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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87)화 (88/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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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화 알아보다

야홍릉은 능묵이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이유는 아마도 오늘 홍수관에서 본 흑의인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더 물을 생각이 없었다.

대다수 일은 생각을 해도 잘 풀리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억지로 생각을 하려고 해도 소용없었다. 생각을 거듭해 보았자 머리만 어지럽힐 뿐이었다.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젊은 사장이 갓 탄 차를 들고 올라와서 예의 바른 목소리로 말했다.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으니 먼저 차를 마시면서 기다려 주십시오.”

말을 마친 그는 야홍릉과 능묵에게 차를 따라주었다.

“주루의 점소이 두 명은 이미 집으로 갔습니다. 손님께서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저를 불러 주십시오.”

야홍릉은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고 능묵도 말을 하지 않았다.

점잖고 준수한 사장은 코를 문지르고 돌아서서 떠났다.

‘참 차가운 소년들이야. 이런 성격의 소년들은 보기 쉽지 않은데.’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야홍릉은 찻잔을 들고 가볍게 마시고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보고 싶은 것이 있는 게 아니라 머리를 비우고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생각해 볼 계획이었다.

주변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발걸음이 두 번째로 들려왔다. 여전히 젊고 준수한 얼굴의 사장이었다.

그는 커다란 접시에 요리 몇 가지를 들고 올라와 탁자에 올려놓았다.

“그럼 맛있게 드십시오.”

사장이 말했다.

“이 두 가지는 야채 요리입니다. 간판 요리도 곧 올 겁니다.”

말을 마친 그는 돌아서서 떠나려고 했다.

이때, 야홍릉이 입을 열었다. 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주인장, 알아보고 싶은 게 있네.”

점잖은 분위기의 사장은 그 말을 듣고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돌아서서 야홍릉을 말없이 바라보더니 옅게 웃으며 말했다.

“네, 물어보십시오.”

“장공주 영가 말이네, 예쁜가?”

사장의 미소가 가뭇없이 사라졌다.

젊은 사장은 무표정한 얼굴의 소년을 바라보며 그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의아했다.

‘장공주 영가는 황족 공주인데…….’

잠깐 침묵을 지킨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장공주는 미인이십니다.”

야홍릉은 그의 표정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장공주의 초대를 받고 모레 연꽃 감상회에 가게 되었는데 그녀의 성미나 취미를 몰라 그러네. 아는 대로 좀 말해 주겠나?”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한 마디 덧붙였다.

“할 수 있는 말만 하시게. 할 수 없는 말은 안 해도 된다네.”

사장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장공주부의 연꽃 감상회에 간다고? 장공주의 초대를 받았다는 것을 보면 일반 신분은 아닐 텐데. 그런데 장공주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니…….’

“공자의 성함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야홍릉이 대답했다.

“난 능씨네.”

“능 공자께서 장공주의 초대를 받으셨는데 그분의 성격에 대해서는 모르신다는 말씀입니까?”

야홍릉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힐끗 보았다.

“다 이유가 있어서네. 뭘 듣고 싶은 건가?”

그러자 사장은 표정이 변하며 고개를 숙였다.

“제가 무례를 범했습니다.”

‘하긴 그럴 수도 있지.’

황족과 귀족 사이는 관계가 복잡했다.

그들이 만남을 가지는 것은 우정보다 이익과 연관된 점이 많았다.

그러고 보면 능 공자가 초대받았다 해도 장공주에 대해 잘 모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세상에는 이상한 일과 이상한 사람이 많아 합리적인 일이든, 합리적이지 않은 일이든 제경에서는 모두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공주는 미인입니다. 여리고 성미가 부드러우시고요.”

사장은 좋은 말만 했다.

“저는 장공주를 직접 뵌 적은 없으나 세상에 둘도 없는 미인이라고 들었습니다.”

‘세상에 둘도 없다’는 게 무슨 뜻인지는 장공주를 직접 만나야 알 것이다.

야홍릉이 담담하게 물었다.

“또 없나? 내가 잘 보이고 싶다면 뭘 해야 하나? 선물은 뭐로 하면 좋고?”

“장공주는 취미가 많으십니다. 특히 꽃을 좋아하시지요. 그러나 아무것도 선물하지 않는 게 좋을 것입니다. 선물하면 골치가 아파지거든요.”

사장이 말했다.

야홍릉은 미간을 치켜세웠다.

“왜지?”

“장공주는 용모가 아름다우시고 성미가 온화하셔서 제경의 귀족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야홍릉은 말없이 잠자코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고맙네.”

“별말씀을요.”

사장이 계속해서 말했다.

“장공주부에 들어가셔서 말과 행동을 조심하시고 선을 넘지 않으신다면 별다른 위험은 없을 것입니다. 장공주는 성격이 좋으시거든요.”

이 말을 끝으로 사장은 물러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야홍릉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잠시 뒤, 그녀는 뭔가를 깨달은 듯했다.

아름다운 외모는 강한 무기가 될 수 있었다.

영가가 얼마나 예쁜지 직접 보지 못했지만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것을 보면 용모가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상 남자들은 대다수 미인을 좋아했다. 특히 연약한 미인일수록 남자들의 보호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다.

게다가 영가는 신분이 고귀하고 권력도 가지고 있으니 일반적인 미인보다 훨씬 우위에 놓인 셈이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보는 게 달랐다. 주루의 사장이 말한 장공주는 아름답고 여린 느낌이다.

영묘언이 말한 잘난 척하는 영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둘이 같은 사람을 말하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능묵.”

야홍릉은 시선을 들었다.

“오늘 밤 장공주부로 가서 좀 알아보거라. 너무 오래 있을 필요는 없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말거라.”

능묵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밖에서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고 밥을 먹은 뒤, 바로 섭정왕부로 돌아왔다.

왕부의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급히 걸어오는 영묘언과 마주쳤다.

야홍릉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능 공자, 오셨어요?”

그녀는 야홍릉을 보더니 뛰어와서는 야홍릉을 훑어보았다.

“괜찮으세요?”

야홍릉은 침묵하다가 말했다.

“괜찮습니다.”

“능 공자가 밖에서 위험한 일이라도 겪었을까 걱정되어 죽는 줄 알았어요.”

영묘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방금 오라버니가 혼자 돌아와서 능 공자는 어디에 있냐고 물어봤더니 말해 주지도 않아서. 전 능 공자가 떠난 줄 알았어요…….”

사실 그녀는 능 공자가 부왕에게 무슨 일이라도 당한 줄 알았던 것이다. 저녁 무렵에 능 공자가 서재로 들어가 부왕과 얘기를 나눈 뒤, 봉회근과 함께 저택을 나갔고 결국 봉회근이 혼자 돌아왔으니 말이다.

그녀는 부왕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능 공자가 부왕에게 미움을 사 죽임을 당한 줄 알았다.

“시간이 늦었으니 군주는 이만 돌아가 쉬십시오.”

야홍릉은 말을 마치고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내일 저택에서 하루 동안 쉴 테니 군주께서 심심하시다면 놀러 오십시오.”

졸리지 않다고 말하려던 영묘언은 야홍릉의 말을 듣고 바로 활짝 웃었다.

“네, 능 공자. 피곤할 테니 일찍 쉬세요. 전 이만 가볼게요.”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부왕께서는 지금 저택에 계시지 않으니 누군가 괴롭힐까 걱정하지 마세요.”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섭정왕 전하는 저를 괴롭히시지 않습니다. 군주, 걱정하지 마십시오.”

영풍원으로 돌아오자 시녀가 다가와 지금 목욕하겠냐고 물었다.

야홍릉은 창밖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

시녀는 뜨거운 물이 담긴 통을 욕조에 넣고 또 정연하게 개어 있는 깨끗한 수건과 거품망, 향료 등 물건들을 가져왔다.

모든 준비를 마친 뒤, 시녀는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야홍릉은 문을 닫았다. 능묵은 그녀의 침의를 준비한 뒤, 눈을 내리깐 채, 공손한 자세로 옆에 서 있었다.

그녀는 잠깐 침묵을 지키다 병풍 뒤로 걸어갔다.

옷을 벗은 뒤, 그녀는 따뜻한 물이 담긴 욕조로 들어갔다.

야홍릉은 눈을 감고 욕조의 벽에 기대 피로가 풀리는 느낌을 만끽했다.

“능묵.”

그녀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여기를 지킬 필요가 없다. 얼른 다녀오거라.”

능묵은 고개를 숙인 뒤, 창가로 가더니 창문으로 순식간에 뛰어넘었다.

그리고 다시 창문을 닫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밤이 깊어지자 세상이 조용해졌다.

* * *

같은 시각.

황궁의 내원에 있는 제왕의 침궁 안에서는 목욕을 마친 소년이 용 무늬가 수놓아진 비단탑에 기대앉아 있었다. 그는 하얗고 긴 손가락으로 섭정왕이 읽었을 상주서를 느긋하게 펼치고 있었다.

밝은 불빛에 드러난 소년의 얼굴은 준수하고 귀티가 흘렀다. 그림에서 걸어 나온 귀공자 같은 모습이었다.

이때,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사람이 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흑의를 입은 잘생긴 남자가 들어왔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옷자락이 나부끼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멋스러움이 흘렸다.

궁인들은 겁을 먹은 듯, 고개를 숙이고 감히 그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남자는 손에 신통을 들고 황제 가까이 걸어갔다.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폐하.”

소년은 시선을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맑고 깨끗한 그의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게 어둡기도 했다. 모든 감정을 눈동자 속에 감춘 듯한 느낌이었다.

“무슨 일이냐?”

소년의 청아한 목소리가 들렸다.

“방금 받은 소식입니다.”

흑의 남자는 손에 든 신통을 그에게 건네주고는 맞은편의 의자에 앉았다.

“한 번 보십시오.”

소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신통을 열어 서신을 읽었다.

“그녀가 동제에 도착했으니 나더러 그녀의 안전을 확보하라는구나.”

‘동제에 도착했다고?’

“동제에는 왜 왔을까요?”

흑의 남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제가 알기로는 요새 손님이 든 집은 섭정왕부밖에 없습니다.”

소년은 놀란 표정을 짓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허면 봉회근의 고독도 그녀가 풀었겠지?”

흑의 남자가 말했다.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저는 그녀가 동제에 왜 왔는지 궁금합니다.”

“그럼 가서 물어봐.”

소년이 제안했다.

흑의 남자는 옅게 웃었다.

“말해 주지 않을 것 같은데요.”

황제는 손끝을 문질러 서신을 가루로 만들었다. 그리고 한참 뒤에 입을 열었다.

“직접 만나 보겠느냐?”

흑의 남자는 생각을 해보다 고개를 저었다.

“만나기는 해야 하나 당분간은 급할 것 없지요. 그녀가 뭘 하는지 지켜보고 다시 정할 생각입니다.”

황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 여인에 관심이 많아 바로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동제에 왔으니 좀 늦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비단 탑에 천천히 기대고 입을 열었다.

“묵백(墨白), 네가 보기에는…… 그가 이 모든 것을 다 생각하고도 왜 이렇게 큰 대가를 치르기를 원하는 것 같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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