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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134)화 (135/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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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화 비교할 가치가 없다

야홍릉은 눈을 내리깐 채, 조용히 듣고 있었다.

능묵은 평온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제가 남제에 있을 때, 문무 천재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그동안 배운 것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정에서 정치를 의논할 때나, 연무장에서 비무를 할 때나 남성국의 유능한 공자들과 장군들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지요. 몇 달간 끊임없이 도전받았지만 다행히 한 번도 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들도 점점 저를 인정해 줬고요.”

그는 간단하게 서술했지만 그 과정은 아주 치열했다.

야홍릉은 꿈에서 그가 말한 부분을 직접 보아서 알고 있었다.

남성국 대신들은 나중에 그를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존경하며 감탄했다.

심지어 성인이 된 황자들도 아이의 능력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게다가 대제사는 헌원용수가 신의 선택을 받은 태자라고 말했다.

그러자 신을 믿는 남성국 사람들은 헌원용수를 더욱 마음에 들어 하며 그를 존경하고 따르는 한편, 아이를 대하듯 아끼기도 했다.

남성국의 군신 관계는 목국보다 훨씬 강했다.

암투와 경쟁이 존재했지만 졸렬하고 치사한 수단으로 상대방을 음해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마도 이 또한 그들이 신을 믿는 것에 연관될 것이다.

만약 그의 인생에 야홍릉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헌원용수는 순조롭게 제왕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능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훌륭한 신하도 있으니 평생 휘황찬란한 삶을 살았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는 백 년이 지나도 이름이 전해지는 훌륭한 황제가 되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야홍릉은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입장바꿔 그녀가 남성국 신하라면 그들의 훌륭한 태자가 한 여인 때문에 제왕이 될 것을 포기하고 운명을 바꾸었다면 그들도 기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생각은 곧 그녀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그녀가 직접 하지 않은 일에 대한 결과의 책임을 굳이 질 생각이 없는 야홍릉이었다.

밤이 깊었다.

둘은 침전으로 돌아왔다. 야홍릉은 목욕을 마친 뒤, 능묵더러 쉬라고 했다. 그녀는 노리개가 잠자리 시중을 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여태껏 그렇다 할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능묵이 어영위로 된 다음부터 둘은 항상 붙어 지냈다. 야홍릉은 남녀가 유별한 것에 크게 신경 쓰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당분간 더 깊은 사이로 발전할 생각은 없었다.

“주인님.”

능묵은 하얀 옷차림으로 병풍 앞에 선 채,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저와 한옥금 중 누가 더 잘생겼습니까?”

야홍릉은 멈칫하더니 그를 바라보았다.

목욕을 마친 청년은 하얀색 침의를 입고 있었다.

훤칠하고 마른 몸에 새하얀 피부를 가진 그는 아주 준수했다.

낮에는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지만 밤에 보니 온화하고 부드러운 것이 그림 속에서 걸어 나온 미소년 같았다.

“그와 비교할 필요가 없다.”

야홍릉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비교할 가치도 없지.”

능묵은 흠칫 놀랐다.

“그 사람이 누군지 거의 잊고 있었으니까. 어차피 그는 오래 살지도 못할 것이다.”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말을 마친 그녀는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어서 자거라. 내일 아침 일찍 길을 떠나야 하니.”

능묵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침대에 누운 야홍릉은 능묵이 한 질문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와 한옥금은 정말 비교할 가치가 없었다.

외모, 신분, 능력과 품행만 봐도 한옥금은 헌원용수의 발끝에도 따라가지 못했다.

사실이 그러했다.

다시 깨어난 뒤, 그녀는 한옥금이 천뢰에서 나온 뒤로 오랫동안 그를 떠올리지 않았다.

지금 다시 그 이름을 떠올려도 마음이 아무렇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이 전생에 왜 눈이 멀어 그런 사람을 좋아했는지 의아하기도 했다.

한씨 가문 서자인 한경백조차 그보다 훨씬 나은데 말이다.

한옥금은 그녀가 다시 돌이켜볼 가치도 없는 사람이었다.

야홍릉은 눈을 감고 생각하던 것을 떨쳐버렸다.

곧 그녀는 잠이 들었다.

옆에 충성스러운 어영위가 생기면서 그녀는 매일 밤 편히 잘 수 있게 되었다.

반면, 시간이 지나도록 탑에 누운 능묵은 잠이 오지 않았다.

대전 안은 조용했고 모래시계의 사락거리는 소리만 낮게 들렸다. 대전 안에서 낮게 울려퍼지는 숨소리에 그는 야홍릉이 잠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능묵은 조용히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침대 앞에 서서 곤히 잠든 여인을 바라보았다.

창문으로 들어온 달빛은 그녀의 하얀 피부를 더욱 부각시켜 주었다.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에 능묵은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능묵은 침대를 옆에서 무릎을 꿇은 채, 그녀의 손을 가져다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시선으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더없이 귀중한 보물을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보물인 것은 맞았다.

야홍릉은 깼지만 눈을 뜨지 않았다.

무공을 연마한 사람은 잠이 들어도 쉽게 깼다.

그러나 그의 행동을 묵인한 건지 아니면 그가 뭘 하려는지 궁금한 건지 야홍릉은 눈을 뜨지도, 말을 하지도 않고 조용히 누워 있었다.

능묵은 눈을 내리깔고 그녀의 손을 잡아 입가에 가져간 뒤, 손가락과 손바닥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행동은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야홍릉은 밤에 시녀가 방안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예전에 목국에 있을 때나 지금 동제에 있을 때나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그녀는 한옥금과 사이가 가장 좋을 때도 한 방에서 잠을 자지 않았다.

그동안 그녀와 같은 방을 쓴 사람은 능묵뿐이었다.

야홍릉은 헌원용수가 기억을 잃은 뒤에 어영위의 신분으로 그녀의 곁을 지키려고 한 계획이 아주 빈틈없고 완벽한 계획이라고 생각했다.

어영위는 한 사람을 주인으로 모신 뒤, 당연하게 그 주인의 옆을 밀착 경호했다.

거의 하루 열두 시진을 주인의 곁에 붙어 있으며 충성과 강한 실력으로 주인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

그가 어영위로 되면 야홍릉의 안전을 지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까운 거리에 붙어 있다 보니 정도 들 것이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가오는 남자도 막을 수 있었다.

물론 이건 모두 야홍릉의 가설이었다. 그녀는 능묵이 실제로 이런 생각을 하고 어영위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방법이 아예 위험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만약 능묵에 대한 야홍릉의 경계심이 과하게 크다면 그가 분명 황제가 꽂은 첩자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또는 그녀가 냉혹한 사람이라 어영위를 사람으로 보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면 그의 삶은 아주 힘들어질 것이다.

또는 그녀가 개인 명예를 중히 여겨 남자 어영위를 곁에 두지 않는다면 그의 계획은 물거품이 될 게 뻔했다.

이렇게 되면 신은전에서 겪은 고생도 헛수고가 되는 게 아닌가?

헌원용수가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그녀의 마음까지 완벽하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도 나름 모험을 한 것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야홍릉은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소리 없이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때, 능묵이 그녀의 손을 자신의 얼굴에 가져다 댄 채, 침대에 엎드린 자세로 잠든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놀란 얼굴로 눈을 뜨고 침대에 엎드려서 자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포개진 둘의 손이 그의 머리 아래에 깔려 있었다.

야홍릉은 입가를 실룩거렸다.

‘이 녀석, 일부러 이런 거 아니야? 나를 힘없는 연약한 여인으로 본 거야? 아니면 내가 절대 깨어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한 건가? 그것도 아니면 날 떠보느라 자는 척하나?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나한테 무슨 수작이라도 부리려고 이러나?’

야홍릉은 말없이 가만히 있었지만 머릿속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일어나서 탑에 가 자라고 할까? 아니면 모르는 척할까? 그것도 아니면 아예 제대로 올라와서 자라고 할까?’

그녀는 능묵이 태극궁의 밀실에서 나온 뒤로 점점 선을 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모르는 척, 능묵이 이렇게 자도록 내버려 두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밀실에서 능묵이 지금과 같은 자세로 잠들었던 게 생각났다. 그때는 연속 사흘을 잤는데 자고 깨난 뒤, 능묵은 몸이 시큰거려 아주 힘들어했었다.

그것을 떠올린 야홍릉은 또 한숨을 내쉬었다.

“능묵.”

그녀가 평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금 뭐 하는 것이냐?”

능묵이 고개를 들었다.

달빛 속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부드럽기만 했다.

“주인님?”

“지금 뭐 하는 것이냐?”

야홍릉이 또 한 번 물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능묵은 고개를 숙였다.

시선을 둘의 맞잡은 손에 떨어진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잠이 오지 않아 주인님 가까이에서 자고 싶었습니다. 주인님이 쉬시는 걸 방해했다면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능묵.”

“네, 주인님.”

“난 당분간 사랑할 생각이 없다. 다시 깨어난 뒤, 평생 그 누구도 좋아하지 못할 거고 그 누구의 진심도 믿지 못하겠거니 생각했다.”

그녀는 일어나 앉으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자신과 상관이 없는 일인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난 진심을 믿는다.”

능묵은 흠칫 놀라며 저도 모르게 입술에 힘을 주었다. 심장이 저도 모르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중에는…….”

야홍릉은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

“난 연약하고 부드러운 여인이 아니다. 평온하고 알콩달콩 사는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내 옆에 있어도 네가 원하는 결말을 맞이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야.”

이 말은 그의 마음을 거절하는 의미도 담고 있었지만 능묵은 여전히 설레는 기분을 억누를 수 없었다.

적어도 그녀는 그의 진심을 믿어주고 그의 마음에 정면으로 대답했기 때문이었다.

“남성국에는 연약하고 부드러운 여인이 많습니다. 그들은 평온하고 알콩달콩하게 사는 걸 원하지요.”

능묵은 시선을 들고 그녀의 차가운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전 전쟁터에서 보았던, 주인님의 멋진 모습이 좋았습니다. 능력과 분위기 모두 남자들과 비교해 손색이 없는 여인을요. 첫눈에 반했습니다. 이 마음은 평생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 마음이 평생 변하지 않을 거라고?’

그녀는 이미 그의 말을 믿고 있었다.

그러나 입꼬리를 슬쩍 올린 그녀는 일부러 느릿하게 물었다.

“남성국의 여인들?”

능묵은 눈을 깜박거렸다.

뭔가 심상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전쟁터?”

야홍릉이 옅게 웃으며 물었다.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느냐?”

능묵은 순간 당황하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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