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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113)화 (114/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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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화 혼자는 안 죽습니다

내관 이해는 황제에게 예를 올리고 물러났다.

태후는 이해의 부축을 받으며 가마에 올랐다.

인수궁의 궁녀들은 태후를 둘러싼 채 영린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영린은 고개를 돌리고 묵백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친 순간, 둘은 동시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 그들조차도 야홍릉의 성격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태후를 먼저 달래서 보낸 것도 나쁜 일이 아니었다.

야홍릉에게 화가 난 태후는 영린의 위로를 듣고도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녀는 화난 얼굴로 인수궁에 돌아간 뒤에 크게 화를 냈다.

그런데 어찌 연회에 참가할 기분이 나겠는가?

만약 연회에서 야홍릉이 또 그녀의 화를 돋운다면?

그럼 정말 태후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될 것이다.

“호국 공주의 성격은 정말 예나 지금이나 보기 드문 성격이군요.”

대전 안으로 들어간 영린은 의자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쉬는 야홍릉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 황궁에 있으면서 궁의 최고 어른인 태후에게 예의를 좀 갖추시면 안 됩니까?”

야홍릉은 여전히 덤덤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태후께서 화가 나시면…….”

“저도 상황 파악을 못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폐하의 황궁에 있으니 폐하께서 제 안전을 지켜주시겠죠.”

야홍릉이 덤덤하게 말했다.

영린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제가 그러지 못한다면요?”

“제가 안전하다는 확신이 없었다면 이 궁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야홍릉은 시선을 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곳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최고 어르신인 태후에게 찍힐 일도 없었겠죠.”

야홍릉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만약 이 황궁에 들어오는 게 위험하다면 그녀는 쉽게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들어왔다는 것은 이곳이 안전하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비굴하게 허리를 숙이면서 안전을 구걸하고 싶지 않았다.

야홍릉의 말에 영린은 할 말이 없었다.

그는 야홍릉이 치밀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야홍릉은 그 누구 때문에 원칙을 바꾸지도 않았고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있었다.

야홍릉은 소름 끼칠 정도로 똑똑했다.

영린이 뭐라고 말을 하려는데 야홍릉의 심드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한, 제가 판단을 잘못해서 위험에 처했다고 하더라도 잠자코 죽기를 기다리지 않을 것입니다.”

영린은 깜짝 놀랐다.

“못해도 같이 죽어야죠.”

야홍릉은 시선을 들고 영린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저와 능묵의 실력으로 아무리 금위군에게 둘러싸인다 해도 태후를 죽이는 정도는 어렵지 않을 겁니다.”

영린은 당황한 얼굴로 묵백을 바라보았다.

“주인님께서는 태후만 죽이면 됩니다. 제가 나머지 두 명을 맡겠습니다.”

능묵이 담담하게 말했다.

“나머지 두 명은 누구인데?”

영린이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우리 말고 누가 더 있습니까?”

묵백이 말했다.

영린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 황궁에 들어온 이상, 내가 무조건 야홍릉의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는 거네. 안 그러면 직접 정사를 보기 전에 죽을 거라는 말이잖아? 이렇게까지 간 큰 사람은 처음인데.’

영린은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코를 만지작거렸다.

순간 황제인 자신이 참 초라하게 느껴졌다.

다른 사람이 그의 앞에서 당당하게 협박하는 것을 들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말이 사실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폐하.”

내관의 공손한 목소리가 들렸다.

“대신들은 이미 장희궁에 도착했습니다. 폐하와 묵백 대인도 지금 가시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영린은 고개를 돌리고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누님.”

야홍릉은 시선을 들고 그를 힐끗 바라보았다.

“누가 폐하의 누님이라고 그러십니까? 아무나 누님으로 모시고 그러지 마세요.”

말을 마친 그녀는 일어서서 밖으로 걸어갔다.

능묵은 그녀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하얀 비단 장포를 입은 그는 훤칠하고 강직한 분위기를 풍겼다.

뒤에 선 영린과 묵백은 말없이 둘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영린이 입을 열었다.

“참 아름다운 둘이야. 오늘 밤 외모로 연회장의 사람들을 압살하겠군.”

“외모로 압살한다고요?”

묵백은 웃으며 뒷짐을 졌다.

그는 몸에 꼭 맞은 흑색 장포를 입었는데, 귀티 나는 얼굴에 신비로움을 더했다. 그의 눈빛은 한결같이 깊었다.

“저보다 더 잘생긴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러십니까?”

그 말을 들은 영린은 표정이 구겨졌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묵백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제사면 고결하고 세속에 물들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야? 언제부터 이렇게 속물로 변했지?”

“두 분이 절 속세로 끌어내렸잖습니까. 사랑꾼인 두 분만 아니었다면 전 곧 신선이 되었겠지요.”

그 둘을 만나는 바람에 평생의 수행이 헛수고가 되지 않았나.

묵백은 전생에 이 둘에게 빚을 진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사랑꾼?’

영린은 시선을 내리깔고 서글픈 마음을 숨겼다.

‘사랑꾼은 한 명이지. 야홍릉의 옆에 서 있는 그만이 사랑꾼이라 불릴 수 있지. 난…… 사랑꾼이라고 불릴 자격도 없어.’

* * *

날이 어두워지자 등불이 대전을 환하게 밝혔다.

연회가 시작되었다. 사죽(絲竹) 소리가 어우러진 장희궁은 아주 떠들썩했다.

어여쁜 궁녀들이 접시를 든 채, 대전을 누비며 황제와 대신들의 상에 술과 음식을 올려놓고 있었다.

권신들도 일찍부터 궁에 들어와 있었다. 어떤 이들은 연회석에 앉아 있었고 또 어떤 이들은 장희궁 편전에 모여서 태후와 황제가 오기 전에 차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었다.

화제는 모두 오늘의 주인공인 평양 공주였다.

그녀와 상관이 없는 사람은 호기심이 가득했고 그녀와 연관이 있는 사람은 분노가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악귀나 다름이 없었어요! 어디를 봐서 공주다운 구석이 있대요? 장공주와 그녀를 비교하면 봉황과 거위죠! 물론 우리 장공주 전하가 봉황이고 평양 공주인지 뭔지 하는 것은 거위고요. 높은 지위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

“높은 지위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요?”

궁녀들에게 둘러싸인 채, 걸어오던 영묘언이 코웃음을 치며 조기헌을 바라보았다.

“조 세자, 오늘 밤 연회는 폐하께서 특별히 언니를 위해 준비한 것임을 잊은 건 아니시죠? 언니가 높은 지위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면 왜 참가하셨나요? 아침의 일로 언니에게 겁먹고 집에 틀어박혀 있다고 들었는데, 왜 하루도 지나지 않아 기어 나와서는 언니의 명성을 더럽히는 거죠?”

조기헌은 고개를 돌리고 시퍼런 얼굴로 말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던 군주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말이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다른 사람에 대해 얘기한 거라면 저와는 상관이 없지만 능야 언니를 나쁘게 말하고 있잖아요!”

영묘언은 코웃음을 치며 비웃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조 세자, 위 국구가 침대에 누워 있는 게 부러워서 그렇게 되고 싶은 건가요?”

“뭣……!”

“폐하 납시오!”

높은 목소리와 함께 대전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곧이어 사람들은 무릎을 꿇으며 예를 올렸다.

“폐하를 뵙습니다. 폐하, 만수무강하시옵소서!”

“일어나시오.”

영린이 담담하게 말했다.

“모두 자리에 앉으시지요.”

오늘 초대를 받고 온 사람은 동제의 진국공, 조 군왕과 안국공을 선두로 한 십여 명의 조정 권신, 그리고 조기헌과 후소우를 선두로 한 귀족 세자, 장공주 영가와 섭정왕부의 영묘언을 선두로 한 종친 적녀 등이었다.

그들을 초대한 목적은 새로 책봉된 평양 공주를 소개하기 위함이었다.

사람들은 신분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영린은 여유롭게 최고 상석에 앉았다. 그리고 묵백과 야홍릉에게 앉으라고 눈치를 주었다.

궁인은 진작 황제의 좌석 양옆에 연회석을 마련해 두었다. 야홍릉은 사양하지 않고 오른쪽 탁자 앞으로 걸어가 앉았다.

왼쪽 자리는 자연스럽게 묵백에게 남겨졌다.

능묵은 야홍릉의 탁자 옆에 있는 방석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사람들은 착석한 뒤, 이상한 기분이 들어 황제가 앉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

“짐이 소개하겠습니다.”

영린은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든 좌석에 기대 야홍릉의 방향을 가리키며 느긋하게 말했다.

“이분은 짐이 누님으로 모신 분입니다. 또 갓 책봉된 평양 공주이시지요. 여러분은 평양 공주에게 인사를 올리세요.”

말을 마치자마자 대전 안은 정적이 감돌았다.

사람들은 시선을 모두 야홍릉에게 돌렸다.

조기헌은 장공주 영가조차 계단 아래쪽에 앉아 있는데 하루아침에 봉황이 된 평양 공주가 황제와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저 여인이 무슨 자격으로?’

후소우는 조용히 심운미를 바라보았다. 심운미는 말없이 영가를 힐끗 쳐다보았다.

영가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조용히 눈을 내리깐 채,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접시 위의 포도를 집어 우아하게 껍질을 벗긴 뒤, 입에 넣었다.

그녀는 포도의 달콤한 맛을 음미하듯 빨간 입술을 오물거렸다.

대전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어떤지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귀족 여인들은 몰래 야홍릉과 그녀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준수한 소년을 바라보았다. 여인들은 소년의 신분을 짐작하며 또 평양 공주와 황제의 사이를 부러워하기도 하고 야홍릉의 아름다운 미모를 질투하기도 했다.

물론 그녀와 미소년이 함께 앉아 있는 것 또한 화젯거리였다.

‘옆에 있는 소년은 정말 잘생겼네. 폐하와 멋진 묵백 대인에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어. 그런데 남녀칠세부동석이잖아? 오늘 연회가 남녀 구분을 엄격하게 하지 않았다고 해도 한 사람이 연회석 하나를 차지하면 좀 좋아? 왜 굳이 같이 앉는 거지?

가깝게 앉은 것을 봐서 사이가 좋아 보이는데. 혹시 저 잘생기고 귀티가 나는 소년과 말 못 할 사이는 아닐까?’

젊은이들은 생각이 깊지 않았다. 속생각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냈다.

몇몇이 단순한 악의를 품은 것 말고 대다수 젊은 남녀는 야홍릉과 능묵의 사이를 짐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국공, 안국공, 조 군왕, 계 태부 등 나이가 많은 대신들은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은 채, 점잖게 앉아 있었다.

몰래 새 공주와 그녀의 옆에 앉아 있는 소년을 훑어 보았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다.

대전에 모인 사람들은 각자 다른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조 군왕이 먼저 입을 열어 정적을 깼다.

“폐하, 오늘 연회에 대해 태후마마께 알리지 않으셨습니까?”

이 말에 대전은 순식간에 정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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