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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158)화 (159/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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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화 그렇게 얘기한 적 없다

‘불안감을 느낀다고?’

야홍릉은 고개를 젓고 담담하게 말했다.

“아니.”

그런 감정은 그녀에게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호기심 때문에 그와 이런 문제에 대해 의논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네.”

용수는 울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좋아하는 여인이 단호하게 ‘난 네가 좋아지지 않았어’라고 하는데 울적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물론 그도 처음부터 야홍릉이 이렇게 쉽게 그를 좋아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야홍릉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왠지 모르게 해명하기 시작했다.

“내 뜻은 불안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용수는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시선을 천천히 들었다. 그의 까만 눈동자는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니 애비의 뜻은 제가 좋아지지 않은 건 아니라는 겁니까?”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제가 이미 좋아진 겁니까?”

“…….”

‘말이 너무 꼬이늗데?’

“애비.”

용수는 기대와 기쁨이 담긴 목소리로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좋아진 겁니까?”

“……난 그렇게 얘기한 적 없다.”

“그런데 왜 다시 해명하신 겁니까?”

용수는 싱긋 웃으며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속상할까 걱정되어 그러신 것…….”

“입 다물어.”

용수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마음은 달콤하기만 했다.

그는 야홍릉의 목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애비의 향은 너무 좋습니다.”

“꺼져.”

“싫습니다.”

“능묵.”

야홍릉은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용수는 몸이 뻣뻣하게 굳더니 뒤로 물러서며 대답했다.

“네.”

분위기가 미묘하게 변했다.

야홍릉은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도 야홍릉을 바라보고 있었다.

둘의 눈이 마주치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위기가 둘 사이에 피어올랐다. 이상한 느낌이 난류처럼 둘의 마음속 깊은 곳에 흘러들었다.

용수가 먼저 백기를 들었다.

그러나 그는 대담하게 다가와 야홍릉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주인님, 화내지 마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부드러우며 대담한 그의 수완은 연인 사이에서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아무리 차가운 야홍릉도 그를 거부할 수 없었다.

용수는 눈치 빠르게 가볍게 입맞춤을 한 뒤, 그녀를 의자에서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식사하러 가시죠. 식사를 마친 뒤, 왕부를 구경하고 목욕을 하십시오. 그리고 좀 쉬시다 저녁에 궁에 연회가 있으니…….”

“연회는 나와 상관이 없는 일이다.”

야홍릉은 그에게 허리가 안긴 채, 걷다가 담담하게 말했다.

“네가 돌아와서 폐하가 널 반기느라고 여는 연회이다. 폐하는 대신들에게 태자인 너를 다시 정식으로 소개하려는 거겠지.”

용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애비는 저택에 남아서 쉬시죠. 전 곧 돌아오겠습니다.”

오늘 연회에는 많은 사람이 올 터이니 떠들썩할 게 분명했다.

사람들이 낯선 얼굴인 그녀를 훑어볼 게 뻔한데 야홍릉이 가기 싫을 법도 했다.

멍청한 사람이 그녀의 화를 돋운다면 더 싫을 게 아닌가?

용수는 처음부터 그녀를 데리고 궁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둘의 관계는 둘 사이의 일이기에 그는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그가 세상을 통일할 때 이 사람이 그가 가장 사랑하는 여인이자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여인이라고 발표할 생각이었다. 모든 이들이 부럽고 존경하는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게 그가 원하는 것이었다.

야홍릉이 황제가 되든, 황후가 되든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여인이어야 했다.

당장은 이것이면 충분했다.

* * *

아침 식사를 마친 둘은 왕부를 산책했다. 봉왕부는 면적이 아주 컸기에 당장 다 돌아볼 수가 없어 몇 군데만 둘러볼 수 있었다.

진시가 되자 저택의 집사 한운(韓雲)이 능수전 밖에서 저택의 하인을 모두 불러 모아 용수에게 예를 올리게 했다. 저택 밖의 공간은 널찍했다. 시녀들은 헌원용수에게 예를 올린 뒤, 줄을 섰고 호원과 머슴들도 옆에 서서 한운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봉왕부에 존재하는 규정을 다시 한번 가슴 깊이 새겼다.

“봉왕부의 주인인 봉왕 전하께서 돌아오셨다. 앞으로 눈치 빠르게 움직이되 멍청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말은 적게, 일은 많이 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은 한마디도 하지 말거라! 전하는 신분이 고귀하신 분이라 작은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으시다. 이 저택에서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은 내가 직접 엄히 다스릴 것이니 그리 알고 있도록!”

그는 바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봉왕부에 귀한 손님이 오셨다. 너희 중에서도 이미 능 공자를 본 사람이 있겠지. 전하께서는 능 공자를 전하처럼 높이 모시며 절대 무례를 범하지도, 소홀히 대하지도 말라고 하셨다. 전하의 화를 돋운다면 기껏해야 맞고 끝내겠지만 능 공자의 화를 돋운다면 절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한운은 서른이 넘은 나이로, 집사였지만 군인 출신이기도 했다.

봉왕부가 세워졌을 때, 갓 스무 살이 넘은 그는 봉왕부로 들어와 저택의 일과 하인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십 년이 지난 지금, 위엄을 풍기는 그의 말을 누구도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봉왕부는 규칙이 엄격한 곳이라 하인들도 실수를 잘 저지르지 않았다. 게다가 이들 중 대다수는 궁에서 고르고 골라 보내온 사람으로서 영리하고 궁의 규칙을 숙지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정도로 얘기하면 휘하 사람들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한운이 얘기를 마치자 호원과 머슴들은 각자 일을 보러 자리를 떴다. 한운은 무공 실력이 뛰어난 몇 명을 골라 봉왕의 측근 시위로 붙여 두었다. 시녀들은 남아서 정려가 하는 당부를 들었다. 얘기를 마친 정려는 저택에 있는 두 어멈의 얘기를 듣고 여덟 명을 골라 일상적인 시중을 들게 했다. 앞으로 여덟 명은 차례로 당직을 서게 될 예정이었다.

모든 일을 마친 뒤에야 각자 흩어져서 일을 보러 갔다.

시간이 지나자 지시를 받은 헌원창이 왕부에 도착했다.

이제 막 야홍릉의 목욕 시중을 마친 용수는 대전 밖에서 정려가 보고하는 말을 듣고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서재로 가서 기다리라고 하여라.”

정려는 지시를 받고서 헌원창을 데리고 서재로 갔다.

“애비, 푹 쉬십시오.”

용수는 그녀의 새하얀 어깨에 입을 맞춘 뒤, 옷걸이에서 하얀 경포를 벗겨내어 야홍릉의 어깨를 덮어주었다.

“애비, 여장하지 않는 것도 좋습니다. 제가 매일 애비의 목욕 시중을 들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애비의 피부를 보지 못하게 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은 야홍릉은 자신의 목을 더듬거리며 말했다.

“예전에는 전쟁터에서 매일 햇빛에 노출되다 보니 평범한 여인들보다 피부가 좋지 못했지.”

“애비는 세상의 그 어떤 여인과도 비교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용수는 그녀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고는 그녀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애비의 피부는 아주 부드럽고 향도 좋습니다. 햇빛에 오랫동안 노출된 피부 같지 않습니다.”

“헌원창이 아직도 널 기다리고 있다.”

야홍릉은 그의 머리를 떠밀면서 싸늘하게 말했다.

“졸리구나. 어서 물러가지 않고 뭣 하느냐?”

용수는 깜짝 놀라더니 낮은 목소리로 웃었다.

그는 허리를 숙이고 물러가며 말했다.

“네, 지금 물러가겠습니다.”

봉왕이 돌아온 첫날부터 단왕과 신경전을 벌였다는 소식이 황성에 파다하게 퍼졌다.

모든 이들의 관심이 돌아온 봉왕에게 쏠려 있는 시점이라 봉왕부에서 약간의 소식만 들려와도 빠르게 퍼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봉왕과 단왕이 왜 신경전을 벌였는지 궁금해했다.

그래서 하인을 보내 알아보게 했더니, 봉왕이 귀한 손님을 데려왔는데 단왕부의 석월 군주가 봉왕부에서 노닐다가 그 손님과 마주쳐 다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석월 군주는 그 손님에게 무시당하는 바람에 상대방을 혼내줄 생각으로 아비인 단왕을 불렀다는 말이었다.

게다가 봉왕이 돌아오면 단왕에게 그럴듯한 해명을 내놓을 줄 알았더니, 오히려 단왕이 창피를 당하게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결국 단왕 부녀는 어두운 얼굴로 씩씩거리며 봉왕부를 떠났다고 했다.

이 소식이 퍼지자 다른 황자들도 그들을 비웃었다.

그러나 비웃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생각이 깊은 황자들은 봉왕의 속생각을 가늠해 볼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봉왕은 밖에서 무슨 일을 했던 거지? 어떻게 돌아온 첫날에 대신의 입장도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단왕에게 이렇게 무례하게 굴 수 있는 거지? 같이 온 손님은 또 어떤 사람이고? 봉왕은 왜 단왕의 체면도 봐주지 않은 걸까?

석월 군주는 왜 봉왕부로 갔지? 그것도 봉왕이 돌아온 첫날에 말이야. 아무런 목적이 없다는 게 말이 돼?’

사람들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석월 군주가 가져온 소식에 귀족 여인들이 발칵 뒤집혔다.

봉왕이 아리따운 남첩을 데려왔다는 소식이었다.

석월 군주는 이 일을 크게 떠벌리지 못했다. 봉왕의 화를 돋울까 두렵기도 하고 자신의 짐작이 틀렸을 것 같아 조심스러운 것도 있었다.

그녀는 귀족 여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얘기를 꺼내며 절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식은 파다하게 퍼졌다.

봉왕이 누구인가?

남성국의 태자이자 앞으로 제왕이 될 사람이 아닌가?

그녀들은 또 누구인가?

귀족 세가의 규수이자 적녀이며 그들 중 대부분은 앞으로 제왕의 비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누구도 자신이 황후가 될 거라고는 장담하지는 못했지만 네 명의 비는 모두 1품 조정 대신과 황족 귀족의 적녀 중에서 나올 것이다. 특히 열네 살에서 열여섯 살 된 소녀들은 봉왕이 돌아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비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남첩이라니?’

아직 황위에 오르지도 않았고 황후 간택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봉왕은 남첩을 저택에 데려오더니 단왕과도 다투었다고?

이게 말이 되는 건가?

귀족 여인들은 하나같이 화를 내며 그 남첩의 신분을 밝혀야겠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찾아가 따질 용기가 없었다. 그 석월 군주도 쫓겨났는데 그들은 더욱 냉대받지 않겠는가?

정말 봉왕을 화나게 한다면 비의 간택에서 제명될 수도 있었다.

심지어 가문에 누를 끼칠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척 잠자코 있을 수는 더욱 없었다.

결국 승상의 딸 봉비비(鳳菲菲)는 선두에 나서서 봉왕부로 가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겠다고 했다.

승상은 권력이 강할 뿐만 아니라 남성국의 권신이자 문관의 우두머리였다. 황성의 세가 중에서도 승상은 으뜸가는 존재였다.

그의 딸이 직접 찾아간다면 한운도 그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한운은 마음속으로는 봉비비가 찾아온 목적을 알고 있으면서도 저택의 임(林) 어멈더러 능 공자에게 말을 전하라고 했다.

“승상의 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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