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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111)화 (11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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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화 스스로 원하다

심운미는 침묵을 지키다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위녕은 전하의 외삼촌이지 않습니까?”

“외삼촌이면, 뭐요?”

영가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외삼촌이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려서 다쳤는데 제가 대신 복수라도 해줘야 하나요?”

심운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 조용히 지내는 게 좋아요. 그 인간을 위해서 나설 생각 없어요.”

영가가 싸늘하게 말했다.

“하나같이 일을 망치는 데는 선수죠. 그 세 멍청이 말이에요, 어디를 봐서 명문 세가다운 수양을 갖추었나요?”

‘능력도 안 되면서 사람을 건드려 괜한 일을 만들고. 결국 그 책임을 오롯이 혼자 감당하잖아. 누가 그렇게 한가해서 그들이 친 사고를 수습해 주겠어? 게다가 궁에서도 지금까지 아무 말이 없는 것을 보면 폐하가 함구령을 내린 게 틀림없어. 그래서 태후의 귀에 전해지지 않은 거야. 안 그러면 폐하가 아무리 위로해도 어마마마가 가만히 계실 리 없었을 텐데. 폐하께서 어마마마 쪽에 말이 전해지지 않게 한 것을 보면 궁 밖에까지 소문나지 않도록 하셨을 거야. 어제 대신들이 폐하를 뵈려다 실패했으니 오늘 조례에서…….’

“오늘 조례에서 공주 책봉에 불만을 꺼내는 대신은 없었나요?”

심운미가 담담하게 말했다.

“불만을 품는 사람은 당연히 있지요. 하지만 성지가 이미 떨어졌는데 그들이 아무리 불만스러워도 어쩌겠습니까? 폐하께서 다시 지시를 거두어들이실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영가는 실눈을 뜨고 말했다.

“심운미, 폐하께서 요즘 하시는 행동을 보면 예전과 좀 다른 것 같지 않으세요?”

그 말을 들은 심운미는 침묵을 지키다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 얘기를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또 괜한 생각을 한 게 아닌가 싶어…….”

황제는 요새 많이 달라졌다. 겉보기엔 평소와 다름없이 순수한 모습이었지만 어제 궁에서 황제와 나눴던 말들이 계속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는 그 말들을 떠올릴 때마다 강한 위압감에 둘러싸인 느낌이었다.

영가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말했다.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거죠?”

심운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영가는 꽃이 활짝 핀 정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갑자기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요즘 폐하께서 왜 자꾸 이상한 행동을 하시는 걸까요?”

이 질문에 그렇다 할 해명을 내놓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운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승상으로 큰 권력을 가지고 있는 듯했지만, 섭정왕이 아직 권력을 황제에게 돌려주지 않았기에 승상인 그는 아직 섭정왕과 대항할 힘이 없었다. 또 그는 궁의 소식도 바로 알 수 없었다.

황제의 곁에는 신비로운 묵백 대인이 있기 때문이었다.

묵백이 황제의 깊은 신임을 얻고 있기에 다른 신하들은 황제에게 아무리 충성을 다한다고 해도 황제와 가까워질 수 없었다.

그리하여 황제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느낌이 들어요.”

영가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의미심장했다.

“폐하께서 아주 놀라운 일을 준비하고 있다는 느낌 말이에요. 어쩌면…… 동제에 곧 큰 변화가 생길 것 같네요.”

그 말을 들은 심운미는 흠칫 놀랐다.

“전하의 뜻은…….”

“전 아무 뜻도 없어요.”

영가는 눈을 감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저 폐하께서 이제는 제가 뭔가를 해주길 바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심운미는 침묵했다. 그는 시선을 아리따운 영가의 얼굴에 돌렸다.

문득 황제의 지난 말이 떠올라 그는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승상이 아닌 부마가 되고 싶냐고…….’

그는 어두운 눈빛으로 한참이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 *

신시(申時, 오후 3~5시)가 지나 저녁이 되었지만 햇살은 여전히 뜨거웠고 더운 바람이 부는 듯했다.

화려한 제왕의 침궁에서 묵백이 직접 야홍릉에게 차를 타 주었다. 그리고 똑같이 능묵에게 한 잔 따라주었다. 그는 능묵이 영위라고 전혀 무시하지 않았다.

“오늘 공주로 책봉되셨다고 하나 동제는 공주 전하께 낯선 나라나 다름이 없습니다. 아직 혼자이시니 조용히 지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영린은 고개를 들고 싸늘한 얼굴의 여인을 바라보며 제안하는 어조로 말을 꺼냈다.

“저도 조용히 지내고 싶습니다.”

야홍릉은 차를 마시고는 우아하고 기품이 흐르는 자태로 싸늘하게 말했다.

“하지만 멍청한 인간이 너무 많아 조용히 지낼 수만은 없겠던데요.”

만약 위녕과 조기헌이 먼저 찾아와 도발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그들을 완전히 무시할 수 있었다.

영린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능묵.”

묵백은 의자에 앉아 야홍릉의 옆에 서 있는 준수한 청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 주인이 동제의 문관 세가들의 공공의 적이 되었는데 걱정되지 않소?”

능묵은 차가운 얼굴로 담담하게 대답했다.

“걱정되지 않소.”

묵백은 입가를 실룩거렸다. 그는 능묵이 걱정하지 않는 이유가 능묵에게 야홍릉을 지킬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누군가 야홍릉을 괴롭힌다면 그는 상대방을 눈 깜짝하지 않고 죽일 사람이었다.

‘이 둘은 좀 너무한 게 아닌가? 조심스럽게 지내는 게 좋은 거 같은데.’

“물어볼 말이 있다.”

야홍릉은 시선을 들고 묵백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능묵의 진짜 신분은 무엇이지? 이 자의 기억은 언제 돌아오느냐?”

묵백은 침묵을 지키다 물었다.

“왜 갑자기 이렇게 급히 알려고 하시는 겁니까?”

“능묵이 머리가 아프니까.”

야홍릉이 대답했다.

“나도 굳이 골치 아프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말해다오.”

‘골치 아프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묵백은 고개를 돌리고 영린을 바라보았다.

영린은 몸의 힘을 푼 채, 넓은 의자에 축 늘어져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궁금하시다면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지요.”

영린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무슨 조건 말입니까?”

“능묵이 궁에서 사흘간 머물게 해주십시오.”

“싫습니다.”

능묵이 차가운 목소리로 단호하게 거절했다.

“전 기억을 되찾지 않아도 됩니다.”

영린과 묵백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어찌 저런 말을?’

“내가 너더러 말을 하라고 했더냐?”

야홍릉이 고개를 돌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네 말대로 하겠느냐, 내 말에 따르겠느냐?”

능묵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주인님의 말씀에 따릅니다.”

묵백과 영린은 또 침묵에 잠겼다.

‘능묵이 기억을 되찾은 뒤에도 이렇게 순할까?’

그들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기억을 되찾은 뒤에 지금의 모습을 떠올리는 어떤 기분이 들까?’

“능묵, 내가 장담하는데 자네가 기억을 되찾으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요.”

묵백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기억을 되찾지 않으면 앞으로도 종종 이렇게 머리가 아플 것이오. 계속해서 기억을 잃은 채로, 또 머리가 아픈 채로 살아가고 싶다면 그 결정을 존중해 주겠소.”

‘존중?’

야홍릉이 담담하게 물었다.

“능묵이 남제의 황족과 연관이 되어 있느냐?”

영린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알아내신 겁니까?”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을 내리깐 채, 차를 마셨다.

그녀는 사실 알아낸 것이 아니라 분석하여 추측해본 것이었다.

하지만 영린의 반응을 보니 그녀가 내린 결론이 정확한 듯했다.

“능묵은 남제의 황자가 맞습니다.”

영린은 능묵을 힐끗 보더니 곧바로 덧붙였다.

“하지만 남제의 황족과는 그저 혈연관계일 뿐입니다.”

‘그저 혈연관계라고?’

야홍릉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뜻이죠?”

영린은 시선을 내리깔고 느긋하게 말했다.

“그가 기억을 되찾으면 다 알게 되실 겁니다.”

이 말을 들은 야홍릉은 생각을 해보다 물었다.

“남성국과 연관된 건가요?”

영린은 고개를 들고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공주 전하의 관찰력에 감탄할 따름입니다.”

야홍릉은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어느 정도 짐작하게 되었다.

묵백이 남성 대제사이고 능묵의 신분이 남성국과 연관된다면, 능묵이 묵백을 보고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 것도 말이 되었다.

능묵이 남제의 황자라고 하면 영린과도 같은 가문 출신이기에 영린이 그를 아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한참 정적이 흐른 뒤, 야홍릉이 물었다.

“능묵의 신분이 이토록 고귀한데 왜 목국 황제의 영위가 되었지?”

영위는 능력이 강하나 결국 주인이 부리는 도구에 불과했다.

좋은 주인을 만난다면 좀 오래 살 수는 있으나 영위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주인을 만난다면 파리 목숨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게다가 신은전은 혹독한 훈련을 하는 곳으로 그곳에서 겪는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이상, 누구도 어영위가 한 훈련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모를 것이다.

한 영위가 신은전에서 지낸 몇 년 동안 얼마나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는지, 또 그의 강한 능력이 얼마나 많은 피와 고통으로 바꿔온 것인지 모를 것이다.

게다가 그들 중에는 훈련 도중에 탈락하여 죽은 사람도 많았다.

그들은 죽은 뒤에도 이름이나 묘지 없이 먼지처럼 세상에서 사라졌다.

사람들은 영위를 칼로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날카로운 칼이라고 해도 수많은 귀족에게는 그냥 물건에 불과할 뿐이었다.

야홍릉의 무공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강했다.

그러나 그녀는 지옥 같은 혹독한 훈련을 겪지 않았기에 실력으로 따지면 능묵보다 훨씬 못했다.

그녀는 능묵이 그녀에게로 온 첫날.

능묵이 그녀가 겪어보지 못한 수많은 고통을 견디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처럼 강한 능묵이 있다는 것도.

예전에는 대수롭잖게 생각했으나 능묵을 둘러싼 비밀이 점차 드러나며 그의 신분이 밝혀지자 야홍릉은 더 이상 평온한 마음가짐으로 이 문제를 생각할 수 없었다.

그녀는 반드시 진실을 알아야 했다.

능묵과 남성국이 어떻게 연관이 있는지 차지하고서라도 남제의 황자 신분만으로도 능묵은 아무 이유 없이 살인 도구로 전락될 리는 없지 않은가?

야홍릉은 그가 누군가의 음모에 당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생각했다.

황자들이 황위를 두고 서로 다투며 음모를 꾸미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원한 거라면 전하께서 믿으시겠습니까?”

묵백이 능묵을 힐끗 보더니 물었다.

항상 무표정하던 능묵은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진실이 궁금하나 또 진실을 아는 게 두려운 눈치였다.

그래서 묵백이 이 말을 꺼냈을 때, 야홍릉과 능묵 모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 말은 둘이 예상하던 답이 아닌 게 분명했다.

“스스로 원한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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