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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167)화 (168/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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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화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그들이 감탄하고 있을 때, 봉왕이 마차에서 내린 뒤, 자리를 뜨지 않고 돌아서서 문발을 젖히는 것을 보았다.

봉왕은 다른 한 손을 마차 안으로 내밀었고, 소녀들은 놀란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하얗고 가는 손이 봉왕의 손에 얹히더니 허리를 숙인 소년이 마차 안에서 나왔다.

그는 봉왕의 부축을 받으며 마차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다.

종친 공자와 군주들은 고개를 번쩍 쳐든 채로 저도 모르게 그곳을 바라보았다.

마른 몸매에 어두운 빨간색 장포를 입은 소년이 마차에서 내렸다.

새하얀 피부에 차가운 표정을 한 소년은 머리를 뒤로 묶어서 깔끔한 인상을 풍겼다.

그러나 그에게서는 남첩의 온화한 기운이나 고혹적인 매력이 보이지 않았다.

하얀색 경포를 입은 용수와 함께 서 있으니 누가 더 아름다운지, 누구의 기운이 더 강한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소녀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의아한 생각에 잠겼다.

‘이 공자가 바로 봉왕부에서 보름 동안 나온 적이 없는 봉왕의 ‘남첩’이란 말인가?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얼굴이 곱상하게 생긴 것 말고 어디를 봐서 남첩 같다는 거지? 하지만 정말 아무 사이가 아니라면 봉왕이 직접 부축해서 마차에서 내리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야홍릉은 마차에서 내린 뒤, 용수와 함께 궁문의 방향으로 걸어갔다.

정려와 시위들도 그들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바로 이때, 다른 마차가 다가왔다.

옆에 있던 여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녕(晉寧) 공주의 마차야.”

용수는 진녕 공주가 누구인지 관심이 없었다.

야홍릉은 더욱 그랬다.

둘이 궁 문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봉왕 전하.”

용수는 걸음을 멈추고 야홍릉을 돌아본 다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녕 공주는 할아버지의 여식이자 제 어머니의 언니 되십니다. 본래 제가 이모라고 불러야 하나 헌원 성씨를 수여 받은 뒤로는 고모라고 부릅니다.”

야홍릉은 고개를 끄덕였다.

용수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저 여인은 예전에 저희 어머니가 제사전의 성녀로 뽑힌 것을 질투했습니다. 나중에는 어머니의 아들인 제가 할아버지와 함께 남제에서 돌아와 태자로 책봉된 것을 질투했지요. 아마도 그때 자신이 성녀로 뽑혔다면 지금 태자 자리도 자신의 아들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그러니…….”

용수는 몸을 낮춘 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들 앞에서 태자의 위엄을 부려야 하나 그렇다고 웃어른께 무례를 범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만약 저 여인이 절 괴롭힌다면 주인님께서 저를 좀 지켜주십시오.”

열심히 용수의 말을 듣고 있던 야홍릉은 장난기 섞인 마지막 말에 그를 흘겨보았다.

그녀의 눈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네 말을 누가 믿어?’

용수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행동은 순식간에 끝났지만 계속해서 그를 지켜보던 공자와 군주들은 표정이 굳고 말았다.

이때, 날카로운 호통 소리가 들렸다.

“용수, 지금 뭐 하는 겁니까?!”

화려한 마차가 멈추더니 화려한 옷차림을 한 중년 여인이 내렸다.

그녀는 시녀들에게 둘러싸인 채, 이쪽으로 걸어오더니 차가운 얼굴로 날카로운 말을 내뱉었다.

“태자라는 작자가 사람들 앞에서 풍기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하다니요? 정말 황족의 체면을 다 깎는군요!”

야홍릉이 돌아서서 말했다.

“공주라는 작자가 사람들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니요? 공주다운 품위가 전혀 없군요.”

‘공주다운 품위가 없다’는 말은 야홍릉이 일부러 말을 돌려서 한 것이었다.

그녀는 내심 ‘아낙네’라고 욕을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진녕 공주는 이 말을 듣자 안색이 확 바뀌었다.

“너 방금 뭐라고 했어? 어디서 천한 것이……!”

용수의 표정이 대뜸 차가워졌다. 그가 뭐라고 말을 하려는 순간 짝 소리와 함께 주변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조용해진 것을 발견했다.

바람 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듯했다.

종친 공자와 군주들은 놀라서 눈을 커다랗게 떴다.

“감히 날 때렸느냐?”

진녕 공주는 표정이 굳은 채, 믿을 수 없는 눈길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앙칼진 목소리가 귀청을 찔렀다.

“감히 날 때려? 너 내가 누군지 아느냐? 천박한 남창 주제에…….”

짝!

또 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의 공기는 얼어붙은 것처럼 변했다.

종친 공자와 군주들은 야홍릉에게 시선을 돌리고 믿을 수 없는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저, 저 공자가 방금 진녕 공주를 때린 건가?’

야홍릉은 손을 툭툭 털고 싸늘하게 말했다.

“그쪽이 어떤 신분인지, 어떤 교육을 받고 자랐는지 나와 상관은 없으나 난 원래부터 다른 사람이 욕하는 걸 들어줄 수 없소. 그러니 당신이 스스로 매를 번 것이오.”

‘애비, 너무 멋집니다.’

상황이 심각하지만 않았다면 용수는 야홍릉의 행위에 손뼉이라도 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야홍릉을 볼수록 그는…….

“무엄하구나! 죽고 싶은 게냐!”

진녕 공주는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손을 들어 야홍릉의 따귀를 치려고 했다.

“어디서 천한…….”

용수는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고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고모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내가 뭘 하냐고? 난 이 천한 것을 죽여버리고 싶다!’

진녕 공주는 일그러진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손목이 용수에게 잡혀 꼼짝할 수 없자 그녀는 아픈 나머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너희들은 뭐 하는 것이냐? 눈이 멀었느냐?! 얼른 이 자식을 잡아 때려죽이거라! 내가 오늘 저놈의 살가죽을 발라버리겠다!”

야홍릉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고개를 돌려 용수를 바라보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용수.”

용수는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몸을 흠칫 떨었다.

그는 진녕 공주를 잡은 손을 뿌리치고 고개를 돌려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애비?”

“저 사람이 날 때려죽이겠다는구나.”

미간을 찌푸린 야홍릉은 진녕 공주에게 불만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사실 그녀는 자신의 방금 전 제 목소리에 소름이 돋아 미간을 찌푸린 것이었다.

그녀는 곧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와 말했다.

“알아서 하거라.”

용수는 아직도 야홍릉의 부드러운 모습에서 심취한 채, 헤어 나오지 못했다.

야홍릉의 말을 들은 그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애비,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곳은 저한테 맡기십시오.”

말을 마친 그는 진녕 공주의 뒤에 서 있는 덩치 큰 시녀들을 보더니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진녕 공주는 제가 안 보이시는 겁니까?”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용수는 차가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제 앞에서 제 사람을 때려죽이라 명하다니, 누가 진녕 공주에게 이런 권력을 준 것입니까?”

그가 말을 하자 주변에서 한기가 맴도는 것 같았다.

구경거리가 생긴 줄로 알고 있던 군주와 공자들은 불안한 얼굴로 멀리 떨어져 서 있었다.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두려웠다.

그러나 이 시점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궁에 들어갈 용기는 더욱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목석처럼 제자리에 굳어버린 것이었다.

진녕 공주의 지시를 듣고 야홍릉을 잡으려고 하던 네 시녀는 봉왕의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진녕 공주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용수, 이 고모가 보이기는 합니까? 지금 내 사람이라고 했습니까? 용수의 하인이 감히 저한테 손을 대고 있지 않습니까? 용수의 총애를 등에 업었다고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거만하게 구는데 제가 혼내지 않는다면 제 체면이 뭐가 되겠습니까?”

‘총애를 업고 거만하게 군다고?’

용수는 야홍릉이 그의 세력이 없어도 똑같이 거만하게 굴었을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고모님, 목소리를 낮추십시오.”

용수는 입을 열고 담담한 목소리로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오늘은 황족 연회입니다. 고모님께서는 그래도 제 웃어른이신데 이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면 황족의 체면이 뭐가 되겠습니까? 하인이라고 하셨는데…… 고모님께서 오해하셨습니다. 이분은 제 하인이 아니라 저한테 가장 중요한 사람입니다.”

말을 하는 사이, 또 마차 여러 대가 도착하며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그들은 이 광경을 보고 의아한 표정으로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니 오늘 제 앞에서 이분을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말을 마친 용수는 고개를 돌려 황족 친척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심드렁한 말투에는 짙은 압박감이 담겨 있었다.

“다들 계시니 한마디 하겠습니다. 제 옆에 있는 이분은 성격이 만만치 않습니다. 만약 누가 이분의 심기를 건드려서 얻어맞는다면 스스로를 탓하십시오. 저는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을 것이니 자신의 생사를 알아서 결정하십시오.”

말을 마친 그는 야홍릉의 손을 잡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애비, 가시죠.”

야홍릉은 그를 차갑게 바라보고 ‘응’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진녕 공주를 힐끗 바라본 뒤, 감정이 담기지 않은 싸늘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앞으로 또 누군가 내 앞에서 헌원용수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면 나도 가만두지 않을 것이오.”

말을 마친 둘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돌아서서 궁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안색이 퍼렇게 변한 진녕 공주와 멍한 표정의 다른 사람들을 전혀 상대하지 않았다. 그들이 궁 문으로 들어가자 목석처럼 굳어버린 황족 종친들만 남았다.

‘이분?’

사람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태자가 사람들 앞에서 남첩을 ‘이분’이라고 존칭하다니? 이 건 풍기를 어지럽히는 건 물론이고 황족의 체면을 깎는 행위였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 따귀를 맞고서도 이를 악물고 씩씩거리기만 하는 진녕 공주를 보자 그들은 누구도 속생각을 겉으로 내뱉지 못했다.

그러나 다들 생각에 잠겼다.

‘봉왕이 귀신에라도 씌웠나?’

남성국을 떠난 지 십 년 만에 돌아온 태자에 대해 종친들의 마음은 이미 흔들린 상태였다.

그런데 태자의 위엄을 바로잡고 좋은 명성을 쌓으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수많은 종친 앞에서 남첩을 감싸다니?

그 남첩이 진녕 공주에게 무례를 범하게 내버려 두다니?

게다가 그 남첩은 종친들 앞에서 그들을 협박하기도 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군. 말세야, 말세!’

궁 문 밖의 사람들은 목석처럼 제자리에 굳어졌다.

따귀를 맞은 진녕 공주는 화가 나 몸을 부들부들 떨며 서 있었다. 주먹을 꽉 쥐어서 손톱이 여린 손바닥을 파고 들어갈 지경이었다.

같은 시각.

궁 안으로 들어간 용수는 사람이 없는 곳에 이르자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애비, 너무 대단하십니다.”

“과찬이다.”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봉왕 전하의 세력을 업고 거만하게 굴어본 거지.”

“애비, 굳이 겸손하게 말씀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앞으로 제가 애비의 보호를 바라야겠는데요.”

용수가 낮게 웃으며 말했다.

뒤에서 둘을 바라보는 정려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그녀는 둘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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