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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136)화 (137/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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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화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계 어멈은 옆에 서서 공주와 능묵이 대화하는 것을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 둘이 대답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녀는 망설이던 끝에 입을 열었다.

“그럼 묵 공자는…… 가지 않겠다는 말씀이신가요?”

능묵이 차갑게 대답했다.

“안 가.”

“계 어멈.”

야홍릉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한동안 제경을 떠나 있을 생각이네. 그동안 공주부는 어멈과 집사에게 맡길 테니 작은 일은 알아서 하고 홀로 결정할 수 없는 큰일은 섭정왕비나 영묘언 군주에게 물어보도록.”

계 어멈은 깜짝 놀랐다.

“공주 전하, 먼 길을 떠날 생각이십니까?”

야홍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계 어멈은 또 망설였다.

“언제 돌아오실 겁니까?”

“돌아올 날은 정하지 않았다.”

계 어멈은 공주가 참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주로 책봉한 지 며칠 되었다고 그래? 제경에서 부귀영화를 실컷 누리며 귀족들과 사이를 좋게 하면 좀 좋아? 왜 갑자기 떠난다고 하는 거지?’

그러나 야홍릉은 그녀에게 통보만 하면 되지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할 생각이 없었다.

짐을 챙기고 저택 문을 나서자 봉회근이 공주부 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의 옆에는 봉여희도 서 있었다.

야홍릉과 능묵이 함께 나온 것을 보고 봉여희는 눈을 반짝였다. 능묵을 바라보는 시선이 망설이는 눈빛이 아닌 단호한 눈빛이었다.

눈을 내리깐 그는 생각에 잠겼다.

“전 능 공자의 마차를 타겠습니다.”

봉회근이 예의 바르게 입을 열었다.

“봉씨 가문의 호위가 성 밖에서 말을 준비해 두었을 것입니다. 제경을 나가면 바로 말로 갈아 탈게요.”

야홍릉은 불만이 없었다.

그녀의 마차는 공간이 넓어 몇 명이 들어가도 충분히 앉을 수 있었다.

능묵은 내키지 않았으나 그냥 참을 수밖에 없었다.

셋은 마차에 올랐다. 봉여희와 다른 봉씨 가문의 호위는 말을 탄 채, 마차의 양옆을 보호했다. 다른 사람들은 괜한 소란을 일으킬까 먼저 성 밖으로 떠났다.

마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봉회근은 마차에 앉은 뒤, 진심 어린 말투로 입을 열었다.

“고모부와 폐하의 사이가 좋아지게 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섭정왕부가 위기에서 벗어나지 봉씨 가문도 더 이상 마음을 졸일 필요가 없게 되었다. 만약 갈등이 지속된다면 나중에 누가 이기고 지든, 그들은 결국 역모의 죄명을 뒤집어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오.”

야홍릉이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

“폐하는 처음부터 섭정왕에게 살심을 품은 적이 없소. 영씨 황족은 원래도 사람이 별로 없어서 삼촌과 조카가 마음을 합치면 나라를 더 잘 다스릴 게 아니오?”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봉회근은 그녀가 겸손하게 공을 사양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야홍릉을 자신의 편이라고 받아들였다.

“전 아직 능 낭자의 진실한 신분을 모르지만 목국 서남쪽의 사업체는 물론이고 필요한 것이라면 저희 봉씨 가문에서 최선을 다해 만족시켜 드리겠습니다. 조금이나마 능 낭자의 힘이 되고 싶습니다.”

말을 마친 봉회근은 소매에서 옥패를 꺼냈다.

“이건 봉씨 가문의 신표입니다. 능 낭자는 앞으로 봉씨 가문의 전장이 있는 곳이라면 마음껏 이 옥패로 돈을 사용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능묵은 덤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필요 없네.”

봉회근은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야홍릉도 같은 말을 하려다가 능묵에게 선수를 빼앗기자 한동안 침묵한 뒤, 말했다.

“봉 공자의 선의는 감사하나 마음만 받겠소. 이렇게 귀중한 선물을 받을 수는 없소.”

그녀는 봉씨 가문과 깊게 엮일 생각이 없었다.

“그저 제 마음일 뿐입니다.”

“그럼 남겨 두시오. 우리 주인님은 필요하지 않으니까.”

능묵이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내 재산이 모두 주인님 것인데 다른 사람의 것이 필요하겠어?’

봉회근은 말없이 능묵을 바라보다 또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그는 지금의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언제부터 주인의 일을 한낱 노리개가 간섭했다는 말인가?

하지만 야홍릉이 옆에 앉은 노리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그냥 놔두자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능 낭자…….”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봉 공자, 그 신표는 그만 넣으시오. 아까도 말했다시피 섭정왕과 폐하 사이가 좋아진 건 내 덕이 아니오. 그러니 난 이 선물을 받을 이유가 없소.”

봉회근은 그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저도 더 이상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저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돈으로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저희 봉씨 가문은 발 벗고 나설 것입니다. 봉씨 가문이 할 수 없는 일에는 섭정왕도 나설 거고요.”

야홍릉은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앉은 능묵은 봉회근이 하는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의 준수한 얼굴과 달리 표정은 전혀 온화하고 고분고분한 노리개 같지 않았다.

봉회근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능 낭자의 옆을 지키던 호위무사 능묵 공자 말입니다. 못 본 지 꽤 된 것 같군요.”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힐끗 바라보았다.

“주인님, 어젯밤에 잘 주무시지 못하셨는데 지금 좀 쉬실 겁니까?”

능묵은 눈치가 없는 봉회근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야홍릉을 바라보며 물었다.

“제가 좀 주물러 드릴까요?”

봉회근은 흠칫 놀랐다.

문득 무언가 떠오른 그는 능묵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노리개라고 자칭하는 남자는 체형과 목소리가 능묵과 아주 닮았다.

얼굴이 전과 좀 다른 것을 제외하면… …

그러나 얼굴은 충분히 바꿀 수 있는 것이었다.

야홍릉은 능묵의 다리를 베고 누웠다. 준수한 청년은 눈을 내리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얼굴에 맴돌던 한기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 또한 부드럽고 따뜻하게 변했다.

그는 기다란 손가락을 그녀의 관자놀이에 댄 채, 천천히 문질렀다.

둘은 옆에 있는 사람을 무시한 채, 각자 할 일을 했다. 봉회근은 갑자기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마차의 앞쪽으로 자리를 옮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더 이상 능 낭자와 이 호위무사 겸 노리개의 사이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정상적인 사람의 머리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듯한 대답을 내놓지 못할 것이니 말이다.

‘능 낭자에게는 비밀이 참 많아.’

그녀는 신분도 평범하지 않았고 성격도 특별했다. 게다가 실력 또한 뛰어났다.

어디로 보나 그녀는 일반적인 여자들과 달랐다.

그래서 그는 능 낭자와 능묵이 어떤 사이이든 놀랄 게 없다고 생각했다.

곧 마차는 성문 밖에 도착하여 봉씨 가문의 호위와 만났다. 봉회근은 문발을 젖히고 마차에서 내린 뒤, 말을 탔다. 널따란 마차에는 능묵과 야홍릉밖에 남지 않았다.

“주인님, 먼저 주무시지요.”

능묵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점심을 먹은 뒤, 다시 말을 타고 길을 갈 것입니다.”

야홍릉은 눈을 감은 채, ‘응’하고 대답했다.

능묵은 입꼬리를 슬쩍 올리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새하얀 이마 위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녀의 빨간 입술을 본 능묵은 속이 꿈틀거렸다.

‘언제면 당당하게 입술에 입을 맞출 수 있을까?’

그녀는 말로 하지 않았지만 그가 다가가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동안 그의 보살핌에 익숙해져서 그를 신임하게 된 건지, 아니면 전생의 일로 감동받아 차갑던 그녀의 마음이 녹은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능묵에게는 좋은 시작을 알리는 것임은 분명했다.

야홍릉은 눈을 감고 반듯하게 누워 능묵의 손길에 천천히 긴장을 풀고 잠들었다.

* * *

칠 월 초엿새 저녁.

야홍릉 일행은 위성으로 돌아왔다.

위성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봉회근은 좋지 않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구 공자가 봉씨 가문에 강제적으로 혼인 통보를 했습니다. 혼롓날을 칠월 이십육일로 정했는데 아가씨를 아내로 들이겠답니다. 지금 아가씨는 화가 나 이틀째 음식을 입에 대지도 않습니다.”

그 말을 들은 봉회근은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

“어르신은 집에 안 계시냐?”

“어르신은…….”

말을 전하러 온 호원이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어르신께서…… 허락하셨습니다.”

봉회근은 미간을 찌푸렸다.

“허락하셨다고?”

‘그럴 리가?’

호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봉회근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말을 탄 야홍릉을 바라보며 말했다.

“능 낭자는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야홍릉은 미간을 찌푸리고 한참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요 며칠간 좀 특별한 소식을 전해 들은 게 없소?”

봉회근은 고개를 저었다.

“전에 대공자에게 병을 치료하겠다고 하던 그 둘 말이오.”

야홍릉은 말을 전하러 온 호원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들은 지금 어디 있느냐?”

호원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병을 치료하러 왔다고요?”

그는 이 일에 대해 잘 모르는 눈치였다.

그는 그저 봉씨 가문의 일반적인 호원일 뿐이니 영위처럼 소식이 빠르지 못했다.

야홍릉은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려 봉회근을 바라보았다.

“먼저 저택으로 가보고 다시 얘기하지.”

봉회근은 고개를 끄덕이고 봉씨 저택으로 말을 몰았다.

봉씨 저택의 대문 밖에 도착하니 날이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봉회근과 야홍릉은 말에서 내린 뒤, 돌계단을 지나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문을 지키던 두 사람이 그들의 앞길을 막았다.

“멈추거라!”

봉회근은 미간을 찌푸린 채,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날 못 알아보는 것이냐?”

야홍릉은 말없이 두 문지기를 훑어보았다.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는군.’

봉회근이 봉씨 가문을 떠난 지 오래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봉씨 저택의 문지기가 낯선 사내로 바뀐 것이었다.

아마도 저택 안의 호원들 중에서도 낯선 얼굴이 많이 보일 것 같았다.

몸집이 큰 문지기는 서로를 마주보더니 봉회근에게 시선을 돌렸다.

“댁은 누구시오?”

“이분이 누구시냐고?”

봉여희가 코웃음을 치며 뒤에서 걸어 나왔다.

“눈이 먼 것이야? 이 집 대공자도 못 알아봐? 너희는 누구의 사람들이냐?”

그 말에 인상이 사나운 두 문지기는 안색이 변했다. 그들은 시선을 주고 받더니 그중 한 명이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소식을 전하려는 듯했다.

바로 이때, 바람소리와 함께 야홍릉이 앞으로 나서서 뛰어가는 문지기의 뒷덜미를 잡고 손바닥으로 뒤통수를 내리쳤다.

그러자 그 문지기는 바로 기절하고 말았다.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문지기는 안색이 급변하며 소리를 질렀다.

“여봐……!”

능묵이 날카로운 눈빛을 하며 날아갔다. 누구도 그가 무슨 행동을 한 건지 보지 못했지만 소리를 지르던 문지기가 바로 조용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문지기의 멱살을 잡고 문에 기대 두었다. 그러자 두 문지기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는 자세로 되었다. 멀리서 보면 기절한 게 아니라 잠을 자는 듯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곧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때는 이미 어두워져 앞뜰에는 당직하는 호원들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봉회근과 야홍릉이 들어서자 호원들의 시선이 날카롭게 변했다.

능묵의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 그는 뛰어오르며 눈 깜짝할 사이에 사람 여러 명을 쓸어 눕히고 종적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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