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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79)화 (8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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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화 속세에 내려온 신선

‘평범한 사람? 속세에 내려온 신선?’

섭정왕비는 마시고 있던 차를 뿜을 뻔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는 얼굴로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반하기라도 한 건가?’

봉회근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동생에게 이런 식으로 폄하될 줄 몰랐다. 순간 어이가 없긴 했으나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는 찻잔을 들고 차를 마신 뒤, 느긋하게 말했다.

“이 속세에 내려온 신선 같은 공자는 집에 첩실이 여섯 명이나 계시단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보다 더 속세에 젖어 있다고. 그러니 너무 추어올리지는 마.”

영묘언은 그 말을 듣더니 깜짝 놀랐다.

“첩실이 여섯 명이라고요?”

‘그럴 수가?’

섭정왕비도 봉회근의 말을 듣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시선을 들고 능 공자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어려 보이는데. 기껏해야 열여덟 정도인데 첩실이 여섯 명이나 된다고?’

“오라버니, 왜 없는 얘기를 지어내고 그래요?”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봉회근의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능 공자가 어찌…….”

“봉 공자의 말씀이 사실입니다.”

야홍릉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제게는 첩실이 정말 여섯 명 있습니다.”

영묘언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봉회근은 가볍게 기침을 하더니 담담한 얼굴로 차를 마셨다.

그도 능 공자에게 정말 첩실이 여섯 명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 이유가 수많은 소녀의 설렘을 와장창 깨뜨릴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그의 여동생과 영묘언 말이다.

“거짓말.”

영묘언은 미간을 찌푸렸다.

섭정왕비는 정신을 차리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능 공자의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는데 그렇게 일찍 혼인한 건가?”

‘일반적인 집안의 남자들은 제멋대로 첩실을 여섯 명이나 들일 수 없을 텐데. 게다가 이렇게 어린 소년이 말이야. 아직 글을 배울 나이 같은데…….’

부잣집 공자들은 여인들을 좋아하고 툭하면 첩실을 들이기는 하지만 진정한 세가는 규정이 엄격했다. 정실과 첩실 모두 인원수가 정해져 있어 제멋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능 공자는 딱히 여색을 좋아하는 사람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유일한 가능성은 능 공자가 진정한 귀족 출신이 아니라 규정을 그다지 중하게 여기지 않는 상인 가문이거나 강호 가문 출신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첩실을 많이 들일 수 있었다.

물론 다른 가능성도 있었다.

능 공자의 출신이 규칙을 무시할 정도로 고귀한 경우에 말이다. 예를 들면 섭정왕 같은 위치라던가.

섭정왕 영위는 동제에서 권력이 막강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가 많은 규정을 무시해도 다른 사람들이 감히 뭐라고 할 수 없었다.

‘만약 능 공자의 출신도 고귀하다면 첩실 여섯 명은 정치적 혼인이거나…… 다른 사람이 선물로 보낸 것일 수도 있겠네. 그게 아니면 다른 이유라든지…….’

“저는 아직 정식으로 혼인하지는 않았습니다.”

야홍릉은 차를 마시고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

“당분간 혼인할 생각도 없고요.”

봉완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혼인을 하지 않았는데도 첩실이 여섯 명이라고?’

그녀는 능 공자의 신분을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일반 가문 출신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능씨라…… 동제에 능씨 성을 가진 세가가 있던가?’

“첩실이 여섯 명이라…….”

영묘언은 입을 삐죽 내밀고 야홍릉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전 안 믿어요.”

말을 마친 그녀는 턱을 괴었다.

“능 공자, 저희 오라버니와는 어떻게 알게 되신 거예요? 예전에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 제경 사람인가요? 아니면 오라버니와 같은 위성 사람이에요?”

봉회근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영묘언은 어린아이인지라 아버지처럼 생각이 깊지 않았다.

그래서 봉회근은 능 공자가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생명의 은인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만약 밖에서 말실수라도 한다면 황제의 경계를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능 공자가 직접 영묘언의 질문에 대답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야홍릉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위성에 살지 않습니다.”

‘위성에서 사는 게 아니라고?’

영묘언은 계속해서 질문했다.

“그럼 능 공자는 고향이 어디…….”

“묘언아.”

봉완이 나서서 제지했다.

“능 공자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왜 자꾸 캐묻니? 손님 놀라실라.”

영묘언은 하려던 말을 멈추고 민망한 얼굴로 야홍릉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능 공자, 죄송해요. 제가 질문이 너무 많았죠?”

야홍릉이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그들이 자리에 앉은 지 시간이 꽤 된 지라 다들 능 공자가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봉완은 심복 시녀더러 능 공자에게 거처를 마련해 주라고 했다.

“능 공자는 회근이의 친구이니 가까이 있는 게 좋겠네. 회근이가 묵는 곳의 바로 옆인 영풍원(靈風院)이 어떤가?”

“왕비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하고 허리를 살짝 구부렸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이 말은 그녀가 섭정왕부로 들어와서 한 말 중에 가장 부드러운 말이었다.

비록 말투는 여전히 덤덤했지만. 봉완은 능 공자의 태도에서 그가 귀족이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능 공자는 분위기가 남다르고 듬직하며 차분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기분이나 속내를 쉽게 읽을 수 없었다. 심지어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금이라도 알 수 없었다.

섭정왕비는 속으로 그가 강호 가문 출신일 거라는 가능성을 묵묵히 지웠다.

강호 출신의 소년은 성격이 호탕하고 직설적이었다. 그들은 귀족의 저택에 들어가도 겁을 먹지는 않으나 수많은 규칙에 구속감을 느껴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했다. 그래서 표정에 부자연스러움과 짜증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능 공자는 전혀 아니었다.

그는 섭정왕부를 제집처럼 편히 여기는 듯했다. 주인인 그들과 다른 점이라면 손님으로서 예의를 갖출 뿐이었다. 그의 몸에서 흐르는 분위기는 영락없는 귀족 가문의 것이었다.

차분하고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 역시 귀족들의 특성이었다.

이렇게 되면 대략적인 신분은 파악할 수 있으나 구체적인 신분은 쉽게 추측할 수 없었다.

야홍릉은 시녀를 따라 자리를 떴다.

능묵은 그녀의 뒤에서 그림자처럼 말없이 따르고 있었다.

“어머니, 저도 갈래요. 능 공자의 접대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죠.”

영묘언은 시녀가 안내를 잘하지 못할까 걱정하며 빠른 걸음으로 쫓아갔다.

“능 공자, 잠시만요.”

정자 안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회근아, 능 공자의 신분을 알고 있니?”

시녀를 따라 영풍원으로 걸어가는 소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섭정왕비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잘 경계하렴. 다른 사람의 계략에 당하지 말고.”

“고모, 걱정하지 마십시오. 능 공자는 믿음직한 사람이에요.”

봉회근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저도 그의 신분을 알지 못합니다.”

봉완은 미간을 찌푸렸다.

섭정왕부는 일반 백성 집안이 아니었다.

신분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사이가 좋은 사람이라도 경계를 내려놓을 수 없었다. 봉회근과 가깝게 지내고 또 섭정왕부에 손님으로 온 능 공자를 보고 봉완은 그의 신분을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위험을 사전 예방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너도 저자의 신분을 모른다는 말이야?”

봉회근은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 그러나 능 공자는 저를 치료해 준 사람입니다.”

봉완은 바로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되었다.

“생명의 은인이라는 거지?”

봉회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봉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깐 침묵을 지킨 그녀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저자와 사이좋게 지내렴. 능 공자는 절대 일반 세가의 공자는 아닌 것 같아. 출신이 아주 고귀할 거야.”

만약 섭정왕과 황제 사이에 나중에 문제라도 생긴다면 저 능 공자가 중요한 역할을 할지도 몰랐다.

봉회근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모, 걱정하지 마십시오. 봉씨 가문은 이미 능 공자와 협력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특별히 저를 제경으로 함께 와준 겁니다.”

‘협력관계?’

봉완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오라버니가 사람을 판단하고 처사하는 방식에 대해서 그녀는 자신이 있었다.

봉형은 상업계에서 오랫동안 갈고 닦은 게 있지 않겠는가?

“능 공자가 천성이 도도하여 예법을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가 저택에 있는 동안 고모와 고모부께서 많이 양해해 주십시오.”

봉회근이 말했다.

“묘언이는…….”

영묘언의 반응을 떠올린 봉회근은 미간을 찌푸렸다.

“능 공자는 용모도 뛰어나고 능력도 강해 소녀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그런데 신분을 알 수 없어서 그게 좀 걸리지요. 묘언이는 나이가 어려 혹시라도 능 공자에게 마음을…….”

“묘언이가 정말 그를 좋아하게 된다면 말이야, 너는 둘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니?”

봉회근은 멍한 표정을 짓더니 믿을 수 없는 얼굴로 봉완을 바라보았다.

“고모?”

“능 공자는 귀한 사람이다. 아직 신분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너나 오라버니도 믿을 만하다고 여기는 것을 보면 외적인 조건은 잠시 무시해도 될 것 같구나.”

봉완이 담담하게 말했다.

“능 공자가 저택에 묵는 동안, 묘언이가 그를 알아가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섭정왕은 규칙이 엄격하여 주인들의 일을 하인들은 감히 밖으로 전하지 못했다.

그래서 혹시 영묘언과 능 공자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둘 사이의 일은 밖으로 전해질 리 없기에 그녀의 명예에 누가 될 일은 없었다.

봉회근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고모, 능 공자의 집에 첩실이 이미 여섯 명이나…….”

봉완이 담담하게 말했다.

“회근아, 넌 능 공자가 바람둥이로 보이니?”

봉회근은 침묵을 지키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여섯 명의 첩실이 정말 존재하는지도 난 모르겠구나. 그리고 첩실이 여섯 명이면 또 어떠냐? 정식으로 혼인한 것도 아닌데.”

봉완이 웃으며 말했다.

황후도 폐비도 될 수 있는 마당에 하물며 한낱 첩실이야 무슨 문제가 있으랴.

봉회근도 의아했다.

‘고모가 정말 능 공자를 마음에 들어서 섭정왕부의 사위로 삼으려는 건가? 그런데 오늘 처음 만난데다 능 공자의 신분도 제대로 모르잖아.’

“회근아, 난 사람을 빠삭하게 안다고 자부하지는 못해도 그동안 사람을 많이 봐왔단다. 황실 종친, 번드르르한 조정 대신, 장군, 문관, 상인, 무인들까지…… 제경에 사람이 얼마나 많니? 그래서 한 사람이 진짜 귀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단다.”

출신이 좋다고 해서 분위기까지 뛰어난 것은 아니다.

능력이 있는 자만이 풍기는 분위기가 있었다. 비단옷은 사람의 겉모습만 포장할 수 있었다.

신분이 높다고 해서 수양까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은 으스대는 것을 좋아하고 또 어떤 사람은 겸손하게 고개를 숙인다.

능력이 강하다고 기세가 강한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운명이 다르기 때문이다.

세상에 만약 누군가가 능력도 있고 수양도 있으며 분위기까지 흠잡을 데 없다면 도도한 것은 오만이 아닌 당연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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