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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84)화 (85/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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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화 능숙하다

봉회근은 섭정왕 영위가 어린 황제를 한 번도 낮잡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린 황제와 섭정왕 중 누가 더 강하든 일어날 일은 언젠가는 일어날 것이오.”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섭정왕이 얼마나 큰 권력을 쥐던 그에게는 황제보다 못한 점이 있소.”

봉회근은 고개를 돌리고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능 공자의 뜻은…….”

“성골이라는 것.”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어린 황제는 성골이오. 선황이 직접 자리를 물려준 동제의 황제지. 섭정왕은 그저 섭정의 명의만 가지고 있을 뿐이오.”

어린 황제가 직접 정사를 보게 되면 섭정왕은 규칙대로 권력을 내놓아야 했다.

물론, 지금 섭정왕과 황제 사이의 관계를 보면 권력을 내놓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어린 황제가 삼촌인 섭정왕과의 정을 봐서 그를 봐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목숨이 위험했다.

그러나 권력을 내놓지 않는다고 해도 죽음을 모면하기 어려웠다.

섭정왕은 진정한 황제가 아니었다. 결국 그는 그저 잠깐동안 어린 황제를 대신해 조정을 관리한 사람이었다. 조정의 문무백관이 평소에 그에게 아무리 충성을 다해도 결국에는 황제에게 돌아갈 것이다. 섭정왕이 황위를 노리지 않는 이상.

그러나 역모를 꾀하다 실패한다면 구족이 멸할 것이며 수많은 사람이 연루될 것이다.

성공한다고 해도 수많은 욕을 먹을 것이다.

이 중에 얽힌 이해관계에 대해 봉회근은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섭정왕은 진작 완벽하게 생각해 보았다.

그가 갑자기 야홍릉더러 사위가 되라고 한 것도 자신만의 생각이 있어서였다.

봉회근은 한참 침묵을 지켰다. 그의 기분은 야홍릉의 이 말 때문에 더욱 무거워졌다.

번화한 제경은 야홍릉에게 목국과 다름없이 보여 그다지 흥미가 동하지 않았다. 둘은 천천히 길을 가며 길가의 사람들과 마차를 바라보았다. 길 양옆에는 환한 등불이 가득 늘어섰고 행인들은 화려한 옷을 입고 길을 오갔다.

“능 공자가 보기에는 고모부께서 어떻게 하셔야 하겠소?”

봉회근은 목소리를 깔고 물었다. 그와 가까이 있는 야홍릉만 들을 수 있는 크기였다.

야홍릉은 봉회근이 이 질문을 한 것에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속으로 영위가 그를 보내 물어보게 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사람의 일에 개입할 생각이 없었다.

“나는 전하가 속으로 뭘 원하는지도, 어린 황제가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오. 그래서 의견을 말할 수 없소.”

그녀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이 일은 오직 전하만이 결정할 수 있소.”

이 말을 들은 봉회근은 침묵했다.

황권이 걸린 민감한 화제를 얘기하기에는 밖은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그는 잠깐 침묵을 지킨 뒤, 더 이상 이 화제를 이어가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양옆을 바라본 그는 손을 뻗어 한 주루를 가리켰다.

“앉을 곳을 찾아 음식을 먹은 뒤, 서쪽 거리로 가보는 게 좋겠소.”

봉회근은 고개를 돌리고 야홍릉의 뒤를 따르는 능묵을 보더니 말했다.

“서쪽 거리에 무술 도장이 있는데 밤마다 무인들이 무공을 겨룬다오. 능 시위가 관심이 있다면 시도해 봐도 되오.”

능묵은 차가운 얼굴로 시선도 돌리지 않았다.

봉회근은 입가를 실룩거리다가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

“능 시위의 성격도 참 세상에 둘도 없군.”

능묵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봉회근의 말을 듣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성격이 세상에 둘도 없는 게 아니라 말을 아끼는 사람이라 그러오.”

야홍릉이 말했다.

“그는 자신과 상관이 없는 일에 나서지 않소.”

봉회근은 그 말을 듣고 웃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말을 아낀다고? 대권을 움켜쥔 폐하와 고모부는 말을 아낄 수 있고 능 공자처럼 신분이 평범하지 않은 것 같은 사람도 말을 아낄 수 있어. 심지어 아버지와 나도 봉씨 가문에서는 집사와 하인을 대할 때 늘 침묵으로 일관하지. 그런데 하인이 주인 앞에서 말을 아낀다는 말은 또 처음 들어 보는군.’

버릇과 성격은 그럴 만한 신분이 있는 사람에게나 해당하는 것이었다.

세상 대다수 사람에게는 제멋대로 굴 자격이 없었다.

‘그런데 한낱 시위가 이런 성격을 가졌다니… 절대 평범한 시위는 아니겠군.’

능묵은 평범한 시위가 아니었다.

위성에서 녹성, 녹성에서 제경으로 오면서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능묵의 눈에 오직 주인인 능 공자밖에 없다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능 공자를 제외한 다른 사람은 그에게 모두 공기나 다름없었다.

그의 무시는 신분과 지위와는 상관이 없었다.

능묵에게는 세상 사람이 두 가지 부류로 나뉘는 듯했다.

첫 번째 부류는 그의 주인인 능 공자.

두번째 부류는 중요하지 않은 낯선 사람들. 예를 들면 능 공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

봉회근은 부럽기도 했다. 능묵처럼 충성심이 강하며 실력이 뛰어난 호위무사는 쉽게 찾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한 사람이 천군만마를 대체한다는 것은 과장이나 그의 실력이 강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능묵이 능 공자에게 이토록 충성하는 것은 능 공자에게 능묵이 그렇게 할 만한 무언가가 있는 거야.’

이렇게 생각한 봉회근은 또 시선을 돌려 능묵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에 잠겼다.

‘섭정왕부에서 오랫동안 키운 암위를 능묵과 정면으로 붙게 한다면 결과는 어떨까?’

야홍릉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봉회근은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능묵에게서 거두었다. 그리고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능 공자?”

부드러운 관현악기 소리가 앞쪽의 불빛이 환한 곳에서 들려왔다. 비단옷을 입은 귀족들이 웃는 얼굴로 드나들고 있었다. 들어가는 사람이나 나오는 사람이나 하나같이 얼굴이 활짝 핀 모습이었다.

봉회근은 그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고 덤덤하게 미소를 지었다.

“여기는 동제 제경에서 가장 유명한 홍수관(紅袖館)이오. 안에 미인이 많아서 밤마다 손님이 끊이지 않지. 드나드는 사람 모두 돈과 권세가 있는 사람으로 돈을 물 쓰듯이 쓰면서 미인의 환심을 사려고 한다오. 여기서는 그런 게 신기한 일도 아니니까…… 능 공자, 들어가 보겠소?”

‘홍수관?’

야홍릉은 목국에 있는 감진과 그의 빙란각이 떠올랐다.

잠깐 침묵을 지키던 그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지.”

그리고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봉회근은 깜짝 놀랐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따라갔다.

기루는 환락의 장소였다. 남자들은 이곳에서 미인의 간드러지는 매력을 한껏 느꼈다. 봉회근은 능 공자가 이곳에 발을 들일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능 공자는 성미가 차갑고 날카로운 사람이고 범접할 수 없이 고귀한 분위기를 풍기며 우아하고 고결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무리 봐도 여색에 빠진 사람 같지 않았다.

그러나 집에 첩실이 여섯 명 있다는 것을 떠올린 봉회근은 다시 생각을 고쳐먹었다.

‘사람은 겉모습을 봐서 모른다니까.’

능 공자는 성미가 차갑고 다가가기 어려우며 여인에게도 칼같이 대하지만 결국은 사내였다.

일반 여인을 칼같이 대하는 것은 원칙 때문일 수 있으나 기루의 여인들은 정조를 지키지 않기에 가끔 즐기는 것도 있을 만한 일이었다.

봉회근이 속으로 열심히 능 공자에게 그럴듯한 핑계를 대주고 있을 때, 정작 당사자인 야홍릉은 봉회근의 생각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녀가 이곳에 발을 들이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기루에 별별 사람들이 다 있기에 소식을 알아보기 편하다는 것이었다.

홍수관 입구로 걸어간 봉회근은 몸을 돌렸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일행에게 손을 저었다. 몰래 숨어서 그를 보호하고 있던 봉씨 가문의 호위무사들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대공자가 그들을 밖에 남아 있으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기루 같은 곳은 절대 안전하지 않았다. 그들은 대공자가 자신들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이 안심되지 않았다.

그러나 봉회근의 태도는 아주 단호했다.

호위무사들은 고민에 잠겼다. 그동안 일반 호위무사의 신분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다니던 봉여희가 나서며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대공자를 보호하겠으니 너희들은 밖에 남아 있거라. 눈에 띄게 행동하지 말고.”

그 말을 들은 호위들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봉회근은 봉여희를 힐끗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행 네 명은 홍수관으로 들어갔다.

봉회근과 야홍릉은 앞에서, 봉여희와 능묵은 뒤에서 따랐다.

겉보기에는 두 부잣집 공자가 수행 하인을 데리고 기루에 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안에 들어가자 여인들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던 것을 멈추고 놀란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여인들은 급히 그들에게 다가오고 싶었으나 모두 제지당했다.

“어이쿠, 어디서 이렇게 귀티 나는 공자님들이 오셨나?”

술집을 관리하는 노보(老鴇)가 활짝 웃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그리고 모단화(牡丹花)가 수놓아진 손수건을 흔들며 말했다.

“공자처럼 잘생긴 사람은 세상에 둘도 없을 거예요. 오늘 처음 오셨죠? 마음에 드는 낭자라도…….”

“우리를 제일 좋은 별실로 안내하거라.”

야홍릉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은표 백냥을 건네주며 말했다.

“여기서 가장 아름다운 낭자 네 명을 올려보내고 우리를 방해하지 말거라.”

노보는 눈을 빛내며 그녀의 손에 들린 은표를 가져갔다.

“통도 크셔라! 알겠어요! 방방(芳芳)아, 두 공자를 모시고 위층 별실로 가서 좋은 술과 음식을 올리거라. 귀한 손님을 홀대해서는 안 된다.”

아래층에 있던 기녀들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역시 신선 같은 공자들은 우리 같은 여인들이 넘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구나. 그러나 저 잘생긴 귀공자를 보니 돈을 받지 못해도 좋으니 하룻밤을 함께 보내고 싶네.’

여인들은 위층으로 올라가는 소년의 뒷모습을 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봉회근은 고개를 돌리고 능 공자의 아름다운 옆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능 공자는 기루의 단골인가?’

방금 전에 돈을 쥐어주는 자세가 아주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행동은 능 공자의 평소 모습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능 공자는 차가운 분위기를 내뿜는 사람으로 기루의 분위기와는 너무 달랐다. 신선이 발을 헛디뎌 잘못된 속세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른 손님들이 은표를 던지는 모습은 속되게만 보이지만 같은 행동을 능 공자가 하자 전쟁터에서 천군만마를 호령하는 기세가 보였다.

이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자 봉회근은 흠칫 놀랐다.

그는 다급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각종 생각들을 지웠다.

‘능 공자가 용모, 분위기, 능력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나지만 그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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