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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62)화 (6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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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누가 저를 해치려합니까

야홍릉은 의아한 얼굴로 그를 힐끗 바라보았다.

“무슨 상처를 치료한다는 말이냐?”

능묵은 눈을 내리깔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난 상처를 입은 적이 없다.”

능묵이 말했다.

“좀 피곤할 뿐이다. 그마저도 쉬면 되는 일이고.”

말을 마친 그녀는 문득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소매에서 작은 비단 함을 꺼내 능묵에게 전해주었다.

“열어 보아라,”

능묵은 의아한 얼굴로 비단 함을 열어 보았다.

검은색 천 안에 나비 모양의 벌레가 들어 있었다. 온몸이 새하얘 얼핏 보면 백옥을 조각한 나비 같았다.

그러나 나비를 본 순간, 능묵의 눈빛은 서리가 낀 듯, 차갑게 변했다.

“아는 물건이냐?”

능묵은 시선을 들고 한참 침묵을 지키다 꿇어앉으며 말했다.

“주인님께 아룁니다. 제가 아는 것입니다.”

“이건 무엇이냐?”

“호접고입니다.”

능묵은 고개를 숙이고 비단 함의 물건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그리고 비단 함을 닫고 미간을 찌푸린 채로 대답했다.

“호접고 중에서 가장 희귀한 존재인 백옥호접고입니다.”

야홍릉은 담담한 말투로 물었다.

“네가 어떻게 아는 것이냐?”

“그건…….”

능묵은 눈을 감고 기억을 들춰내려고 했으나 머릿속에 검은 안개가 낀 것처럼 아무리 애를 써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가 가장 확실하게 기억하는 장면은 신은전에서 훈련을 받던 모습들이었다.

“저도 이것을 왜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야홍릉은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능묵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시선에 담긴 압박감을 느낀 그는 저도 모르게 안색이 창백해졌다.

“제가 이것을 보았을 때, 어디에서 본 것처럼 아주 익숙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특성도…….”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느냐?”

야홍릉이 물었다.

“극독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의 몸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인 대뇌에 머물러 있기를 좋아합니다.”

능묵은 생각을 해보고 말을 이었다.

“독이 치명적이지는 않습니다. 호접고는 본성이 온순하고 자는 것을 좋아하여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약 십 년 중 절반 이상은 잠을 자며 보냅니다. 그래서 사람의 머리에 들어가도 다른 사람은 그 존재를 눈치채기 어려운 것입니다.”

이 호접고는 극독을 가졌기에 사람의 머리에 들어가면 몸에 지닌 독소도 머리를 침식하게 된다. 그래서 호접고에 걸린 사람은 안색이 퍼렇고 시커멓게 변해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중독된 것으로 보인다.

호접고는 외부의 방해를 받지 않을 때에는 대부분 시간을 온순하게 뇌 속에서 편히 잠을 자면서 보낸다.

그러나 백옥호접고는 일반적인 고충(蠱蟲)과 달리 사육자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사육자는 백옥호접고를 통제할 수 있는 조종법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작전에 성공한 것이었다.

신은전의 영위는 여러 가지 기능을 습득했다. 암살, 정보 전하기, 독 판별, 외모 바꾸기나 신분 위장, 그리고 고충을 다루는 방법도 배웠다.

그러나 깊이 배운 게 아니라서 아는 게 많지 않았다. 게다가 백옥호접고 같은 보기 드문 고충은 더욱 접촉해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이걸 아는 사람도 세상에 몇 없었다.

그런데 능묵이 정확하게 이름과 특성을 짚어낸 것이다.

이 점은 이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능묵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호접고를 알고 있으나 아는 이유를 말할 수 없었다. 이건 어영위에게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주인이 그를 의심하여 바로 죽인다고 해도 변명할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네 말이 틀리지 않았다.”

야홍릉은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

“이 호접고는 봉회근의 머리에서 나온 거니까.”

고개를 숙인 능묵의 입술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방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은 것 같았다. 주방에서 음식을 가져온 시녀는 방 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 시선도 들지 못한 채 다급히 음식만 내려놓고 나갔다.

‘큰 도련님을 치료하러 온 능 공자는 의술이 뛰어나나 성격이 너무 차가워. 이 둘만 있는 곳은 여름이라도 분위기가 서늘하네.’

음식 향이 방안에 퍼지자 야홍릉은 미간을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먼저 밥을 먹자꾸나.”

그녀는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일어서서 식탁 앞에 가 앉았다.

능묵도 따라갔다. 침착한 그의 시선에는 황공한 기색이 담겨 있었다.

그는 말없이 옆에 섰다. 평소 차갑고 딱딱하기만 하던 소년은 지금 아주 가엾기 짝이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앉아라.”

담담한 두 글자에 거절할 수 없는 단호함이 담겨 있었다.

능묵은 뻣뻣한 자세로 앉았다. 그의 목구멍에는 뭔가 걸린 것처럼 말을 하고 싶었으나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야홍릉을 그를 신경 쓰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밥을 먹기 시작했다.

표정은 담담하고 행동은 우아했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는 천성적인 고귀함이 풍겼다.

그러나 야홍릉과 달리 능묵은 기계적으로 밥을 먹고 있었다. 긴장하고 어두운 표정에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보자 시녀는 이미 밖에 화로를 준비한 뒤였다.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어제 사 온 약을 가져오너라.”

능묵은 바로 어제 사 온 약 꾸러미를 가져왔다.

“내가 밖에서 약을 달일 테니 넌 안에서 봉회근을 지키거라. 봉 가주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은 누구도 그에게 가까이하지 못하게 하거라.”

야홍릉이 말했다.

능묵은 공손하게 대답한 뒤, 봉회근을 지키러 갔다.

시녀는 밖에서 불을 피운 뒤, 약을 달일 가마도 준비해 두었다.

야홍릉은 가마에 물을 넣고 끓인 뒤, 끓은 물로 시녀가 이미 다 씻은 가마를 다시 한번 헹구었다. 그리고 약재와 물을 일정한 비율로 가마에 넣고 약을 달이기 시작했다.

“능 공자, 이곳은 시녀에게 맡기면 되네.”

옆에 서 있던 봉형은 이 광경을 보고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들은 약을 달이는 데 능하다네.”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화로에 부채질을 했다.

“어르신! 어르신!”

금란원의 대시녀 추란(秋蘭)이 방에서 걸어 나오며 말했다.

“대공자가 깨셨어요.”

그 말을 들은 봉형은 다른 것을 내버려 두고 다급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능 공자.”

추란은 야홍릉의 앞으로 걸어오더니 무릎을 굽히고 인사를 올렸다.

“여기는 제가 지킬게요. 공자께서 고생하셨으니 먼저 가서 쉬세요.”

야홍릉은 담담한 얼굴로 그녀의 말을 무시했다.

추란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곧 그녀는 눈을 내리깐 채, 말없이 옆으로 물러났다.

봉회근은 깨어난 게 맞았다.

봉형이 방으로 들어가자 한 시녀가 찻잔을 들고 침대 앞에 서 있고 다른 한 시녀가 봉회근을 조심스럽게 부축해 일으키는 모습이 보였다.

“도련님, 천천히 움직이세요.”

“회근아, 깼느냐?”

봉형은 급히 침대 앞으로 걸어가 시녀의 손에 든 찻잔을 건네받아 봉회근에게 가져갔다.

“좀 어떠냐? 자, 목부터 축이거라.”

봉회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막 깨어난지라 목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그는 봉형의 손에서 찻잔을 받아 단숨에 꿀꺽꿀꺽 마셨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누웠다.

“아버지.”

그의 목소리는 심하게 갈라져 있었고 안색도 창백했다.

“드디어 깼구나. 그동안 이 아비가 어찌나 걱정했는지.”

봉형은 미간을 찌푸리고 찻잔을 시녀에게 주며 말했다.

“가서 물을 더 떠오너라.”

시녀는 지시를 따르러 돌아섰다.

봉형은 침대 앞에 앉아 봉회근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어디 불편한 데는 없느냐?”

봉회근은 눈살을 찌푸렸다.

정신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는지 그는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온몸에 기운이 없는 것 말고 불편한 점은 없습니다.”

“기운이 없을 만도 하지. 넌 무려 스무날이나 깨어나지 못했단다.”

봉형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의 신의를 모두 찾아보았지만 네 병을 치료하지 못했거늘. 능 공자가 와서…….”

고개를 돌리고 말없이 옆에 서 있는 능묵을 본 봉형은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사람은 능 공자의 수행 하인이다. 능 공자는 지금 밖에서 네가 먹을 약을 달이고 있어. 이 둘 덕분에 네가 다시 깨어난 거야.”

봉회근은 눈을 내리깔았다.

그는 머릿속이 어지러워 어떻게 된 일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섭정왕부로 갔다가 영위의 서재에서 얘기를 나누고 황성을 떠나 위성으로 돌아올 때, 눈앞이 캄캄해지며 말에서 떨어지던 기억밖에 나지 않았다.

‘그리고 스무날이나 흘렀다고?’

봉형은 어두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를 해치려는 사람이 있는 겁니까?”

“그래, 널 해치려는 자가 있다.”

봉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자가 누군지 아직 밝혀내지 못했어.”

황족과 연관된 일이니 짐작만 할 뿐, 증거를 찾기 힘들었다.

봉회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녀가 또 따뜻한 물 한 잔을 가져왔다.

그는 몸을 살짝 일으키고 물을 마셨다. 그제야 목이 좀 편해진 듯했다.

물을 다 마신 그는 다시 눕지 않고 침대 머리에 몸을 기댔다.

“주방에 말을 넣어 죽을 준비하게 했다.”

봉형은 그의 뒤에 베개를 넣어 주었다.

“죽을 가져오너라.”

“네.”

시녀 춘란(春蘭)이 향긋한 쌀죽을 가져오더니 하얀색 숟가락으로 뒤적이며 열을 식혔다.

“제가 도련님께 대접하겠습니다.”

봉회근은 배 속이 텅 비어 있었다. 혼미 상태일 때는 굶는다고 죽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려 스무날이나 기절해 있으며 그의 원기는 진작 바닥난 상태였다. 다시 깨어난 그는 배고프고 목이 말라 괴롭기만 했다.

그러나 지금 그의 관심사는 이 향긋한 쌀죽이 아니었다. 그는 시선을 돌리고 차가운 얼굴로 말없이 서 있는 능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렸다.

“능 공자?”

“이 사람은 능 공자의 수행 하인이란다.”

봉형이 입을 열어 소개했다.

“같은 능씨기는 해. 아마도 주인의 성을 따른 것 같더구나.”

능묵은 무표정한 얼굴로 부자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봉회근은 능묵의 반응에 놀라웠다.

그는 이 수행 하인도 대단한 인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특별한 수행 하인을 데리고 다니는 주인은 어떤 사람일까?’

“아버지, 능 공자더러 들어오라고 하세요.”

봉회근은 시선을 거두고 입가까지 다가온 죽을 받아먹었다.

“제가 할 말이 있습니다.”

“능 공자가 지금 밖에서 약을 달이고 있으니 시간이 없을 것이다.”

봉형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어제 우리 집에 왔는데 어젯밤에 우리 집에 자객이 여러 명이나 찾아왔어. 첫 번째는 능 공자를 죽이러 두 명이 왔었지. 아마도 너를 치료하지 못하게 막을 생각이었나 보더라. 그리고 암살에 성공하지 못하자 너를 죽이러 여러 명이 왔어. 능묵이 어젯밤에 금란원을 지키며 모든 자객을 막았단다.”

봉회근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는 저도 모르게 능묵을 한 번 더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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