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의문투성이
야홍릉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의 눈은 초점 없이 한 곳에 닿아 있었다. 원래도 의문으로 가득했던 머릿속이 더더욱 복잡해지는 듯했다.
의문도 전혀 풀리지 않았다. 아니, 더 많은 의문이 생겨났다.
현재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능묵이 비밀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든, 그녀에게 나쁜 마음을 품을 리 없다는 것이었다.
평소 능묵이 보여준 행동과 묵백의 말에서 야홍릉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만약 이 판단이 틀렸다면 능묵과 묵백의 연기가 너무 좋거나 야홍릉 자신이 그렇게 똑똑하지 못한 경우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으로 보면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영린의 태도도 이상했다.
편하고 너무 솔직한 것도 이상한데 자신에게 너무 적극적으로 잘 대해주는 것이 더더욱 이상했다.
그녀에게 야소숙과 왕래한 증거를 주겠다고 할 뿐만 아니라 그녀를 누님으로 모시겠다고 하지 않는가?
야홍릉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직접 정사를 보게 될 황제가 뭐가 아쉽다고 다른 나라의 공주에게 이렇게 잘 보이려 한다는 말인가?
‘게다가 고작 야소숙을 위해 숨길 필요는 없다고 했지? 그러나 전생에서는 분명 협력이 아주 잘되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섭정왕이 영린에게 패배한 것도 사실이야…….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왜 동제에 오니 많은 일이 내가 예상한 것과 다르게 흘러가는 거지? 심지어 영린이 섭정왕에 대한 태도도 내가 생각하던 것과 달라. 그리고 묵백은 또 어떤 사람일까……. 오늘 보니 묵백과 영린은 일반적인 사이가 아니야. 황제와 신하의 사이라고 하기보다 진짜 친구에 가까웠어.’
“저지른 잘못을 돌이키려는 것이지요.”
이 말을 떠올린 야홍릉은 묵백이 장공주부를 떠나서 궁으로 갔다가 또 궁에서 나오는 길에서 한 얘기가 많지 않으나 모두 묘한 말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머리가 아파진 야홍릉은 미간을 문지르며 담담하게 말했다.
“능묵.”
능묵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네.”
“머리가 아프니 좀 주물러다오.”
능묵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야홍릉에게 다가갔다.
“주인님, 어디 편찮으십니까? 제가 의원을 모셔올까요?”
“아니야. 그저 생각할 게 많아서 머리가 아픈 것뿐이야.”
야홍릉이 대답했다.
‘생각할 게 많아서?’
능묵은 입을 꾹 다문 채, 말없이 그녀의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능묵.”
야홍릉은 생각에 잠긴 듯,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동제의 황제가 인상에 남을 만한 행동을 한 게 있느냐?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다 좋으니 말해 보아라.”
능묵은 눈을 내리깔고 생각을 해보다 고개를 저었다.
“들어본 적 없습니다.”
영린은 올해 열세 살이었고 황위에 오르기 전에는 아이였다.
황위에 오른 뒤에도 대권은 섭정왕의 손에 있으니 그가 세상을 뒤흔들 큰일을 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능묵은 야홍릉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묵백이 한 말을 그도 들었다.
그래서 야홍릉이 이 질문을 할 때, 그는 자연스럽게 ‘저지른 잘못’에 대해 생각했다.
황족 출신의 고귀한 황자들과 공주들은 궁녀나 하인 한두 명을 때려죽인다고 해도 사람들에게는 큰 잘못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묵백이 한 말에 큰 비밀이 숨어 있을 수도 있었다.
“주인님.”
능묵은 야홍릉의 아름다운 얼굴에 드리운 수심을 바라보며 말했다.
“영린과 묵백은 이 비밀을 다 알고 있겠지요. 주인님, 고민하지 마시고 직접 물어보십시오.”
야홍릉은 침묵했다.
“제가 오늘 일로 불안해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능묵은 자책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또 주인님이 이런 의문에 휩싸이게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비밀이 다 풀리면 네 신분도 드러날 텐데 그때도 내 어영위가 될 수 있겠느냐?”
능묵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잠깐 생각하다가 시선을 내리깔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저는 영원히 주인님의 어영위입니다.”
변수는 항상 계획보다 빨리 찾아오는 법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야홍릉은 원래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영묘언에게 자신이 여인임을 밝히려고 했다.
그렇게 하여 영묘언이 그녀에게 품었던 마음과 기대를 접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말을 하기도 전에 황제의 지시가 먼저 알려지며 순식간에 제경을 발칵 뒤집었다. 조정의 문무백관과 귀족 세가들 모두 깜짝 놀랐다.
“폐하께서 말씀하시기를, 황제의 누님 능야는 총명하고 성품이 훌륭하며 우아하기에 평양 공주(平陽公主)로 임명한다. 그리고 현무 거리(玄武街)의 공주부를 한 채 증여하니 그리 알고 있어라. 이상!”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짧은 정적이 흐른 뒤, 황성 전체가 떠들썩해졌다.
‘평양 공주? 그게 누구지? 황제에게 또 누님이 있었어?’
‘능야라고? 그게 누구지?’
‘폐하에게 누님이라고는 장공주 영가밖에 없지 않았나? 언제 또 누님이 한 명 더 생긴 거지?’
‘영씨가 아니라 능씨라고? 황족 혈통이 아니라는 건가?’
다들 수군거리며 추측하기 바빴다.
사람들은 모두 놀랐으나 백성들은 황실의 일을 감히 입에 올리지 못했다. 황제가 공주를 책봉한 게 아니라 황후를 책봉했다 하더라도 그들은 함부로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성지에 당황한 사람들은 모두 동제의 문무백관이었다. 그리고 아침에 장공주부에 갔던 사람들이었다.
‘폐하께 갑자기 누님이 생기더니 공주로 책봉한다고?’
제경의 귀족들 사이에서 이 소식은 천하를 뒤흔들 큰일이었다.
‘섭정왕이 알고 있나? 새 공주가 누구지?’
능야는 들어도 보지 못한 이름인데 왜 갑자기 공주가 된 거지?’
“능야?”
승상부로 돌아와 자리에 앉기도 전에 놀라운 소식을 들은 심운미는 깜짝 놀랐다.
“능야가 누군데?”
“대인께 아룁니다. 저도 모릅니다.”
심운미는 미간을 찌푸렸다. 준수하고 점잖은 얼굴에 당황한 표정이 서렸다.
그러다 뭔가 떠오른 듯, 눈을 번쩍 떴다.
‘혹시 그 사람인가?’
아침에 황제가 직접 장공주부에 가서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능 공자를 데려갔었다. 그리고 영가는 능 공자가 여인이라고 했다.
‘여인이라…….’
심운미는 황제가 그녀를 공주로 책봉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 사람이 도대체 누구기에 폐하가 아무런 예고 없이 그녀를 누님으로 모신 거지?’
동제의 승상 자리는 황제의 바로 밑에 있는 고귀한 자리였다.
하지만 그도 황제에게 성이 다른 누님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황제는 그를 궁으로 불러들여 의논도 하지 않고 이 누님을 공주로 책봉했다.
황제의 빠른 행동력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섭정왕의 동의를 먼저 거친 건가? 태후는 알고 있나? 영가가 이 소식을 듣게 되면 어떻게 생각할까?’
심운미는 주원으로 들어가며 생각하다가 결국 저택을 나선 뒤, 장공주부로 향했다.
* * *
“능야가 누군데?”
조기헌은 갑작스러운 통보에 깜짝 놀랐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한참 생각했다. 그러다 한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 그는 고개를 번쩍 들고 위 공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 그럴 리는 없겠지?”
위 공자가 물었다.
“누군지 아시오?”
조기헌이 대답했다.
“아침에 공주부에서 보았던 능 공자 말이오.”
위 공자는 흠칫 놀랐다.
“능 공자도 능씨이니 혹시 그의 누님이나 여동생이 아닐까?”
“그럴 수도 있소. 그런데 왜…….”
조기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후소우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능 공자의 누님이나 여동생이 아니라 능 공자를 가리키는 것이오.”
‘뭐라고?’
조기헌과 위 공자 모두 깜짝 놀랐다.
“지금 생각해 보니 능 공자는 정말 예쁘게 생겼었지. 그런데 아무리 예쁘게 생겼다고 해도 장공주가 첫 만남에 그렇게 열정적으로 굴 리는 없지 않소? 그렇다면 능 공자가 여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지.”
조기헌과 위 공자는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여인이라고? 그 능씨가 여인이라는 말인가? 우리 앞에서 남장한 것도 못 알아보고 질투를 했다는 말인가?’
더욱 민망한 것은 그들이 여인 한 명도 잡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호원이 중상을 입기까지 했다.
“폐하께서 뭐라고 하셨소? 총명하고 성품이 훌륭하며 우아하다고?”
조기헌은 표정이 굳었다.
조서에 적힌 글을 읽을 때마다 그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그 소년이 어디를 봐서 성품이 훌륭하다는 건가? 또 어디를 봐서 우아하다는 거지? 완벽한 냉혈한이잖아. 여인이어도 차갑기 그지없는 인간이라고!’
“승상께서 이 소식을 들으신다면 장공주부에 상황을 알아보러 가시겠지.”
말을 마친 후소우는 몸을 돌렸다.
“우리도 가자고.”
문관 쪽의 귀족 공자들은 저도 모르게 장공주 영가를 만나러 갔다.
무장 쪽의 사람들은 진국공을 선두로 아들을 섭정왕부에 보내 상황을 알아 오게 했다.
야홍릉이 황제의 성지를 받았을 때, 이미 밖은 한창 떠들썩할 때였다.
회랑에서 뛰어오던 영묘언은 방문을 나서는 야홍릉과 마주치자 발걸음을 멈추었다.
“능……. 능 공자.”
영묘언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폐하의 성지가…….”
야홍릉은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제멋대로 행동한 영린에게 화가 났으나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영묘언은 멍한 표정을 짓다가 그녀가 사과하는 이유를 알아차리고 물었다.
“능 공자, 정말 여인이세요?”
야홍릉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묘언의 표정이 다채롭게 변했다. 그녀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놀란 표정으로 바뀌더니 미간을 찌푸리고 야홍릉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러다 결국 약간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더 이상 의심할 게 없었다.
부왕이 가져온 소식이고 능 공자도 직접 인정했으며 황제의 성지에도 명확하게 쓰여 있었다. 다만 너무 놀라울 뿐이었다.
“전……. 능 공자가 여인일 줄은 전혀 몰랐어요.”
영묘언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여러 번이나 능 공자에게 자신의 연모하는 감정을 드러냈던 그녀는 창피하여 숨고만 싶었다.
‘창피해.’
평생 처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상대가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파악하지 못한 것이었다.
영묘언은 민망해 죽을 것 같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야홍릉이 말했다.
“하지만 일부러 속일 생각은 없었어요.”
“알아요.”
영묘언은 자신의 얼굴을 찰싹찰싹 치며 빨갛게 상기된 얼굴을 숨겼다.
“저……. 걱정하지 마세요. 저 화난 거 아니에요. 그저……. 조금 놀라울 뿐이죠.”
야홍릉은 고개를 끄덕인 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황제가 제멋대로 일을 벌인 것을 생각하면 슬그머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참, 부왕께서 능 공자더러……. 아니, 능……. 능 낭자더러…….”
영묘언은 한참 머뭇거리다가 온전한 말을 내뱉었다.
“부왕께서 서재로 오시래요.”
야홍릉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