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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140)화 (14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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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화 너무 놀랐어요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너도 누가 봉씨 가문의 마장을 노렸는지 생각해 보아라.”

능묵이 입을 열려고 하는데 야홍릉이 느긋하게 덧붙였다.

“틀리면 벌을 줄 것이다.”

능묵은 순진한 눈을 깜박이면서 유순한 어조로 물었다.

“어떻게 벌을 주실 겁니까? 손바닥을 때릴 겁니까?”

야홍릉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손바닥을 때린다면 좀 살살 때려주십시오. 손이 부으면 주인님을 제대로 모실 수 없습니다.”

능묵은 눈을 깔고 말을 이었다.

“계편을 계속 몸에 지니고 있으니, 주인님께서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드리겠습니다.”

야홍릉이 덤덤하게 물었다.

“나더러 가끔 때려달라는 것이냐?”

능묵은 눈을 내리깐 채, 여전히 유순한 말투로 대답했다.

“주인님께서 원하신다면 저는 언제든지 벌을 받을 자세를 취할 것입니다.”

야홍릉은 말문이 막혔다.

‘벌을 받을 자세?’

그녀는 남성국 황태자가 무뚝뚝하다고 소문이 난 게 가짜라고 생각했다.

능묵은 못 하는 소리가 없었다. 그리고 비위를 맞추는 말도 잘했다.

그녀는 더 이상 그와 실랑이하지 않고 밖으로 걸어갔다.

능묵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으나 그의 눈가에는 미소가 담겨 있었다.

그는 차갑고 싸늘하기만 한 여인이 할 말을 잃은 듯하자 기분이 좋았다. 이건 어영위의 규정에 어긋나는 행위이지만 노리개로서는 기분 좋은 일이기도 했다.

할 말이 없다는 것은 그를 봐준다는 말과 같았다.

안 그러면 그녀의 성격상 말대답하는 어영위를 가만히 둘 리 있겠는가?

‘하지만…….’

기쁨이 가시자 능묵은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야홍릉이 자신을 봐주는 이유가 전생의 일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꿈에서의 광경을 직접 보았으니 마음가짐이 달라졌을 게 틀림없었다.

만약 그녀의 지금 태도가 단순히 전생에 그가 한 일을 보고 드는 고마움 때문이라면 그는 야홍릉이 자신을 봐주지 않길 바랐다. 그녀에게 심리적 부담을 주는 게 싫었다.

능묵은 야홍릉을 쫓아가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인님께서 전에 기나긴 꿈을 꾸셨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음? 왜?”

야홍릉은 그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놀란 듯,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꿈은 모두 가짜이니 믿을 것이 못 됩니다.”

능묵이 말했다.

“주인님, 꿈에서 보신 것을 현실로 끌어오지 마십시오. 만약 제가 주인님을 기분 나쁘게 했다면 목국 공주부에 있을 때처럼 대해 주십시오.”

그 말을 들은 야홍릉은 당황한 얼굴로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능묵.”

“네, 주인님.”

“혹시 맞고 싶으냐?”

“……아니요.”

“난 감동 때문에 네게 부담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꿈에서 본 광경에 감동 받은 건 맞지만 기껏해야 네 신분에 대한 의혹이 풀렸을 뿐이지, 너한테 감동 받았다고 해서 네가 제멋대로 굴게 봐줄 정도는 아니다.”

능묵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괜한 생각은 하지 말거라.”

야홍릉이 입꼬리를 올리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말과 행동은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다. 그러니 내가 감동 받아서 널 봐준다고 생각하지 말거라. 내 원칙에는 ‘용인’이라는 게 없으니까.”

용인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을 다 받아들인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용인은 어쩔 수 없이 참아주는 경우도 있었다.

능묵의 행동은 아직 그녀가 참지 못할 지경에 이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선을 넘는 것을 조금은 봐주었다. 그러나 사실 선을 넘는다는 것도 어영위의 신분에서 선을 넘는 것이었다.

사랑을 위해 엄청나게 큰 대가를 치른 사람에게는 이렇게 선을 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질책할 일은 더욱 못 되었다.

지금까지 그는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야홍릉은 또 사색에 잠겼다.

그녀는 최근 들어 자주 감성적으로 변했다. 마음도 전보다 약해진 듯했다.

능묵이 그녀를 위해 한 일을 떠올릴 때마다 그녀는 그가 완벽하리만치 좋은 사람으로 보였다.

“주인님?”

능묵은 그녀의 멍한 얼굴을 보고 미간을 찌푸린 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야홍릉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린 뒤, 밖으로 걸어갔다.

“봉씨 가문의 일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가서 보자꾸나. 이틀 뒤면 이곳을 떠나야 한다. 얼른 봉씨 가문의 마장과 제염, 제철 사업을 손에 넣고 다음 계획으로 넘어가야지.”

야홍릉과 능묵이 보낸 이 편안한 밤은 봉씨 가문에게 위험천만한 시간이었다.

방문을 열고 나가자 춘란과 추란이 문밖을 지키고 있다 예를 올리며 말했다.

“능 공자님.”

야홍릉은 돌아온 뒤로 남장을 하고 다닌 데다 봉회근도 그녀의 뜻을 존중해 하인들에게 그녀가 여인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제경에서 전해진 소식은 봉회근과 능묵이 이중으로 막고 있으니 제경을 떠난 뒤로 다른 사람들은 능 공자가 여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기도 했다.

“어르신과 대공자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춘란이 대답했다.

“어르신과 대공자는 어젯밤 한잠도 안 주무시고 오늘 아침 일찍 일을 보러 나가셨어요.”

이 말을 들은 야홍릉은 저도 모르게 침묵했다.

“봉여희는?”

“셋째 도련님은 아가씨와 함께 계세요.”

춘란이 대답했다.

“능 공자님, 아가씨를 보러 가실 건가요?”

야홍릉은 봉령이 며칠간 혼인으로 압박받은 일이 떠올라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춘란이 앞에서 길을 안내하고 야홍릉과 능묵은 긴 회랑을 지나 봉령이 거주하는 곳으로 갔다.

멀리서 봉여희가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보였다. 청색 옷을 입은 그는 몸놀림이 날쌔고 깔끔하며 행동 하나하나에서 강한 힘이 느껴졌다.

검이 나뭇잎을 베는 행동도 멋짐이 가득했다.

옅은 노란색 치마를 입은 소녀는 문 앞의 의자에 앉아서 턱을 괸 채, 그의 검술을 구경하고 있었다. 소녀는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얼굴이 눈에 띄게 핼쑥해져 있었다.

봉여희는 좋은 오라버니였다.

그는 여동생의 기분을 풀어주느라 검술을 보여준 것이었다.

“아가씨, 셋째 도련님, 능 공자가 오셨어요.”

춘란이 정원 입구에 선 채, 공손하게 입을 열었다.

봉여희는 손에 들고 있던 대나무 검을 휘릭 돌려 거둔 뒤, 돌아서서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능 공자.”

봉령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창백한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고 야홍릉을 수줍게 불렀다.

“능 공자.”

야홍릉은 흠칫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방해를 한 것은 아니오?”

“아니에요.”

봉령이 다급히 말했다.

“능 공자가 오셔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말을 마친 그녀는 시녀에게 차를 탈 것을 지시하고 다시 능 공자에게 말했다.

“능 공자, 안으로 드시지요.”

봉여희는 복잡한 얼굴로 여동생을 보았다.

‘이제는 분명 능 공자가 여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왜 아직도 수줍은 표정을 짓고 있는 거지? 이게 다 능 낭자 탓이야. 남장이 너무 완벽한데다 날카로운 분위기만 봐서 여인인 티가 전혀 안 나잖아?’

봉여희는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겉으로는 약간의 불만도 드러내지 않았다.

능 낭자의 옆에 대단한 사람이 지키고 있는데 감히 그녀에게 뭐라고 할 사람이 어디 있는가?

“봉씨 가문의 일은 다 해결되었소? 얘기 좀 해줄 수 있소?”

야홍릉은 시선을 돌리고 봉여희를 바라보며 물었다.

봉여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이 어젯밤 아버지에게서 어떻게 된 일인지 얘기를 들었습니다. 구씨 가문의 뒤에는 배후자가 두 명 있었습니다.”

예상과 다르지 않은 결과였다.

야홍릉은 눈을 내리깐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돌아오기 이틀 전에 구굉이 관병들을 가득 데려와 봉씨 저택을 둘러쌌습니다. 봉씨 가문의 호원은 관병들의 상대가 아니었죠. 그래서 아버지가 하는 수 없이 구굉과의 혼사를 허락하신 겁니다.”

봉여희가 싸늘하게 대답했다.

“큰형님이 안 계시니 둘째 형님과 호 집사가 짜고 아버님의 마장 문서를 손에 넣으려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이틀이 지나도록 그것을 내놓지 않으셨습니다. 둘째 형님이 아버지의 서재를 다 뒤졌지만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마침 빨리 온 데다 소식이 새지 않게 조용히 왔기에 구굉과 봉청서는 그들이 온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완벽한 반격을 할 수 있었다.

만약 야홍릉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알았다면 구굉과 봉청서는 급한 나머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랐다.

야홍릉이 담담하게 물었다.

“그 둘은 어떤 사람들이오?”

관병을 움직였으니 봉씨 저택의 호원은 그들의 상대일 리 없었다.

그러나 구씨 가문에서 병사들을 움직였다는 것은 제경 섭정왕 영위를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했다.

어떤 사람이기에 섭정왕마저 안중에 두지 않는다는 말인가?

“저희도 모릅니다. 그 둘은 신분이 신비로운데다 구씨 가문에 숨은 채, 나오지 않습니다. 어젯밤, 아버지와 큰형님은 집안의 적들을 숙청하느라 아직 다른 것을 신경 쓰지 못했습니다.”

야홍릉은 침묵을 지켰다. 그녀는 봉청서와 호 집사를 어떻게 했는지 묻지 않았다. 이건 봉씨 가문의 집안일이라 외부인이 간섭하기도 무엇하고 애초에 그녀는 남의 집 일에 관심이 없었다.

다만 세가에서는 가족의 배반에 대해서, 특히 외부인과 결탁하여 집안 재산을 빼돌리려고 한 배신자에 대해서는 절대 약하게 처벌하지 않았다.

야홍릉은 방으로 들어간 뒤, 원형 탁자 옆의 의자에 앉았다.

시녀가 차를 가져오자 야홍릉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능묵, 난 여기서 봉 낭자와 얘기를 나눌 테니 넌 나가서 그 둘에 대해 알아보아라.”

능묵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봉여희는 의아한 얼굴로 그의 등을 바라보다가 또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한 건지, 한참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제 동생이 요즘 크게 충격을 받아서 그러니 능 공자께서 잘 좀 달래주십시오. 전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봉여희는 능묵을 급히 쫓아갔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전하께서는 기억도 되찾으셨다면서 왜 여전히 시위처럼 능 낭자의 말을 듣는 거지?’

“봉 낭자, 괜찮소?”

야홍릉은 고개를 돌리고 봉령을 바라보며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구굉이 괴롭히지는 않았소?”

봉령은 고개를 저었으나 겁먹은 표정은 여전했다.

“그들은 문서에 정신이 팔려 아버지만 괴롭혔지, 저한테는 어쩌지 않았어요. 전 그저 여기 갇혀 지내 자유롭지 않은 것 말고는 다른 문제가 없었고요.”

괜찮다고 한 것은 다른 사람이 걱정하는 게 싫은 봉령의 배려였다.

연약한 소녀가 홀로 갇혀서 지내는데 어찌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아버지에게는 위험이 닥쳤고 큰 오라버니는 집을 비운 상황이었다.

이런 불안함은 직접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지난 일이었다.

무사하게 해결되어 다행이었다.

야홍릉은 사람을 위로하는 데 능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을 들은 야홍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행이군.”

봉령은 조용히 눈을 내리깔고 차를 마신 뒤, 낮은 입을 열었다.

“사실 너무 놀랐어요. 능 공자가…….”

‘여인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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