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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162)화 (16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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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화 그런 추잡스런

연회는 아주 떠들썩했다.

봉왕이 돌아오자 조정에는 즐거움이 흘러넘쳤다.

환한 대전에는 불빛이 흔들렸고 노랫소리와 아름다운 춤 자태, 향기로운 술 향이 어우러져 즐거운 분위기를 풍겼다.

문무백관은 모두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심으로 기쁘든, 아니면 기쁜 척을 하고 있든, 그들은 봉왕의 복귀에 반드시 기쁜 표정을 지어야 했다.

실권을 가지고 있는 황자와 황족 종친들은 봉왕의 하석에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맞은편은 승상을 선두로 한 문무백관들이 품급의 순서대로 앉았다.

오늘 연회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권력이 막강한 관리들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새 황제가 황위에 오르게 되면 권력의 중심에 서 있을 사람이기도 했다.

연회가 시작됐지만 대다수 사람은 얘기를 별로 하지 않았다. 그들은 조용히 앉아 무희들의 아름다운 춤 자태를 감상하며 악사들의 악기 연주를 들었다. 그러나 춤 자태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악기 소리가 아무리 듣기 좋아도 사람들은 몰래몰래 봉왕을 주시하고 있었다.

십 년 만에 돌아온 것이 아닌가?

문무에 모두 뛰어나던 아이가 멋진 청년이 되어서 앉아 있으니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용수는 조용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고귀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의 복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흐뭇하기만 했다.

‘태자는 역시 태자야. 십 년 동안 떠나 있어도 천성적인 제왕의 위엄은 잃지 않았군.’

황자들과 함께 앉아 있으니 그는 나이가 가장 어림에도 불구하고 용모로나, 분위기로나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봉왕이 돌아온 시기 또한 적절했다. 황제는 나이가 점점 많아져 예전보다 힘이 많이 부치는 느낌을 받았다. 만약 봉왕이 지금 돌아오지 않았다면 다른 황자들은 사심을 품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봉왕의 복귀를 반기지 않는 사람들은 그의 느긋한 표정을 보자 저도 모르게 큰 압박감을 느꼈다. 또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생각을 굴리고 있었지만 항상 웃는 얼굴을 유지했다.

술이 세 번 돌자 무희는 흩어지고 악사는 물러갔다.

떠들썩한 소리가 사라지자 대전 안은 짧은 정적에 잠겼다.

“전 황족의 장남으로서 동생들과 황실 종친을 대표해 용수의 복귀를 환영합니다.”

용수의 옆에 앉은 중년 남자가 술잔을 들고 웃는 얼굴로 말했다.

“자, 다들 봉왕 전하께 한 잔씩 올리자고요.”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술잔을 높이 쳐들고 마셨다.

1황자 헌원청(軒轅淸)은 봉호가 청왕(淸王)이었다. 헌원 황제가 무사태평 하라고 지은 이름이기도 했다. 올해 마흔 가까이 된 그는 황제와 비슷한 용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듬직한 분위기를 풍기며 성격이 온화했다.

그는 나이가 가장 많기도 하고 또 가장 바른 마음을 가진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용수를 진심으로 좋아하기에 십 년 전에 용수가 떠났을 때나, 십 년이 지나 용수가 돌아온 지금이나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용수가 떠난 것은 잠시 동안의 일이고 언젠가 꼭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십 년 동안, 다른 황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그는 황위를 노리지도 않았고 참여하지 말아야 할 일에 개입한 적도 없었다.

“대황숙, 감사합니다.”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을 마친 용수는 술잔을 들고 입가로 가져간 뒤, 우아하게 마셨다.

용수는 미소를 지으며 시녀가 들고 있는 접시에서 술잔을 가져와 자신에게 한 잔 따랐다. 그리고 술잔을 높이 쳐들며 말했다.

“제가 고집이 강해 사적인 일로 남성국을 십 년간 떠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께 걱정을 끼쳐 죄송한 마음이 있으니, 이 벌주를 마시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다급히 그를 말렸다.

그러나 용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술잔을 들어 단숨에 마신 뒤, 내려놓았다. 궁녀는 또 술잔에 술을 채웠다.

연거푸 석 잔을 마신 뒤에야 그는 느긋하게 멈추었다. 약간 올라간 입꼬리는 사람들에게 차가운 인상을 풍겼다.

사람들은 봉왕이 돌아온 것에 대한 축사를 한 마디씩 올렸다. 모두 기쁜 표정이었다. 의자에 앉아 있는 황제도 화기애애한 광경이 마음에 들었는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대신들과 황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진심으로 기뻐하는 게 맞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오늘은 좋은 날이니 괜한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용수가 돌아왔으니 그는 사람들이 하지 말아야 할 생각을 했다면 얼른 접기를 바랐다.

안 그러면 정말 큰코다칠 수 있었다.

“봉왕 전하, 두 달 뒤에는 성인식을 치를 때가 되겠군요.”

축사가 끝난 뒤, 단왕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성인식을 치르고 나면 비를 간택하실 겁니까?”

이 말에 다른 화자와 종친들은 시선을 돌리고 단왕을 바라보았다.

‘그래, 두 달이 지나면 봉왕이 스무 살이 되는군. 성인식을 치르면 정말 성년이 되었다는 것인데 그러면 봉왕비를 간택해 왕부에 들이겠지?’

봉왕부의 여주인은 앞으로 남성국의 황후가 될 사람이었다. 그래서 간택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가문, 품행, 용모, 재주, 분위기 중에 빠지는 게 없어야 했다.

모든 면에서 출중한 여인만이 봉왕비가 될 수 있었다.

단왕을 바라보는 신하들의 시선은 의미심장하기도 했다.

귀족들은 워낙 소문이 빨라 작은 일도 금방 퍼지는 법이다.

오늘 아침, 단왕이 봉왕부에서 망신을 당한 일은 비밀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단왕이 먼저 봉왕비 간택에 대해 말을 꺼내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그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지 궁금했다.

“전 당분간 비를 간택할 생각이 없습니다.”

용수는 담담하나 직설적으로 대답했다.

“십 년 만에 돌아왔으니 아직 많은 일이 낯섭니다. 지금 급선무는 할아버지와 함께 정무를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병사들의 훈련 성과와 흑의 기예병의 전투 능력을 살펴봐야지 사적인 일을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황제는 입을 삐죽거렸다.

‘사적인 일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아까 목국의 공주를 좋아한다고, 그녀를 위해 후궁을 비워두겠다고 말한 자가 누구던가?’

이 말에 대신들은 실망스러웠으나 너무 실망하지는 않았다. 봉왕이 이제 막 돌아온 것도 사실이고 지금 급선무는 정무를 보고 병력을 살피는 것도 맞았기 때문이었다. 봉왕이 나랏일을 중시하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봉왕비 간택은 좀 미루어도 괜찮았다.

그러나……

“정말 정무를 보는 게 급한 거라면 이해가 됩니다만.”

단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제가 듣기로는 봉왕 전하께서 미소년 한 명을 데리고 돌아왔다고 하던데요? 그 미소년은 가히 경국지색으로 불릴 만한 용모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눈썹을 치켜세우고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봉왕 전하께서 여인을 좋아하지 않고 그 소년을 좋아하시는 건 아닙니까?”

그 말에 대전은 정적에 잠겼다.

사람들은 놀란 나머지 그대로 굳어졌다.

손에 들고 있던 술잔도 어디에 둘지 몰라 뻣뻣하게 내민 채로였다.

황제 역시 놀란 얼굴로 고개를 번쩍 들었다.

‘미소년이라고?’

정적이 지속된 와중에 오직 용수의 표정만 느긋했다.

그는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조롱과 비웃음이 섞인 미소였다.

“미소년 말입니까?”

그는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건 제 사생활이니 단왕께 말씀드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전 안은 숨이 막힐 것 같은 분위기가 풍겼다.

“그리고.”

용수는 술을 마시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가 이미 돌아왔으니 단왕께서 앞으로 자식 교육을 똑바로 하시기 바랍니다. 제 허락 없이 봉왕부를 휘젓고 다니다 주제도 모르고 제 저택의 귀한 손님의 심기나 건드리지 않게 말입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사람들은 당황했다.

봉왕이 손님을 데리고 돌아온 것은 그들도 아는 바였다.

석월 군주가 봉왕부에 갔다가 봉왕의 손님과 언쟁이 일어난 것 또한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들은 석월 군주가 봉왕부에서 무시를 당하고 사람을 보내 아버지를 불러온 것도 알고 있었고 그러다 마침 집으로 돌아오던 봉왕과 마주쳐서 부녀가 쌍으로 망신을 당한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그렇게 작은 일로 다툰다는 게 말이 되는가?

단왕은 화가 났는지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나 그는 화를 가라앉히고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석월이 철이 없어 그런 짓을 저질렀나 봅니다. 오늘 이미 혼냈으니 너그러운 봉왕 조카가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석월은 어린 소녀이니 이만 봐주십시오.”

‘봉왕 조카.’

이 네 글자로 그는 용수에게 태자의 품위를 지키는 것과 동시에 아랫사람으로서 예의를 무시하지 말라고 일깨워 주기도 했다.

“당연히 봐주지요.”

용수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는 단왕의 말에 담긴 뜻을 눈치채지 못한 듯, 차가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앞으로 그 아이가 다시는 봉왕부에 나타나지만 않으면 됩니다.”

단왕은 표정이 굳었다. 그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모는 아직 어린아이라 봉왕이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기쁜 나머지 봉왕부로 간 것입니다. 손님과 갈등이 생긴 것도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닌데 봉왕께서는 굳이 여동생에게 이렇게 야박하게 구실 것입니까?”

그는 일부러 둘의 사이를 강조하고 있었다.

용수는 용씨든, 헌원씨이든 그와 석월 군주는 피가 섞인 친척 사이였다.

그가 어린 소녀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앞으로 다른 종친을 어떻게 대할 것이라는 말인가?

대전 안은 조용했다. 용수와 단왕의 오가는 말을 듣던 다른 대신들은 처음에는 당황했으나 정신을 차린 뒤에는 봉왕부에 있는 미소년의 정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단왕이 친척 관계를 언급하는 의도에 대해서는 그들도 잘 알고 있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용수가 황실 종친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허락도 없이 찾아오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인지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단왕의 이간질에 쉽게 놀아나지 않았다.

“용수가 야박하게 구는 게 아닐 것이다.”

청왕이 나서서 분위기를 풀었다.

“전하가 직접 모시고 온 것을 보면 중요한 손님인 듯한데 예모가 예의 없이 굴어서 전하가 화난 것도 당연하지. 예모더러 그 손님께 사과를 하고 지나가면 되지 않겠느냐? 이게 뭐가 대수라고?”

‘예모더러 봉왕의 남첩에게 사과하라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단왕은 표정이 굳었다.

“예모는 고귀한 아이입니다. 어찌 그런 추잡스러운 물건에게…….”

헌원용수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술잔을 잡은 손을 풀었다.

그리고 손바닥을 날렸다.

그러자 바람이 갈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단왕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쨍그랑! 하고 무언가 깨지는 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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