봉왕이 야홍릉을 ‘애비’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이 호칭은 단수 연인 사이에서 부르는 애칭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애비’는 정말 아내를 지칭하는 ‘애비’였다.

‘이 낭자는 인상이 너무 차가운데.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겠어. 이런 사람이 황후가 된다면 우리들이 살기 너무 힘들지 않을까?’

야홍릉은 고개를 숙이고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훑어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관심이 없는 듯했다.

사실 야홍릉에게 따귀를 맞은 진녕 공주를 제외하고 다른 여인들은 야홍릉의 존재에 큰 적의를 품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헌원 황족의 여인들로 집안의 여식도 모두 황족 혈통이라 봉왕비가 될 수 없었다. 그래서 봉왕이 황위에 오른다고 해도 그들의 딸은 궁에서 비빈이 될 수 없었기 때문에 딱히 악감정도 없었다.

거기다 봉왕의 경고와 만만치 않아 보이는 야홍릉 때문에 연회는 무사히 진행되었다.

소녀들은 생각이 깊지 못했다. 그러나 황후와 비빈들은 생각에 잠겼다.

‘이 여인이 정말 봉왕이 연모하는 여인인가? 그렇다면 나중에 황후가 된다고 해도 다른 여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할 텐데. 타국의 여인이니 말이야.’

아무리 고귀한 공주라도 동제와 남성국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남성국에 기댈 가족이 없으니 그녀는 다른 여인들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봉왕이 아무리 그녀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녀 때문에 후궁을 비워두지는 못할 게 아닌가? 신하들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고 다른 귀족 가문에서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는 없는 듯했다.

“능 낭자, 정말 봉왕과 혼인했어요?”

서른 살쯤 되어 보이는 아름다운 여인이 시선을 들고 호기심 어린 어조로 말했다.

“그럼 우리는 지금 능 낭자를 ‘봉왕비’라고 불러야 하는 거 아닌가요?”

“혼인을 했다고 해도 밖에서 한 일이지 않습니까? 남성국 사람들 중 누가 보기라도 했대요?”

진녕 공주가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봉왕비? 봉왕부의 안주인은 그렇게 아무나 되는 게 아닌데.”

야홍릉은 그녀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아름다운 여인에게 말했다.

“호칭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능 낭자라고 하시면 돼요.”

말을 마친 그녀는 찻잔을 들고 우아하게 마셨다.

진녕 공주를 완전히 무시했다.

진녕 공주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봉왕비가 된다면 어른을 존중하는 예의부터 배워야겠네요. 그러지 않으면 봉왕부의 체면뿐만 아니라 동제 황족의…….”

“어른을 존중하라고 하셨나요?”

야홍릉은 시선을 들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른이 자신을 가리키는 거라면 굳이 존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한테 다시 맞고 싶지 않다면 그 입을 간수 잘하는 게 좋을 거예요.”

그리고 그녀는 차갑게 눈썹을 치켜올렸다.

“전 성격이 좋지 않아요. 동제의 황제조차 절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데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존중해달라는 건가요?”

그 말에 다른 여인들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진녕 공주도 안색이 퍼레졌다.

“너…….”

“그만!”

황후는 미간을 찌푸린 채, 언짢은 얼굴로 진녕 공주를 바라보았다.

“나이가 얼만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이냐?”

진녕 공주는 화가 나 입술을 깨물었다.

황후는 생각에 잠겼다.

‘동제의 황제도 건드리지 못한다고? 이건 무슨 뜻이지?’

사실 야홍릉은 딱히 무슨 의미를 가지고 한 말이 아니었다.

그저 심각하게 생각하기 좋아하는 여인들이 그녀의 말을 듣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여 그녀에 대한 관심을 꺼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원래 그녀는 ‘용수도 날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라고 하고 싶었으나 태자의 위엄을 건드리는 것은 경우가 아닌 것 같아 말을 바꾼 것이었다.

황족 연회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식사를 마친 사람들은 모두 물러갔다.

황제는 용수와 야홍릉더러 남으라고 하고 사람을 시켜 묵백 대제사를 불러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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