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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110)화 (11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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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화 참 재밌겠네요

차 향이 풍겨오더니 계 어멈이 갓 우린 차를 들고 다가왔다.

그녀는 시선을 내리깔고 야홍릉과 영묘언에게 차를 따랐다.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가서 볼일을 보거라.”

계 어멈은 예를 올렸다.

“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떠날 때, 그녀는 옆에 서 있는 능묵을 힐끗 보았다.

‘이 아름답게 생긴 청년은 어떤 신분이지? 언제 공주부로 들어온 거지? 아침에 공주부에 들어올 때, 섭정왕부의 군주를 제외하고 평범한 얼굴의 소년 시위밖에 없었는데.’

“언니, 위녕은 괜찮겠죠?”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죽지는 않을 거예요.”

능묵이 힘을 어느 정도로 썼는지 그녀도 보아서 알고 있었다. 기껏해서 침대에 삼 개월만 누워 있으면 나을 것이다.

“태후마마께서 책임을 물으시면 어떡해요? 후소우와 조기헌이 궁에 들어가 고자질을 하면 태후마마께서 크게 화를 내실 거예요. 제가 부왕더러 궁에 들어가서…….”

영묘언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니에요.”

야홍릉은 찻잔을 들고 가볍게 마셨다.

“저한테 다 생각이 있어요.”

영묘언은 이 말을 듣더니 안심이 되었다.

그녀는 이유 없이 야홍릉의 말을 믿었다.

그러나 위 국구가 다쳤다는 소식은 태후의 귀의 전해지기 전에 영린이 막았다는 것을 둘은 모르고 있었다.

영린과 묵백은 이 소식을 듣고 멍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묵백은 침묵을 지키다 한숨을 쉬며 말했다.

“폐하께서는 호국 공주가 하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그가 한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신은전 출신의 어영위가 한 것이라면 목숨을 살려두지 않았겠지.”

영린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신은전에서 그렇게 오래 지냈는데 지금은 아직 기억을 완전히 되찾은 것도 아니니 어영위 시절의 버릇이 남아 있겠지.”

그래서 그는 능묵이 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묵백은 고개를 저으며 다른 의견을 내비쳤다.

“그런데 그가 주인이 나설 때까지 가만히 있었을까요?”

어영위의 충성심으로 판단하면, 위녕이 야홍릉에게 불손한 말을 하거나 무례를 범했기에 나선 게 분명했다.

그런 상황에서 주인이 직접 나서도록 지켜볼 사람이 아니었다.

“그 말도 맞아.”

영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야홍릉에게 시끄러운 일이 생길까 일부러 힘을 줄인 듯하네.”

죽지만 않았다면 얼마든지 수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죽는다면 작은 일도 큰일이 되는 법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영린은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갑자기 무서운 예감이 들어. 그 둘이 있는 한 앞으로 동제의 제경은 떠들썩해질 것 같아.”

야홍릉이 사고를 치는 성격은 아니지만 번화한 곳에는 항상 자잘한 분쟁이 많은 법이다.

남자들 사이에서도, 여자들 사이에서도 보이지 않는 전쟁은 그치지 않았다.

게다가 원래도 조정에서 문관과 무장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또 최근 몇 년간 영위가 섭정하면서 양측 사이의 갈등은 크게 격화되었다.

아무리 갈등이 생겨도 겉으로는 평화로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야홍릉은 예의를 갖추지 않는 사람에게 망설임없이 무력을 휘둘렀다. 이틀 사이에 두 번이나 무력을 휘둘러 제경의 내로라하는 문관들을 거의 다 건드렸으니 앞으로 그들은 야홍릉을 눈엣가시로 여길 것이다.

그녀가 먼저 남을 건드리지 않는다고 해도 그녀를 찾아와 시비를 거는 사람은 분명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겁이 없는 성격이니……

영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혹시 스스로 골칫덩이를 들인 게 아닐까?”

묵백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걸로 골치가 아프다고 하시면 어떡합니까? 지금 그녀를 많이 도울수록 나중에 그녀에게 도움을 청할 때, 할 수 있는 말이 많으실 게 아닙니까? 마땅히 기뻐해야지요.”

영린은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오늘 일이 태후의 귀에 들어간다면 크게 난리가 날 것입니다.”

묵백이 옅게 웃으며 말했다.

“게다가 위녕은 폐하의 외삼촌이 아니십니까? 이걸 그냥 넘기실 건 아니시죠?”

영린은 넓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더니 덤덤하게 말했다.

“그 인간이 눈치가 없어 벌어진 일인데 누구를 탓해? 스스로 저지른 잘못은 스스로 감당해야지. 난 아직 정사도 보지 못하는데 어떻게 섭정왕부의 손님에게 밉보이겠어?”

묵백은 그를 흘겨보았다.

그는 기다란 손가락으로 찻잔 뚜껑을 열고 차를 마셨다.

그리고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좋은 일을 했으니 생색을 내야지요. 오늘 밤 궁에서 연회가 열리는데 준비하셨나요?”

“무슨 준비? 저녁의 연회는 야홍릉을 위해 준비한 거야. 그녀가 다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둬야지.”

영린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묵백은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폐하께서는 그들이 황궁을 무너뜨리도록 두실 겁니까?”

“그래도 되고.”

영린은 고개를 들고 대들보를 바라보았다.

“무너뜨려도 좋아. 겸사겸사 나가서 바람도 쐬고 말이야.”

묵백은 그만 할 말을 잃었다.

* * *

평양 공주부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영묘언은 작별을 고하고 섭정왕부로 돌아갔다.

아침에 벌어진 일은 소문이 나지 않았는지 섭정왕부에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다. 모든 것이 조용하기만 했다.

야홍릉은 창가의 미인탑에 앉아 고개를 돌리고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싸늘함이 가신 얼굴로 물었다.

“저택에 호원은 몇 명이 있더냐?”

능묵은 아까 둘러보면서 호원의 인원수를 마음속으로 기억해 두었다.

“이백 명가량 됩니다.”

야홍릉이 물었다.

“실력은 어떠하더냐?”

“모두 상위급 정예 호원들이었습니다. 아마도 폐하의 대내 금위에서 뽑아온 사람인 듯합니다.”

능묵이 대답했다.

호원들의 실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공주부의 방어 설치도 허점을 잡을 수 없이 완벽했다.

야홍릉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준수한 청년은 탑 앞에 서서 그녀의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기다란 속눈썹이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눈을 가려주었다.

여름날 오후 날씨는 아주 무더워 나가기 적합하지 않았다.

창가의 미인탑에 앉아서 솔솔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며 정원 가득 핀 꽃을 바라보는 삶이라니. 너무 한적하고 평화로웠다.

“능묵.”

짧은 정적이 지난 뒤, 야홍릉이 입을 열었다.

“운명을 믿느냐?”

능묵은 당황했다.

‘운명?’

그의 머릿속에 어떤 장면이 휙 스쳤지만 자세히 보기도 전에 또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극심한 통증이 머리에서 느껴졌다. 누군가 망치로 그의 머리를 내리치는 느낌이었다. 능묵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손으로 머리를 붙잡았다.

그러나 그 고통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가 아픔을 참기도 전에 통증이 사라졌다.

다시 평온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방금 본 것은 모두 착각인 듯했다.

“왜 그래?”

야홍릉은 평소와 다른 그의 반응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머리를 감싼 그의 팔을 보더니 물었다.

“안색이 좋지 않은데…… 머리가 아픈 것이냐?”

능묵은 고개를 들었다. 그는 아까의 통증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 두 손을 내리며 천천히 시선을 내리깔았다.

“……아마도 착각인 것 같습니다.”

‘착각이라고?’

야홍릉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의 말을 알아들은 야홍릉은 침묵을 지키다 물었다.

“뭔가 생각이 난 것이냐?”

능묵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저었다.

“너무 빨리 사라져서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야홍릉은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려고 했다.

그러나 곁눈질로 먼 곳의 정자에서 걸어오는 계 어멈을 보았다. 그녀는 방문 밖에 멈춰서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공주 전하, 시간이 거의 되었습니다. 궁에 들어갈 마차를 준비하라고 할까요?”

계 어멈은 아직도 심장이 떨렸다. 공주의 시위가 위 국구를 다치게 했으니 지금 궁에 들어간다면 수많은 사람이 그들의 죄를 물으려고 벼르고 있을 것이다.

잘생긴 청년은 무공이 강해 보이지만 궁은 무공 실력을 겨루는 곳이 아니었다.

위 국구는 태후의 친동생이고 승상, 군왕부와 안국공부는 모두 위씨 가문의 뒷배였다. 그들이 궁에 들어가면 연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트집을 잡을지 상상할 수 없었다.

계 어멈은 그 장면만 생각하면 겁이 났다. 이번 입궁은 무사히 마치기 어려울 것 같았다.

하지만 황제가 연 연회인데 어떻게 가지 않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야홍릉은 창밖을 내다보았다. 밝고 뜨거운 것이 아무리 보아도 저녁과 한참 먼 듯했다.

그러나 야홍릉은 일어서며 담담하게 말했다.

“가지.”

그녀는 먼저 묵백과 영린을 찾아가 이 일을 의논할 생각이었다.

“공주 전하, 옷을 갈아입지 않으실 건가요?”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대로 갈 것이다.”

오전에 이곳에 오자마자 그녀는 이미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저택에서 나가지 않았기에 땀을 흘리지도, 먼지가 묻지도 않았다. 그러니 굳이 옷을 갈아입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계 어멈도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조용히 물러갔다.

* * *

“국구가 많이 다쳤던가요?”

정원의 정자 안에서 나긋나긋하나 목소리가 무심한 어조로 물었다.

“어제 말했잖아요! 능야를 더 이상 건드리지 말라고. 제 말을 안 듣고 굳이 찾아가더니 누구를 탓하겠어요?”

장공주 영가는 꽃 덩굴 아래에 묶인 그네에 앉아 있었다. 옅은 자주색 치마를 입은 그녀에게서 아름다운 귀티가 흘렀다.

바람이 불어오자 얇은 면사로 된 치마가 바람에 흩날리며 선녀를 방불케 했다.

“심하게 다쳤습니다. 어깨와 가슴, 복부와 두 다리의 뼈가 모두 금이 간 듯합니다. 오장육부도 다쳤고요. 숨만 겨우 붙어 있습니다.”

심운미가 담담하게 말했다.

“조기헌은 놀라서 집 밖에 나오지 못하고 후소우도 국구부에서 한참 있다가 위녕에게 생명의 위험이 없다는 태의의 말을 들은 뒤에야 떠났습니다.”

“집 밖에 나오지 않는다고요?”

영가는 웃음을 터뜨렸다.

“참 우습네요.”

심운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를 때린 사람은 능야의 시위예요?”

심운미는 잠깐 침묵을 지키다 고개를 저었다.

“그자의 신분을 파악할 수 없습니다. 후소우의 말로는 아주 잘생긴 청년이라고 했는데 흰색 비단 장포를 입고 있는 것이 시위 같지 않고 세가의 공자 같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력이 무시무시하다고 합니다.”

‘세가의 공자?’

영가는 미간을 찌푸렸다.

“능야의 옆에는 무슨 고수가 그렇게 많아요?”

‘잘생긴 세가 공자는 또 어디에서 나온 거야?’

“당분간은 그 배경에 대해서 알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심운미는 눈을 내리깔고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처음에 저는 그 고수 시위가 한 짓이라고 생각했는데 후소우의 말을 들어보니 그건 아닌 듯했습니다.”

그렇게 화려한 옷차림을 할 시위는 없었다. 게다가 용모와 분위기가 빼어나다고 하니 누구도 그를 시위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영가는 침묵을 지키다 말했다.

“됐어요. 그런 걸 지금 생각해 봤자 답이 나와요? 오늘 저녁이면 어차피 알게 될 것을.”

말을 멈췄던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오늘 연회가 참 재미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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