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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163)화 (164/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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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화 위엄을 드러내다

대전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단왕은 멍하니 있다가 왼쪽 얼굴에서 극심한 고통이 전해지자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는 화가 나 소리를 질렀다.

“누구냐? 누가 감히 나한테 이런 짓을 한 것이냐? 죽고 싶은 거로구나!”

대신들은 서로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왼쪽의 상석에 앉아 있는 용수에게 시선을 돌렸다.

용수는 차분한 얼굴로 앉아서 술잔을 든 채, 느긋하게 술을 마셨다. 그의 행동은 우아하기 그지없었다.

대전의 종친들 가운데서 준수한 청년이 조용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었다. 물론, 그가 잘생겼다고 해서 뚫어져라 쳐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대신들이 그를 보는 게 당연한 일이 되었다.

“단왕은 어른이고 나이도 많으신데 황족의 얼굴에 먹칠하면 안 되지요.”

용수가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

“저의 손님은 귀한 분이지, 추잡스러운 물건이 아닙니다. 앞으로 누군가 또 그런 얘기를 꺼낸다면 따귀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은 누가 자신을 때렸냐던 단왕의 질문에 대답한 것이었다.

용수는 모든 이들에게 경고를 날렸다.

단왕은 화가 나 퍼레진 얼굴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용수는 시선을 들고 무표정한 얼굴로 대전의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이 말은 이곳에 계시는 모든 이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다 잘 들으십시오. 제 저택에 있는 그분은 저조차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분입니다. 앞으로 제가 그분을 모욕하는 말을 듣는다면 그 사람이 이 황성에서 사라지게 할 겁니다.”

대신들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봉왕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람이라니?’

“이곳에 계시는 분들 대부분이 저한테는 어른이니 제가 예우해야 하는 건 마땅하나.”

용수는 눈을 내리깐 채,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전 남성국의 태자이고 여러분들은 신하임을 잊지 마십시오. 군신의 예의는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제가 떠난 십 년 동안에도 제 자리를 대체하지 못했으니 앞으로는 더욱 생각하지 마십시오.”

용수는 술잔을 들고 차가운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니 고분고분하게 굴어 제 심기를 건드리지 마십시오. 안 그러면…….”

파사삭!

백옥 술잔이 그의 손에서 부서졌다. 대전의 공기는 한겨울처럼 얼어붙었다.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대신들은 ‘고분고분’이라는 말에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술잔이 깨지는 소리를 듣자 불만이 사라지며 바로 조용해졌다.

스무 살도 안 된 청년에게 ‘고분고분하게 굴라’는 말을 들은 나이 든 신하의 기분이 어떠할까?

아주 복잡할 것이다.

그런데 뭐가 달라질 것도 없었다.

“흠.”

승상이 입을 열었다. 그의 말투는 복잡한 기분을 담고 있었다.

“봉왕 전하, 그렇게 화를 내지 마십시오. 자꾸 죽이고 어쩌고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게다가 저희는 나이가 많아 이런 자극을 견디기 힘듭니다. 전하께서 자꾸 협박으로 경고하시니 저희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그의 할아버지인 황제도 나이 든 신하에게 이렇게 심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승상은 젊은이인 그가 좀 더 유하게 나오기를 바랐다.

용수는 잠깐 침묵을 지키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예의 바른 말투로 대답했다.

“네, 승상의 의견 잘 들었습니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단왕의 반쪽 얼굴은 이미 퉁퉁 부은 상태였다. 아픈 것은 둘째치더라도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따귀를 맞았으나 이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고개를 쳐들고 황제를 바라보았다.

“부황께서는 용수가 이렇게 무례하게 굴게 내버려 두실 것입니까?”

“음?”

황제는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잠에서 금방 깬 것처럼 지친 표정이었다.

“누가 무례하게 굴었다는 말이냐?”

단왕은 용수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용수…….”

“용수가?”

황제는 눈썹을 치켜올린 뒤, 느긋한 말투로 말했다.

“오늘 이 자리…… 아니지, 남성국 전체에서 나를 제외하고 용수의 신분이 가장 높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나는 용수가 성인식을 마친 뒤, 퇴위할 생각이다. 그러니 두 달 뒤에는 용수가 남성국 황제가 되겠지. 누가 무례를 범했다는 것이냐? 저 아이가 어떻게 무례를 범했느냐? 누구에게 무례를 범했느냐? 혹시 나이가 많다고, 황숙이라는 신분으로 너희가 저 아이의 기를 누르려고 한 것은 아니냐?”

그 말에 대전의 분위기는 또 한 번 얼어붙었다.

대신들은 흠칫 놀랐다.

“용수의 말이 맞다. 너희는 이 아이의 어른이기는 하나 신하이기도 하지.”

황제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으나 그의 말에는 제왕의 위엄이 담겨 있었다.

“어른이면 어른답게, 너그럽게 굴던가. 나이가 잔뜩 들어서 아이와 기 싸움을 하고 있느냐? 신하는 신하답게, 공손하게 굴어야지. 나이가 좀 많다고 태자의 기를 누르려고 하지 말거라. 그러다 억울함을 당했다고 나에게 찾아오지도 말고.”

그의 말투는 느긋하여 한담하는 것 같았으나 말 속에 담긴 경고의 의미에 사람들은 몸을 흠칫 떨었다.

승상과 청왕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절대 봉왕 전하에게 무례를 범하지 않겠습니다.”

이 둘이 선두를 떼자 다른 사람들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절대 봉왕 전하에게 무례를 범하지 않겠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종친, 대신은 물론 차를 따르는 시녀들도 모두 무릎을 꿇었으나 용수만이 느긋하게 앉아 우아한 자세로 술을 마시며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놀라울 건 없어.’

사람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용수에 대한 황제의 태도는 달라진 적이 없었다.

용수가 아홉 살 되던 해, 헌원 황제는 대제사를 데리고 남제로 가서 그를 데려왔다. 황제는 남성국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용수를 태자로 책봉했고 그 뒤로는 이 일로 불만과 의심을 표시하는 사람들에게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 모든 것은 용수가 직접 문무백관을 설득할 기회를 준 것이었다.

용수가 남성국을 떠난 십 년 동안에도 황제는 태자를 폐위하거나 다른 태자를 세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제사전의 제안을 받아서 황자 중 가장 중시를 받지 못하는 헌원창을 군영에 들여보냈다. 그것 역시 용수에게 쓰일 흑의 기예병을 훈련시키기 위해서였다.

황제는 조정에서나 사적인 자리에서나 승상과 내각의 대신들에게 그와 제사전이 인정한 차기 제왕은 오직 헌원용수라고 못 박아 두었다. 그래서 조정의 권신들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봉왕이 있는 한, 남성국은 다른 사람의 천하가 될 리가 없다는 것을. 그래서 다른 누군가가 역모를 꿈꾼다고 해도 성공하지 못할 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다.

오늘 밤 연회는 이 점을 더욱 강조했다.

단왕은 망신을 당하고도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신분으로 한참 어린 조카에게, 그것도 사람들 앞에서 따귀를 맞는 수모를 당한 적이 없었다.

그는 울분을 속으로 삼켰다.

연회는 해시(亥時, 밤 9시에서 11시)에 끝났다.

황제는 나이가 많아 쉽게 지치기 때문에 연회도 일찍 끝났다. 그는 내관 총관의 부축을 받으며 돌아가서 쉴 준비를 했다. 청왕과 승상은 그와 함께 궁을 나가며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저녁에 있은 일을 너무 언짢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청왕이 온화한 말투로 말을 뗐다.

“단왕의 성격은 줄곧 이러했습니다. 하지만 이것 또한 나쁜 건 아니지요. 적어도 꿍꿍이가 없다는 건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꿍꿍이?’

승상이 웃으며 말했다.

“꿍꿍이가 있든 없든 중요하지 않지요. 봉왕 전하께 무례를 범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용수는 어두운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금쯤이면 애비는 잠들었겠지?’

“전하.”

승상은 고개를 돌리고 용수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왕부의 손님은 어떤 분입니까?”

용수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왜 그러십니까?”

“제 여식이 집으로 돌아온 뒤, 표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승상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하께서 그 아이를 내쫓으라고 하셨다던데 그 아이도 손님께 무례를 범한 것입니까?”

용수는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뭐?’

승상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손님에게 무례를 범한 것도 아닌데 봉왕은 왜 어린애를 그렇게 거칠게 대한 거지?’

승상은 딸의 일을 따지려는 게 아니라 너무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었다.

“제 사람을 빼내려다 들켰습니다. 내쫓길 만하지 않습니까?”

용수는 눈썹을 치켜세우고 궁문을 바라보았다.

“저는 이만 일이 있어 먼저 가보겠습니다. 천천히 돌아가 보십시오.”

말을 마친 그는 궁문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그의 뒤에는 네 명의 시위가 따르고 있었다.

“사람을 빼낸다고?”

승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청왕을 바라보았다.

“무슨 뜻일까요?”

“봉 낭자는 왜 봉왕부로 간 것입니까?”

“그건…….”

승상은 미간을 찌푸렸다.

“계집애들끼리 토론한 결과인 듯합니다.”

그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잘 몰랐다.

“그렇다면 봉왕부의 손님을 만나러 간 것이겠군요. 혹시…….”

청왕은 말을 하려다 말고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승상을 바라보았다.

소녀의 명예가 걸린 일이라 쉽게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봉왕이 그녀가 자신의 사람을 빼 가려 했다고 말한 것을 보면 그 의미가 확실했다.

승상은 표정이 굳었다. 그는 이런 이유일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비비가 돌아온 뒤 자꾸만 누구를 구해내겠다고 한 것이군…….’

* * *

야홍릉은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있었다.

달은 은은하게 빛을 내뿜고 있었다.

용수는 시녀들더러 물러가라고 한 뒤, 내전의 침대 쪽으로 걸어가 스스로 겉옷을 벗고 침대에 올랐다. 그리고 야홍릉을 품에 안은 채, 그녀의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애비.”

“……왜 그러느냐?”

야홍릉은 고개를 돌리고 자신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용수를 바라보았다.

“궁에서 서러움이라도 당한 것이냐?”

용수는 잠자코 있다가 한참 뒤에야 ‘네’라고 대답했다.

야홍릉은 놀랐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누가 널 괴롭힌 것이냐?”

“애비가 저 대신 그 사람을 혼내줄 것입니까?”

용수는 애교를 부리는 어린애처럼 씩씩거리며 말했다.

“그들이 정말 너무했습니다.”

야홍릉은 말없이 있다가 물었다.

“누가 너무하다는 것이냐? 이름을 말해 보아라. 내일 그 인간의 목을 따 오마.”

용수는 시선을 들고 사슴 같은 눈망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목을 따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저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긴 하지.’

야홍릉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그들이 저더러 봉왕비를 간택하라고 합니다.”

용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화난 얼굴로 말했다.

“막아주겠다고 애비께서 약속하시지 않으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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