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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106)화 (107/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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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화 그게 어려워?

밖에는 뜨거운 햇볕이 쏟아지고 더운 바람이 불어왔다.

하지만 그의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돋아 있었다.

심운미는 미간을 찌푸리고 궁 문의 방향을 돌아보았다. 이상하게 답답하고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폐하이신데 왜…….’

그는 방금 영린이 방금 말한 말을 떠올리며 입술을 꽉 물었다.

‘내가 승상이 아닌 부마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실 거라니.’

그는 침울한 기분이 들었다.

동제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존재하는 규정이 있었다. 바로 황족의 친척은 정사에 간섭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후궁이 정사에 간섭하지 못하는 것은 예전부터 전해 내려온 규정이었다.

그러니 공주의 부마 또한 관리가 될 수 없었다.

심운미는 조정 1품 대신으로 젊은 나이에 큰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나이에 승상의 자리에 오른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의 능력이 뛰어나긴 했지만 이는 황제의 큰 신임을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심운미가 장공주를 좋아하는 것 역시 귀족들 사이에 소문이 퍼진 일이었다.

심지어 그는 장공주에게 청혼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오늘 황제의 말은 그의 머리에 찬물을 끼얹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는 마음이 어지러웠다.

‘영가를 위해 승상 자리를 포기하고 공주의 부마가 되어야 하나? 아니면 승상 자리를 지키기 위해 영가에 대한 마음을 접어야 하나?’

심운미는 복잡한 마음에 발걸음마저 무거워졌다.

* * *

야홍릉은 문무에 모두 능하고 외모가 출중할 뿐만 아니라 마음도 단단했다.

바깥이 아무리 공주 책봉의 일로 떠들썩해도 그녀는 영풍원에서 조용히 쉬고 있었다. 그러다 저녁 무렵에 궁에서 보낸 사람이 찾아왔다.

“저는 폐하의 지시를 받고 온 사람입니다. 공주 전하를 모시고 새 저택으로 가서 둘러보겠습니다.”

말을 한 사람은 계(紀)씨 어멈이었다. 그녀의 뒤에는 궁녀 네 명이 따르고 있었다.

“저택에 모두 새 가구로 채워 넣었습니다. 공주 전하께서 보시고 필요한 게 있으시면 저에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그럼 제가 바로 사람을 보내 마련하겠습니다.”

야홍릉은 가서 저택을 살펴 보기 귀찮았다.

영린이 저택을 증여하기로 했으니 당연히 기본적인 가구나 부릴 하인은 다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개인의 취향으로 더 장만하면 되었다.

그러나 야홍릉처럼 취향이라고 할 것이 없는 사람은 다른 요구가 더 없었다.

“알아서 하거라. 내일 아침에 그쪽으로 옮기겠다.”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계 어멈은 지시받은 뒤, 망설이는 눈빛으로 야홍릉의 옷차림을 바라보았다.

“공주부로 옮기실 때도…… 이 차림으로 가실 것입니까?”

야홍릉이 담담하게 물었다.

“왜 그러냐?”

계 어멈은 흠칫 놀라더니 급히 고개를 숙였다.

“전하께서 남장을 좋아하시면 제가 사내의 옷을 더 많이 준비하겠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녀가 원래 하려던 말은 공주로 되면 황족의 신분에 맞게 공주다운 치장을 해야지 이렇게 아무렇게나 입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야홍릉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바꾸고 말았다.

새 공주의 기가 너무 강해서 그녀는 함부로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네가 해야 할 일만 신경 쓰면 된다.”

야홍릉이 말했다.

“이들을 모두 저택에 데려가거라. 저택의 잡다한 일들은 나한테 일일이 묻지 말고 네가 알아서 하거라.”

계 어멈은 고개를 조아릴 뿐,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새 공주가 저택의 일을 모두 그녀에게 맡기겠다고 하자 계 어멈은 기뻤다.

그녀는 공손하게 감사의 뜻과 충성을 다하겠다는 말을 한 뒤, 시녀 네 명을 데리고 섭정왕부를 떠났다.

영묘언은 꿈을 꾸는 듯한 얼굴로 야홍릉을 바라보며 말했다.

“언니, 공주가 되시다니…… 신분이 저보다 더 고귀하세요…….”

물론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능 낭자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냐는 것이었다.

“만약 부왕과 폐하가 대립하게 된다면 언니는 누구의 편을 들 거예요?”

“두 분은 대립하지 않을 것입니다. 두 분 다 영씨이고 피를 나눈 친척이니 동제의 땅을 지키는 것은 섭정왕과 폐하가 함께 다해야 하는 책임입니다.”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영묘언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피를 나눈 친척이라고? 동제는 부왕과 폐하가 함께 지켜야 한다고? 왜 이 말이 이렇게…… 맞는 말 같지? 그런데 예전에는 왜 누구도 나한테 이렇게 말해 주지 않았지?’

다른 사람들은 모두 섭정왕이 황제의 강적이라고 말했다. 예로부터 황제는 섭정왕 또는 황제를 대신해 정사를 돌본 대신과 평화롭게 지낸 적이 없다고 했다.

다들 황제가 어려서 섭정왕이 대권을 쥐고 있지만 황제가 크면 섭정왕을 눈엣가시로 여기며 그를 죽여 후환을 없앨 거라고 했다.

이런 말은 함부로 할 수 없는 말이었으나 사적인 자리에서 하는 사람은 적지 않았다.

영묘언은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어린 소녀였으나 섭정왕부에 살다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아는 것도 많고 들은 것도 많았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부왕과 황제가 서로 칼을 겨누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능야가 그 둘이 대립각에 서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정말이에요?”

야홍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영묘언은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다.

“그럼 전 앞으로 영가와 사이좋게 지내야 하나요?”

“그건 군주께 달렸지요. 잘 보이려고 애쓸 필요 없습니다. 마음이 가는 대로 해도 충분해요.”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폐하께서 갑자기 다른 사람처럼 고모부와 마음을 터놓고 얘기했다고 하셨는데 능 공자가 힘쓴 것입니까?”

구불구불한 회랑에서 연한 파란색 장삼을 입은 봉회근이 정자로 들어섰다.

그는 깨끗하게 씻은 포도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새하얀 원형 접시에는 동그란 포도알이 탐스러운 빛깔을 뿜고 있었다.

봉회근이 담담하게 물었다.

“고모부께서 폐하가 예전과 달라지신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영묘언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오라버니가 언제부터 섭정왕부의 시녀 일을 하게 된 거예요?”

“이것아, 먹을 것을 가져다줘도 싫어?”

봉회근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고모께서 다 씻은 포도를 가져다주라고 하셨어.”

마침 야홍릉과 할 얘기가 있었던 그는 포도를 가져왔다.

“난 그런 적 없소. 전에는 그를 알지 못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성미가 어떤지 전혀 몰랐소. 그런데 오늘 아침에 궁에 들어가 그와 얘기를 몇 마디 나눈 뒤에야 그가 섭정왕을 적으로 돌릴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오.”

야홍릉이 말했다.

그러자 봉회근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왜 저에게 독을 사용한 것입니까?”

제경의 관리들은 모두 황제와 섭정왕이 사이가 좋지 않으며 황제가 직접 정사를 본다면 둘이 원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황제가 섭정왕을 적으로 돌릴 생각이 없다는 반전이 일어난 것이었다.

야홍릉은 침묵을 지키다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봉회근은 눈빛이 흔들렸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야홍릉의 시선을 살펴보다가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능 공자는 눈에 띄게 아름다우시나 기세가 강해 연약한 여인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바로 그녀가 남장을 해도 누구도 의심하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야홍릉은 예쁘게 생겼지만 성미가 권력이 강한 남자들보다 더 차갑고 기세가 강해서 남장을 하면 누구도 그녀를 여인으로 보지 않았다.

“전 언니가 여인의 옷차림을 한 모습을 보고 싶어요.”

영묘언은 턱을 괸 채, 동경 어린 시선으로 야홍릉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영가보다 더 예쁜 동제의 공주가 되겠죠?”

봉회근은 이 말을 듣고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장공주 영가는 동제의 수많은 귀족 공자들의 구애를 받는 미인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 때문도 있었지만 장공주의 신분도 큰 역할을 했다.

영가는 그들의 구애를 한껏 즐기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능야의 성격으로 구애를 받게 된다면…….’

봉회근은 생각에 잠겼다.

‘능력이 강하고 간이 큰 사람만이 구애를 할 수 있겠지.’

“저만 불쌍하게 되었어요…….”

영묘언은 미간을 찌푸린 채,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어쩌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죠?”

그녀가 실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야홍릉이 섭정왕부에 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영묘언이 그녀에 대한 마음도 깊은 편이 아니라서 마음이 다칠 정도는 아니었다.

영묘언은 그저 울적할 뿐이었다.

봉회근과 야홍릉 모두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분위기가 미묘하게 변했다.

“고모께서 오늘 저녁 식사를 부용청(芙蓉廳)에서 하자십니다.”

봉회근은 재빨리 용건을 전했다.

“고모께서 특별히 맛있는 음식을 차려 능 공자…… 아니, 능 낭자를 접대하겠다고 하셨으니 잊지 말고 가십시오.”

영묘언이 말했다.

“그럼 전 여기서 언니와 얘기를 나누다가 이따 같이 갈게요.”

봉회근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떴다.

“언니가 공주부에 가시면, 제가 사람들을 소개해줄게요.”

영묘언이 말했다.

“제경의 귀족 세가의 공자와 소저들 말이에요. 귀족들이 다 장공주부의 치마폭에 싸여 있는 건 아니에요.”

야홍릉은 말없이 차를 마셨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봉회근이 한 질문을 생각하고 있었다.

‘영린이 왜 그에게 독을 탄 거지?’

그녀도 이것이 궁금했다. 그러나 이것 말고도 궁금한 게 있었다.

영린은 예전에는 영위에게 불만이 많았다고 했다.

전생에서 둘이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 그녀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영린이 보여준 행동은 야홍릉이 예상했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남성국의 대제사가 동제의 황제 곁에 있었고 열세 살밖에 되지 않은 소년이 ‘예전에 저지른 잘못’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

영린은 분명 그녀와 모르는 사이인데도 그녀에게 이렇게 잘해주고 있었다.

순간, 놀라운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야홍릉은 흠칫 놀라며 저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쨍강!

찻잔이 그녀의 손에서 으스러졌다. 찻잔의 파편이 그녀의 손바닥에 박히며 빨간 피가 손가락 틈 사이로 흘러나왔다.

“언니!”

영묘언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정자 밖에 서 있던 능묵은 흠칫 놀라더니 빠른 속도로 정자에 들어와 야홍릉을 안고 정자 밖으로 날아갔다.

영묘언은 눈앞에 뭔가가 언뜻 하고 지나더니 앞에 있던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능묵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사람을 죽을 때도 꿈쩍하지 않던 손이 지금은 강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야홍릉의 손바닥에 박힌 파편을 빼냈다.

야홍릉은 떨고 있는 능묵이 오히려 걱정이 되었다.

“능묵.”

그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이 정도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야.”

능묵은 입술을 꽉 깨문 채, 손끝을 덜덜 떨며 말했다.

“제가 가서…… 의원을 데려올…….”

“그렇게 요란하게 날 안고 방으로 들어가길래 난 또 네가 직접 상처를 싸맬 줄 알았는데.”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게 어려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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