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궐황도 (71)화 (72/301)

16676982628911.jpg 

71화 계획이 있다

봉회근이 무심코 고개를 돌리니 능묵이 그림자처럼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훤칠하고 깡마른 몸매의 그는 주인처럼 무표정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봉회근은 시선을 거두고 담담하게 물었다.

“능 공자의 하인은 약을 달일 줄 모르오?”

화로 위의 탕약이 끓고 있었다. 야홍릉은 젓가락으로 약을 달이는 솥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젓가락으로 탕약을 휘저었다.

다 휘저은 다음 그녀는 열기가 빠질 만큼의 공간만 남기고 뚜껑을 닫았다.

이 모든 것을 마친 다음에야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모르오.”

“능 공자가 가르칠 수 있지 않소? 수행 하인이니…….”

봉회근은 그녀의 행동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이제 막 배운 거요.”

야홍릉은 담담하게 말하며 화로에 부채질을 했다.

“저 아이는 배우지 않아도 되오.”

그들이 앞으로 의원을 할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봉회근은 당황했다.

‘이제 막 배운 거라고?’

“능 공자도 배운 지 얼마 안 됐다고요?”

봉령이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능 공자가 행동을 보니 아주 익숙하던데요. 우리 집에서 약만 달이는 시녀 못지않았어요.”

야홍릉은 고개를 들고 그녀를 힐끗 본 다음 시선을 거두었다.

봉령은 코를 문질렀다.

‘왜 그러지? 능 공자가 날 보는 시선이 좀 이상한데…….’

“약을 달이는 건 어렵지 않소.”

봉회근은 민망한 얼굴로 봉령을 바라보며 말했다.

“시녀들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다른 사람이라고 왜 못 하지?”

대부분 사람은 약을 달이는 것은 시녀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대갓집에서는 더욱 그랬다.

의원은 처방만 하지 직접 약을 달이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게다가 능 공자는 진짜 의원처럼 보이지 않기에 배운 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해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봉회근은 능 공자가 다른 사람이 탕약에 독을 탈까 걱정하여 직접 달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봉씨 가문의 저택에서도 안심할 수 없었다.

봉씨 가문은 큰 가문이라 사람들 중 누군가 권세나 이익 때문에 나쁜 마음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다행스럽게 독을 풀고 의식을 되찾았다고는 해도 앞으로도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를 해치려는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으니 여기서 그만두려고 하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봉회근은 차가운 표정으로 봉씨 가문에 숨겨진 적을 생각해 보았다.

이때, 머릿속이 번뜩이더니 갑자기 뭔가 떠오른 얼굴로 고개를 돌려 능묵을 바라보았다.

“능 공자와 의논할 얘기가 있소.”

야홍릉은 고개도 들지 않고 물었다.

“무슨 일이오?”

“봉씨 가문은 요즘 안정적이지 못해서 앞으로도 조용하지 못할 수 있소.”

봉회근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한테서 그날 자객이 찾아온 얘기를 들었소. 능묵 공자가 혼자서 열 명이 넘는 자객을 죽였다고 하더군. 봉씨 가문의 모든 호원을 다 합한 것보다 더 강한 것 같으니…….”

능묵은 시선을 들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능묵은 내 수행 하인이라 빌려줄 수 없소.”

야홍릉이 평온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또 봉씨 가문의 호원을 훈련시킬 여유도 없고.”

능묵은 눈을 내리깔고 다시 공기처럼 존재감을 숨겼다.

“능 공자, 오해했소.”

봉회근은 머슴이 가져온 의자 위에 앉아서 능 공자가 약을 달이는 것을 지켜보며 입을 열었다.

“내 말은 능 공자가 봉씨 가문에 좀 더 오래 머무를 수 없나 물어보는 것이오.”

‘좀 더 오래 머물라고?’

야홍릉은 잠깐 침묵을 지키다 고개를 들고 덤덤하게 물었다.

“봉씨 가문에는 실력이 좋은 호원이 적지 않소. 그날에 자객이 갑작스럽게 쳐들어와서 미처 방어하지 못한 것이오. 그날 이후로 당신 아버지는 이 금란원 주변에 호원들을 잔뜩 세워 두지 않았소? 충분히 안전할 것이오.”

그녀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일반적인 자객은 그렇게 무섭지 않소. 그날에 온 사람들은 황족에서 키운 일류 암위라서 강한 것이오. 그러나 전멸되었으니 짧은 시간 안에 또 그렇게 많은 자객을 보낼 리 없소. 황제도 바보가 아닌데 무모하게 움직이겠소?”

봉회근은 고개를 저었다.

“난 죽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전체적인 상황을 생각하는 거요.”

어린 황제가 무모하게 움직일지는 확신할 수 없었으나 현재 봉씨 가문은 그에게 눈엣가시였다.

아직 황제가 열네 살이 되지 않았지만 반 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열네 살이면 직접 정사를 볼 수 있는 나이였다.

그때가 되면 조정의 암투는 더욱 치열해질 것이고 조금이라도 기회가 있다면 황제는 봉씨 가문을 놔두지 않을 것이다.

섭정왕을 무너뜨리려면 반드시 먼저 봉씨 가문을 쓰러뜨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봉씨 가문에게 흠잡을 명분이나 증거가 없다면 암살하는 게 가장 편했다.

게다가 봉씨 가문에는 다른 마음을 품은 봉청서가 있지 않은가?

영린이 기회만 잡는다면 봉회근 뿐만 아니라 봉형도 위험에 처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봉회근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상인은 약속을 중요하게 여긴다오. 나와 아버지는 이미 목국의 서남에 있는 사업을 능 공자에게 주기로 했소. 하지만 난 능 공자가 사업을 해본 적이 있는지, 지금 하는 사업이 있는지, 사업에 대해 알고 있는지는 모르오.”

야홍릉은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약을 달일 뿐,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봉회근은 옅게 웃었다. 그는 야홍릉의 침묵으로 화를 내거나 하지 않았다.

“우리는 각자 원하는 것만 얻으면 되는 것이오. 봉씨 가문에서는 능 공자가 목국 서남의 사업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가르침을 줄 것이고 능 공자가 마장의 진정한 주인이 되도록 도와줄 것이오. 그리고 봉씨 가문의 집사들도 능 공자가 여기에 있을 때는 능 공자의 일을 돕도록 할 것이오. 그들 모두 말 사육에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오. 물론 능 공자가 봉씨 가문의 집사를 믿을 수 없다면 직접 심복을 파견하여 그곳의 직무를 봐도 되오. 그래도 봉씨 가문의 집사는 능 공자가 익숙해질 때까지 경험을 전수해 줄 것이오.”

그 말을 들은 야홍릉은 미간을 찌푸렸다.

봉회근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전생에 칠 년 동안 변방에서 지냈다.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전쟁을 하는 게 주요한 일이었지만 그곳에도 마장이 있었다. 무장들은 자신이 타고 다니는 말을 아주 아끼기에 변방의 병사들은 말 사육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서남 목국에 위치한 마장은 변방의 것과 달랐다. 변방에 있는 것은 대다수 성년이 된 전쟁용 말이기에 마장의 사람들은 기본적인 것만 하면 되었다.

병사들이 대부분 자신의 말을 직접 보살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봉씨 가문의 마장은 말을 사육하는 게 주요한 일이었다.

말은 태어나서 성년이 될 때까지 들어가는 정력과 시간은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경험과 기술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목국 서남의 마장은 봉씨 가문에게 너무 중요한 사업은 아니었다.

또 야홍릉이 원하는 것은 봉씨 가문의 어린 말들이었다.

목국의 서남에는 드넓은 초지가 있고 땅이 비옥하여 말을 사육하기 좋은 곳이었다.

환경, 기후, 수질 모두 우세를 차지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너른 강이 있어 적군이 쳐들어올까 걱정할 필요도 없기에 천연적인 목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봉씨 가문은 대단한 가문이었으나 결국에는 일반적인 상인이었다.

그들은 감히 전쟁용 말 사업을 할 수 없었다. 섭정왕이 그들의 뒤를 봐주고 있었지만 아직 전체적인 국면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서 위험한 일을 할 수는 없었다.

만약 어린 황제가 이긴다면 봉씨 가문이 사적으로 전쟁용 말을 키운 것 자체가 큰 죄로 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역모죄를 뒤집어쓰고 멸문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봉씨 가문의 마장은 큰돈을 벌지 못했다.

그러나 야홍릉이 원하는 것은 마장의 수입이 아니었다.

“생각을 좀 해보겠소.”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봉회근은 그녀가 생각해 보겠다는 말에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시간이 많으니 천천히 생각해 보시오. 급할 건 없소.”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녀더러 그릇을 가져오라고 했다.

봉씨 가문의 마장은 사업체 중 하나였다. 그들은 성년이 된 말을 팔아 돈을 벌었다. 그러나 야홍릉은 마장으로 돈을 벌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마장에 대량의 돈을 투자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제철과 제염 사업으로 번 돈까지 모두 마장에 쏟아부을 생각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라를 강하게 만들려면 반드시 병력이 강해야 한다.’

병력이 강해지려면 전쟁용 말이 꼭 필요했다.

그래서 그녀는 수많은 어린 말과 끊임없이 들어올 돈줄이 필요했다.

이것은 장기적인 계획이었다. 돈을 한두 번 투자하고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물론 사업은 사람이 경영하고 관리해야 했다.

말 사육은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봉씨 가문의 집사는 경험이 있어 경험이 있어 야홍릉은 그들을 계속해서 쓸 생각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주인이 바뀌었다고 하면 일하던 사람들은 다른 마음이 들 수 있었다.

야홍릉은 강경하게 그들을 다스릴 수 있었지만 그렇게 그들을 굴복시킨다고 해도 진심으로 충성하지 않을 것이다.

이 복잡한 일들을 야홍릉은 잠깐 생각해 보고 결론을 내렸다.

봉회근이 한 제안은 그들 양측에게 모두 이득이 되는 것이었다.

달인 약을 그릇에 담은 야홍릉은 춘란더러 봉회근에게 가져다주라고 했다.

그리고 잠깐 생각을 해보다 말했다.

“며칠 뒤에 동제의 황성에 한 번 다녀올 것이오.”

“제경에 말이오?”

봉회근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능 공자, 중요하게 할 일이라도 있는 것이오?”

야홍릉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동제의 장공주 영가(榮嘉)를 만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영가는 대단하다고 소문난 장공주였다. 영린의 누나인 그녀는 수완이 뛰어나 영린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영린이 어린 나이에 섭정왕 왕위와 대항할 수 있었던 것은 궁에 숨겨진 무사도 있었지만 장공주의 도움도 컸다.

야홍릉은 그녀를 만난 적이 없었고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전생에 한옥금에게서 몇 번 칭찬을 들은 게 다였다.

그때 영린은 이미 직접 대권을 손에 넣은 뒤였다.

영위가 어떤 결과를 맞이했는지 야홍릉은 알지 못했다.

그때 그녀는 한옥금에게서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어린 황제가 무사히 대권을 되찾게 된 것은 그 무사와 장공주 영가 덕분이라고 했다.

그의 조력자인 야소숙도 도움을 줬지만 그것은 무시할 수 있었다.

이번 생에는 그들이 다시 협력할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군. 그럼 능 공자, 일 보시오.”

봉회근이 말했다.

“능 공자가 제경에서 돌아왔을 때면 내 몸도 전처럼 회복이 되었을 것이오. 그때 다시 능 공자를 모시고 봉씨 가문의 마장으로 가보겠소.”

말을 마친 그는 약그릇을 들고 벌컥벌컥 마셨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