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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76)화 (77/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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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화 황위를 노린다면?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을 내리깐 채, 찻잔을 들고 조용히 듣고 있었다.

자신과 상관이 없는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관심이 없는 표정이었다.

능묵은 여전히 공기처럼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은 채, 옆에 서 있었다.

차가운 그의 표정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봉회근은 호국 공주를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여기고 있어 한번 말문을 열자 멈출 줄 몰랐다.

“호국 공주는 병사들을 거느리고 전쟁을 하는 능력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병사들을 아주 잘 관리한다오. 그의 부하들은 하나같이 목숨을 걸고 그녀에게 충성하니 다른 사람들도 감탄을 금치 못하지…….”

여기까지 말한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여인의 몸이라…… 아니, 여인의 몸으로 태어난 게 다행이지. 사내로 태어나서 군공을 그렇게 세웠다면 황제와 다른 황자들이 얼마나 경계했겠소?”

이 말을 들은 야홍릉은 시선을 들고 입을 열었다.

“왜 그녀가 여인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경계를 샀다고 생각하시오? 황제가 그녀처럼 나라를 지킬 사람이 필요할 수도 있지 않겠소?”

봉회근은 말없이 침묵을 지키다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황실의 일이 그리 간단하지 않소. 진정으로 너그럽고 현명한 황제가 몇 명이나 되겠소? 역사를 봐도 그렇소. 대단한 공을 세운 장군 중 몇 명이나 좋은 결말을 맞이했소?”

야홍릉은 말이 없었다.

“목국의 황제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꽤 괜찮다고 들었소. 그러나 성미나 마음가짐이 어떤지 모르니 난 아무 말도 하지 않겠소.”

봉회근은 미소를 지었다.

“목국에는 황자가 여러 명 있는데 하나같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고 들었소. 배경과 실력이 모두 비슷하다고 말이오. 그런데 유독 호국 공주의 어머니만 일찍 죽었소. 어머니와 친정의 도움을 받지 못하니 호국 공주는 황자들 중에서 세력이 가장 약한 사람이란 말이오. 만약 사내의 몸으로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군공을 세웠다면 황제가 아니어도 다른 황자들 역시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오. 결국 다른 자가 황위에 오른다면 누가 이렇게 강한 신하를 곁에 두려고 하겠소?”

야홍릉은 그의 말에 반박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봉회근은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을 말한 것이었다.

이 중에 약간 과격한 말도 들어 있었지만 대부분 사실이었다.

한 마디만 빼고.

‘여인으로 태어난 게 다행이라고?’

야홍릉은 눈썹을 치켜세우고 싸늘한 표정으로 비꼬듯이 말했다.

“뭐가 다행이라는 말이오?”

“여인의 몸으로는 황위에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이오.”

봉회근은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연한 것이 아니오?”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반드시 살아남는다는 법은 없고 위협이 된다고 해서 무조건 죽는 것도 아니었다.

세상사는 모 아니면 도인 것이 아니었다.

봉회근은 상인이지만 각국의 형세와 군대의 상황에 대해 대충은 알고 있었다.

집권자의 마음도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 마음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거나 자신의 운명을 예상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음모 술수는 항상 미리 피할 수 없게 함정으로 나타난다.

조금만 조심하지 않아도 사지에 몰리는 것이다.

“대공자.”

하월이 문 앞까지 다가와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어요. 지금 차릴까요?”

봉회근은 그 말을 듣더니 이 화제를 끝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 두거라. 밥을 먹고 길을 떠나겠다.”

“네.”

하월과 행아는 몸을 돌려 주방으로 들어갔다.

야홍릉은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차를 마시다 입을 열었다.

“봉 공자는 참 세심한 분이시군. 집권자의 마음까지 이렇게 잘 파악하니 말이오. 그러면 만약에 호국 공주가 황위를 노린다면 어떨 것 같소?”

이 말에 봉회근은 당황했다.

‘호국 공주가 황위를 노린다고?’

잠깐 침묵을 지키던 봉회근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의 상황으로 봤을 때, 호국 공주는 대단한 사람이지만 가지고 있는 비장의 수가 너무 적어 다른 황자들과 비교한다면 강점이 없소. 그러나 성공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오.”

야홍릉은 그의 대답에 놀란 기분이 들었으나 차분하게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오?”

“황위 싸움은 결국 누구의 능력이 더 뛰어난지, 누구의 출신이 더 고귀한지, 누구의 배경이 더 강한지를 보는 것이오. 호국 공주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의 세력에 기댈 수는 없을 것이오. 그러나 그녀는 개인적인 능력은 아주 강하오. 이건 다른 황자들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지.”

봉회근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에게는 병사를 거느릴 수 있는 능력이 있소. 그녀 휘하의 장군들은 모두 그녀를 진심으로 존경하며 따르고 있다고 들었소. 그러니 그녀는 병권을 손에 꽉 움켜쥔 셈입니다.”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병권과 재력은 언제나 항상 가장 강한 비장의 수지. 병권이 있으면 든든한 힘이 생기는 것이고 재력이 있으면 몰래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오.”

봉회근이 말했다.

“물론 권력의 최정상에 오르는 길은 순탄하지 않을 것이오. 또 여인이라는 점은 뛰어넘기 어려운 장벽이지. 호국 공주 스스로가 괜찮다고 생각해도 목국의 문무백관은 여황제가 등극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오.”

말을 멈추었던 그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호국 공주에게 정말로 야심이 있다면 그녀는 많은 준비를 해야 할 것이오. 조용히 쓸만한 사람을 모아서 세력을 키우는 것 같은 일 말이오. 그렇게 세력을 키워서 사람들의 마음을 다잡을 수 있고 다들 인정하며 따르는 사람이 된다면 황제로 되는 길을 반 정도 닦아 놓은 것이나 다름없겠지.”

야홍릉은 고개를 숙인 채, 차분한 얼굴로 차를 마셨다.

“하지만 나는 상인인지라 이론에는 빠삭해도 실행에 옮기기엔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소.”

봉회근은 한숨을 내쉬었다.

“게다가 나는 호국 공주가 아니기에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알 수 없소. 그녀가 어떻게 할지는 더더욱 모르고.”

그리고 그녀에게 정말로 야심이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들이 진지하게 열띤 토론을 벌여도 결국에는 아무 의미 없는 가설일 뿐이었다.

두 시녀는 곧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봉회근은 하던 말을 끊고 야홍릉과 능묵에게 식사를 권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셋은 짐을 챙기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그들은 마차 대신 말을 타고 빠른 속도로 제경의 방향으로 뛰어갔다.

별이 빛나는 밤에 말 몇 필이 나는 듯이 달리고 있었다.

날이 밝을 무렵, 성문이 열리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밤새 말을 타고 달린 봉회근 일행은 먼지투성이의 모습으로 황성문밖에 도착했다.

봉회근의 안전을 걱정한 것인지 성문 앞에서는 섭정왕의 지시를 받고 대기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봉회근을 본 순간, 손을 들어 말했다.

“봉 공자.”

봉회근은 그쪽을 바라보았다.

서른 살이 넘어 보이는 남자였다.

얼굴은 거칠고 몸매는 훤칠하고 다부져 보이는 것이 무공을 꽤나 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는 섭정왕의 신뢰를 한 몸에 받는 장군, 배도(裴韜)였다.

“배 장군.”

봉회근은 말을 타고 그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배도는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저도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몸이라 이렇게 격식을 차리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는 말을 하며 시선을 봉회근의 뒤에 있는 두 사람에게 돌렸다. 무공을 연마한 배도는 직감적으로 몸을 흠칫 떨었다. 그리고 지나가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이 두 분은…….”

야홍릉과 능묵은 모두 말이 없었다.

둘은 이목구비가 다르게 생겼지만 모두 차가운 느낌을 풍겼다.

“둘은 제 호위무사입니다. 능야와 능묵이지요.”

봉회근이 말했다.

“무공이 아주 강한 자들로 아버지께서 특별히 붙여 주신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능 공자의 신분을 노출하고 싶지 않았던 봉회근은 아까 인사를 할 때, 일부러 둘을 소개하지 않았다.

그런데 배도가 둘에게 관심을 보인 것이다.

봉회근은 간단하게 소개하고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군.’

배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봉회근은 봉씨 가문의 유일한 적자였다.

일전에 독에 당한 적이 있으니 봉형이 걱정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특별히 고수를 고용해 봉회근을 보호하게 하나 보군.’

배도는 두 호위무사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젊기는 했지만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는 없는 법.

예로부터 영웅은 소년 시절부터 티가 난다고 했다.

‘이 둘을 보니…… 돈을 꽤 썼나 보군.’

배도는 더는 망설이지 않고 빠른 속도로 대답했다.

“봉 공자, 이쪽으로 가시지요.”

봉회근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함께 가시지요.”

말 두 필이 나란히 앞으로 걸어갔다. 야홍릉과 능묵은 말을 타고 뒤를 따랐다.

봉회근이 데려온 봉씨 가문의 호위무사 백여 명과 배도 휘하의 장군들이 뒤를 따르자 기세가 어마어마하게 강했다.

이제 막 날이 밝았지만 거리에는 길을 오가는 행인들이 많았다. 호화롭고 떠들썩한 제경의 풍경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백성들은 섭정왕부의 표식과 배 장군을 알아보고 약속이나 한 것처럼 길을 내주었다.

반 시진 뒤.

그들은 섭정왕부의 대문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봉회근 일행은 말에서 내린 뒤, 배도와 함께 저택으로 들어갔다.

섭정왕부 안은 아주 넓었다. 그러나 풀이 적어 곳곳에서 엄숙한 느낌이 풍겼다. 섭정왕 영위는 대권을 손에 쥐고 있어 세력이 하늘을 찌르는 사람으로 현재 동제에서 권력이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동제 사람들은 모두 그를 두려워했다. 저택의 규칙도 황궁 못지않게 엄격했다.

간이 작은 사람은 섭정왕부에 발을 들이는 순간, 겁을 먹고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봉회근은 능 공자가 이런 엄숙한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할까 걱정되어 뭐라고 말을 건네려 했다. 그러나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는 능 공자의 표정이 여전히 평소처럼 차갑고 날카로우며 겁먹은 기색이 전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봉회근은 능 공자가 바로 그의 존경과 감탄을 자아낸 호국 공주 야홍릉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야홍릉은 어렸을 때부터 차갑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그녀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있어도 그녀가 무서워하는 사람은 여태껏 없었다.

그녀는 커다란 황궁도 태연히 드나들 수 있고 태후와 황후 앞에서도 제멋대로 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그녀의 집인 호국 공주부의 분위기도 이곳 못지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섭정왕부에 들어와서도 표정이 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배도는 수하를 시켜 봉씨 가문의 호위무사를 다른 곳에 데려가라고 했다. 그리고 그를 따르고 있던 병사들더러 연무장에 가서 대기하라고 지시했다.

그런 다음 그는 직접 봉회근을 데리고 서재로 가려고 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야홍릉과 능묵을 보더니 머뭇거리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봉 공자의 호위무사는…”

“괜찮습니다. 서재가 어딘지 압니다.”

봉회근은 예의 바르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배 장군은 볼일을 보십시오. 전 능 공자와 함께 고모부께 인사를 올리러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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