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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156)화 (157/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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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화 남편이 더 높은 지위에 있다

용수는 황제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도리어 반문했다.

“할아버지께서는 지금 세상에서 어떤 여인이 가장 대단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세상에서?’

헌원 황제는 생각에 잠겼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네가 좋아하는 사람은 남성국 세가의 여인이 아니라는 말이냐?”

용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제가 남성국을 떠난 지도 어언 십 년이 되었는데 언제 남성국 여인과 사랑에 빠질 시간이 있겠습니까?”

황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지금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여인은 목국의 영웅인 호국 공주 야홍릉이지.”

목국의 공주 야홍릉은 전쟁터의 전설이자 각국 황족들과 귀족들 사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바로 그녀입니다.”

용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헌원 황제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제가 만약 그녀를 위해 후궁을 들이는 것을 포기한다면 할아버지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 겁니까?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황제는 그 말을 듣더니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어두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너…….”

용수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럴 만하긴 하지.”

황제의 표정은 복잡하기만 했다.

“하지만 넌 진심으로 그녀를 좋아하는 것이냐?”

‘그런 여인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호국 공주는 무공 실력도 뛰어나고 병법도 능하다고 했지만 성미도 차갑다고 들었는데. 그런 여인을 어느 사내가 감당할 수 있겠어? 보통 사내들은 부드럽고 온화한 여인을 좋아하지 않나?’

“당연히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이지요.”

용수가 대답했다.

“평생 그녀 한 명만 바라보고 살 것입니다. 다른 여인들은 그녀의 발끝에도 못 미칩니다.”

황제는 이 말을 듣더니 입가를 실룩거렸다.

직접 듣지 않았다면 그는 절대 용수가 이런 말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십 년을 못 봤더니 감정적으로 너무 많이 달라졌잖아? 설마 좋아한다는 그 여인과 연관이 있는 건가?’

“할아버지께서 퇴위하신다면 저도 반대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기다란 손가락으로 손잡이를 탁탁 두드리며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절대 후궁 같은 건 두지 않을 것입니다. 남성국은 목국과 통혼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면 목국의 야홍릉을 제 아내로 맞이할 수도 있고요.”

‘남성국과 목국이 통혼한다고?’

황제는 이 말을 듣고 멀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그녀를 좋아한다면 그녀의 나라도 건드리기 아쉬울 건데 나중에 그녀와 원수가 될까 두렵지 않으냐?”

용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녀가 곧 목국의 황제가 된다고 한다면 할아버지께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헌원 황제는 의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황제 말이냐?”

용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황제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침묵했다.

용수도 아무 말 없이 찻잔을 들고 가볍게 마셨다. 그는 황제에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근정전 안에 정적이 흘렀다.

강해는 곁눈질로 십 년간 돌아오지 않았던 태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볼수록 눈앞의 태자가 놀랍게 느껴졌다. 그리고 진작 성인이 된 황자들을 떠올렸다.

나이가 가장 어린 9황자도 태자보다 예닐곱 살 많았다.

‘태자가 십 년 만에 돌아오셨는데 황자들은 어떤 생각을 품고 있으려나?’

“참, 할아버지께 말씀드릴 일이 있습니다. 9황숙께서 진작 성인이 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지금도 왕으로 봉하지 않았던데, 지금이라도 친왕으로 봉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용수가 입을 열었다.

황제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그 아이가 너에게 말하더냐?”

“그럴 리가요?”

용수는 고개를 젓고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9황숙께서는 저에게 말도 걸지 않으시는데 이런 요구를 말할 리 있으시겠습니까?”

‘말도 걸지 않는다, 라…….’

이 말은 헌원창과 꼭 어울리는 말이었다.

그의 성격은 무공을 익히기에는 적합하나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용수가 태자라고 일부러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을 것이고 아부를 떨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충성을 바친다면 그 충성은 평생 갈 것이다.

“왕으로 봉하는 것은 네가 황위에 오른 다음 다시 얘기해 보자꾸나. 네가 황제가 되면 네 마음대로 봉하거라. 그때는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

황제는 말을 이었다.

“난 지금 목국 공주의 일밖에 관심이 없다. 정말 그 아이를 황제의 자리에 앉힐 것이냐?”

용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녀에게는 오라버니도 있고 동생도 있으며 조정 세가들은 당연히 지지하는 황자들이 있을 텐데 한낱 공주가 어떻게…… 게다가 어미도 없지 않더냐? 병권을 가지고 있는 것 말고 지지하는 세가도 없을 텐데 황위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게다가 지금은 각 나라에서 여 황제가 나타나지 않은 지 수백 년이 지났다.

이런 파격적인 일은 세상을 발칵 뒤집을 것인데 어떻게 세상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호국 공주가 목국의 첫 여황제가 되려고 하느냐는 말이다.

헌원 황제는 수십 년 동안 황제의 자리에 있었다. 그는 호국 공주가 정말로 황제가 된다면 그녀와 용수가 어떻게 부부가 될 것인지에 대해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방금 용수의 말이 가장 좋은 해답이기 때문이었다.

남성국과 목국이 통혼하면 야홍릉은 헌원용수의 아내가 된다.

보통 부부 사이에서는 당연히 남편이 더 높은 지위에 있었다.

두 제왕의 통혼은 두 나라가 하나로 합해진다는 말이었다. 물론 이건 모두 야홍릉이 정말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는 전제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여 황제가 시집을 간다는 말은 한 나라가 다른 나라와 합쳐진다는 말이었다.

남성국이 천하를 통일시키는 일도 남성국과 목국의 합병을 시작으로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용수의 옆에 야홍릉처럼 전쟁에 능한 무장이 있다면 다른 나라를 굴복시키는 일은 더욱 쉬워질 것이다.

이런 여인을 위해 후궁을 비워두면 뭐 어떤가?

그녀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 자체는 황후 자리보다 훨씬 큰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있기에 얘기를 꺼낸 것입니다.”

용수가 담담하게 말했다.

“오라버니와 동생이 있은 들 뭐 어떻습니까? 그들을 다 죽이면 되지요. 얼마나 쉬운 일입니까?”

헌원 황제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얼마나 쉬운 일이냐고?’

용수는 다른 나라의 황자를 죽인다는 말을 아주 대수롭지 않게 했다.

“할아버지는 몸도 좋으시니, 퇴위 후의 일을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용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제가 이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조정의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황위로 오르는 것은 생일이 지나고 다시 얘기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황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생일이라고?”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십 년이나 기다리셨을 텐데 몇 개월을 못 기다리시겠습니까?”

용수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덤덤하게 말했다.

“적어도 제가 조정의 대신들과 세가 귀족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파악할 시간은 주셔야죠.”

말을 마친 그는 일어서서 허리를 굽혔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황제는 미간을 찌푸렸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가 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훤칠하고 마른 뒷모습은 산처럼 커다랗게 보이기도 했고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만약 이 세상에 정말로 패자가 나타난다면 아마 저런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겠지?’

순간, 황제는 마음을 굳히고 한숨을 내쉬었다.

용수는 궁에 들어간 지 반 시진도 되지 않아 봉왕부로 돌아왔다. 야홍릉이 너무나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떠난 지 반 시진밖에 안 되어도 너무 그리웠다. 그녀가 처음 온 남성국에 적응하지 못할까 걱정되어 부랴부랴 저택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왕부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는 멀리서 호원들이 잔뜩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중 보라색 장포를 입은 중년 남자가 손을 휘두르며 지시를 내렸다.

“군주에게 버릇없이 군 그년을 당장 잡아 오너라!”

용수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걷어찼다.

그러자 말이 빠른 나는 듯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봉왕 전하 납시오!”

옆에 있던 시위가 높은 소리로 말하자 봉왕부를 둘러싸고 있던 호원들은 깜짝 놀랐다. 시위의 외침과 말발굽 소리를 듣자 중년 남자와 그의 옆에 서 있던 창백한 얼굴의 소녀는 모두 고개를 돌렸다.

용수는 대문 앞에 도착해 사람들을 둘러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지?”

보라색 옷의 중년 남자와 그의 옆에 서 있던 소녀는 동시에 고개를 들고 말을 탄 잘생긴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의 차가운 이목구비가 십 년 전의 모습과 겹쳐 보이자 중년 남자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십 년 전에 용수는 성녀의 용모를 물려받아 조각처럼 완벽하게 생겼었다. 십 년이 지난 그는 지금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러나 온몸으로 풍기는 강한 위압감도 아름다운 얼굴을 가리지 못했다.

멍한 표정을 짓던 중년 남자는 바로 정신을 차리고 덤덤하게 말했다.

“왕부의 천한 계집이 제 여식을 다치게 했습니다. 도대체 누가 감히 내 딸에게 이런 짓을 벌인 건지 보아야겠습니다.”

그는 용수를 힐끗 보더니 싸늘하게 말했다.

“봉왕 전하는 오늘 돌아왔으니 저택의 하인을 감싸지는 않겠지요?”

‘천한 계집?’

남자의 옆에는 허리에 칼을 찬 시위들이 한 줄로 쭈욱 서 있었다. 용수는 싸늘한 시선으로 그들을 둘러보더니 싸늘하게 말했다.

“군주가 좀 다쳤군요. 사정이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구족을 멸하러 오신 줄 알겠습니다.”

보라색 장포를 입은 중년 남자는 3황자 헌원예(軒轅睿)이자 석월 군주의 아버지였다.

용수의 말을 들은 그는 표정이 확 바뀌더니 싸늘하게 말했다.

“봉왕의 뜻은 내 딸이 이곳에서 다쳐도 된다는 말입니까? 지금 저택의 하인을 감싸겠다는 말입니까?”

“봉왕부는 제 저택입니다. 내 저택의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다면 제가 직접 벌을 줄 것입니다.”

용수의 싸늘한 말투와 겨울바람처럼 차가운 시선에 헌원예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무 이유 없이 병사들을 지시해 제 저택을 둘러싼 것은 작게 말하면 무례를 범한 것이고 크게 말하면 반역죄로 다스릴 수 있습니다. 단왕(端王)께서도 이걸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는 또 더욱 차가워진 말투로 말을 이었다.

“2각의 시간을 줄 터이니 지금 바로 떠나십시오. 안 그러면 저도 사정을 봐주지 않을 것입니다.”

말을 마친 그는 말에서 내려와 말고삐를 측근 시위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왕부 대문으로 들어가더니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의논할 일이 있으니 9황숙더러 오셨다 가라고 하거라.”

시위가 대답했다.

“네.”

단왕은 뭐라고 말하기 전에 차가운 모습이 그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고 표정이 굳어졌다.

‘헌, 원, 용,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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