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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73)화 (74/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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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화 밤에 길을 떠나다

봉회근이 제경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셋 모두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섭정왕이 있어도 주변에 함정과 음모가 많아 누구도 안전을 확신할 수 없었다. 게다가 야홍릉과 봉씨 가문의 거래는 끝났으니 그녀는 봉회근의 일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

봉회근의 생사가 그녀와 아무런 연관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방금 전에 서재에서 새롭게 협력했다.

협력이 시작된 것은 아니었으나 양측에 이로운 협력을 체결한 이상, 야홍릉은 봉회근이 그녀와 함께 제경으로 들어가는 것에 불만이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봉형 부자에 대해 믿음이 있기도 했다.

야홍릉과 봉씨 가문의 협력 사안은 아주 복잡했고 많은 이익 분배가 얽혀 있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봉회근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봉형은 지금 믿을 사람이 능 공자와 그의 수행 하인 능묵 밖에 없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기댄다는 것은 그 사람을 아주 믿고 있다는 말이었다.

봉형은 능 공자를 아주 믿고 있었다.

그래서 그날 밤으로 호화로운 마차 두 대를 준비하여 옷과 양식, 은표 등을 모두 실었다. 능 공자와 능묵이 같은 마차에 타고 봉회근은 시중을 들 하인 한 명을 골랐다.

봉형은 직접 백 명에 가까운 호원을 골라 봉회근을 보호하게 하고 봉여희도 보냈다.

“위성에서 제경까지 가려면 이틀이나 걸린다. 꼭 조심하거라.”

“아버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경에는 섭정왕이 있고 제 옆에는 능 공자와 여희가 있으니 아무 일도 없을 것입니다.”

봉회근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또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설마 섭정왕의 영역에서 절 죽이려고 하겠습니까? 황제는 제가 정말 완전히 나았는지 보기 위해 불렀을 겁니다. 멍청하지 않고서야 아직 진정으로 대권을 손에 넣은 것도 아닌데 저를 또 해치겠습니까?”

처음에는 방심한 틈에 당했다고 해도 이번에는 봉회근 뿐만 아니라 섭정왕 영위도 긴장을 늦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영린이 그를 해칠 기회는 더욱 적어진다.

만약 영린이 아주 멍청하여 섭정왕의 영역에서 무모하게 그를 해치려고 하지 않는 이상, 봉회근은 이번 제경행이 크게 위험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네가 괜찮아졌다는 것을 안다면 다른 방식을 사용할 수 있기에 더욱 조심해야 해.”

봉형이 당부했다.

“그리고 절대 능 공자가 널 구해준 것을 황제가 알게 해서는 안 된다.”

황제가 봉회근을 해치지 않는다고 해도 봉회근을 치료한 사람이 능야임을 안다면 이번에는 능야를 해치려고 할 수 있었다.

본래 황제는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능야가 황제의 계획을 망쳤으니 그는 앙심을 품었을 것이 뻔했다.

영린이 황제의 권력으로 능야를 대적한다면 능야가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황제가 절대 능야의 신분을 알게 두면 안 되었다.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봉회근이 시선을 내리깔고 말했다.

“잘 대응하여 절대 능 공자가 위험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봉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봉회근은 마차에 오른 뒤, 마부더러 떠나라고 했다.

해가 뜨거운 낮보다 시원한 밤에 길을 떠나는 것이 훨씬 좋았다.

빠른 속도로 밤새 길을 간다면 이튿날 날이 밝을 즈음에는 녹성(鹿城)에서 쉴 수 있었다.

야홍릉은 마차의 탑에 기대앉아 말없이 책을 읽었다. 천장의 네 귀퉁이에 걸려 있는 야명주(夜明珠)에서 나오는 부드러운 빛이 마차 안을 환히 비춰 주었다.

마차 안의 작은 탁자에 놓인 신선한 과일과 다과는 아주 먹음직스러운 빛깔을 뿌리고 있었다.

야홍릉은 시선을 들고 양탄자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능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의 얼굴을 잠깐 보더니 담담하게 물었다.

“넌 얼굴을 며칠에 한 번 씻느냐?”

야홍릉의 질문을 들은 능묵은 본능적으로 무릎을 꿇고 대답했다.

“주인님께 아룁니다. 일곱 날입니다.”

‘일곱 날?’

야홍릉은 몰래 날짜를 계산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내일이면 일곱 날이 지나는 게 아니냐?”

그들은 유월 초하룻날에 위성에 도착했다. 이튿날이면 유월 초닷샛날이었다. 그러나 능묵은 오월 이십칠 일에 용모를 바꿀 수 있는 약물을 얼굴에 바른 채였다.

“주인님께 아룁니다. 하루 정도는 지나도 괜찮습니다.”

능묵이 말했다.

“괜찮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한 마디 덧붙였다.

“이건 무독성입니다.”

야홍릉은 그 말을 듣고 말없이 그의 얼굴을 잠깐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에 씻거라.”

능묵이 말했다.

“하지만 전 주인님을 보호해야 합니다.”

야홍릉은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능묵은 야홍릉이 그와 의논하려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네, 알겠습니다.”

그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내일 비슷한 가죽 가면을 만들겠습니다.”

“필요 없다.”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내일은 하루 쉬거라. 사람들 앞에 나설 필요가 없다.”

능묵은 침묵을 지키다가 곧바로 공손하게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야홍릉은 역용술(易容術, 용모를 바꾸는 술수)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물로 씻을 수 없는 물건이 피부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의 피부가 장기적으로 그것에 가려져 있다 보면 아무리 무독성이라도 해로울 것이 뻔했다.

그러나 영위가 하는 일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어떤 경우에 어떤 역할을 하고 또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신분을 감추어야 하는지 모두 훈련을 받았다.

야홍릉은 마냥 착한 사람이 아니라서 아무 때나 불필요한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그러나 능묵은 그녀가 써본 사람들 중에서 가장 믿음직한 어영위였다. 그녀는 능묵이 잘못된 생활 습관으로 몸이 상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최대한 능묵에게 해롭지 않도록 배려했다.

예를 들어 능묵이 오랫동안 생식을 하여 심각한 위병에 걸린 것처럼 말이다.

또 밤에 대들보에서 자는 것도 그랬다. 대들보에서 자면 몸이 한기에 노출될 수도 있고 장기적인 수면 부족은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용모를 바꾸는 약물을 장기적으로 얼굴에 바르면 독소가 인체에 들어가 무시무시한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 * *

야간에 길을 가는 속도는 아주 빨랐다. 그들은 순조롭게 그들을 쫓아오는 사람들을 떨쳐냈다. 마차 두 대가 전체적인 속도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면 그들의 속도는 지금보다 더 빨랐을 것이다.

다음날 날이 밝기 전에 그들은 녹성의 커다란 별원 대문에 멈춰 섰다.

“능 공자.”

마차에서 내린 봉회근은 마침 야홍릉도 마차에서 내려오는 것을 웃으며 말했다.

“이곳은 봉씨 가문의 별원이오. 여기서 하루 쉬었다가 내일 다시 길을 떠납시다.”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봉회근과 함께 대문으로 걸어갔다.

봉회근은 걸으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녁에 길을 떠날 때는 미안하지만 능 공자와 능묵 시위 모두 내 호위무사인 척 변장해주어야겠소. 제경에 도착하면 능 공자를 섭정왕부에 데려다주고 나 홀로 폐하를 만나러 가겠소. 그러면 능 공자의 신분이 드러날 리 없을 것이오.”

야홍릉은 거절하지 않았다.

봉씨 가문은 대갓집이기에 사업체가 있는 곳에 저택을 짓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별원은 황성의 권력 중심인 녹성에 붙어 있었지만 외딴 곳에 지어져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그러나 저택의 안은 아주 화려했다. 인조 산도 있고 정원과 정자, 호수 등 빠지는 게 없었다. 그리고 아주 조용하고 아름다웠다.

대청을 지나자 넓게 펼쳐진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호수 중앙에 인조 산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한여름이라 그런지 호수에 연꽃이 만발했다. 향긋한 냄새가 공기 중에 가득하여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화랑을 따라 천천히 걷던 봉회근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경의 일을 마치고 여유가 되면 이곳에 와서 지내도 되오. 이 저택은 내가 정성을 다해 꾸민 것이오. 원래 고모께 드리려고 했는데 황실 사람들은 일거수일투족이 사람들의 시선에 노출되니 쉽게 제경을 떠날 수 없어서 고모도 낭비라고 거절했소.”

별원은 정성을 들인 티가 났다.

야홍릉이 말했다.

“권력 다툼에 바쁜 사람들은 꽃구경할 마음의 여유가 없을 것이오.”

“아름다운 풍경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도 하고 어지러운 현실을 잠깐 잊게도 해주지. 하지만 또 권력 다툼이 이 아름다운 경치를 더럽힐까 걱정도 한다오.”

봉회근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람은 참 모순적이지.”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말이 맞았다. 사람은 참 모순적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꿈꾸나 평범하지 않은 사람은 부귀영화를 누리면서도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평범함을 바랐다.

그녀라고 뭐가 다르겠는가?

그녀는 차가운 성미의 사람이었지만 안정적인 사랑을 원했다.

그러나 권력 다툼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들 중에 순수한 사랑이 남아 있을 리 있겠는가?

그녀는 전생에 무공이 강하고 책략이 뛰어나 전쟁터에서 칠 년 동안 불패의 신화를 세웠다. 그러나 결국 한옥금에게 칠 년 내내 속지 않았는가?

총명한 것과 아둔한 것은 때로 공존할 수 있는 것이었다.

봉회근은 야홍릉의 거처를 유앵수사(流櫻水榭)에 마련했다.

그곳은 호수에 가까운 누각으로 창밖으로 내다보는 풍경이 아름다워 별원에서 가장 좋은 거처였다.

“능 공자가 시녀들의 시중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두 명만 밖에 세워두었소. 식사와 차를 나르는 시중을 들 것이오. 더 필요한 일이 있다면 둘에게 시키면 되오.”

봉회근은 말을 하며 옆에 대기하고 있는 노란색 옷의 시녀를 가리켰다.

“한 명은 행아(杏兒), 다른 한 명은 하월(夏月)이오.”

두 시녀는 이름이 불리자 걸어와서 야홍릉에게 예를 올렸다.

“능 공자를 뵙습니다.”

야홍릉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각 뒤에는 온수로 된 못이 있소. 산에서 온천을 끌어 쓰는 것이오. 능 공자는 능묵 시위와 함께 그곳에서 목욕하며 피로를 푸시오.”

봉회근은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완전히 은폐된 곳이니 안심하고 사용해도 되오.”

야홍릉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소.”

“별말씀을.”

봉회근은 온화한 얼굴로 이것저것 말을 마친 뒤, 작별인사를 했다.

“그럼 난 이만 물러나겠소. 능 공자, 목욕하고 푹 쉬시오. 이곳에는 위험하지 않을 것이오.”

야홍릉은 건성으로 대답한 뒤, 다른 말을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능묵은 그녀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봉씨 별원은 제경에서 꽤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이곳은 섭정왕비에게 선물로 주려던 곳이기에 다른 사람들이 손쓰는 것을 방지하려고 섭정왕은 별원 주변에 사람을 세워 감시하게 했다. 그래서 봉회근이 안전하다고 자부한 것이었다.

그리고 제경과 가깝다는 것은 섭정왕의 영역에서 가깝다는 말이기도 했다.

황제가 봉회근을 부른 것은 그를 만나기 위함이니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든 일단 그를 만난 뒤에 계획을 이행할 것이다.

그러니 당분간은 안전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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