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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60)화 (6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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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누가 이길 것 같으냐

봉형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는 능야가 조정의 상황과 동제의 황제를 언급할 때 말투에 전혀 두려운 기색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주 평온한 어조로 사건을 얘기하는 듯했다.

섭정왕 영위는 삼 년 동안 대권을 움켜쥐고 있어 권세가 하늘을 찔렀다. 문무백관들 모두 그를 두려워하고 존경하였다. 동제의 백성 중 이렇게 대놓고 조정의 정치를 언급하는 사람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삼촌과 조카는 곧 치열한 내전을 맞이하겠다’라는 말을 할 사람은 더욱 없었다.

그러나 능야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이야기한 것이다.

봉형은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만약 정말 내전이 일어난다면 능 공자는 어린 황제와 섭정왕 둘 중 누가 더 승산이 있을 것 같나?”

‘누가 더 승산이 있냐고?’

야홍릉은 뒷짐을 진 채, 은색 달빛으로 가득한 정원을 천천히 걷고 있었다.

바람에 나붓기는 소매에서는 그녀답지 않은 소탈한 분위기가 풍겼다.

“표면적인 상황으로 본다면…….”

칠흑같이 어두운 그녀의 시선에는 옅은 비웃음이 담겼으나 곧바로 사라졌다. 그녀는 평온하고 침착한 얼굴로 말했다.

“당연히 섭정왕 영위이지요.”

‘표면적인 상황으로 본다면? 그렇다면 또 다른 상황이 있다는 건가?’

봉형은 언짢은 기분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섭정왕은 돈이면 돈, 권세면 권세 없을 것이 없네. 게다가 삼 년간 집정하면서 반수 이상의 병권도 가지고 있다네…… 어린 황제가 직접 정사를 보겠다고 해도 열 살 좀 넘는 어린아이인데 세상을 뒤엎을 수 있겠나?”

“세상을 뒤엎을 능력이 없어도 몰래 무언가를 할 수 있겠지요.”

야홍릉이 담담하게 말했다.

“끝까지 가지 않으면 누구도 최후의 승자인지 알지 못할 것입니다.”

봉형은 발걸음을 멈추고 싸늘한 얼굴로 물었다.

“능 공자, 혹시 황제가 가지고 있는 비장의 수가 무엇인지 아나?”

야홍릉은 한참 침묵을 지키다 싸늘하게 미소를 지었다.

“제 정보는 아주 비쌉니다. 큰 대가를 치르셔야 가질 수 있죠. 그래서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니라면 제게서 너무 많이 알아내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 말을 들은 봉형은 말문이 막혔다.

“허나 내가 아주 궁금하다고 하면?”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제 정보는 아주 비쌉니다.”

야홍릉은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말투는 너무 담담하여 감정을 파악할 수 없었다.

“봉 가주, 저희가 한 거래는 봉회근의 독을 푸는 데에만 제한되어 있습니다. 만약 다른 거래를 원하신다면 다른 조건을 거셔야 합니다.”

봉형은 잠깐 침묵을 지키다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능 공자는 정말 협상의 고수군.”

‘협상의 고수?’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봉형도 아무 말이 없었다.

둘은 함께 말없이 주원의 서재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잠갔다.

아침에 갓 비가 내린 탓에 등불로 환한 밤에도 비가 그친 뒤의 상쾌함이 남아 있었다. 꾹 닫힌 서재에서는 아무 소리도 전해지지 않았다. 야홍릉과 봉형을 제외하고 그들이 문을 닫고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같은 시각.

금란원에서는 기나긴 침묵이 지속된 뒤, 봉여희가 먼저 입을 열어 정적을 깼다.

“능묵 공자는 아주 곱상하게 생긴 쌍둥이 형제를 본 적이 있소?”

‘아주 곱상하게 생긴 쌍둥이 형제?’

능묵은 표정이 흔들렸다. 그의 시선으로 알 수 없는 기색이 스쳐 지났다.

그러나 그는 곧 평온한 모습을 되찾았다.

대답을 듣지 못 했지만 봉여희는 화를 내지 않고 잠시 뒤에 또 말을 했다.

“능묵 공자는 내가 알고 있는 친구와 닮았소. 허나 지금은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어 아주 걱정하고 있다오.”

능묵은 말없이 차가운 표정을 고수하였다.

“당신네 공자가 무슨 신분인지 알 수 있소? 혹시 봉씨 가문에 해코지하러 온 건 아니오?”

봉여희는 고개를 들고 능묵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봉씨 가문이 화를 입게 되는 건 아니오?”

그의 말에 대답하는 것은 공기뿐이었다.

봉여희는 혼잣말하는 것처럼 끝까지 능묵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결국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때가 되자 봉여희는 능 공자의 신분보다 능묵의 신분이 더 궁금했다. 공격하는 적을 치는 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빠른 것은 물론이고 뼛속 깊이 차가운 성미를 가진 것을 보아 절대 평범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그에게 살해당한 두 사사를 떠올린 봉여희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는 마음속으로 능묵의 신분을 짐작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훈련을 거친 두 사사를 순식간에 죽였으니 능묵의 실력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바로 능 공자가 그더러 금란원을 지키라고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능묵의 실력으로 혼자서 충분히 어중이떠중이들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실력이 강한 이 소년은 무슨 신분을 가졌을까?’

봉여희는 시선을 들고 소년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과 과묵한 성격, 그리고 남다른 충성심까지…….

이 모든 것은 그가 일반적인 무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능묵 공자.”

봉여희는 마음속의 불안감을 떨쳐내고 물었다.

“내가 지금 들어가 큰 형님을 봐도 되겠소?”

능묵은 얼음과 같은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봉여희는 발을 들어 돌계단으로 올라가 문을 열려고 했으나 결국 능묵에게 손목이 잡히고 말았다.

고개를 숙이니 하얗고 가는 손가락이 보였다. 고운 손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을 죽이는 손이기도 했다.

순간, 기억 저편에 숨겨둔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봉여희는 귀신에게 홀린 것처럼 입을 열었다.

“아유명주일과(我有明珠一顆, 나한테 신비로운 구슬이 한 알 있는데)”

능묵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구피진로관쇄(久被塵勞關鎖, 오랫동안 먼지 속에 갇혀 있었으나).”

능묵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금조진진광생(今朝塵盡光生, 오늘에야 먼지가 사라져 빛이 쏟아지니)”

능묵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시선으로 망연한 빛이 드리웠다.

“조파산하만타(照破山河萬朶, 산과 하천, 수많은 꽃송이까지 밝게 비추는구나).”

능묵은 그의 손목을 풀어주고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꺼져라.”

봉여희는 바로 뛰어갔다. 그는 전혀 망설이지 않고 빠른 속도로 도망갔다.

야홍릉이 봉형의 서재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밤이 깊어 있었다. 그녀는 봉형과 함께 금란원에 돌아갔다. 그러나 금란원에는 바람 소리 말고 다른 기척은 전혀 없었다.

널따란 마당의 청석 바닥에는 열 구가 넘는 시체가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었다.

모두 흑의 차림이었다.

봉형의 표정이 변했다. 그는 마음속의 분노와 초조함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꼿꼿하게 서서 봉회근의 방문을 굳건히 지키는 소년의 모습을 본 순간, 마음속의 분노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놀라울 정도로 대단한 소년이군.’

야홍릉은 어두운 얼굴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봉회근의 목숨을 취하러 온 사람인 듯합니다.”

봉형은 안색이 변하더니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저를 죽이지 못해서 계획을 바꾼 것 같습니다.”

야홍릉의 시선은 시체들에게서 떨어졌다.

“사람을 이렇게 많이 보낸 걸 보니 죽이고 싶은 마음이 아주 간절한가 봅니다. 대가를 아끼지 않는군요.”

그 말을 들은 봉형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방금 서재에서 능야의 질문을 떠올리자 그의 눈빛은 더더욱 차가워졌다.

“봉회근이 죽는다면 누구에게 가장 이로울까요?”

한참 침묵을 지킨 그는 마음속의 감정을 억누르고 말했다.

“밤이 깊었으니 능 공자는 어서 돌아가 쉬시지요.”

말을 마친 그는 호원을 명해 이 시체들을 모두 끌어내어 깨끗이 처리하게 했다.

그리고 음침한 얼굴로 자리를 떠났다.

야홍릉은 앞으로 걸어가 난간의 앞에 기대어 앉았다.

“먹을 것 좀 구해 오너라.”

능묵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는 대답하고 번개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야홍릉은 홀로 봉회근의 방문 밖에 앉아 저택의 등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옆모습은 차갑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음산한 시선에는 세상을 굽어보는 듯한 도도한 분위기가 풍겼다.

그러나 덤덤한 그녀의 표정은 이 세상에 관심이 없는 듯했다.

곧바로 능묵이 종이에 감싼 무언가를 가져왔다.

“주인님.”

그는 종이를 펼쳤다. 그러자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닭고기가 펼쳐지며 향긋한 냄새를 풍겼다.

“이건 제가 주방에서 가져온 것인데 독이 없습니다.”

사실 독이 들어 있어도 괜찮았다.

둘 다 해독단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야홍릉은 종이째로 받아 들고 다리를 뜯어 능묵에게 건네주었다.

소년은 좀 망설이며 받지 않았다.

“주인님 먼저 드십시오. 전 배가 고프지 않습니다.”

야홍릉은 시선을 들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야홍릉은 자신의 말을 거역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를 떠올린 능묵은 바로 겁을 먹고 아무 말 없이 닭다리를 받았다.

그리고 고마움을 표한 뒤,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깊은 밤이었으나 야홍릉과 능묵은 둘이서 닭 한 마리를 나눠 먹고 있었다. 이 또한 인생에서 보기 드문 경험이었다.

닭 한 마리를 다 먹은 뒤, 능묵은 또 주방으로 가서 찻주전자를 가지고 서쪽 별실로 가서 찻잔을 가져왔다. 그리고 야홍릉에게 차를 따라주었다.

“주인님, 좀 주무시지 않겠습니까?”

능묵이 입을 열었다.

“제가 혼자서 이곳을 지키면 됩니다.”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를 마셨다.

그리고 눈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긴 시선을 숨겼다.

위성의 여름밤은 너무 덥지 않았다. 서늘한 밤바람이 불어오자 아주 시원하고 상쾌했다.

“능묵.”

야홍릉이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시원한 밤이라서 그런지 느긋하게 들렸다.

“방금 전의 자객들이 어떤 신분인 것 같더냐?”

능묵은 그들과 겨루어 보았으니 그들의 무공이 일반적인 무인인지, 아니면 특별한 훈련을 거친 사사나 암위인지 알고 있었다.

“암위였습니다.”

능묵이 시선을 내리깔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들의 수법으로 봤을 때, 귀족에서 키운 암위였습니다.”

야홍릉이 담담하게 물었다.

“어디에서 온 자들인지 판단할 수 있더냐?”

능묵은 잠깐 침묵을 지키다 말했다.

“동제의 황족이 보낸 것으로 짐작합니다.”

“짐작이라고?”

야홍릉은 시선을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동제의 섭정왕 영위와 어린 황제 영린 사이의 싸움이 점점 치열해집니다. 영위의 가장 큰 지원자가 봉씨 가문이고요. 만약 봉회근이 죽는다면 봉씨 가문에서는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될 것입니다.”

봉씨 가문이 타격을 입게 된다면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사람은 동제의 섭정왕 영위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개입하지 않는다면 영위와 영린 중 누가 이길 것 같으냐?”

능묵은 곰곰이 생각을 해보고 말했다.

“저는 영린이 이길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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