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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152)화 (15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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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화 당돌한 시녀

“어디의 봉왕 전하시란 말씀인가요?”

“봉왕 전하가 어디 또 있느냐?”

묵백은 그녀를 흘겨보며 말했다.

“당연히 남성국의 봉왕 전하시다.”

소녀는 눈을 깜박이며 놀란 얼굴로 잘생긴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시선을 떼기 아까운 기분이 들었다.

“봉왕 전하, 아주 아름다우십니다. 묵백 대제사보다도 잘생기셨어요.”

묵백은 그만 할 말을 잃었다.

‘누가 너더러 외모를 비교하라고 했더냐?’

용수는 말없이 소녀의 얼굴을 스쳐보다 그녀의 무복을 보며 물었다.

“실력은 어떠하지?”

소녀는 멍한 표정을 짓다가 또다시 놀란 얼굴로 감탄을 뿜어냈다.

“봉왕 전하, 잘생기셨을 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너무 좋으시네요…….”

“정려. 무례를 범하지 말거라.”

묵백이 미간을 찌푸렸다.

소녀는 흠칫 놀라더니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공손하게 말했다.

“실력은 나쁘지 않습니다. 전 별궁의 모든 시녀를 이길 수 있고 단독으로 싸운다면 이곳에서 가장 강한 호원도 이길 수 있습니다.”

용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가서 인수인계하고 오너라. 오늘부터 넌 더 이상 이곳에서 지내지 않아도 된다.”

‘뭐라고?’

정려는 당황했다.

“왜죠?”

‘왜긴? 네가 실력도 좋고 성격도 직설적이며 의리 있고 충성심이 강하니 그러지. 태자가 널 애비의 측근 시녀로 붙여둘 생각이거든.’

능묵과 묵백, 헌원창이 전청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야홍릉은 능묵이 붙인 두 시녀의 안내를 받아 별실로 들어갔다.

“옆방에 따뜻한 물이 있으니 목욕을 하시면 됩니다.”

시녀가 무릎을 굽히며 말했다.

“공자께서는 지금 목욕하시렵니까? 아니면 아침 식사를 하신 뒤에 하실 겁니까?”

야홍릉은 병풍 앞의 탑에 앉아서 널찍한 별실을 둘러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따 하지.”

“네.”

별궁은 규모가 꽤 컸다. 제경에 있는 친왕부에 못지않았다.

장식 또한 우아했으나 화려하지는 않아 방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향긋한 차향이 코끝을 맴돌았다.

“공자, 차 드세요.”

야홍릉은 시선을 거두고 시녀가 건네준 차를 받았다. 뚜껑을 연 그녀는 차를 한 모금 마셔 보더니 차 향에 감탄했다.

밤새 달린 탓에 야홍릉은 피곤하여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찻잔을 내려놓은 그녀는 탑에 기대앉았다.

이때,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야홍릉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지탱한 채, 눈을 감고서 움직이지 않았다.

걸어오는 사람을 상대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녀는 오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관심이 없었다.

방금 묵백과 대화하던 소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정 낭자.”

방 안에 있던 두 시녀는 정려가 들어온 것을 보고 공손하게 예를 올렸다.

정려는 고개를 끄덕인 뒤, 널따란 별실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병풍 앞의 탑에 누워서 눈을 감고 있는 미소년을 본 그녀는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고, 공자?”

흥분한 티가 나는 목소리라서 야홍릉은 이상한 마음에 눈을 떴다. 그러자 발랄해 보이는 소녀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열네다섯 살 되어 보이는 소녀는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러나 키가 훤칠하고 깔끔한 검은색 의복을 입은 걸 보니 무공 실력이 꽤 뛰어난 것 같았다.

“무슨 일이냐?”

야홍릉이 물었다.

“공자, 목소리가 너무 좋으세요.”

야홍릉은 당황했다.

“저는 정려입니다.”

정려는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예를 올렸다.

“봉왕 전하께서 저더러 공자의 시중을 들라고 하셨습니다. 앞으로 제가 공자의 측근 시녀 겸 호위무사입니다. 공자,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꼭 공자를 잘 보호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야홍릉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놀란 얼굴로 말했다.

“공자, 너무 잘생기셨어요. 꼭 마치 하늘의 신선 같으세요.”

야홍릉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능묵이 나에게 붙여준 이 시녀, 머리에 문제 있는 거 아니야?’

정려는 입술을 깨물고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공자, 혹시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 겁니까?”

“조용히 하거라.”

정려는 깜짝 놀라더니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야, 나더러 조용하라고만 했지, 꺼지라고는 하지 않으셔서.’

이렇게 생각한 그녀는 조용히 야홍릉의 맞은편에 가서 섰다.

측근 시녀이니 가장 가까운 곳에 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고른 자리는 야홍릉을 훔쳐보기 딱 좋은 위치였다. 시선만 들면 야홍릉의 완벽한 얼굴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정려는 야홍릉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있을 수 있지? 누구지? 혼인은 했으려나? 남성국 태자이신 봉왕 전하는 십 년 전에 어디로 가셨던 걸까? 큰일을 도모하러 가셨다고 했는데 내가 어찌 알겠어? 물을 수도 없고 말이야. 이 공자는 누구일까? 전하의 친구시려나? 전하도 충분히 잘생기셨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공자를 벗으로 두다니…….’

정려는 앞으로 매일같이 아름다운 공자를 볼 생각에 행복하기만 했다.

그러나……

야홍릉의 아름다운 얼굴을 본 정려는 점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봉왕 전하와 묵백 대제사는 전청에서 얘기를 나누고 계시는데 이 공자는 홀로 방에서 쉬고 계시다니……. 게다가 이 공자, 너무 아름답게 생기셨는데?’

정려는 흠칫 놀라며 놀란 얼굴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는 큰 비밀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심장이 쿵쾅거리며 흥분에 겨웠다. 옆에 서 있던 두 시녀는 말없이 시선을 마주치더니 그녀의 큰 반응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눈을 감고 쉬고 있던 야홍릉도 마찬가지였다.

이글거리는 시선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데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그 시선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왜 그러냐?”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피곤한 탓에 짜증이 난 것도 있었고 능묵이 자신에게 붙여준 시녀가 정상인이 맞는지도 의심이 들었다.

정려는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야홍릉은 목국의 호국 공주로 평소에도 과묵하고 차가운 성정이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전쟁터에서 보냈기에 일부러 하인을 엄격하게 다스리지 않아도 공주부의 하인들은 그녀를 조심스럽게 대하며 조용히 지냈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입을 꾹 다물고 소리를 내지 않았다.

야홍릉은 정려처럼 당돌하고 시끄러운 시녀를 처음 보았다.

야홍릉은 찻잔을 들고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정려를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한 것이냐?”

‘무슨 생각을 했기에 그렇게 흥분한 거지?’

정려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저으며 같은 대답을 했다.

“아, 아닙니다.”

그녀는 눈앞의 아름다운 공자가 봉왕 전하의 노리개인 것을 깨달았다고 절대 말할 수 없었다. 만약 이 아름다운 공자가 모욕당했다며 베갯머리 송사라도 한다면 그녀의 목숨이 남아나겠는가?

야홍릉은 말없이 정려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정려는 안절부절못했다.

“이름이 무엇이냐?”

야홍릉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정려는 목을 움츠리며 대답했다.

“저, 정려라고 합니다.”

야홍릉이 물었다.

“몇 살이냐?”

“열다섯…… 살입니다.”

“무공은 어떠냐?”

무공 실력에 자신이 있는 정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공자를 보호하기엔 충분합니다.”

야홍릉은 이상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가 지켜줄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아, 아닙니다.”

정려가 다급히 말했다.

“공자처럼 아름다우신 분은 밖에 나가시면 위험합니다. 나쁜 놈이 공자의 얼굴을 보고 나쁜 마음을 품는다면 얼마나 위험하겠습니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모든 이가 다 착한 사람인 것은 아니지요. 그러니 공자도 꼭 사람을 경계하세요.”

야홍릉은 담담한 표정으로 듣고 있다가 방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보며 물었다.

“얘기는 다 했느냐?”

‘무슨 얘기를 다 했냐고?’

정려가 당황할 때쯤 그녀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다 했습니다.”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정려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 태자 전하가 부드러운 얼굴로 서 있는 것을 본 순간, 정려는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는 생각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방금 태자 전하의 위엄 어린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정려는 그가 원래 다정한 사람인 줄로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분명 아니었다.

‘왜 이 공자 앞에서는 이렇게 다정하시지?’

그녀는 둘 사이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다.

“정려는 이곳의 집사 시녀입니다.”

능묵은 야홍릉에게 걸어가더니 그녀의 옆에 털썩 앉았다.

그는 정려의 놀란 표정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야홍릉에게 말을 건넸다.

“옆에 두고 부리시지요.”

말을 마친 그는 정려를 힐끗 보고 시선을 또다시 야홍릉에게 돌렸다.

“이미 만나셨나 본데 어떤 것 같습니까?”

“나쁘지는 않더라. 그런데 머리가 좀 이상한 것 같던데.”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 말에 정려는 억울한 얼굴로 나지막하게 변명했다.

“공자, 전 정상이에요.”

능묵이 담담하게 말했다.

“먼저 저들을 데리고 음식 준비하러 가거라.”

정려는 무릎을 굽혔다.

“네.”

말을 마친 그녀는 다른 두 시녀를 데리고 물러났다.

“정려는 이곳의 집사 시녀입니다. 나이가 어리지만 능력은 꽤 있는 편이지요.”

능묵이 다가와 야홍릉의 얼굴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성격이 직설적이고 화끈하며, 일견 어리숙해 보이나 필요할 때에는 똑 부러집니다. 이런 시녀가 옆에 있다면 남성국으로 들어간 뒤에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야홍릉은 옆으로 기대며 담담하게 대꾸했다.

“난 다른 사람이 지켜줄 필요가 없다.”

“네, 나의 애비는 무공이 강해 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 없지요.”

능묵은 그녀를 기대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녀의 가는 허리를 팔로 감쌌다.

“하지만 옆에 부릴 사람이 있는 것도 좋습니다. 애비, 먼저 급히 결정하시지 마십시오. 남성국에 가면 이 아이가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남성국에 들어서면 그는 해야 할 일이 많아 하루 열두 시진 그녀의 옆에 붙어 있기 힘들 것이다. 이때 누군가 그녀의 옆에 있다면 그는 안심할 수 있었다.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 아이가 아주 마음에 들었나 보구나.”

능묵은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애비, 지금 질투하시는 겁니까?”

야홍릉은 무표정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렇게 유치한 질문에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시녀일 뿐입니다. 애비가 시녀에게까지 질투를 느끼신다면 앞으로 질투할 일이 너무도 많지 않겠습니까?”

능묵은 기분이 좋은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남성국에는 귀족 여인들이 아주 많습니다.”

야홍릉이 싸늘한 목소리로 받아쳤다.

“나는 귀족 여인들의 질투를 받으려고 남성국에 가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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