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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궐황도 (58)화 (59/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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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화 어떤 사람이지?

소년은 봉씨 가문의 셋째 봉여희(鳳予熙)였다.

그는 소녀의 말을 듣고 표정이 변했다.

“무슨 좋은 일이 있었던 게냐?”

“큰 오라버니를 치료해주러 온 의원이 아주 잘생겼어요.”

봉령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아주 대단해 보이는 사람이었어요.”

‘잘생기고 대단해 보이는 사람이라고?’

봉여희는 약간 복잡한 얼굴로 봉령을 바라보았다.

“혹시 마음을 빼앗긴 것이냐?”

봉령은 깜짝 놀라더니 얼굴이 더욱 빨갛게 물들었다.

“오라버니도 참…… 제가 어찌 처음 보는 사람을 좋아하겠어요? 다만, 다만 능 공자가 정말 잘생겨서 그림 속의 귀공자 같다고 말하고 싶은 것뿐이에요…….”

그녀는 횡설수설 말을 늘어놓았지만 사랑에 빠진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처음 본 사람이나 좋아한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나 남자가 경국지색인 여인을 보고 설레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녀도 잘생긴 남자를 보면 설렘을 느끼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설렘은 그저 잘생긴 얼굴을 보아 기분이 좋은 데 그칠 뿐,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봉여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담담하게 말했다.

“다른 사람의 신분을 자세히 파악하기 전까지는 그 사람의 겉모습에 속아넘어가서는 안돼.”

“그분은 절 속이지 않으셨어요.”

봉령은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

“오라버니는 능 공자가 얼마나 차가운지 모르실 거예요. 능 공자는 아버지와 얘기할 때도 차갑기 그지없다고요. 다른 사람들이 아버지 앞에서 조심스럽게 행동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어요. 그리고 저한테도 얼마나 선을 긋는데요. 마치 돌을 바라보듯이 쳐다봤어요.”

말을 마친 그녀는 또 목소리를 깔았다.

“능 공자는 둘째 오라버니도 혼내줬어요.”

봉여희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아버지의 앞에서도 차가운 표정을 고수하는 소년의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둘째 형님을 혼내 줬다고?’

“무슨 일이 일어난 건데?”

그는 둘째 형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봉청서는 봉씨 가문에서 어느 정도 힘이 있었다. 봉씨 가문에서 아버지와 큰형님을 제외하면 봉청서도 꽤 많은 일을 관리했다.

그의 사업 능력도 나쁘지 않았다. 그는 너그럽고 온화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호감을 사서 인맥도 좋았다.

“둘째 오라버니는 자꾸만 능 공자가 사기꾼이라고 하더니 능 공자의 음식에 독을 넣었어요.”

봉령은 미간을 찌푸리고 불만 어린 어조로 말했다.

“그 결과 능 공자를 화나게 한 거예요. 능 공자는 큰 오라버니를 치료하지 않겠다고 했고 아버지도 덩달아 화가 나셔서 둘째 오라버니더러 능 공자에게 사과하라고 하셨어요.”

봉여희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게요?”

봉여희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능 공자는 사과만 하는 건 성의가 없으니 둘째 오라버니더러 음식을 다 먹으라고 했어요.”

봉령은 한숨을 내쉬었다.

“능 공자도 성격이 만만치 않은 사람이에요.”

‘성격이 만만치 않다고?’

봉여희도 능 공자라는 사람이 성깔 있다고 느껴졌다.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봉씨 가문의 영역에서 봉씨 가문의 2공자를 손보다니. 능 공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지?

그냥 성격이 강한 사람인가? 아니면 실력이 강해 자신이 넘치는 사람인가? 그것도 아니면 뒷배가 말도 아니게 강하여 이토록 없는 사람인가?’

한참 침묵을 지키던 그가 물었다.

“그래서?”

‘음식에 독이 있는데 봉청서가 설마 먹었겠어?’

“그리고 나서는…….”

봉령은 어깨를 으쓱했다.

“둘째 오라버니는 아버지의 압박과 능 공자의 고집을 못 이겨 정말로 그 음식들을 먹었죠.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중독되어 능 공자의 사람에게 끌려 나왔어요.”

봉령은 말을 멈추고 한숨을 내쉬었다.

“둘째 오라버니의 하인이 이미 의원을 부르러 갔어요. 독이 치명적이지는 않으나 아주 고통스럽나 봐요.”

봉여희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아버지의 압박을 못 이기고?’

봉여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억지로 시켰다면 봉청서는 아무리 내키지 않아도 반항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게 자업자득이 아닌가?

그러니 고생 좀 한다고 해도 그가 자초한 일이라서 남 탓을 할 수 없었다.

“오라버니, 무슨 생각해요?”

봉여희는 방으로 들어가 검을 벽에 걸어 놓았다. 그리고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능 공자의 신분이 무엇일지 생각하고 있었어.”

그러자 봉령도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 이 능 공자가 일반적인 사람이 아닐 것 같아요. 그런데 동제에서 능씨성을 가진 세가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봉여희가 물었다.

“그가 큰형님을 구하는 데 내건 조건이 뭐지?”

이 말을 들은 봉령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목국의 서남쪽에 있는 제염과 제철 사업, 그리고 마장을 달라고 했대요.”

‘뭐라고?’

봉여희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지금 뭐라고 했어?”

“오라버니도 놀랍죠?”

봉령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제가 말했잖아요. 능 공자가 일반적인 인물이 아닌 것 같다고. 만약 일반적인 의원이라면 이렇게 파격적인 조건을 부를 수 있나요? 그런데 능 공자가 그랬다는 거죠. 그것도 아주 단호한 어조로요. 협상이 전혀 불가능한 얼굴이었대요. 아버지도 처음에 화가 났으나 결국 허락하실 수밖에 없었죠. 큰 오라버니의 목숨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까요.”

봉여희는 어두운 얼굴로 한참이나 말을 하지 않았다.

큰 형의 목숨이 중요하나 의원…… 아니, 신의라고 해도 이런 가격을 부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아무리 어려운 병이라고 해도 말이다.

사람을 구하는 것과 사람을 인질로 잡아서 돈을 요구하는 것은 성질이 달랐다.

목숨은 가격을 정하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특수한 상황이라 가격을 올린다고 해도 정해진 가격이 있었다. 예를 들면 삼천 냥이나 오천 냥 정도.

그러나 신분을 알 수 없는 능 공자는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일을 인질극처럼 벌이고 있었다.

목국의 서남쪽 경내에는 제염과 제철 사업, 그리고 마장 사업 두 가지가 있었다.

그 가치는 몇천 냥이거나 몇만 냥이라는 액수로 가늠할 수 없었다. 그것은 끊임없이 돈이 들어오는 돈줄이었다.

봉회근은 봉씨 가문의 유일한 적자여서 그의 목숨이 아주 귀한 건 사실이나 이런 조건을 내건 것이 너무 황당하게 느껴졌다.

더욱 황당한 것은 그의 아버지가 이 조건을 허락했다는 것이었다.

“셋째 오라버니, 능 공자를 만나 보러 가시겠어요?”

봉여희는 봉령을 힐끗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네 말을 들어 보니 능 공자는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을 싫어하는 듯하구나. 아마도 방해가 된다고 그러나 본데 가지 않는 게 좋겠어.”

그리고 바로 덧붙였다.

“그러나 사람을 파견하여 신분을 알아볼 수는 있지.”

“안돼요.”

봉령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능 공자가 절대 자신의 신분을 알아보지 말라고 하셨어요. 만약 알아본다면 큰 오라버니를 죽이겠대요.”

봉여희는 경악했다.

‘아버지의 앞에서 큰 형님을 죽이겠다고 했다고? 능 공자…… 간이 참 크군!’

여기까지 들은 봉여희는 능 공자에 대한 호기심이 크게 동했다.

그는 위성이라는 아버지의 영역에서, 아버지에게 이렇게 경고와 협박을 서슴지 않고 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도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면서 말이다.

‘이 능 공자는 자신이 정말 황제의 자식이라도 되는 줄 아는 건가?’

“아버지께서는 능 공자의 신분을 알아보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어요. 그러니 셋째 오라버니도 절대 그러지 말아요. 적어도 큰 오라버니가 완쾌될 때까지는요.”

봉여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야홍릉은 오후 내내 조용하게 창가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싸늘한 눈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능묵도 그녀와 똑같이 옆에 조용히 서 있었다. 그림자와 전혀 다름이 없는 모습이었다.

해가 서서히 서쪽으로 옮겨갔다. 저녁의 노을이 창문으로 비춰 들어와 야홍릉의 싸늘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감쌌다. 차가운 얼굴에 부드러운 빛이 더해지자 더욱 눈부시게 아름다워졌다.

빛이 눈 부셔서인지, 오랫동안 밖을 내다보아 눈이 시려서인지.

그녀는 눈을 살짝 감고 두 손을 포갠 채, 창턱 위에 놓고 또 한참 그대로 앉아 있었다.

능묵은 그녀의 뒤에서 조용하게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이렇게 서서히 날이 어두워졌다.

방 안에 등불이 켜지고 난 뒤에야 야홍릉은 눈을 뜨고 말했다.

“차를 따라다오.”

능묵은 대답하고 차를 따르러 갔다. 곧 그는 찻잔을 들고 돌아왔다.

야홍릉은 찻잔을 들고 반 잔 정도 마셨다. 그녀의 시선은 다시 창밖의 등불에 향했다. 귓가에 시녀들이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고 일어서서 발길을 옮겼다.

능묵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차를 다 마신 그녀는 찻잔을 탁자에 올려놓고 방 밖으로 나갔다.

그러다 마침 저녁 식사를 들고 온 봉령과 다른 소년을 마주치게 되었다.

야홍릉은 발걸음을 멈추고 담담하게 말했다.

“저녁을 먹지 않겠소.”

봉령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배고프지 않으세요?”

그러다 문득 뭔가가 떠올랐는지 그녀는 다급히 해명했다.

“이 음식들은 모두 주방에서 갓 나온 것들이에요. 제가 직접 지켜보아서 아는데 절대 뭔가를 넣은 사람이 없었어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야홍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봉회근의 방으로 걸어갔다.

능묵은 그녀의 뒤를 따랐다.

“공자.”

봉령과 함께 온 봉여희가 입을 열었다.

“이 음식들을 자네 공자에게…….”

능묵은 고개를 돌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힐긋 바라보았다.

순간 봉여희는 하던 말도 마치지 못하고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흑의 소년이 능 공자의 뒤를 따라 봉회근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오라버니, 제 말이 맞지요?”

봉령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둘이 걸어가는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능 공자와 그의 수행 하인이 얼음처럼 차갑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아버지도 하는 수 없이 타협한 거예요.”

‘둘째 형님이 능 공자에게 당할 만하군.’

봉여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둘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시야에서 사라져서야 천천히 시선을 거두었다.

그의 시선에는 이상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금란원의 정방(主房, 주방. 여러 채로 된 살림집에서 주가 되는 장소)에서는 봉회근이 아직 혼미 상태에 빠진 채 누워 있었다.

그의 얼굴은 낮에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시커멨고 호흡이 미약했으며 생기가 없었다.

야홍릉은 침대 앞에 서서 능묵에게 손을 내밀었다.

“은침.”

능묵은 비단 함에 넣어 두었던 은침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문을 닫고 밖에서 대기하거라.”

능묵은 고개를 끄덕이고 방을 나서며 문을 닫았다. 그리고 문을 지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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