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선이 확실하다
“오늘 밤에는 차를 마시는 게 좋겠소.”
말을 마친 봉회근은 고개를 돌려 야홍릉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주루의 음식은 맛이 아주 좋소. 남방과 북방의 요리를 모두 잘한다오. 능 공자는 담백한 것을 좋아하오? 아니면 달고 새콤하거나 매운 음식을 좋아하오?”
“마음대로 하시오.”
야홍릉은 탁자에 펼쳐진 냉채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가리는 건 없으니.”
‘또 마음대로라니.’
봉여희는 미간을 찌푸리고 괴상야릇한 말투로 말했다.
“능 공자는 참 까다롭지 않은 사람이군요.”
성미가 차가우면서 많은 일에서는 쉽게 넘어갔다.
그는 능 공자의 이런 버릇과 성격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야홍릉은 담담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식탐이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딱히 입맛도 까다롭지 않아 심하게 달거나 지나치게 느끼한 음식이 아닌 이상, 모두 먹었다.
그녀는 곁눈질로 검은 그림자가 휙 하고 지난 것을 보았다.
속도가 너무 빨라 다른 사람들은 아예 눈치채지 못했다. 야홍릉이 고개를 돌렸을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잠깐 나갔다 오겠소.”
봉회근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무슨 일이오? 혹시 내가 도울…….”
“아무 일도 아니오.”
야홍릉은 담담하게 대답하고 고개를 돌려 능묵을 바라보았다.
“곧 돌아올 테니 이곳에 있거라.”
말을 마친 그녀는 별실을 나가버렸다.
천일거주루를 나선 야홍릉은 길을 따라 북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모퉁이를 돌아 사람이 없는 골목으로 들어간 뒤, 몸을 날려 수십 리를 뛰어갔다.
“전하.”
흑의 차림인 영일이 나타나 무릎 한쪽을 꿇고 눈을 내리깔았다.
“3황자가 두 심복을 위성에 보냈습니다. 사흘 뒤면 도착할 것입니다.”
‘사흘?’
야홍릉은 표정이 싸늘해졌으나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사흘 뒤면 모든 것이 지난 뒷일 것이다.
“한 측군은 이미 어산서원에 들어가셨습니다. 선왕과 정왕 모두 전하의 행적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영일이 말했다.
야홍릉은 말없이 하늘을 올려보다가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다른 일은 없느냐?”
“저택의 다른 측군들은…….”
영일은 잠깐 망설이다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우연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빙란각 출신의 감진 공자가 몰래 사람을 보내 정왕과 선왕이 보낸 첩자들을 방해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야홍릉은 눈빛이 흔들렸다.
“감진이?”
“네.”
영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가 선왕과 정왕이 전하의 행적을 알아볼 수 없게 속임수를 시전하는 과정에서 감진 공자도 사람을 파견해 전하의 행적을 조사하는 사람들을 방해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야홍릉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제가 알아보니 감진 공자는 신분이 아주 신비로웠습니다.”
영위가 무거운 말투로 말했다. 감진이 아주 신경 쓰이는 듯한 눈치였다.
“빙란각의 배후 사장에 간판이라고 하고 어렸을 때부터 기방에 들어왔다고는 하나 열네 살 이전의 행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 년 전부터 손님들을 받으면서 춤 하나로 제경의 높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모양입니다. 춤은 칼끝에서 움직이며 추는 수수무(水袖舞)였다고 하며, 그 뒤로 빙란각은 감진 공자와 함께 크게 이름을 날렸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품에서 서신 하나를 꺼내 두 손으로 바쳤다.
“이건 감진에 대한 조사 결과입니다.”
야홍릉은 손을 뻗어 서신을 받고는 바로 열어 보지 않았다. 그리고 담담하게 물었다.
“또 다른 것은 없느냐?”
“그리고 쌍둥이 측군 말입니다. 저택에서 아주 조용히 지내나 왠지 의도적으로 한 측군에게 접근하는 느낌이 듭니다. 또 한 측군이 어떻게 고귀한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는지 감시하는 눈치였습니다.”
‘단홍상, 단백의.’
육연지가 했던 말이 떠오른 야홍릉은 잠깐 침묵을 지키다 말했다.
“그들과 악사 단리가 무슨 사이인지 알아보았느냐?”
“알아보고 있습니다.”
영일이 고개를 숙였다.
“이 둘은 어렸을 때, 단리에 입양되어 양아들이 되었습니다. 단리가 궁에 악사로 들어가기 전부터 그들은 이미 존재했습니다.”
야홍릉은 생각에 잠겼다가 싸늘하게 말했다.
“단리의 출신을 알아보아라.”
“알겠습니다.”
영일은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동제의 인질 영정과 소숙비가 보낸 매현근은 지금까지 별다른 행동을 보인 적이 없습니다.”
야홍릉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단리와 감진의 신분을 알아보아라. 조정에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자주 올 필요는 없다. 돌아가거라.”
영일은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몸을 날리더니 순식간에 어둠 속에서 사라졌다.
야홍릉은 자리에 선 채, 한참 서 있다가 시선을 손에 든 서신에 돌렸다.
그녀는 서신을 품에 넣고는 주루로 돌아갔다.
천일거주루의 별실로 돌아와 보니 봉회근이 시킨 요리가 이미 올라 향긋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들은 차를 마시며 야홍릉이 오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왔소?”
봉회근은 시선을 들고 야홍릉을 바라보았다. 야홍릉이 빈손으로 돌아온 것을 보니 뭔가를 사러 간 것은 아닌 듯했다. 그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능 공자, 아는 사람이라도 만난 것이오?”
야홍릉은 굳이 숨기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봉회근은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놀랍기만 했다.
‘여기서 아는 사람을 만났다고? 그럴 리가?’
그러나 그녀가 더 이상 말을 할 것 같지 않자 봉회근도 더 묻지 않았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앉아서 식사하지.”
말을 마친 그는 탁자의 중앙에 놓인 요리를 가리켰다.
“동서남북 각 곳의 특색 요리를 다 시켰소. 능 공자가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면 이 쇄양육(涮羊肉)을 드셔 보시오. 천일거의 간판 요리요.”
말을 마친 그는 또 다른 요리를 가리켰다.
“천일거의 대어두(大魚頭)요. 매운맛이 강해 이곳에 장사하러 오는 상인과 강호인들이 아주 좋아하는 요리요. 천일거 말고 다른 주루에서는 먹을 수 없는 맛이오.”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능묵이 건네주는 차를 마셨다.
“능 공자가 새콤달콤한 맛을 좋아한다면 봉리갈비찜(鳳梨燴排骨)에 입맛에 맞을 것이오.”
봉회근은 계속해서 소개를 이어갔다. 그리고 다른 요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초류배추(醋溜白菜)는 순 채식 요리지만 맛이 좋소.”
“그리고 이건 벽라새우살(碧螺蝦仁)이오.”
“이건 밀즙방육(蜜汁方肉)이오.”
“이건 취피계(脆皮雞)요.”
야홍릉은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고 봉회근이 말하는 것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또 음식을 너무 많이 시켰다느니, 다 먹지 못하면 낭비라느니 같은 말도 하지 않았다.
봉씨 가문은 큰 가문인지라 봉회근이 귀한 손님을 조촐하게 대접할 리 없었다.
게다가 야홍릉은 황족 출신이라 야자릉처럼 사치스럽지는 않아도 호화로운 식사 자리는 많이 봐왔다. 궁의 연회는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녀의 부황이 매일 하는 식사도 요리가 수십 가지나 되었다. 먹다 남은 것은 내관과 궁녀들에게 돌아갔다.
그러니 이런 상차림은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야홍릉은 입맛이 까다롭지 않았다. 매운 음식, 새콤달콤한 음식, 담백한 음식 모두 가리는 게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특별히 뭘 좋아하는지 아는 사람도 없었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른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어떤 사람은 매운 음식을, 어떤 사람은 달콤한 음식을 좋아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담백한 음식을 좋아했다.
모든 음식을 다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식사를 마칠 때까지 봉회근은 능 공자가 어떤 요리를 좋아하고 어떤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지 눈치챌 수 없었다.
능 공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골고루 먹었다.
짧은 이틀의 시간만으로 한 사람을 완벽하게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능 공자와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봉회근은 그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갑고 신비한 사람.
이것이 바로 봉회근이 야홍릉에게 내린 결론이었다.
식사를 마친 그들은 주루를 나갔고 봉여희가 계산을 마쳤다.
눈썰미가 좋은 가게 사장이 시선을 들고 봉회근, 봉령과 낯선 두 소년이 함께 밖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고 놀란 얼굴로 물었다.
“봉씨 대공자가 깨어났습니까?”
봉여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단한 신의는 누굽니까?”
봉여희는 웃기만 할 뿐 말을 하지 않았다.
계산을 마친 그는 주루를 나섰다.
일행 다섯 명이 한적하게 길을 가고 있었다. 봉회근은 야홍릉에게 위성의 특색을 소개해 주었다. 넷은 봉령과 함께 보석 가게와 분 가게에 들어가 보기도 했다.
먹과 벼루를 파는 가게를 지나게 되자 봉회근은 야홍릉더러 함께 들어가 보자고 했다. 그리고 고급스러운 벼루를 골라 야홍릉에게 선물하려고 했으나 야홍릉에게 거절당하고 말았다.
“한 것 없이 거저 받지는 않소. 괜한 돈을 쓰지 마시오.”
그녀가 말했다.
봉회근은 고개를 저으며 옅게 웃었다.
“약간의 성의일 뿐이오.”
야홍릉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능 공자, 받으세요. 큰 오라버니가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건 아주 드문 일이라고요.”
봉령이 애교스럽게 말했다.
“능 공자 정도나 이런 최고급 벼루에 어울리시죠.”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얼굴에 표정도 없었다.
봉령은 멋쩍게 웃었다.
“제가 능 공자를 난처하게 했나 봐요. 신경 쓰지 마세요.”
봉회근은 잠깐 침묵을 지켰다. 그는 능 공자의 고집을 이기지 못해 그에게 선물하지 않고 벼루를 봉여희에게 주었다.
봉여희는 벼루를 받으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형님.”
그는 능야라는 사람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형님을 치료하는 데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더니 작은 선물을 하려고 하니까 기어코 거절하네.’
물론 봉여희는 이 선물이 작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능야가 고집스럽고 원칙이 강하며 도도하여 다가가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는 것은 거래를 협상할 때 하는 약속이자 합의였다.
서로 원해서 하는 거래기에 강요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친구 사이거나 자주 왕래하는 사람들이 정을 주고받는 행위이기에 가격은 중요하지 않았다. 능야는 봉씨 가문 사람들을 친구로 여기지 않았고 그들과 자주 왕래할 생각이 없다는 말이었다.
봉회근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능야, 이 사람은 성미가 차갑고 가까이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봉씨 가문에 온 건 분명 목국의 서남쪽 사업과 마장일 거야. 이게 유일한 목적이라는 거지.’
마침 그는 봉회근의 독을 없앨 수 있었다.
이것이 그가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이기도 했다.
‘능야는 우리 봉씨 가문과 깊이 사귈 생각이 없나 보군.’
양측이 협력할 기회가 더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이해관계가 얽힌 거래일뿐이지, 사적인 감정은 담겨 있지 않았다.
‘선을 확실하게 긋는 것을 보아 원칙이 강한 사람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