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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77)화 (78/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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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화 어찌 감히 그럴 수가

‘능 공자?’

배도는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호위무사를 공자라고 부른다고? 그것도 봉회근이 공자라고 부르다니…… 이 두 호위무사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지?’

그는 고개를 돌리고 야홍릉과 능묵을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결국 그의 시선은 야홍릉의 아름다운 얼굴에 멈추었다.

‘호위무사가 너무 잘생겼네. 마치 귀공자처럼 말이야.’

봉회근이 그를 호위무사라고 소개하지 않았다면 배도는 그가 호위무사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소년의 분위기가 너무 차갑군. 기운이 봉회근보다도 강해 보이는 게 우리 대인과 견줄 만하겠어.’

배도는 속으로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다.

그는 봉회근을 바라보며 공손하게 말했다.

“그러시다면 전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봉 공자, 저희 대인과 얘기를 편히 나누십시오.”

봉회근은 고개를 끄덕였다.

“배 장군, 살펴 가십시오.”

배도는 집사를 불러 봉회근을 안내하게 하고는 지시를 내렸다.

“봉 공자에게 거처를 마련해 주는 걸 잊지 말게.”

“걱정하지 마십시오. 공자가 처음 오시는 것도 아니고요.”

집사가 웃으며 말했다.

“이쪽으로 가시지요.”

봉회근은 고개를 끄덕였다.

배도는 왕부의 연무장이 있는 방향으로 갔다.

집사는 은(殷) 씨로, 나이는 사십 대 정도였다. 그는 나이가 많지는 않았으나 섭정왕부에서 오래 지낸 사람이었다.

섭정왕이 황자일 때부터 충성을 다해 모셔온 사람이기도 했다.

“공자께서 독에 당해 오랫동안 의식을 되찾지 못한다는 소식을 듣고 왕비께서 걱정이 많으셨습니다. 공자께 나쁜 일이 생길까 매일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시고 식사도 잘 못 하셨습니다. 공자께서 무사히 깨어났다는 것을 아신다면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봉회근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고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렸으니 내 잘못이네.”

“이런 일을 어찌 공자 탓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은 집사는 한숨을 내쉬고 온화한 말투로 말했다.

“공자께서 무사해지셨으니 왕비께서도 한시름을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봉회근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인을 만나 뵙고 다시 고모님에게 가보겠네.”

그들은 대화를 나누면서 구불구불한 회랑(回廊, 정당의 좌우에 지어진 긴 집채)을 지나 주원에 있는 서재 쪽으로 걸어갔다.

저택은 수비가 완벽했다. 순찰하는 호원들이 무리 지어 돌아다니는 것을 제외하고 암위들도 곳곳에 숨어서 저택을 감시하고 있었다.

저택 안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 중 암위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곧 그들은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문밖에 도착했다.

문밖에는 두 시위가 양옆에 서 있었다. 은 집사가 그들에게 말했다.

“봉 공자가 오셨으니 들어가서 대인께 알리거라.”

섭정왕부에는 규칙이 많아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시위는 안으로 들어가 허리를 굽히고 보고를 올렸다.

“대인께 아룁니다. 봉 공자가 오셨습니다.”

그러자 서재에는 침묵이 잠깐 흘렀다.

곧이어 무겁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라 하라.”

봉회근은 고개를 돌리고 야홍릉을 바라보며 손짓을 했다.

“안으로 드시지요.”

은 집사는 이 말을 듣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봉회근이 ‘공자’라고 부르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소년의 미모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주 잘생긴 공자군!’

그러나 그는 곧 미간을 찌푸리고 이 소년의 신분을 짐작하기 시작했다.

봉회근이 ‘공자’라고 부른 사람은 분위기가 차갑고 날카로웠으며 범접할 수 없는 귀티가 흘렀다.

‘도대체 저 사람은 누구지?’

은 집사가 훑어보고 있을 때, 야홍릉은 서재로 발걸음을 옮기며 담담하게 말했다.

“능묵, 밖에서 기다리거라.”

능묵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방문에서 몇 걸음 떨어진 창가에 가서 섰다.

두 시위와 거리를 두었으나 그리 먼 것도 아니었다.

서재에서 사고가 일어난다면 바로 창문으로 뛰어 들어갈 수 있는 위치였다.

곧 방문이 닫혔다. 은 집사는 시선을 거두고 ‘능묵’이라고 불린 시위를 찬찬히 훑어보며 뭐라고 말을 걸지 생각해 보았다. 은 집사는 섭정왕을 수십 년간 모시며 수많은 일을 겪었기에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한 편이었다.

이 소년은 보기에도 속을 알 수 없고 차가워 보여 대화를 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뭔가를 알아내는 것은 하늘을 오르기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고 은 집사는 짐작했다.

‘하인을 보면 그 주인을 알 수 있지. 이렇게 대단한 소년을 옆에 두고 부릴 수 있는 사람이면 능 공자도 보통 인물은 아닐 거야.’

은 집사는 이렇게 생각하다가 고개를 돌리고 자리를 떠났다.

서재의 분위기는 바깥보다 훨씬 엄숙하고 차가웠다.

봉회근은 옷을 들고 공손하게 큰절을 올렸다.

“봉회근이 고모부를 뵙습니다. 고모부, 만수무강 하십시오.”

검은색 직금포복(織金袍服)을 입은 남자는 커다란 책상 앞에 앉아 산처럼 쌓인 공문서를 읽고 있었다. 남자는 고개를 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일어나거라.”

“감사합니다.”

봉회근은 고마움을 표하고 일어서서 공손한 자세로 섰다.

야홍릉은 말없이 옆에 서서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서른네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는 눈매가 깊었고 온몸으로는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한눈에도 그가 높은 자리에서 사람을 호령하는 신분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남목(楠木)으로 된 책상에는 산처럼 쌓인 공문서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정보로 보이는 듯한 서신과 상주서들도 책상 위에 흩어져 있었다.

한기로 가득한 차가운 시선이 그녀에게 쏘여졌다.

야홍릉이 시선을 들자 차갑고 깊은 눈매와 마주치게 되었다. 남자의 눈동자는 칼날처럼 차갑고 날카로워 속을 알 수 없었다. 그는 야홍릉을 훑어보았다.

서재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야홍릉은 차분한 얼굴로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섭정왕의 기에 전혀 눌리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 모습을 본 영위는 실눈을 뜨고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회근아, 이 사람은 누구시냐?”

봉회근도 능 공자가 영위의 앞에서 침착함을 유지하며 담담하게 눈도 마주치자 깜짝 놀랐다. 영위의 말을 들은 봉회근은 바로 대답했다.

“고모부께 아룁니다. 이분이 바로 저를 치료해 준 능 공자입니다. 제 생명의 은인이시죠.”

‘생명의 은인?’

영위는 놀란 얼굴로 야홍릉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참 고운 소년이구나.’

그는 야홍릉의 외모를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분위기는…… 검처럼 차갑고 날카롭군.’

순간 그는 소년의 속내를 알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 참 신기하군.’

영위는 손에 든 공문서를 내려놓고 편한 자세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능 공자는 이름이 무엇이고 고향은 어디지? 신분은 어떠한지 알려줄 수 있는가? 그리고 봉회근의 독을 치료하는 방법은 어떻게 안 것인가?”

연이은 질문이 끝난 뒤, 서재에 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성은 능이고 자는 야입니다. ‘능 공자’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야홍릉은 시선을 내리깔고 차분하게 말했다.

“그리고 다른 것은…… 죄송하지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영위는 경악했다.

화가 난 건 아니었다. 그에게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것에 순수하게 놀랐다.

그는 소년의 분위기가 남다르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러나 별개로, 그가 섭정왕이 된 후…… 아니, 대권을 움켜쥐기 시작한 뒤로 그의 앞에서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영위는 젊은 나이에 병권을 움켜쥐었다.

그는 군영과 전쟁터에서 기세를 키운 사람이자 두 손에 피를 묻힌 사람이었다.

최근 2년 동안 조정에서 어린 황제 대신 정사를 보며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해졌지만 그에게서 풍기는 위압감에 나이 많은 대신들도 겁을 먹고는 했다.

심지어 황제마저도 그의 앞에서는 겉으로나마 공손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눈앞의 소년은 그의 앞에서 차갑게 ‘말씀드릴 수 없다’고 하다니?

어찌 그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그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봉회근은 말없이 옆에 서서 속으로 능 공자의 무례한 태도에 당황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나 급히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는 능 공자가 경우 없거나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능 공자가 말할 수 없다고 한 것은 정말 말할 수 없는 거겠지…….’

봉회근은 식은땀을 흘렸다.

섭정왕은 봉씨 가문과 달리 고귀한 황실 가문이었다. 봉씨 가문의 적자이자 섭정왕비의 친조카인 그조차 섭정왕 앞에서는 무례하게 굴지 못했다.

황권이 얼마나 강한지 그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엄격한 규칙으로 이루어진 존비는 절대 쉽사리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은 섭정왕이 대권을 쥐고 있기에 그가 손가락을 까닥하기만 해도 황성 전체가 두려움에 떨 것이다. 그의 권위에 도전장을 내민 사람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능 공자는 패기가 넘치는군.”

무거운 분위기가 오랫동안 지속된 것 같았으나 사실은 잠깐의 시간에 불과했다.

영위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능 공자가 회근이의 목숨을 살려준 은인이기에 불경죄로 다스리지 않겠소.”

불경죄에는 ‘말할 수 없다’라고 대답한 것을 제외하고 야홍릉이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리지 않은 것도 포함되었다.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봉회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능 공자를 대신해 사정할 준비를 했지만 영위가 그냥 넘어가자 한시름을 놓게 되었다.

“회근아.”

영위는 시선을 돌리고 봉회근을 바라보았다.

“폐하께서 오전에는 공부를 하시고 점심을 드신 뒤, 반 시진 정도 주무시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지금 급히 궁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먼저 고모를 만나고 저택에서 점심을 먹은 뒤, 미시(未時, 오후 1~3시)에 나와 함께 폐하를 만나러 궁에 들어가자꾸나.”

봉회근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고모부님, 능 공자가 당분간 왕부에서 묵을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건 당연하지.”

영위가 말했다.

“준비는 은 집사더러 하라고 하면 된다. 네가 묵는 곳과 가까운 곳에 마련해 주어라.”

봉회근은 ‘네’라고 대답한 뒤,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고모를 뵈러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능 공자를 거처까지 데려다준 뒤, 다시 오겠습니다.”

영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보거라.”

“네.”

봉회근은 야홍릉에게 눈치를 주고 함께 서재를 빠져나왔다.

영위는 시선을 들어 능 공자의 깡마른 뒷모습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시선은 바다처럼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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