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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109)화 (11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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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화 나머지 한 명

랑교에서 걸어오는 여인은 열예닐곱 살 정도 되어 보였는데, 비단 같은 흑발에 마른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빨간색 긴 치마에 검은색 허리띠로 가는 허리를 강조한 그녀는 싸늘하고 차가우나 깊고 맑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용모는 가히 경국지색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아름다웠다.

차가운 분위기의 그녀는 산꼭대기에 핀 꽃처럼 아름다우나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겼다.

영묘언은 눈을 깜박였다. 순간, 그녀의 마음속으로 미인을 칭송하는 수많은 시구가 떠올랐으나 결국 한마디 외에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미인의 아름다움은 분위기에 있지,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언니는 외모도 아름다운데 분위기도 있어.’

영묘언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언니, 너무 예뻐요.”

그 말에 사람들은 정신을 번쩍 차렸다.

조기헌이 먼저 코웃음을 쳤다.

“너무 예쁘다고? 군주는 혹시 미인을 보지 못했습니까? 저 여인이 장공주의 발치에나 미치겠습니까?”

영묘언은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진심으로 조기헌이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조기헌, 눈이 멀었나요? 영가를 불러와서 비교해볼까요? 언니가 영가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걸요.”

조기헌은 화를 내며 차갑게 말했다.

“저는 그저 있는 대로 말했을 뿐입니다.”

“저도 사실을 얘기한 거예요. 그런데 눈에 뻔히 보이는 걸 아니라고 우기지는 않죠.”

“능 낭자와 장공주는 모두 아름다우십니다. 각자의 매력이 다르시지요.”

후소우가 웃으며 말했다.

“장공주의 아름다움은 봄바람처럼 따스한 느낌을 풍기는가 하면 능 낭자의 아름다움은 감히 다가갈 수 없는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지요.”

“피하기 바쁘다고 하는 게 맞겠지.”

위녕이 냉소하며 말했다.

“아름답게는 생겼으나 사랑스러운 성격이 없으니 사내들은 싫어할 뿐이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눈앞에서 바람이 느껴졌다.

그러더니 그림자가 슉 나타났다. 순간 위녕은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어찌 된 일인지 살펴보기도 전에 가슴팍에서 극심한 고통이 전해졌다.

퍽!

그렇게 그는 줄 끊어진 연처럼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는 청석판으로 된 바닥에 무겁게 떨어졌다.

뼈가 부러지는 둔탁한 소리에 사람들은 소름이 돋았다.

후소우와 조기헌은 모두 당황하여 믿을 수 없는 얼굴로 화청 밖을 바라보았다.

순간, 온몸의 피가 멈춘 것처럼 그들은 멍하니 선 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위녕의 몸은 기이한 자세로 꺾인 채,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죽었는지, 쓰러진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한참이 지나도록 일어나지 못했다.

주변의 공기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어제의 교훈을 뼛속 깊이 새기지 않았나 보군. 오늘 이렇게 급히 죽으려고 찾아온 것을 보면.”

살기가 담긴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기헌, 후소우, 영묘언과 계 어멈까지 모두 굳은 채로 고개를 돌리고 말을 하는 소년…… 아니, 청년을 바라보았다.

소년과 청년, 그 중간쯤 되어 보이는 나이였다.

그러나 이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하얀색 장포를 입은 청년은 말없이 야홍릉의 옆에 서 있었다. 훤칠하고 마른 몸과 귀티가 나게 생긴 얼굴에는 한기가 맴돌았다.

그의 피부는 잡티 없이 하얬다. 어깨까지 드리워진 비단결 같은 머리카락에서는 유순한 인상이 풍겼다.

그의 머리카락은 약간 젖어 있었는데 갓 목욕을 한 듯했다. 그러나 위녕이 쓰러진 곳을 바라보는 청년의 눈길은 차갑기만 했다.

‘이자는 누구지?’

후소우는 다른 것을 신경 쓰지 않고 급히 화청을 나가 위녕의 앞에 가서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그의 코 밑에 손가락을 대보았다.

“넌 누구냐?”

조기헌이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능묵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겁에 질려 있었으나 목소리만 차가웠다.

“현임 국구를 죽이다니 그 죄를 어찌……”

“아직 죽지 않았소.”

야홍릉은 말없이 탁자 앞으로 걸어가 앉았다.

그녀는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숨이 붙어 있을 때, 의원에게 데려가는 게 좋겠군. 정말 죽기라도 한다면…….”

그녀는 시선을 들고 차갑게 냉소를 지었다.

“결국 누구의 죄가 되는지 어디 한 번 두고 보던가.”

후소우는 고개를 들고 시퍼런 얼굴로 화청에 앉아 있는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위 국구는 태후의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오. 능 낭자, 태후에게 벌을 받을 준비를 하는 게 좋겠소!”

말을 마친 그가 차갑게 말했다.

“여봐라! 위 국구를 마차에 태워서 궁의 태의에게 가거라. 그리고 오늘 일을 한 글자도 빠짐없이 태후께 아뢰거라!”

따라온 시종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멍하니 있다가 후소우의 지시를 받은 뒤에야 꿈에서 깬 듯, 쓰러진 위 국구를 안아 마차에 태웠다.

그리고 급히 저택 밖으로 뛰어갔다.

그들이 지나는 길마다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죽음의 기운을 풍기는 그 광경에 사람들은 소름이 돋았다.

“능야, 좋소, 아주 좋소!”

조기헌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야홍릉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당신은…… 이젠 죽었소. 기다리시오.”

말을 마친 그는 급히 떠나갔다.

영묘언은 도망치듯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제경의 귀공자들은 다 왜 이래? 예전에는 이들이 이런 줄 전혀 몰랐는데 오늘 보니 세가의 품행이나 수양이 전혀 없잖아. 장공주부에 들락거릴 때는 하나같이 우아한 척하더니 오늘 한 짓을 보면 멍청하기 그지없네.’

“공…… 공주 전하.”

계 어멈은 놀라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위, 위 국구는 태후마마께서 가장 아끼시는 동생이자 폐하의 외삼촌이십니다…….”

야홍릉은 고개를 돌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두려워할 것 없다.”

계 어멈은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게 어떻게 나와 상관없는 일이란 말이야?’

위녕은 태후가 아끼는 동생이었다. 평소 세가 공자들도 그를 조심스럽게 떠받들기 바빴는데 오늘 평양 공주부에서 다친 것이다.

이 소식은 곧 궁에 전해질 것이 분명했다.

태후가 알면 절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크게 화를 낼 게 분명했다.

조정의 대신들은 원래도 갑작스럽게 나타난 평양 공주에게 불만이 많았는데 지금은 약점까지 잡았으니 난리를 칠 게 뻔했다.

게다가 그들에게는 장공주 영가도 있었다.

영가는 평소에도 태후의 말에 순종적으로 따르는데 이번 일을 가만히 넘길 리 없었다.

계 어멈은 큰 화를 입게 될 생각에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녀는 평양 공주부에 온 것을 내심 후회했다. 이런 성격의 주인을 모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언제든지 목숨을 잃을 위험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차를 타 오너라.”

야홍릉이 담담하게 지시를 내렸다.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물러가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 시녀들은 이 말을 듣고 예를 올린 뒤, 겁먹은 얼굴로 급히 화청을 빠져나갔다.

계 어멈은 후들거리는 몸으로 차를 타러 떠났다.

영묘언은 고개를 돌리고 준수하게 생긴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 사람의 분위기가 아주 익숙하다고 생각했지만 누군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언니, 이분은…….”

“능묵이에요.”

영묘언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능묵 시위라고요?”

‘이렇게 잘생겼었어? 시위조차 이렇게 잘생겼던 거야? 나도 이렇게 잘생긴 시위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녀는 능묵의 예전 모습이 역용액을 사용한 뒤의 얼굴일 거라고 짐작했다. 야홍릉도 남장을 할 수 있는데 능묵이 용모를 바꾸는 것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영묘언은 조용히 능묵을 훑어보다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언니, 능묵 시위의 눈매가 누군가와 좀 닮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야홍릉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닮았다고?”

“이목구비도 좀 닮은 것 같은데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영묘언은 능묵을 한참 바라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폐하와 말이에요.”

말을 마친 그녀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깜짝이야. 이런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되는데.’

황제는 아주 고귀한 사람으로 일반인은 이름조차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없었다.

그런데 어찌 함부로 용안을 언급할 수 있다는 말인가?

황제가 들을 수 없는 상황이어도 안되었다.

아니, 황제는 들어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입을 잘못 놀렸다가 누군가 듣고 탄핵이라도 한다면 없는 죄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야홍릉도 흠칫 놀라더니 고개를 돌려 능묵을 바라보았다.

청년의 준수한 얼굴에서 차갑고 날카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의 이목구비는 명문가 귀공자와 비교해도 될 만큼 잘생겼다. 아까 있던 세가 공자들보다 훨씬 귀티가 흐르는 얼굴이었다.

표정이 차갑고 기세가 날카로워도 그의 온화한 얼굴을 가릴 수 없었다.

‘영린과 닮았나?’

야홍릉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는 능묵의 용모가 영린과 닮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둘의 이목구비와 분위기에서 전혀 닮은 구석을 찾아내지 못했다.

‘내가 능묵의 얼굴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가?’

그런데 그녀가 영린을 처음 보았을 때도 영린과 능묵이 닮았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굳이 닮은 데를 찾아내자면 둘 다 얼굴형과 이목구비가 준수하고 온화하게 생겼다는 것이었다. 한 명은 고귀한 황제답게 생기지 않았고 다른 한 명은 냉혹한 어영위 같게 생기지 않았다.

용모로만 따지만 둘은 모두 그림에서 걸어 나온 것 같은 귀공자 느낌이었다.

다만 능묵이 영린보다 몇 살 위일 뿐이었다.

능묵은 고개를 숙인 채, 옆에 서서 야홍릉이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을 묵묵히 참고 있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해도 속으로 더없이 긴장하고 있었다.

‘이 얼굴…… 이만하면 나쁘지 않겠지? 주인님의 마음에 드는지 모르겠네.’

“닮은 것 같아요?”

야홍릉은 시선을 거두고 영묘언을 바라보며 물었다.

영묘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닮았다는 게 아니라 딱 보는 순간 익숙한 느낌이 들었어요.”

야홍릉은 고개를 끄덕이고 생각에 잠겼다.

‘혹시 능묵의 신분이 영씨 황족과 연관된 게 아닐까? 만약 정말 그렇다면 영린과 묵백이 능묵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군 것도 이해가 되지.

하지만 영씨 황족에게는 황자가 둘밖에 없는 줄로 아는데. 한 명은 목국에 인질로 간 영정이고 다른 한 명은 황제가 된 영린이고. 그렇다면 남제에…….’

야홍릉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전에 능묵이 남제에 황자가 여섯 명 있다고 말한 것이 기억이 났다.

그러나 그녀가 알기로는 다섯 명밖에 없었다.

‘정말 여섯 명이라면 그 한 명은 어디로 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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