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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148)화 (149/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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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화 대단하십니다

야홍릉은 능묵이 왜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성국 태자가 사라진 지 십 년 만에 돌아왔으니 가장 영광스러운 방식으로 맞이해야지.”

하얀색 옷을 입은 온화한 인상의 남자가 정원에서 걸어 나오며 말했다.

“태자 전하, 남성국 제사전과 폐하를 대표해 돌아온 것을 환영합니다.”

말을 마친 그는 우아하게 예를 올렸다.

야홍릉은 고개를 돌려 고결해 보이는 하얀색 장포를 입은 묵백을 바라보며 눈썹을 치켜세웠다.

“속도 한번 빠르군.”

“아닙니다.”

묵백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하와 공주가 동제를 떠난 뒤, 저도 곧장 따라나섰습니다. 두 분을 기다리느라 특별히 이곳에서 하루 묵기도 했는 걸요.”

태자의 기억이 돌아오고 동제 조정도 평화로워졌으니 그도 더 이상 남아있을 필요가 없었다.

“다들 상처를 치료하러 가보아라.”

말을 마친 능묵은 야홍릉의 손을 잡고 별원 안으로 들어갔다.

묵백이 뒤에서 바짝 뒤따랐다. 그의 시선은 꼭 잡은 둘의 손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그는 눈썹을 치켜세운 채, 흥미진진한 얼굴로 입꼬리를 올렸다.

그의 사촌 동생은 여인의 마음을 얻는 쪽으로는 꽤 재능이 있는 듯했다.

‘전생에도 이렇게 빨리 움직였으면 그런 일이 일어났겠어?’

셋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바닥에 엎드려 있던 영위들이 일어났다.

봉매가 손을 내젓자 그들은 바람처럼 순식간에 정원의 각 곳으로 흩어져 모습을 감췄다.

야홍릉은 무표정한 얼굴로 능묵에게 손이 잡힌 채, 걷고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그의 행동이 너무 선을 넘는다고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는 싸늘한 얼굴로 능묵의 체면을 최대한 헤아리고 있었다.

묵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생각에 잠겼다.

‘이 호국 공주는 용수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군. 용수가 작정하고 덤비는데 어떻게 뿌리치겠어?’

주원으로 들어서자 시녀가 조용히 차를 타서 내왔다. 능묵은 의자를 잡아당겨 야홍릉이 앉게 했다. 그리고 시녀의 손에서 찻잔을 받은 뒤, 야홍릉의 앞에 놓아준 뒤에야 고개를 돌리고 묵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는 어떠하십니까?”

묵백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서 턱을 괴고 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흥미로운 얼굴로 물었다.

“공주 전하는 어떻게 용수와 함께 남성국에 오신 겁니까?”

야홍릉은 시선을 들고 그를 힐끗 보더니 덤덤하게 대답했다.

“오고 싶으니까 왔다.”

묵백은 말문이 막혔다.

역시 야홍릉다운 대답이었다.

“애비, 대단하십니다.”

능묵은 미소를 머금은 채, 그녀를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묵백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둘과 얘기를 나누고 싶은 생각마저 사라졌다.

야홍릉처럼 차가운 성미의 여인은 이런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용수는 그걸 모르는지 낯간지러운 말만 잔뜩 늘어놓고 있었다.

묵백은 차를 마시며 당분간은 용수와 말을 섞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남성국 태자는 황위에 오르기 전에 먼저 봉왕(鳳王)으로 책봉됩니다. 봉왕이 바로 태자이지요.”

묵백은 야홍릉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 만약 남성국으로 들어간 뒤, 만약 누군가 그를 봉왕 전하라고 부른다면 놀라지 마십시오.”

이 말을 들은 야홍릉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힐끗 바라보았다.

“역대 황자들은 봉왕으로 책봉된 날부터 태자 전용 영위를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직책은 태자를 보호하는 것이지요. 방금 공주 전하께서 보신 자들이 바로 태자 전용 영위입니다.”

묵백은 우아하게 차를 마신 뒤, 능묵을 힐끗 보았다.

“다만 이번 봉왕은 십 년이나 조정에 돌아가지 않아서 좀 시끄러운 일이 생길 수 있겠군요.”

‘시끄러운 일?’

야홍릉은 눈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겼다. 이 문제는 그녀도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묵백의 입에서 직접 들으니 더 심각한 것 같았다.

태자가 남성국을 떠난 지도 어언 십 년이 되었다.

그가 떠날 때만 해도 열 살 아이였다. 십 년 전 이 아이는 각 방면에서 놀라운 모습을 보여줘 남성국 신하와 백성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그러나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십 년이라는 시간은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 사람들도 등을 돌리고 조용하던 사람들도 다른 마음을 품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또 제경의 어느 가문이 몰락하고 또 어느 가문이 일어섰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 제사전이 있었지만 많은 일을 헌원용수가 직접 알아보고 해결해야 했다. 모든 일을 제사전의 정보에만 기대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조정의 상황은 짧은 시간에도 여러 번 변한다. 십 년 동안 사라졌던 태자가 갑자기 평온한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수많은 사람이 의아할 것이고 또 의심할 것이다.

‘그러니 남성국 황제의 몸이 좋지 않다는 것은 제사전에서 일부러 흘린 정보일 수도 있겠군.’

헌원용수가 자신의 수완과 능력을 펼칠 기회를 주어 남성국 사람들이 다시 이 태자를 기억해내기를, 그가 남성국을 지배할 수 있는 박력을 보여주어 사람들의 의심과 걱정을 떨쳐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목국의 호국 공주인 그녀는 전쟁터에 나간 적도, 누군가의 술수에 당한 적도 있었다. 싸늘하고 도도한 그녀는 부드럽고 온화한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데는 능묵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조정에 오래 있은 그녀는 수많은 음모 술수에 훤했다. 묵백이 말한 부분은 그녀가 꿈에서 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이런 부분은 중요하지 않았지만 처음 남성국에 발을 들인 외부인인 그녀에게 이런 것을 많이 알아두어 나쁜 점은 없었다.

많이 알아둔다면 정작 일에 부딪혔을 때, 당황하지 않고 여유롭게 상대할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야홍릉은 지금까지 그녀가 상대할 수 없다고 느낀 상황은 마주쳐 보지 못했다.

남성국은 목국이나 동제보다 조금 더 강할 뿐이고 제사전이 있다는 게 차이점이지 조정 상황이나 환경, 그리고 다른 것들도 대부분 비슷했다.

정오의 태양은 유난히 뜨겁고 눈부셨다.

셋은 시녀가 준비한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얘기를 나누었다.

대부분은 묵백이 얘기하고 야홍릉이 듣는 편이었다.

능묵은 조용히 야홍릉의 옆에 서서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 주거나 차를 부어주며 살뜰하게 시중을 들었다. 그는 묵백이 하는 말에 관심이 없었다.

묵백은 화가 나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점심 식사를 마친 그들은 원래의 계획대로 길을 재촉했다. 중도에 마차를 세운 이유는 야홍릉이 마차 안에서 밥을 먹는 게 안쓰러운데다 묵백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기에 잠시 쉴 겸 들른 것이었다.

그러나 능묵은 뜨거운 볕을 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오후에는 길을 가지 맙시다.”

“오후에는 더울 테니 이곳에서 잠시 쉬시지요.”

묵백이 말했다.

“다음 목적지까지 좀 멀어서 저녁 전에 도착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곳에서 한나절 정도 쉬시고 저녁에 떠나시면 내일 아침에 도착할 것입니다.”

능묵은 눈을 내리깔고 야홍릉의 의견을 물었다.

야홍릉은 그들이 하자는 대로 따를 예정이었다.

주인이 그렇게 하자는데 손님이 무슨 불만이 있겠는가?

그래서 능묵은 시녀더러 별실을 청소하게 했다.

잠시 뒤, 그는 야홍릉과 함께 별실로 쉬러 들어갔다.

묵백만 별원에 홀로 남아 계획을 짰다.

“주인님,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야홍릉이 담담하게 대꾸했다.

“마차를 탔을 뿐인데 피곤할 일이 뭐가 있겠느냐?”

그녀는 그렇게 연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능묵이 웃으며 말했다.

“사람을 시켜 따뜻한 목욕물을 준비하겠습니다. 오후에 별원에서 푹 쉬시고 저녁에 다시 길을 떠나시죠.”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가 하자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녀는 약간 그늘진 창가로 가서 앉아 창밖의 화원을 바라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녀가 뜨거운 물을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 병풍 뒤의 욕조에 물을 채워 넣었다.

길을 가다 들리는 별원은 조건이 제한적이라 이렇게 많은 사람을 이곳에 보내는 것은 인력과 재력을 크게 낭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을 통일시키려면 세력을 각 곳에 균등하게 분포해 두어야 했다. 이러면 나중에 아무 데서나 시름을 덜고 쉴 수 있었다.

이 별원의 풍경은 아주 괜찮았다.

“남성국으로 돌아가는 게 전혀 걱정되지 않느냐?”

능묵이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야홍릉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담담하게 물었다.

“짧은 시간 안에 권력을 되찾을 자신이 있느냐?”

능묵은 눈을 내리깔고 노을이 내려앉아 붉게 물든 야홍릉의 귀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주인님만 제 곁에 계신다면 제가 걱정할 일은 없습니다.”

야홍릉은 잠깐 침묵을 지키다 못 들은 척, 말했다.

“천하를 지배하는 남자가 자꾸 여인에게만 기대려 하면 무시당할 수 있다.”

“전 다른 사람들이 절 우러러보지 않아도 됩니다.”

능묵은 손을 들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짝 집었다.

“주인님만 제 곁에 계신다면 다른 사람의 시선이 뭐가 대수입니까?”

야홍릉은 미간을 찌푸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굳이 실랑이할 필요가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그가 사랑에 대한 진지함과 한없이 충성스러운 모습을 꿈에서 낱낱이 보았기에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처럼 차갑고 단단하던 사람도 크게 충격을 받았으니 쓸데없는 말을 더 할 필요가 없었다.

알면서 설득하려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주인님, 이쪽으로 가시지요.”

낮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드러운 목소리에 고혹적인 매력이 담겨 있었다.

“제가 목욕 시중을 들겠습니다.”

야홍릉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보았다.

시녀들은 언제 물러간 건지 널따란 침실에는 그녀와 능묵 둘밖에 없었다.

‘어쩐지 또 제멋대로 군다 했지.’

기억을 회복한 뒤로 능묵은 야홍릉의 목욕 시중을 들 때마다 자제력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그래야 야홍릉에게 무례를 범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또한 혹독한 어영위의 훈련을 거쳤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목욕을 마칠 때마다 그는 자꾸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꼼수를 부렸다.

특히 저녁만 되면 더욱 심했다.

얇은 하얀색 침의를 입은 그는 차가운 야홍릉이 이렇게 쉽게 자신의 미모에 빠지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러기를 계속 반복했다.

그렇게 익숙해지도록 만들면 언젠가는.

그런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자제력이 강하고 차가운 사람이며 아름다운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단단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는 차가우나 오직 그녀에게만 부드러운 모습을 보이는 그가 목욕을 마친 뒤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아양을 떠는 광경에 익숙해진다면……

서서히 스며드는 효과는 언젠가 그녀에게 아주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야홍릉은 그녀가 정말 그를 사랑하게 되어 명분을 주기 전까지 그는 가끔씩 입을 맞추는 이상으로 다른 행동을 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특별한 공략을 지속적으로 당하다 보면 그녀는 곧 그에게 마음을 빼앗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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