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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164)화 (165/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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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화 새끼 늑대

야홍릉은 손으로 그의 머리를 밀치며 담담하게 말했다.

“난 오늘 어디에서 자면 되느냐?”

낮에 그녀에게 침실을 준비해준 사람이 없었고 그녀도 묻지 않았다. 아까까지 서재에 있던 그녀는 책을 들고 이곳으로 들어왔다.

용수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어디서 자냐니요?”

용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야홍릉은 미간을 찌푸렸다.

“애비, 저와 함께 자지 않겠다는 말씀입니까?”

용수는 표정이 바뀌더니 긴장하고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

“저와 자는 게 싫으신 겁니까?”

‘싫은 건 아니지. 좋지 않을 뿐이지.’

야홍릉은 미간을 찌푸린 채, 진짜로 긴장한 것인지, 긴장한 척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거리를 두는 게 좋을 듯한데.”

그들은 이미 함께 잠도 잤고 볼 것도 보았으며 끌어안고 입을 맞추는 등, 할 것은 다 했다. 지금에야 갑자기 거리를 두자고 하기에는 좀 늦은 듯하나 계속 이렇게 같이 잘 수는 없지 않겠는가?

“무슨 거리를 둔다는 것입니까?”

용수는 그녀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싫습니다. 절 버리지 마십시오. 저 혼자 자면 무섭단 말입니다.”

야홍릉은 당황했다.

‘뭐가 무섭단 말이야?’

“전 이미 주인님이 곁에 있는 것에 익숙해졌습니다.”

용수는 고개를 그녀의 목에 묻고 코맹맹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당황하고 불안한 기색이 흘렀다.

“주인님, 절 버리지 마십시오.”

호칭이 ‘애비’에서 ‘주인님’으로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야홍릉은 이상한 표정으로 한참 침묵을 지키다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능묵.”

청년은 고개를 들고 망연한 얼굴로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주인님?”

“오늘 밤 난 편전에서 잘 것이다. 넌 여기서 자거라.”

담담한 말투에서는 단호함이 담겨 있었다.

“내일 새 거처를 마련해다오.”

용수는 눈을 내리깐 채, 꼼짝하지 않았다.

“편전에 침대가 있느냐?”

“…….”

청년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잘생긴 얼굴은 불쌍해 보일 정도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없으면 비단탑에서 자도 된다.”

야홍릉이 대답했다.

“봉왕부는 네 집인데 네가 좋은 곳에서 자야지.”

용수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침대 위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는 야홍릉의 허리를 팔로 감싼 채, 풀 생각이 없었다.

“능묵.”

야홍릉은 그의 얼굴에 시선을 돌렸다.

“내 말을 들은 것이냐?”

“…….”

용수는 여전히 아무 반응도 없었다.

“능묵.”

야홍릉은 손을 빼내어 그의 이마를 쿡쿡 찔렀다.

“지금 내가 얘기를 하고 있지 않느냐?”

“…….”

그는 여전히 아무 반응도 없었다.

“능묵, 헌원용수, 봉왕.”

야홍릉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금 내가 얘기를 하고 있는데.”

청년은 고개를 들고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빨개진 눈시울에 물기가 어려 있었다.

야홍릉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믿을 수 없는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

“이럴 것까지는 없지 않느냐?”

잘생긴 청년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속눈썹에 매달린 물방울은 언제든지 떨어질 것만 같았다. 야홍릉은 입가를 실룩이며 생각에 잠겼다.

‘설마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순진한 이 아이에게 몹쓸 짓을 한 게 아닐까? 왜 나에게 버림받은 표정을 짓고 있는 거지?’

“용수.”

야홍릉이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봉왕부의 하인들을 다 불러서 너의 이 불쌍한 모습을 보여주어야겠느냐?”

용수는 입을 꾹 다문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한참 뒤, 그녀를 침대에 와락 눕히고 입술을 강하게 맞추고 빨았다.

불쌍한 사슴에서 순식간에 난폭한 늑대 새끼로 변한 것이었다.

그는 야홍릉의 모든 것을 가지고 싶었다.

물론, 그의 난폭함은 입술을 탐하는 데서 그칠 뿐, 다른 것은 생각만 할 뿐이었다.

불쌍한 새끼 늑대는 아직 더욱 난폭한 짓을 할 용기가 없었다.

야홍릉은 그에게 덮쳐지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입술이 얼얼할 정도로 빨린 뒤에야 정신을 차린 그녀는 화가 나 용수를 밀치고 싶었지만 새끼 늑대는 그녀의 손을 꽉 움켜쥔 채, 풀어주지 않았다.

그는 야홍릉이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탐욕스럽게 입술을 빨았다.

“용수.”

새끼 늑대는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계속해서 그녀의 입술과 목을 빨았다.

“능묵.”

야홍릉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헐떡이며 말했다.

“네가 감히.”

능묵은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아래에 깔린 여인과 눈이 마주친 그는 바로 눈빛이 온화해졌다. 한참 뒤, 그는 야홍릉을 풀어주고 무릎을 꿇은 채로 일어섰다. 사죄하는 자세였다.

“송구합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인님께서 화가 나셨다면 얼마든지 때려 주십시오.”

야홍릉은 미간을 찌푸리고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야홍릉은 그의 유약한 모습이 진짜인지, 아니면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모습이 진짜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아니면 방금 그 난폭한 모습이야말로 본성이 나온 건가?’

내전 안은 고요하기만 했다.

용수는 시선을 들고 야홍릉의 표정을 훔쳐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표정을 알 수 없는 차가운 얼굴이었다. 빨갛게 부은 입술이 눈에 들어오자 그는 또 입을 맞추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청년은 얌전히 두 손을 내밀었다.

“계척을 가져올까요?”

야홍릉은 싸늘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그의 손바닥으로 옮겼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의 손을 뒤집고 찰싹찰싹 손등을 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손등이 빨갛게 되었다.

용수는 자신의 손등에 서서히 나타나는 손자국을 보더니 활짝 웃었다. 그리고 야홍릉을 와락 끌어안고 침대에 누웠다. 그는 거대한 애완동물처럼 그녀의 몸에 코를 묻고 문질렀다.

“애비, 애비, 애비…….”

그는 부드러운 말투로 달콤한 말을 쏟아냈다.

“전 애비를 좋아합니다. 평생 애비만 연모할 것입니다.”

차갑게 갈라졌던 마음에 따듯한 난류가 흘러 들어오더니 어느샌가 그녀의 마음을 녹여 버렸다. 야홍릉은 그가 안도록 내버려 두었다.

이렇게 실랑이를 벌인 끝에 또 자연스럽게 한 침대에서 자게 되었다.

거리를 두기로 한 일은 새까맣게 잊고서 말이다.

밤이 조금씩 깊어졌다.

달빛이 창문을 지나 내전의 침대에 비춰 들어왔다. 그러자 아름다운 여인을 안고 있는 대형 새끼 늑대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간 것이 보였다.

* * *

팔월이 되었다. 이제 막 황성으로 돌아온 봉왕은 아주 바빴다. 그는 정무를 보고 군영을 순찰하며 또 심복들을 부르기도 해야 했다.

그리고 애비와 감정을 쌓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귀족들 사이에서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그러나 누구도 떠벌리지는 못했다. 세가나 귀족 소저들은 모여 앉아 봉왕과 그의 저택에 있는 신비한 손님에 대해 의논하는 게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그들은 손님이 어떤 사람인지, 봉왕과 어떤 사이인지, 봉왕이 왕비를 간택하는 것에 영향이 있지 않을지가 너무 궁금했다.

그러나 소문이 아무리 무성해도 매일 봉왕부에 처박혀 있는 야홍릉에게는 한마디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용수의 말 때문에 찾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전생과 이번 생 모두 그녀는 갖가지 이유로 전쟁터와 군영에서 긴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여인이나 다른 소저들처럼 집에 박혀 있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남성국에 온 다음부터 그녀는 외부와는 단절한 채, 집에만 박혀 있는 게 어떤 느낌인지 한껏 즐기고 있었다.

하늘에서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온몸이 새하얀 매가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내려와 난간 앞에 앉은 야홍릉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녀에게 마치 도발을 하는 듯했다.

왠지 모르게 야홍릉은 매의 눈에서 불만과 무시를 읽었다.

혹시 매에게 밉보인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을 때, 매는 백옥처럼 예쁜 발을 내밀었다.

그러자 원기둥 모양의 물건이 툭 하고 떨어졌다.

야홍릉이 반응하기 전에 매는 이미 도도한 자세로 아름다운 날개를 움직이며 하늘로 사라졌다.

매의 행동은 네 글자로 표현할 수 있었다.

‘안하무인.’

“…….”

이상한 침묵이 지난 뒤, 그녀는 서신을 묶은 실을 풀었다. 그러자 목국에서 온 기나긴 정보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난간에 기댄 채, 조용히 읽어보았다. 이때, 한팔이 다가오더니 그녀를 품에 안았다. 이윽고 얼굴에 입맞춤 소리가 들리더니 귓가에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애비, 뭘 보고 있는 것입니까?”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긴 정보를 자세하게 읽어본 뒤, 대답했다.

“아까 그 매 말이야, 기분이 안 좋아 보이던데.”

“기분이 안 좋아 보인다고요?”

용수는 고개를 들고 파랗게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매는 이미 모습을 감춘 뒤였다.

“놈, 성격이 있다 이거지. 애비, 매로 한 요리를 드셔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야홍릉은 미간을 찌푸렸다.

“매간 볶음, 훙소 매날개, 매머리 국, 매발 조림…….”

“닥치거라.”

용수는 바로 대답했다.

“네.”

“한씨 가문이 요즘 움직이는 듯하구나.”

야홍릉은 정보를 그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한옥금이 상처가 낫자 제경 귀족 공자들과 어울려 다닌다는구나. 그리고 새 귀족들과 가깝게 지내기도 하고.”

용수는 정보를 받아 들고 침묵을 지킨 뒤, 입을 열었다.

“애비.”

“응? 왜 그러냐?”

야홍릉이 고개를 돌렸다.

용수는 야홍릉이 ‘애비’라는 호칭을 점점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고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목국의 정보를 이렇게 저에게 넘기시는 겁니까?”

그 말을 들은 야홍릉은 잠깐 침묵을 지키다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주지 않는다고 해도 네가 모를 리 있겠느냐?”

용수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모르기를 바란다면 전 모릅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야홍릉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요.”

용수는 아름다운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애비께서 제가 아는 게 싫다면 저도 모르는 척, 넘어갈 수 있습니다.”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용수는 정보를 다 읽은 뒤,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애비께서 한경백을 어산서원에 들이신 것은 현명한 선택을 하신 겁니다.”

“아부 떨지 말거라.”

“이건 좀 억울합니다.”

용수는 고개를 들이밀고 그녀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었다.

“제가 한 말은 다 진심이지, 아부가 아닙니다.”

그는 바로 말을 이었다.

“조정에서 권력이 막대하던 세가가 다시 조정에 영향을 쉽게 줄 수 있는 이유는 배경이 막강하기 때문입니다. 사돈을 맺은 덕에 그들은 곳곳에 친척을 두었고 이익으로 연관되어 있지요. 그들의 힘은 전국적이기에 황권을 뒤집는 경우도 생기는 것입니다.

애비께서 황위를 원하시는 것은 복수 때문이라고는 하나 원한에 눈이 먼 것도 아니고 황위만 차지하면 된다고 생각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그와 반대로 애비께서는 황위에 오르신 뒤, 황권을 강화하고 목국을 강하게 키워 백성들이 더욱 잘 지내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내전이 없고 안전한 목국을 만드는 게 목적이신 거죠. 그러니 제가 애비의 지혜에 감탄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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