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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65)화 (66/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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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판단할 수 없다

능묵은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는지 한밤중이 되자 스스로 깨어났다.

그가 눈을 뜨자 아직도 눈앞에 흐릿한 장면이 어지럽게 오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오랫동안 연습한 몸이 무의식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방안을 둘러보다가 곧 창가에 선 차가운 뒷모습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주인님.”

능묵이 입을 열고 눈을 내리깔았다.

“제가…….”

“깼느냐?”

야홍릉은 몸을 돌리고 담담한 말투로 물었다.

능묵은 흠칫 놀라더니 곧이어 공손하게 대답했다.

“네.”

“씻을 준비를 하거라.”

그녀는 담담한 말투로 지시를 내렸다.

능묵은 멍하니 있다가 대답했다.

“…네.”

* * *

다음 날 아침.

봉형은 심복 집사 몇 명과 함께 사업 협상을 하러 갔다.

그는 말대로 집에서 하루밖에 머물지 않았다. 봉회근이 깨어나자 그도 걱정을 덜었다. 또 능야에게 믿음이 생겨 그에게 아들을 맡기고 떠나기가 불안하지 않았다.

이상한 것은 자꾸 찾아오던 봉씨 가문의 둘째도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점심 때쯤에 봉여희가 시녀를 데리고 밥을 가져다주러 오면서 한마디 했다.

“둘째 형님은 아버지와 함께 사업하러 나갔소. 오늘은 집에 나밖에 없으니 능 공자가 필요한 게 있다면 나한테 말하시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침잠을 자려고 하던 봉회근이 방에서 나오며 담담하게 물었다.

“정말?”

봉여희는 고개를 돌리고 놀란 얼굴로 봉회근을 바라보았다.

“아니, 형님?”

‘이렇게 빨리 깨어났다고? 게다가 걷기까지 해?’

봉회근은 평온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날 본 게 그렇게 이상하더냐?”

그를 본 게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가 벌써 걸을 수 있다는 게 이상했다.

봉여희는 고개를 젓고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형님, 좀 괜찮아지셨습니까?”

“응, 많이 나았다.”

봉회근은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리고 야홍릉의 방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계단을 올라가며 말했다.

“다 능 공자 덕분이지.”

‘능 공자 덕분이라고? 능 공자에게 고맙기는 하지만…….’

봉여희는 잠깐 말을 잇지 못했다.

“형님, 능 공자가 아버지께 내건 조건을 아십니까?”

봉회근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조금은.”

이 말을 들은 봉여희는 또 말을 잇지 못했다.

‘알면서도 이렇게 무덤덤하다고? 그래, 어차피 이 봉씨 가문 전체가 다 형님 것이 될 터인데 목국의 서남쪽 마장과 사업 좀 잃는 게 뭐가 대수겠어? 형님의 목숨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까.’

봉회근이 죽는다면 아무리 많은 재산도 결국 남의 소유가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봉여희는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했다.

그리고 그도 따라서 방으로 들어갔다.

시녀는 봉여희의 지시대로 음식을 차리고 있었다.

그러나 서쪽 별실에 묵는 능 공자는 창가 앞에 선 채,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뭘 보고 있는 거지? 아니면 아무런 생각이 없는 건가?’

“능 공자.”

봉여희는 창가 앞에 서 있는 차가운 두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식사하시오.”

둘이 함께 서 있는 것을 보니 봉여희는 능묵이 능야보다 키가 훨씬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제와 그제는 왜 몰랐지? 능 공자가 기세가 너무 강해 키가 작은 걸 눈치채지 못한 건가? 그리고 허리도…… 남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는데.’

야홍릉은 천천히 돌아섰다.

그녀는 봉회근이 방안에 나타난 것을 보자 평온한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중독된 건 나았으나 며칠간은 침대에서 많이 쉬는 게 좋을 거요.”

“침대에서 스무날 넘게 있었더니 몸이 다 굳은 것 같소.”

봉회근이 말했다.

“돌아다니며 몸을 움직이려는 것이오.”

몸을 움직이는 게 급한 건 아니었지만 야홍릉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봉회근도 무공을 연마하는 사람인지라 이번의 고독으로 크게 고생했지만 결과적으로 크게 피해를 본 건 없었다.

게다가 어제는 종일 침대에 누워 소량으로 여러 끼를 먹으라는 말에 따라 한 시진에 한 번씩 죽 한 그릇을 먹었다. 또 몸에 좋은 보약까지 먹었기에 기력을 어느 정도 회복한 것 같았다.

야홍릉은 시선을 돌려 식탁 위의 산해진미를 보고 앞으로 걸어가 식탁에 마주 앉았다. 그리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능묵.”

흑의 소년이 걸어와 몸을 살짝 굽혔다. 그리고 말없이 야홍릉의 옆자리에 앉았다.

둘은 말없이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봉여희는 그만 할 말이 잃고 말았다.

‘나는 안 보이는 건가?’

봉회근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흑의 소년을 바라보았다.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이 소년은 주인인 능야보다 두세 살 많아 보였지만 둘 다 스무 살은 넘지 않은 듯했다. 속을 알 수 없는 분위기와 차가운 자태를 가진 둘은 아주 비슷했다. 둘 다 상업계에서 몇십 년 뒹군 능구렁이보다 속내를 파악하기 더 어려웠던 것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시선에는 신비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봉회근은 고개를 저으며 머릿속의 생각을 떨치려고 했다.

그리고 능 공자의 앞에 앉아 옅게 웃으며 물었다.

“내가 아직 점심을 못 했는데 함께 앉아서 먹어도 되겠소?”

야홍릉은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오.”

봉회근은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봉여희도 덩달아 앉으며 입을 열려는 순간, 능 공자의 느긋한 목소리가 들렸다.

“춘란, 주방에서 대공자께 드릴 죽 한 그릇 떠오너라.”

춘란은 알겠다고 하고 자리를 떴다.

야홍릉은 시선을 들고 봉여희도 앉은 것을 보자 또 한 마디 덧붙였다.

“두 그릇을 떠 오너라.”

봉회근과 봉여희는 모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봉여희는 억울했다.

‘난 몸도 멀쩡한데 왜 죽을 먹어야 하지?’

춘란도 의아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대공자와 3공자를 보더니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게, 사실 그럴 것까지는 없소.”

봉여희는 식탁 위의 음식을 가리키며 말했다.

“난 이걸 먹으면 되오.”

그는 함께 먹을 생각에 일부러 음식 몇 가지를 추가했다.

식탁에 잔뜩 오른 음식을 보면서 그는 능 공자와 그의 하인 둘이서 다 먹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야홍릉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음식을 먹었다.

그녀는 밥을 먹을 때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봉여희는 야홍릉이 자신의 말에 허락을 한 건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식탁에는 젓가락이 세 쌍 있었다.

그는 봉회근이 깨어나서 함께 식사하거나 능 공자가 하인까지 불러 함께 밥을 먹을 줄 상상도 못했다. 그래서 봉여희는 젓가락을 세 쌍밖에 준비하지 않았다. 그와 능 공자가 한 쌍씩, 그리고 다른 한 쌍은 공용 젓가락이었다.

그러나 지금 능 공자가 한 쌍, 능묵이 한 쌍 쓰고 있었고 다른 한 쌍은 깨끗한 채로 있었다.

봉여희는 앉아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춘란이 죽과 젓가락을 가져온 뒤 말하려고 했다.

봉회근이 있는 자리이니 그가 음식을 먼저 먹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방안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능야가 밥을 먹는 자태는 아주 우아하고 여유로웠다. 천성적으로 귀티가 흐르는 것 같았다. 그는 늦게 먹는 편이 아니었으나 우아한 자태가 보기 좋았다.

그에 비해 능묵이 먹는 속도는 아주 느렸다. 눈을 내리깔고 밥을 열심히 먹는 그에게서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음식을 집어 입에 넣고 씹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차가운 그의 눈매는 여전히 다가갈 수 없는 한기를 뿜었다.

봉회근은 생각에 잠겼다.

그는 신분을 알 수 없는 두 소년, 특히 능 공자에게서 흘러나오는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 자꾸만 흠칫 놀랐다.

봉회근이 능야를 주목하고 있을 때, 봉여희는 능묵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의 눈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이 담겨 있었다.

곧 춘란이 돌아왔다.

그녀는 죽 두 그릇을 각각 대공자와 3공자의 앞에 놓고는 젓가락 두 쌍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공손하게 물러갔다.

형제 둘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숙이고 하얀 윤기를 내뿜는 쌀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묵묵히 먹기 시작했다.

“능 공자, 오후에 딱히 할 일이 없지 않소?”

봉여희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내가 두 분을 모시고 함께 장터로 나가 볼까 하는데 어떻소? 옷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소?”

야홍릉은 곧 식사를 마쳤다. 그녀는 손수건을 꺼내 우아하게 입을 닦았다.

그리고 그녀가 젓가락을 내려놓는 순간, 능묵도 젓가락을 내려놓고 벌떡 일어서서 차를 가져와 야홍릉에게 건네주었다.

봉여희는 이 장면을 멍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야홍릉은 찻잔을 들고서 마신 다음, 느긋하게 말했다.

“그래도 되고.”

그러나 점심 식사를 마친 야홍릉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불볕이 쏟아지는 여름 날씨였다. 바람마저 뜨거워서 정원의 꽃과 풀들은 축 늘어져 있었다. 야홍릉은 밖에 나가고 싶은 생각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저녁에 나가는 게 좋겠소.”

그녀는 말을 마친 뒤, 병풍 앞의 귀비탑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옆의 탁자 위에 놓인 책을 들고 읽기 시작했다.

방안에는 얼음 대야가 놓여 있어 바깥보다 훨씬 시원했다.

이렇게 무더운 날에는 밖에 나가는 것보다 시원한 방 안에서 낮잠을 자는 게 훨씬 좋았다.

봉회근과 봉여희 모두 이의가 없었다.

날씨가 너무 더웠던 것이다.

유월이 시작된 순간부터 무더위도 시작되었다. 위성은 낮이 되면 아주 더웠으나 아침과 저녁에는 그나마 시원했다. 지금 나가서 둘러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듯했다.

방안은 정적만 흐르고 있었다.

시녀가 들어와 식탁을 치우고 야홍릉과 봉씨 형제에게 차를 타 주었다.

봉회근은 찻잔을 들고 귀비탑에서 책을 읽고 있는 능 공자를 바라보았다.

그가 뭐라고 말을 걸려고 하는 순간, 능 공자는 창밖을 바라보며 덤덤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며칠 안에 또 누군가 봉 공자의 독을 치료할 수 있다며 저택에 들어오려고 할 것이오.”

봉회근은 그 말을 듣고 표정이 굳더니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고개를 돌리고 봉여희를 바라보았다.

“여희야, 나가 보아라.”

봉여희는 찻잔을 내려놓은 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봉회근은 앞으로 가까이 다가와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나한테 독을 쓴 사람의 진짜 목적은 날 죽이려는 게 아니오. 내 생각이 맞소?”

야홍릉은 고개를 끄덕였다.

“능 공자가 동제의 상황에 대해 훤히 알고 있어서 경계심이 든다오.”

봉회근은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능 공자의 신분을 묻지 않을 수는 있으나 이것만은 대답해 줬으면 하오. 능 공자는 동제 사람이오?”

‘만약 능 공자가 동제 사람이라면 그도 이 상황에 휘말려 들었다는 거잖아?

그러나 만약 동제 사람이 아니라면 단지 날 치료하는 조건으로 봉씨 가문의 재산을 가지는 게 목적일 것이야. 그렇다면 훨씬 간단한 일이 되는데.’

야홍릉은 침묵을 지키다 고개를 저었다.

“난 동제 사람이 아니오.”

‘동제 사람이 아닌데 동제의 상황을 이렇게 잘 알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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