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쓸데없는 호기심이 사람을 해친다
봉씨 가문의 사업은 각 나라에 널리 분포되어 있었다.
천하제일의 상업 가문은 아니었지만 동제 섭정왕 영위의 도움으로 최근 몇 년간은 발전이 아주 빨랐다.
천하제일의 상업 가문이라 불리는 묵(墨)씨 가문과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봉씨의 뿌리는 동제에 있는데 능야는 목국의 서남 지역에 위치한 제염과 제철 사업, 그리고 마장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능야의 출신이 상인 가문인지, 조정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조정이라면 어느 나라의 조정에서 온 거지? 목국? 금국? 남제? 아니면 동제? 지금 목국과 금국이 전쟁을 하고 있으니 금국도 전쟁에 쓰일 말과 돈이 필요하겠지. 목국은 금국보다 부유하나…….’
봉형은 미간을 찌푸린 채, 속으로 끊임없이 이 소년이 어느 가문에서 왔을지 생각해 보았다.
“제가 어디서 왔는지는 봉 가주께서 신경 쓰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야홍릉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제 신분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 게 좋으실 겁니다. 전 봉회근을 죽일 수도 있으니까요.”
봉형은 흠칫 놀라더니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시선은 순식간에 음산해졌다.
“능 공자는 지금 날 협박하는 건가?”
“협박이 아니라 일깨워 드리는 겁니다.”
야홍릉은 뒷짐을 진 채, 담담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저희 거래는 정당한 거지요. 제가 봉 가주의 아들을 살리면 봉 가주는 저에게 보수를 지급하면 됩니다. 만약 봉 가주께서 알아내지 말아야 할 것을 알아낸다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봉 가주께서는 상업계에서 오랫동안 계셨으니 ‘쓸데없는 호기심이 사람을 해친다’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봉형은 어두운 얼굴로 차갑게 말했다.
“이 세상에 감히 날 협박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안 남았는데 능 공자는 패기가 넘치는군.”
“봉 가주는 상인이니 다른 사람들이 무서워할 정도는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건 봉씨 가문의 뒷배인 영위의 권세겠죠.”
야홍릉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그의 말에 전혀 겁을 먹지 않은 표정이었다.
“전 봉씨 가문이 돈도 많고 세력도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동제 섭정왕 영위와 봉씨 가문의 사이도. 봉씨 가문이 끝장난다면 섭정왕인 영위는 절대 어린 황제의 상대가 아니게 되겠죠.”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멈춘 듯했다.
야홍릉이 차분한 얼굴로 한 말에 봉형은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소년이 직접 동제 섭정왕 영위의 이름을 부르다니. 게다가 음산한 기운과 날카로운 말투하며…… 이 분위기는 절대 연기가 아니야…… 그렇다면 이 소년은 누구지?’
야홍릉이 한 말이 완전히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봉형은 상인이라 상인의 지위로는 벼슬길에 오를 수 없었다.
그러나 상인도 어느 정도로 강해지고 재산도 모은다면 일정한 세력을 가질 수 있었다.
사람들이 봉씨 가문을 두려워하는 게 영위와의 관계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야홍릉은 성격이 원래 차갑고 딱딱하여 황제와 태후의 앞에서도 겁을 먹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한낱 상인 가문의 가주를 두려워할 리는 없었다.
그래서 봉씨 가문을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정도는 아니다’라고 한 것이었다.
“그러니 잘 생각해 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안 그러면 정말 후회할 만한 일이 생길 것이니까요.”
야홍릉은 담담하게 말한 다음 몸을 돌렸다.
“저와 봉씨 가문은 은혜를 입은 적도, 원한을 진 적도 없습니다. 그러니 봉씨 가문에 선행을 베풀 의무도, 나쁜 짓을 할 이유도 없습니다. 저희는 그냥 단순한 거래 사이이니 봉 가주께서 상업계의 규칙을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봉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능야라고 하는 소년이 그도 모르는 사이에 주도권을 쥐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소년의 평온한 말에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소년은 쉽게 속일 수 있을 것 같은 나이였으나 봉형은 더 이상 그를 일반적인 소년처럼 대할 수 없었다.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봉형은 야홍릉을 봉회근이 묵는 금란원(錦蘭院)에 데려갔다.
정원에 서 있던 시녀들은 그를 보고 공손하게 예를 올렸다. 봉형이 담담하게 물었다.
“대공자의 상황은 어떠하냐?”
시녀는 고개를 살래살래 젓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도 혼미하신 상태입니다.”
봉형은 어두운 얼굴로 야홍릉을 돌아보며 손을 내밀었다.
“능 공자, 안으로 드시게.”
야홍릉은 고개를 끄덕이고 봉형과 함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봉씨 가문 적장자가 묵는 방은 아주 호화로웠다.
벽에는 유명한 서예가와 화가의 작품이 걸려 있었고 가구도 모두 고급 홍목으로 제작한 것이었다. 탁자와 의자는 무늬가 정교하고 아름다운 것이 한눈에도 유명한 사람의 솜씨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투조(透雕)한 병풍을 지난 둘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야홍릉은 침대에 누워 있는 봉회근을 발견하였다.
그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시커먼 안색을 띠고 있었다. 검은 머리를 베개에 흐트러뜨린 그에게서는 생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무공을 연마하여 오감이 뛰어난 야홍릉은 침대에 누운 남자의 미약한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언제든지 끊어질 듯한 숨소리만이 봉회근이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중독된 지 열아홉 날이 되었군요.”
야홍릉은 봉회근의 시커먼 안색에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빙설련(氷雪蓮)이 아니었다면 진작 목숨을 잃었을 겁니다.”
봉형이 담담하게 말했다.
“빙설련은 구하기 어려우나 돈만 충분하다면 구할 수는 있지.”
“해독하는 데 나흘이 들 겁니다.”
야홍릉이 말했다.
“봉 가주께서 나흘 안에 양도 계약서를 체결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 하인과 함께 관아로 가서 관가의 도장을 찍으시지요. 또한, 저한테 깨끗한 거처를 마련해 주십시오.”
그 말을 들은 봉형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능 공자, 내가 한 말을 정말 생각해 보지 않겠나?”
야홍릉은 말없이 시선을 들었다.
“봉씨 가문의 사위가 된다면 재산을 절반 가질 수는 없으나 봉씨 가문에 대한 결정권은 가질 수 있을 것이네.”
봉형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봉씨 가문은 당분간 분가할 생각이 없으니.”
야홍릉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전 데릴사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꼭 데릴사위가 아니라도 된다네.”
봉형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회근이가 깨어난다면 장차 가주는 회근이가 될 걸세. 그리고 나에게는 아들이 두 명 더 있네. 내 사위가 된다면 굳이 데릴사위가 아니어도 된다네. 내가 딸을 시집보낼 수도 있지.”
야홍릉은 이 말에 꿈쩍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 제안을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전 봉 가주의 딸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봉형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거절할 일인가?’
“제가 봉회근을 치료하는 나흘 동안 그 누구도 이 방에 들이지 마십시오.”
야홍릉은 고개를 돌려 봉회근의 시커먼 안색을 보며 무덤덤하고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만약 봉 가주가 그리하지 못하신다면 썩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겁니다. 그 결과도 직접 떠안아야 하시고요.”
‘결과를?’
봉형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결과?”
야홍릉은 평온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새카만 눈동자는 얼음처럼 차가워 봉형은 저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아버지.”
이때, 밖에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 의원이 형님을 치료하러 왔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도울 일이 있는지 하여 와 보았습니다.”
봉형과 야홍릉은 동시에 시선을 밖으로 돌렸다.
젊고 점잖은 남자가 병풍 밖에 서 있었다.
스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그는 준수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다. 마른 몸집에 파란색 장포를 입은 그는 시선을 들고 안방을 바라보다 마침 야홍릉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그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아주 아름답고 귀티가 흐르는 소년이군.’
“둘째인 봉청서(鳳靑書)네.”
봉형이 소개했다.
“혹시 내가 저택에 없다면 능 공자는 이 아이를 찾으면 되네…….”
“봉 가주께서는 바쁘십니까?”
야홍릉은 평온한 얼굴로 그의 말을 잘랐다. 무덤덤한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아무런 감정의 기복이 느껴지지 않았다.
봉형과 봉청서는 동시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잠시 뒤, 봉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에는 좀 바쁘다네.”
“아들의 목숨보다 바쁜 일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전 나흘만 있으면 됩니다. 가주는 봉회근의 아버지로서 이 나흘도 뺄 수 없다는 겁니까?”
봉형은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그가 입을 열려고 하는데 봉청서가 먼저 미간을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공자, 말씀이 지나치시오. 형님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아버지를 너무 막 대하시는 것 아니오? 공자가 지금 누구의 영역에 있는지 아시오?”
“청서야, 그 입 다물어라!”
봉형은 고개를 돌리고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네가 끼어들 일이 아니다.”
봉청서는 안색이 확 변했다.
“아버지, 저는…….”
“나가 보아라.”
봉형이 차갑게 지시를 내렸다.
봉청서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네.”
그가 떠나자 봉형은 야홍릉에게 시선을 돌리고 말했다.
“내가 잘 가르치지 못해 저 아이가 철이 없네. 능 공자, 마음에 담아 두지 마시게.”
야홍릉은 봉청서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
“봉 가주께서 정 시간이 없으시면 하는 수 없지요. 그러나 누군가 저를 방해한다면 제 하인이 그를 다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봉형은 그 말을 듣고 물었다.
“치료하는 데 지장이 가나?”
“그러지는 않을 겁니다.”
야홍릉이 대답했다.
“봉회근은 이틀 뒤에 깨어날 겁니다. 그러나 안전을 위해 완치되기 전까지는 제 허락 없이 누구도 들여보내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안 그러면 봉변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요.”
봉형은 한참 침묵을 지켰다.
“이틀 뒤에는 큰 계약이 있어서 자리를 비워야 한다네. 하여 내일 하루밖에 시간을 낼 수 없네. 그러나 집사에게 분부해 호원더러 잘 지키라고 할 것이니 들어와서 자네의 치료를 방해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네.”
“알아서 하십시오.”
야홍릉은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갔다.
“드릴 말씀은 다 드렸으니 다른 것은 봉 가주가 알아서 하십시오. 전 간섭하지 않겠습니다.”
봉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먼저 능 공자에게 거처를 마련해 주라고 하겠네. 언제부터 치료를 시작할 수 있나?”
“그건 아실 필요 없습니다.”
야홍릉이 말했다.
“언제 치료를 시작하는지, 어떻게 해독하는지, 무슨 약을 사용하는지 물으실 필요 없습니다. 전 그냥 나흘 안에 봉회근을 낫게 하면 되니까요.”
봉형은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정말 보기 드물게 차가운 소년이군.’
봉형은 상업계에서 수십 년간 뒹굴며 많은 곳을 돌아다녔지만 이렇게 성미가 차가운 소년을 본 적이 없었다.