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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137)화 (138/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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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화 돌아가 봐야 하지 않을까

봉형이 거주하는 방은 불빛이 환하나 방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봉회근은 저택 안에 호원이 많아진 것을 발견했다.

봉회근은 나무 아래에서 몸을 숨긴 채, 말없이 아버지의 방을 한참 바라보다 차가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버지는 지금 방에 계실까?”

“아마도 계실 겁니다.”

봉여희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형님, 제가 먼저 가서 봉령을 살펴볼까요?”

봉회근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다녀와.”

“걱정하지 마십시오.”

봉여희는 대답하고 돌아서서 떠나갔다.

밤은 몸을 가리기 가장 좋은 가림막이었다.

저택의 상황이 심각해도 어두운 밤이면 낮보다 뭔가를 하기 훨씬 쉬웠다.

게다가 저택에 나타난 낯선 호원들을 능묵이 다 쓰러뜨렸지 않은가?

봉회근은 시선을 들었다. 그는 아버지의 방 지붕 위에 사람이 있는 것을 보았다.

저택 안에 있는 호원 중 능묵의 존재를 발견한 사람이 없었다.

봉회근은 잠간 침묵을 지키다 말했다.

“능 낭자께서 전에 오셨을 때도 며칠밖에 묵지 않으신데다 능묵도 저택 안을 돌아다닌 적이 없는데 그가 어떻게 낯선 사람들을 알아본 걸까요?”

저택의 호원은 모두 그와 아버지가 직접 뽑은 사람들이었다.

호원들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한, 그들을 바꿀 일은 없었다. 그런데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집에 낯선 호원들이 늘어났다면 그건 분명 누군가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의 능력을 의심하지 마시오.”

야홍릉이 평온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아직까지 그보다 실력이 뛰어난 사람을 보지 못했으니.”

야홍릉은 다른 말을 더 하지 않았다.

어영위의 신분을 다른 사람들에게 굳이 알릴 필요가 없었다. 어영위의 무공 실력도 일반적인 무인이나 상인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영위는 무공 실력이 최정상에 올라야 할 뿐만 아니라 종합적인 훈련도 받아야 했다.

정보 수집, 주인 보호 능력, 날카로운 관찰력과 민감한 오관 및 판단 능력, 그리고 한방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기술과 어둠 속에서 모습을 감출 수 있는 은신술까지.

이 모든 것은 수많은 땀과 피를 흘리고 닦은 실력이었다.

야홍릉은 저도 모르게 생각에 잠겼다.

그녀가 원한 적은 없지만 결국 큰 빚을 진 것은 사실이었다.

헌원용수의 원래 신분과 실력으로 보면 그는 진작 천하를 통일시키고 세상을 호령하는 제왕으로 되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이런 모질고 혹독한 훈련을 겪을 필요가 있었을까?

그는 야홍릉을 위해 너무나 많은 것을 겪었다.

그가 한 모든 노력은 사랑하는 여인과의 행복한 결말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한 번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경우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야홍릉은 그 결과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능묵이 끝까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남녀를 막론하고 성격과 상관없이 사랑 앞에서는 누구나 평범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차가운 사람이나 아무런 감정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멀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헌원용수가 이렇게 애썼는데도 불구하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지?’

봉회근은 야홍릉의 말에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보다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없다고? 그럼 능묵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지? 능 낭자가 말한 실력은 무공을 가리키는 건가? 아니면 다른 것도 포함된 건가? 노리개의 신분은 거짓인가? 아니면…….’

침묵이 계속되는 가운데 능묵은 지붕 위에서 기왓장 하나를 들고 그 틈으로 방안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아버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봉청서가 계약서를 든 채, 책상에 마주앉은 봉형을 노려보며 말했다.

“형님은 지금 제경에 계십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시간을 끌어도 형님은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구굉은 한숨을 내쉬었다.

“장인어른, 왜 이렇게 고집을 피우시는 겁니까? 봉령의 혼사도 허락한 마당에 예물을 좀 두둑하게 하시면 뭐 어떤가요? 고작 마장 아닙니까? 봉씨 가문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봉형은 안색이 퍼렇게 변했다. 그는 책상에 마주 앉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화난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구굉의 뒤에는 몸집이 거대한 호원 네 명이 서 있었다.

능묵은 고개를 들고 야홍릉이 서 있는 방향을 보며 손짓을 했다.

“봉 공자, 기다리고 있으시오.”

야홍릉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저들을 해결하고 오겠소.”

말을 마친 그녀는 앞으로 날아갔다.

야홍릉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와 능묵이 동시에 움직이면 저택 안의 호원들은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반응할 시간도 없을 것이 분명했다.

능묵은 어둠 속에서 방문을 걷어차고 안으로 들어가 네 명의 호원을 순식간에 죽여버렸다. 그리고 봉청서의 목을 움켜쥔 채, 발로 구굉을 걷어찼다.

이때, 야홍릉 손의 채찍이 뱀처럼 춤을 추며 저택 안의 마지막 남은 호원의 목을 잘랐다. 그리고 그녀는 봉회근의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 됐소.”

봉회근은 다급히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버지가 무사히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그는 또 얼굴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봉형은 화만 났을 뿐, 중독된 것 같지 않았다.

그제야 봉회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봉형은 갑작스러운 광경에 깜짝 놀랐다가 봉회근의 말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돌아왔느냐?”

봉회근은 고개를 끄덕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능묵에게 목이 조여진 봉청서는 호흡 곤란으로 얼굴이 퍼렇게 질렸고 능묵의 발에 걷어차인 구굉은 이미 기절한 상태였다.

이 둘이 동시에 아버지의 방에 나타난 것도 그렇고, 아까 저택을 지키던 낯선 호원들을 떠올리자 봉회근은 바로 이해가 되었다.

그는 아버지가 쉽사리 봉령의 혼사를 허락한 것도 납득했다.

아버지가 허락한 게 아니라 봉청서와 구굉이 협박한 게 아닌가?

그들이 무슨 수단을 사용했는지 아직까지 알 수 없었지만 봉회근은 그가 돌아온 소식을 봉청서와 구굉이 미리 알지 못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게 아니었다면……

봉회근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놀라셨겠습니다. 두 분이 먼저 얘기를 나누시지요.”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말을 마친 그녀는 밖으로 나갔다.

능묵은 거의 죽어가는 봉청서를 확 밀치고 야홍릉을 따라 나왔다. 그러자 봉청서는 벽에 엎드린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밤이 깊었다.

“우리는 제경에서 낮에 떠났고 일부러 종적을 감춘 적도 없었다. 봉청서는 분명 사람들을 보내 봉회근의 행적을 살피고 있었을 거야.”

야홍릉은 고개를 돌리고 무표정한 얼굴의 능묵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가 그들의 첩자를 제거한 것이냐?”

능묵은 고개를 숙인 채, 담담하게 대답했다.

“전 봉회근을 도운 게 아니었습니다.”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능묵은 그녀 때문에 이렇게 한 것이었다.

그는 그저 그녀의 행적을 다른 사람이 알게 되는 게 싫었다.

그 사람이 누구의 사람이든 상관없었다.

만약 야홍릉이 봉회근과 함께 있지 않았다면 그는 봉씨 가문의 생사에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야홍릉은 능묵과 함께 금란원의 서쪽 별실로 돌아왔다.

봉회근이 집에 없었던 탓인지 아니면 시간이 없어서인지 금란원의 시녀는 그대로였고 저택의 하인들도 대부분 그대로였다.

야홍릉이 돌아온 것을 보고 춘란과 하란 등 시녀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공자님……”

추란이 놀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녀의 표정을 보니 수심이 가득했다.

“언제 돌아오신 건가요? 대공자는……”

“대공자는 주원에 있다.”

야홍릉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이미 다 해결되었으니 걱정하지 말거라.”

‘해결되었다고?’

시녀들은 멍한 표정을 짓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르신은 무사한가요?”

야홍릉은 고개를 끄덕였다.

춘란도 드디어 한시름을 놓았는지 말을 늘어놓았다.

“며칠간 저택이 말도 아니었어요. 구 공자가 매일 찾아오지, 아가씨는 그를 보면 짜증 내지, 그런데 2공자께선……”

여기까지 말한 그녀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봉청서도 봉씨 가문의 주인 중 한 사람이였기 때문이었다. 권력을 대부분 어르신과 대공자가 가지고 있긴 하나 그녀들도 대공자가 집을 비운 사이에 2공자가 외부인과 결탁하여 자신의 아버지를 핍박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저택의 호원은 낯선 사람들로 바뀌었다. 시녀들은 감히 주원에 갈 수도 없었다.

게다가 봉령이 묵는 곳도 사람이 지키고 있어 그들은 불안해도 어쩔 수 없이 기다리기만 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대공자가 돌아온 것이다.

“오시느라 힘드셨을 텐데 아직 식사 못하셨죠?”

춘란은 다른 사람들에게 주원으로 가보라고 한 뒤, 추란과 둘만 남았다.

“제가 드실 음식 좀 가져오고 목욕 물을 준비할게요. 저녁에 씻고 푹 쉬세요.”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구굉의 아버지는 위성의 관리입니다. 위성에서는 권력이 큰 편이지요. 그러나 봉씨 가문의 배후에는 영위가 있는데 그들이 봉씨 가문을 노린다고 해도 이렇게 대범하게 행동할 리 없습니다.”

능묵은 야홍릉의 뒤를 따르며 평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봉회근이 기절한 지 스무 날이 되도록 그들은 아무런 행동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위성을 떠난 지 며칠 만에 구씨 가문과 봉청서가 음모를 꾸민 것이 이상합니다. 분명 조종자가 따로 있을 것입니다.”

사건의 배후가 따로 있을 수 있었다.

야홍릉은 창가로 걸어가 조용히 밖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 둘은 아직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능묵은 침묵을 지키다 물었다.

“제가 가서 알아볼까요?”

“당분간은 개입하지 않는 게 좋겠구나.”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봉씨 가문은 큰 가문인데다 봉회근 역시 차기 가주가 될 사람이다. 앞으로 마주칠 일도 많을 텐데 그때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바랄 수는 없지 않겠냐?”

집안 싸움이든 외부인의 음모든, 봉씨 가문의 후계자인 봉회근은 홀로 맞서 싸울 능력를 갖추어야 한다.

대가문에는 이런 일이 많을 것이고 앞으로도 분명 조용하고 평화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만약 이런 일을 해결한 수완과 박력이 없다면 봉씨 가문은 언젠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야홍릉은 고개를 돌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남성국을 떠난 지도 꽤 되었는데 한 번은 돌아가보지 그래?”

이 말을 들은 능묵은 흠칫 놀라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추란이 차를 들고 들어와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예를 올린 뒤, 방을 나갔다.

능묵은 조용히 걸어가 차를 따라 야홍릉의 손에 건네주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일 소식을 전하고 좀 지난 뒤에 돌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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